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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71화 (71/369)

71화

기억하는가?

서민국을 데리고 시작되었던 제1차 대립 대결….

참가자 한예나, 김새린, 강은별. 비록 강은별은 싸우러 온 것이 아니었으니 제외한다고 쳐도, 한예나 김새린의 불꽃 튀는 대결은 중계자에 가까웠던 민국으로 하여금 굉장한 난감함을 가져왔었다. 그때 역시 돌연 찾아온 희귀병으로 말미암아 민국은 극심한 고통을 느꼈었고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2차 대립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장소는 민국이 살고 있는 집의 거실! 하지만 저번과는 달리 한예나가 상대하는 사람은 달랐다. 바로 현존하는 민국의 여자 친구, 강은별이었던 것이다.

“당신 같은 변태한테 민국이를 넘겨주면 민국이는 오염될 게 분명해요. 그전에 싹을 잘라버리겠어요.”

“와~ 진…짜 어이없어! 오염된 건 나지 서민국이 아니거든? …하긴! 여자친구도 아닌데 어떻게 민국이의 다른 모습을 알겠어!”

“자꾸 여자 친구라고 하시는데 지금은 여자 친구일지 몰라도 나중에는 결국 헤어지실 거예요. 당신은 변태에다가 가슴도 작으니까.”

“…나 아직 성장기거든?!”

박진감 넘치는 예나와 은별의 싸움. 그 극심한 싸움 속에서 한예나가 손가락을 다시 한 번 펼쳐들어 은별을 가리켰다. ‘애초에!’하며 그녀가 말을 덧붙인다.

“진짜로 민국이가 18cm인지 아닌지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요? 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진짜로 본 적도 없다니. 봤어! 봤다구!”

그 말에 순간 벙이 쪄버리는 예나였다. 들고 있는 손가락에 힘이 빠져버린다.

“봐봐봐봐, 봤다구요…?”

“…….”

은별은 말을 하려다 말고 얼굴만 붉혔다. 그도 그럴 것이, 보긴 봤으나 결코 떠올리기 싫은 추억이었다. 아니, 그것을 과연 추억이라 불러야 할까? 아직도 은별은 자신이 왜 민국에게 그런 행위를 했던 건지 결코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번 4p 사건에서 자신이 세 사람의 옷을 벗기고 나신으로 만들었다는 것도 아직 인정하지 못했다. 은별이 말을 잇지 못하자 제멋대로 추측한 예나가 소리쳤다.

“역시 당신 같은 변태한테 민국이를 넘겨줄 수는 없어요! 민국이가 자고 있을 때 벗겨서 확인한 거죠!”

“아, 아니얏!”

부정은 했으나 부정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술에 취했을 때 자고 있는 민국이를 억지로 벗겼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민국이의 바지 너머에 숨겨져 있던 그 정글의 기둥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아주 흐릿하게 잔상만 떠오를 뿐이었다.

“으어어어어. 아임 좀비 으어어어어.”

뜨거운 분위기가 그 신음에 중재되었다. 은별과 예나는 자연스레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을 감고 쓰러진 채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서민국이 보였다.

힘없이 신음을 토해내는 그의 얼굴엔 땀방울이 한 가득이었다. 아무래도 한 시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 채 가슴을 때서 그런지 효과가 금세 줄어든 모양이었다.

“…….”

이를 보던 은별이 잽싸게 민국의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슴팍에 포갠다. 그런 은별의 행위에 예나가 화들짝 놀라다가 부리나케 나머지 민국의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팍에 포갠다. 그 모습에 은별이 한 마디 거세게 뱉었다.

“네가 왜 가슴을 대줘?”

“소꿉친구니까요.”

“…난 애인 사이거든? 보통 소꿉친구는 자신의 소중한 가슴을 친구 사이에도 만지게끔 해주나봐?”

“민국이는 저에게 보통 친구가 아니니까요.”

지지 않고 들어가는 예나의 행동에 울컥하는 은별이었다. 예나 또한 자신이 이토록 강인하게 나갈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렇게 두 여인의 말싸움은 쉴 틈 없이 지속되었다.

*  *

‘으어어어… 여긴 누구고 나는 어딘가.’

민국은 꿈속에서 아주 긴 어둠 속을 해쳐 나가고 있었다. 만화 드래곤볼의 주인공처럼 날아 보이며 주변을 훑고 지나는 민국의 시선에 푸르게 펼쳐진 은하수가 보인다.

‘어어?’

그리고 그런 민국의 양손에 갑자기 무언가 쥐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민국은 큰 눈으로 자신의 두 손에 쥐어진 것들을 확인하기 위해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양손에 집히는 그것은….

“…….”

각기 색깔이 다른 물풍선이었다. 하나는 물이 어느 정도 되는 양으로 채워져 있는 노란색 물풍선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그것보단 비교적 물이 적었지만 색깔이 무지개처럼 예쁜 물풍선이었다.

‘오오오.’

민국은 양손에 들어온 그 물풍선들이 각기 다른 감촉을 느끼게끔 해주자 묘한 황홀함을 느꼈다. 마치 두 여인의 봉긋한 포켓볼을 손에 넣은 느낌이었다.

‘마치 색상 예쁜 아스팔트와 적당한 크기의 몬스터볼을 손에 넣은 기분이야.’

그렇게 묘한 정복감 속에서 꿈속의 나라를 펼치던 서민국이었을까. 찾아왔던 극심한 고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민국은 서서히 현실로 돌아가는 자신의 정신을 느꼈다. 그리고 꿈속에서 느꼈던 손바닥의 촉감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다.

‘으잉?’

“자꾸 민국 민국 거리는데 그렇게 정겹게 이름 부르지마! 여자친구도 아니면서!”

“그쪽이야 말로 애인 행세도 정도껏 하세요! 여우의 탈을 쓴 변태면서!”

“…변태인지 아닌지 확인해볼래?! 한 번 실제 길이가 어떤지 확인해봐?!”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하는 얼굴로 은별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맞은편에 있는 예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서히 눈을 뜬 민국은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래서 눈싸움 중인 두 사람을 좌우로 살펴보다가 서서히 입을 열려고 했다.

그때 예나가 지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소리쳤다.

“좋아요! 자신 있으면 한 번 해봐요!”

“맞으면 더 이상 서민국에게 접근하지마!”

“그래요! 대신 0.01cm라도 차이나면 그쪽이야 말로 떨어지세요!!”

이성을 잃은 두 여인! 급기야 은별이가 민국의 바지를 벗겨내려고 한다. 민국은 ‘엉?’하면서 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

“…….”

한 공간에서 전혀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언동을 중지하는 두 여인이었다. 두 여인의 고개가 곧잘 민국에게로 틀어졌다. 눈을 뜨고 있는 민국과 시선을 마주하게 되었고, 민국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강은별?”

“…….”

“예나야?”

은별을 부르는 민국. 그리고 고개를 틀어 예나 역시 바라보며 불러보는 민국.

“네가 왜 여기에….”

“…….”

예나는 뒤늦게서야 자신이 흥분해 절도를 지키지 못했단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핫!’하면서 크게 놀라는 모습. 아까 전 은별과 살기에 가까운 신경전을 벌였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물러나는 태도였다.

민국은 다시 은별을 바라보았다. 은별도 이제야 자신의 변태스러움(?)을 가늠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읏’하고 물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민국의 바지춤을 내리려던 손은 아직 고스란히 그대로였다.

이를 본 민국이 ‘설마?’하면서 약간 기대를 가졌다.

‘미연시 루트에서 캐릭터도 공략하지 않고 바로 H씬에 돌입하는 건가!’

“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컥!”

‘퍽!’하고 한 대 맞고 다시 얼굴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민국이었다. 다시금 반쯤 기절한 듯한 민국의 모습에 사색이 된 예나가 소리쳤다.

“어떻게 애인 사이에 때릴 수가 있어요?”

이윽고 예나가 정신을 차릴 둥 말둥 하는 민국에게로 다가가 머리를 손으로 받쳐주었다. 자기 허벅지 쪽에 머리를 대게 한 다음 눕게 한 예나의 모습에 민국이 어지러운 눈길로 올려다보았다.

“어어… 예나야…?”

“민국아….”

민국의 초췌한 모습에 급기야 울컥했는지 눈물을 그렁그렁 맺는 예나였다. 은별은 한 순간 자신의 폭력 충동(?)으로 두 사람만의 분위기가 생기게 되자 당황하는 눈빛이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은별이 빠르게 민국에게로 다가가 손을 잡고 다시금 자신의 가슴에 포개었다. 뭔가 익숙하고도 묘한 그 촉감에 민국의 눈길이 은별에게로 옮겨졌다.

은별이 조금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바보야.”

그 한 마디가 끝이었지만,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민국 역시 그 한 마디를 통해 4P 사건에 대한 오해를 어느 정도 풀고, 은별이가 용서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몽롱한 정신인 민국의 입가에 자연스레 안도의 미소가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오늘 저 여기 있을 거예요.”

“어?”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예나가 돌연 파격적인 발언을 하였다.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민국은 어벙벙하게 반응을 하였고, 지켜보던 은별은 휘둥그레 눈을 뜨며 놀라했다.

“뭐어…?”

“이 병, 하루에 한 시간만 만지면 낫는다고 했죠? 하지만 미리 많이 만져두면 민국이가 이렇게 위험해지는 일도 적어지겠죠.”

그리고 예나 역시 민국이의 나머지 손을 붙잡아 자신의 가슴에 포개었다. 민국은 예나의 그런 행동을 살면서 처음으로 겪어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심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민국아. 이런 병 때문에 다신 네가 위험해지지 않게 곁에 있어줄게.”

“…….”

“이용할 거면 마음대로 이용해도 좋아. 비록 애인 사이가 아니더라도…….”

애인이 아니라도 좋다. 그의 곁에서 그의 마음을 어느 정도 차지할 수 있다면…. 예나는 이미 친구의 조언을 통해 마음을 다잡은 상태였기 때문에 도덕이고 양심이고 내팽개친 상태였다.

허나 민국은 예나의 그런 전후사정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때문에 기절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가 곁에 있던 것도, 그녀의 돌연 달라진 듯한 행동에도 심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예, 예나야? 갑자기 왜 그래?”

“…….”

역시나 민국의 반응은 혼란 그 자체였고, 그것은 오로지 예나에게만 보일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도 그럴 게 민국은 예나에게 자신의 본성을 보여준 적이 없지 않은가! 은별에게처럼 ‘후후! 얼마든지 있어도 좋아! 이참에 내 아이를 임신해라!’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으윽!”

여자 친구로서의 위기감을 절실히 느끼는 은별이었다. 주먹을 쥐고 바들바들 떨던 은별이 이윽고 휴대전화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엄마? 응, 나 오늘은 집에 못 들어갈 거 같아. …아니야!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아이참, 아니래두!”

그리고 통화를 끊은 은별이었다. 민국과 예나는 말없이 그런 그녀의 등을 주시하였다. 이윽고 은별이 몸을 돌려 조금 붉어져 있는 얼굴로 용기 내 말했다.

“나도 오늘 여기 있을 거야.”

“…….”

그리고 놓치지 않겠다는 듯 떨어뜨렸던 민국의 손을 다시 자기 가슴에 포개는 은별이었다. …그리하여 두 여자의 가슴을 손에 넣은 민국! 그러나 이제 막 깨어난 그에게 이 상황은 참으로 아스트랄한 것이었다.

‘뭐지? 길가다가 쓰레기 주웠는데 알고 보니 로또 1등인 종이 주운 느낌이야.’

심지어 오늘 두 여자 모두 민국의 집에서 자고 가겠단다! 이거 어쩌면 한국 로또가 아니라 해외 로또에 당첨된 거 아닐까?

‘어쩜 진짜 3P를 이뤄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꿈처럼 찾아온 행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의혹이 떠올랐다. 그 의혹은 예나에 관련된 것이었다.

‘은별이야 내 통화를 듣고 찾아왔다고 하고, 예나는 왜….’

그리고 예나의 행동이 왜 이렇게 달라졌단 말인가? 예전에는 그저 옆에서 지켜만 보는 해바라기 같은 여인이었는데, 지금은 적극적으로 나가려고 하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승부욕으로 똘똘 뭉친 모습이었다. 민국에게 가슴을 내주자 살짝 부끄러워하면서 시선을 피하는 건 기존의 모습과 닮았지만 말이었다.

“…아무대도 가지마. 내가 맘먹고 아침까지 있어주려는 거니까 딴 생각하지 말고.”

“일어나기도 힘들어 보이니까 여기에 계속 누워 있어. 내가 곁에 한동안 있어줄게.”

은별과 예나가 한 번씩 거들면서 하는 말에 민국은 ‘어….’하면서 잠시 동안 멍을 때렸다. 이제야 슬슬 가슴을 통해 치유가 되기 시작했는지 정신이 멀쩡히 돌아오는 모습이었다.

“아니, 저.”

“왜? 무슨 불만 있어?”

“왜 그래 민국아?”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대응하는 은별과 예나의 모습에 뜸을 들이던 민국이 조심스레 말했다.

“장실 좀.”

“…….”

“…….”

오줌이 마려운 민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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