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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72화 (72/369)

72화

“내가 옆에서 잘 거야!”

“제가 옆에서 잘 거예요.”

화장실에서 방관을 비우고 나온 민국은 나오자마자 두 여자에게 양쪽 손을 붙잡혔다. 그리고 좌우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게… 민국 입장에선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니… 왜 안방 침대를 놔두고 거실에서 자야 하는 겨?’

민국은 답답한 맘에 그 말을 토로하였고, 그러자 반응은 이러했다.

“그럼 내가 민국이랑 침대에서 잘 테니까 넌 아래에서 자!”

“그럴 순 없어요! 당신 같은 변태를 무슨 수로 믿고!”

참고로 민국이 숙면을 취하는 방의 침대 크기는 그리 큰 편이 아니었다. 같이 꾸역꾸역 뭉쳐서 잔다고 해도 두 사람이 한계였던 것이다. 그 사실을 어림짐작하고 있었기에 두 여자는 침대로 가는 루트는 아예 포기하고 있었다. 민국도 이유는 납득했으나 여전히 정신 없는 상태였다.

‘으어어어어. 이것은 찬스인가 아니면 불똥인가.’

“빨리 누워!”

“민국아 누워. 내가 옆에서 저 사람이 허튼 짓 못하게 관찰해줄게.”

“정말 어이가 없어서! 그러는 그쪽이야 말로 허튼 짓하지 마시죠? 꼭 변태 변태 거리는 사람이 알고 보면 초변태더만~!”

“알았어… 내가 누울 테니까 그만 싸워….”

두 여자의 불똥 터지는 싸움에 민국은 조심조심 얘기했다. 본래 민국은 두 여자가 같이 자고 싶다며 엉겨 붙는다면 오냐 얼마든지 좋다 하며 둘 다 포옹할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러지 못하는 이유는 뭐겠는가? 단연 한예나 때문이었다.

‘정말 적응 안 되네.’

예나의 이런 모습. 매우 낯설고 적응 안 됐다. 물론 한 편으론 신선하고 흥미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민국은 예나에게 단 한 번도 자신의 본성(?)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소꿉친구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그래왔기 때문에 그 딴에서는 자기 자신의 진짜 본질을 보여주기가 애매했던 것이다.

‘만일 이 옆의 여자가 서라나 유이 씨였더라면!’

이미 민국은 강은별과 그 외 여자를 폭풍 임신시키는, 짧은 시간 내에 난자를 수정시키는 최초 기네스북 기록을 세웠을 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참하고 착한 모습만 보여주었던 예나였기에… 민국은 섣불리 행동하지 못했다.

“허튼 수작 부리지마. 조금만이라도 이상한 낌새 보이면 날려버릴 테니까.”

또한 은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은별은 전과는 달리 아주 적극적인 스킨쉽을 보이고 있었다.

그 매력 또한 상당히 흥미롭고 신선한 것이었으나, 마치 진심으로 민국을 원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예나와의 신경전에서 이기고 싶은 승부욕의 욕구가 일으켜낸 행동 같았다. 때문에 왠지 허튼 수작을 하면 진짜로 뼈가 박살날 것 같아 민국은 인내해야 했다.

“누워.”

“편히 누워 민국아.”

“…….”

그리하여 민국은 차디찬 거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눕게 된다. 또 다른 이불이 민국을 덮었고, 민국의 좌우로 은별과 예나가 베게를 머리에 대고 누웠다. 각각 왼쪽 오른쪽을 도맡고 민국을 쳐다보게끔 누운 두 사람이었다. 예나가 민국의 너머에 있는 은별을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나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제가 자고 있는 동안 민국이에게 허튼 수작 부릴 생각 마세요. 조금이라도 그런 낌새가 보인다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해버릴 테니까요.”

“그쪽이야 말로 순진한 척하면서 서민국 꾀할 생각 마시죠. 애인도 아닌 주제에.”

입을 열고 마지막까지 씨름을 벌이던 두 여자가 마치 타이밍이라도 잰 듯이 서로 눈을 감는다. 이리하여 민국은 두 여자에게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천국의 쇠사슬(?)에 묶이고 말았다.

‘오메 띠발.’

침묵이 찾아왔고 민국은 입을 다물었다. 마침 여기서 한 마디라도 내뱉었다간 두 여자가 일심동체처럼 일제히 말을 꺼낼 것 같았다. 그리고 또다시 돌이킬 수 없는 입씨름이 펼쳐지겠지…. …자고로 여자 둘이 입다툼을 나눌 때 남자는 가만히 있어야 하는 법이라 했다. 민국은 계속 조용함을 지키자고 여겼다.

‘는 잠이 안 온다. 망했다.’

4p 사건을 해결하고 집에 돌아온 뒤 몹시나 피곤했던 몸이었지만, 가슴으로 정기를 받아서 그런 건지 민국은 졸음이 싹 달아난 뒤였다. 때문에 이 순간의 1초 1초가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근데, 나 정말 이러고만 있어야 하는 건가?’

잠이 안 오니 상념에 빠지게 된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결과였다.

‘아니, 이러고 있는 게 옳은 건가?’

민국은 자문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 게 올바른 행동인 건지! 여자가 양옆에 두 명이나 있다! 그것도 학교에서 한 인기하다 못해 외모도 연예인 버금가는…! 그런 여자가 자신의 양옆에서 유부초밥(?)처럽 쌍으로 붙어 있는데 과연 가만히 있어야 한단 말인가? 오히려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진짜 가만히 있으면 남자로서의 기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난 고자가 아니다!’

하지만 옆에 예나도 있고, 갑자기 저돌적인 여자가 되었다지만 그런 행위를 급작스레 취하는 게 올바른 행동인 걸까? 오히려 민국의 또 다른 본질을 보게 되자 진심으로 충격을 먹고 울어버릴 지도 모른다! 또한 은별이 역시 하지 말랐는데 했다고 진짜 자기 몸만 탐하려 한다고 싸대기를 때려버릴 지도 모른다!

‘젠장! 나보고 어쩌라고!’

혼란의 카오스에 빠져 있던 민국이었다.

(악마 : 야 이 빠가야로야!)

“?!”

그러던 그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온 듯한 환청 소리에 민국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훑어보는 가운데, 계속 그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누, 누구냐?’

(악마 : 누구긴 멍청아! 네 몸속에 숨어 있는 악마다!)

‘악마?’

(악마 : 그래! …쯧쯧쯧, 멍청한 녀석. 노망나다 못해 뇌가 동상에 걸렸나 보군. 어떻게 사내 새끼가 고추가 달렸는데도 제대로 쓸 때를 모르냐)

‘…그럼 지금이 네가 보기엔 동정 탈출의 기회라는 거냐?’

(악마 : 동정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정교한 테크닉을 배울 수 있는 기회지!)

‘오오오…!’

(천사 : 잠깐!)

(악마 : 나닛?)

(천사 : 왜 애꿎은 민국이를 갈구고 그래? 민국이는 누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겠어? 다 서로 잘 되자고 참는 거 아니야.)(악마 : 슈벌 넌 뭔데 나대냐. 천사 주제에.)(천사 : 그래, 난 명예로운 천사! 민국을 수호하는 마음 속의 착한 천사지!)

‘처, 천사?’

(천사 : 응, 맞아 민국아. 넌 항상 네가 음탕하다고 생각해왔겠지만 사실 그것도 아니야. 너의 마음속엔 그 누구보다도 착하고 선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어. 그건 은하수의 크기보다도 더하단다.)(악마 : 개소리 지껄이네. 이 새끼는 그냥 변태야.)(천사 : …그걸 네가 무슨 수로 판단하니? 황당하네.)(악마 : 닥쳐 니 엄마 앰블랙)

등장은 간지났으나 결국엔 키보드 워리어처럼 키배질을 시작하는 천사와 악마였다. 민국은 내면 속 그들의 혈투에 한참동안을 침묵하다가 생각했다.

‘그래! 이건 일종의 찬스야! 반찬이 두 개나 있는데 밥만 먹는 멍청한 놈이 어딨어?’

예나도 이참에 알 건 알아야 한다. 민국의 본성이 사실 어떠하며, 얼마나 야하고 섹시한 놈인지를! 은별 역시 알 건 알아야 한다. 민국이 사실 얼마나 정력왕이며 정복의 스테미나를 가지고 있는지를!

‘후후후후후 그렇지, 내가 너무 바보 같이 망설였어. 이만한 찬스는 손쉽게 다가오는 게 아닌데 말이야.’

그리고 민국은 일단 오른쪽으로 고개를 틀어보았다. 그곳에는 마침 눈을 감고 자기 쪽을 돌아보며 누워 있는 은별이가 있었다.

…일단 은별이는 여자친구기도 하고 슬슬 다음 루트로 넘어갈 때가 되었으니 먼저 은별이를 공략해보는 게 좋을 지도 모르겠다. 민국은 그리 생각하고 스리슬쩍 손을 움직여 은별이의 배 쪽으로 갖다 대려 했다.

슥.

“어딜 만져 씹쌩퀴야.”

“…….”

하지만 언제 잠에 들었냐는 듯 눈을 뜨면서 노려보는 은별의 표독한 눈빛! 민국은 처음으로 자신의 여자 친구를 보며 오줌을 지릴 뻔했다. 처음으로 느끼는 그녀의 죽일 듯한 살기에 ‘아, 아니야.’하며 민국은 손을 회수했다. 그리고 이번엔 왼쪽으로 몸을 돌려 예나를 돌아본다.

“…….”

예나는 민국이가 생각하는데로 남자 친구가 받아달라면 받아주는 타입이었다. 지극정성에 관대한 타입! 그런 그녀가 민국이의 스킨쉽에 표독한 눈빛을 지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민국이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 난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

‘설사 다른 여자를 선택해서 내가 차인다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거야. 늘 민국이에게 그런 식으로 대우 받아도 씁쓸해하지 않아.’

…….

‘그래… 버림받아도 민국이를 용서할 거야. 이해해줄 거야. 항상 격려해줄 거야.’

…….

‘못 건드리겠드아!!!!!!’

아직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았고, 예나는 여전히 눈만 감고 미동도 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나 민국은 그런 예나의 몸에 손을 갖다 대기도 전에 느껴지는 무한한 모성애에 할 말을 잃었다. 왠지 지금 현황에서 예나를 건드렸다간 자신의 더러움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으어어… 나는 어찌 해야 하는가….’

수려한 두 명의 여자 곁에서 지극히 당연한 혼란스러움을 겪는 민국이었다. 결국 이도저도 못하고, 줏대 없이 잠만 올 때까지 눈만 감고 있는 민국이었다.

*  *

…똑….

…똑똑.

똑…….

“음… 뭐시냐….”

똑똑똑.

지속되는 노크 소리에 민국은 눈을 비볐다. 가면 갈수록 소리는 선명해지고 있었다. 이윽고 반복해서 들려오는 소리에 곁에서 잠을 자던 은별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으으음’ 뒤척인다. 민국은 그런 그녀를 보고는 소리가 안 나도록 조심스레 상체를 일으켰다.

“…….”

똑똑똑. 그러자 노크 소리가 들려오는 유리 현관문 너머로 인영의 검은 잔상이 보였다. 현재 시간은 캄캄한 새벽에 치닿고 있었고, 민국이 알고 지내는 일반 지인들이라면 지금 같은 시간에 찾아올 리 전무했다.

“누구세요.”

이윽고 양옆에서 자고 있는 예나와 은별을 피해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난 민국이 현관으로 다가가며 그리 물었다. 그러자 노크 소리는 잠시 멈추고, 한참 정적 속에서 뜸을 들이던 끝에 유아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어라?’

많이 들은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워낙 개성이 짙어서 민국은 금세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윽고 문을 열어젖히자, 기다렸다는 듯 15세쯤 되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드리웠다.

“흑마법사 느님?”

“오랜만이네.”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어둠 색의 트렌치코트를 입고 서 있는 흑마법사. 그녀가 현관 너머에 서 있었다. 민국은 일순간 당황을 머금은 얼굴로 거실의 두 여자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흑마법사에게 물었다.

“아니, 연락도 없이 왠 방문이시랍니까? 그것도 이런 깊고 아늑한 새벽 때에.”

“그냥. 팬으로서 얼굴 좀 보러 오는 거지.”

어깨를 으쓱이며 입에 조소를 머금는다. 특유의 그 비웃음은 흑마법사만이 머금을 수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몸 상태는 좀 어때.”

“…오늘 쓰러진 거 알고 계셨습니까?”

“그래. 쓰러진 것도 알뿐더러 4P 사건 역시 알고 있지.”

“헐. 무슨 스토커세요? 내 옷에 위치추적기라도 달아놨나?”

민국은 진심으로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을 훑어보는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시상식에서 입었던 옷 그대로 오늘까지 입고 잔 민국이었다. 흑마법사는 또 한 번 어깨를 으쓱이며 ‘그런 건 아니고’ 입을 열었다.

“비슷한 거란 사실만 알려줄 수 있지. 내가 건 흑마법은 너의 모든 걸 알아낼 수 있는 기능도 가졌거든.”

“우와, 왠지 작가가 흑마법 고증하기 싫어서 어차피 소설이니 막무가내로 쑤셔넣자 하는 느낌이다.”

“푸훗.”

이윽고 비웃음을 한 차례 터트린 흑마법사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민국은 그것을 바라보고는 의아함에 물었다.

“그게 뭡니까?”

“신비의 알약.”

고개를 들어 흑마법사를 바라본다.

“내가 예전에 연구해서 제작한 작품이지. 아마 좀 시간이 지나서 네 지인이 널 못 믿는 날이 찾아올 거야. 그때 이걸 한 번 사용해봐.”

“…….”

그리고 입을 다물고 있는 민국에게 제멋대로 약을 건네는 흑마법사였다. 민국은 한참동안 손바닥에 있는 그 알약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지인이 못 믿는다는 게 무슨 말이….”

하지만 이미 고개를 들었을 때, 흑마법사의 자취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 그녀의 모습에 민국은 잠시간 침묵했다. 그러다가 곧 거실에 누워 있는 두 여인을 돌아보고는, 다시 현관 너머의 짙게 깔려 있는 새벽 속 달빛을 바라보며 한 마디 한탄스럽게 내뱉는 민국이었다.

“허 참.”

참으로 정신없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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