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커넥트 패러디>
“으헝헝헝헝헝.”
더럽혀진 서라는 사건현장의 모텔방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시작했다. 분비물처럼 끈적끈적한 아기씨는 서라의 몸에 상당히 짙게 묻어 쉽사리 닦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민국은 죄를 지은 죄인답게 화장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잠시 후 끼이익 문이 열리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서라의 모습이 보였다.
“으으으, 헨타이 데스네….”
옷은 한 벌밖에 없던 지라 어쩔 수 없이 입던 옷을 그대로 입을 수밖에 없었다. 액체로 이미 한 번 더럽혀졌던 그녀의 옷에선 음탕한 냄새가 드문드문 나고 있었다.
“근데 형아 조루 냄새 나네여?”
“…….”
하지만, 코를 막고 인상을 과장되게 찌푸리던 것도 잠시, 서라는 곧 여유로워진 얼굴로 민국에게 묻고 있었다.
“어떻게 3분 만에 쌀 수가 있음? 으으 츤츤고딩이 실망하겠네여!”
“훗! 잘 모르는 구나 콩딱지.”
“읭?”
죄인처럼 굴던 것도 잠시, 무슨 자신감인지 서민국은 팔짱을 끼며 당차게 소리쳤다.
“난 너를 딸감으로 했기 때문에 빨리 쌌을 뿐! 야동을 볼 땐 실제로 지루다!”
“히이익! 헨타이 냄새가 더블로 밀려오네여!”
정말이지 경악하는 표정으로 물러나는 서라였다. 과장되게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에선 실제로 부끄러워하는 게 조금씩 묻어났다. 사실 말이 성드립과 막장 드립의 여성 비제이지, 실제로는 그녀 역시 아직 첫 경험이 없는, 순수함이 묻어나는(?) 일반 여고생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나도 처음으로 여자를 상대로 부카게를 해보았으니 목표로 했던 계획은…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아래를 내려다보는 유이의 시선에 민국은 순간적으로 사과하고 말았다. 딱히 위협을 가한 것도 아닌데 유이의 등에 진 포스는 장난 아니게 사나웠던 것이다. 역시 조상이 깁갚판이어서 그럴까?
“그러니까… 그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 묻어나는 위협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목소리는 굉장히 조용하기 그지없다. 민국은 처음으로 듣게 된 그녀의 긴(?) 문장에 ‘응?’하고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뭐가 말입니까?”
“사건의 진상….”
드디어! 그토록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내놓는 유이였다. 그리고 이를 듣게 된 민국과 서라는 당연하겠지만 휘둥그레 눈을 뜨며 놀라는 모습이었다.
“설마 우리보다 빨리 사건의 진상을 알아냈단 말입니까?”
“헐! 설마 두뇌 회전 120퍼센트세요?”
유이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아까 식당에서… 알았어요.”
“…….”
“떠올라서….”
“…….”
잠시 침묵. 둘 다 놀라는 건 당연했다. 일말의 실마리도 찾지 못했던 두 사람과는 달리 유이는 금방 기억해내지 않았는가. 하지만 찾아오는 반응은 역시 일반인과는 달랐다.
“우와! 역시 강간! 넓은 마음답게 정말 노답이시네여! 알면서 지금까지 말씀 안 해주신 거예여?”
“…….”
“역시 유이 씨는 마음이 심해처럼 깊고도 풍만하군요. 하지만 그 풍만함이 가끔은 도를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말할 땐 말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꽁꽁 숨기고 우리가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꼬락서니를 그대로 지켜보다니!”
“말할 시간을 안 주셔서….”
“우루사이! 우루사이! 우루사이! 가슴 대왕!”
우루사이! : 시끄러워!
투다다다다다다다닥! 환상적인 발차기가 또 한 번 시작되었다. 민국은 또다시 허공을 날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처참해진 모습으로 바닥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그 절경을 옆에서 지켜본 서라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히이익’거리며 물러났다.
“죄, 죄송해여…. 닷시는 그 가슴을 욕보이지 않을게여….”
“…….”
드디어 길고 긴 이 오해를 풀 때가 다가왔다. 유이는 이제 맞는 게 익숙해져서 조금이나마 적응하게 된 민국을 데리고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워낙에 조곤조곤하고 신중하게 이야기하는 타입이다 보니 일반인이 10분이면 뚝딱 끝낼 이야기를 무려 30분이나 걸렸다. 도중에 ‘하암’하고 하품 소리를 낼 뻔한 서라가 발차기를 맞을까봐 참았다는 건 서라만의 비밀.
“그렇게 된 거예요….”
“…….”
“…….”
그리고 이야기가 끝난 직후였다. 유이는 자신이 아는데로 이야기를 다 해주었다.
세 여자 모두 술에 거하게 취한 상태였고, 세 여자의 지독한 술버릇들을 홀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민국은 똑같이 취한 채로 모텔에 들어와 잠에 들었다는 것. 그리고 옷이 벗겨져 있고 피가 이불에 흥건히 묻어 있던 것은 어디까지나 은별이와 서라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하긴 유이 씨의 니킥에 맞았으면 난 모텔이 아니라 병원에 누워 있었겠지.’
사용된 흔적이 남아 있는 콘돔을 비롯해서, 또 한 번 피가 흥건히 묻어 있던 사실에 대해서도 다 이야기해준 유이였다. 물론 세 여자의 전체적인 술버릇에 관해서는 언급을 일절 사절했다.(은별 빼고) 얼추 기억이 났지만 얘기하기가 민망했던 것도 있다.
‘그럼 나는 결과적으로 아무 여자들과도 잠을 자지 않았다는 건가?’
쉽게 얘기하면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게 된다. 그것은 곧, 세 여자의 처녀막을 터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되며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만일 유이 씨의 이야기가 정말 사실이라면!’
“형 다행임!”
서라가 다행이라고 격려하는 가운데 민국은 턱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그의 돌연 심각한 표정에 지켜보던 유이와 서라의 얼굴에 물음표가 새겨졌다.
“잠깐만. 그럼 나는 결과적으로 세 여자와는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거잖아? 그렇죠 유이 씨?”
“네….”
유이가 다소곳이 고개를 끄덕이자, 민국은 ‘으으’하면서 돌연 어깨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런 민국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잠시간 쳐다보던 유이. 얼마지 않아 민국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으아악!’하고 소리쳤다.
“왠지 아까워!”
“…….”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니까 왠지 기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그렇다. 사건의 결과상 서민국에겐 아무런 책임도 없던 게 되지만, 결과적으론 서민국이 기회를 등신같이 놓쳐버렸다는 게 된다. 고자라 불려도 할 말이 없다.
‘최소… 최소 한 명이라도 쎾뜨했으면!’
그 아쉬움이 돌연 폭주했을까. 민국은 이성을 잃고 주변을 도리도리 둘러보았다. 그러다 머지않아 모텔 벽면에 걸려 있는 시계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때서 자신의 손에 들고 이렇게 외쳤다.
“시간을 돌리는 자!”
“…….”
“미연시 게임답게 세이브 포인트로 로드!”
“…….”
“빌어먹을 현실 으헝헝.”
서라는 ‘그렇게 하는 거 아님, 좀 더 위로 들어서 강렬하게 외쳐야함.’하며 휴대폰으로 촬영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유이는 그냥 기운이 빠져서 어깨를 늘어뜨릴 따름이었다.
“어쨌든 간에 유이 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난 아직 동정인 게 사실이고! 이제 츤고딩과 오해를 풀 일만이 남았구나!”
나름대로 확신을 갖는 유이의 모습을 보니 결코 농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민국도 체감적으로 그녀의 말이 맞다고 느꼈고 말이다. 민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휴대폰을 빼서 곧장 강은별에게 연락했다. 뚜루루루….
“흠흠, 안 받는군요.”
“…….”
한참을 연락했지만 받지 않는 강은별이었다. 아마 의도적으로 받지 않는 게 자명하리라. 민국은 ‘쩝’하고 입맛을 다신 뒤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도로 넣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죠. 일단 유이 씨 감사합니다. 이제 사건의 실마리도 해결된 거 같으니 집으로 돌아가죠.”
“…네.”
길고 긴 추리 시간이 끝났다. 사실 필요도 없는 추리였지만 졸지에 하게 된 셈이었다. 모텔에서 나온 민국은 두 여자와 개찰구 쪽에서 헤어질 준비를 하였다. 서라가 인사했다.
“형의 아기씨들이 내 옷을 임신시키면 책임지세여.”
“그래 이놈아. 너도 집에 잘 들어가라. 옷 꼭 씻고.”
“…….”
“출렁 씨도 집에 들어가세요. 오늘 감사했습니다.”
유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민국은 오늘 갈 길이 급했기 때문에 서둘러 먼저 귀가를 준비했다. 몸을 돌려 지하철로 향하는 민국을 지켜보는 유이. 그런 그녀의 귓전으로 누군가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엇흠! 콜록 콜록! 켁켁! 쿠엉! 카각! 가, 가슴의 왕 쿨럭쿨럭!”
“…….”
이런 오바스러운 기침은 누가 내겠는가? 옆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역시 서라였다. 서라는 유이가 자신을 쳐다보자 잠시 흘긋 곁눈질하는가 싶더니 기침을 멈추었다.
“저기~ 유이느님?”
“……?”
서라도 유이와 집 가는 길이 달랐다. 고로 여기서 헤어지는 게 맞았다.
“정말 그거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 안 나시는거져?”
“…….”
부끄부끄한 척하며 은근슬쩍 추궁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유이는 그런 서라의 행동을 반대로 추궁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런 유이의 모습에 서라는 안도한 것처럼 조아라 하는 모습이었다.
“헤헤! 다행이네여! 요카타~!”
“…….”
“명탐정 강간느님 덕분에 빨리 해결할 수 있어서 좋았어여! 비, 비록 제 옷이 아기씨들에게 범해지고 말았지만!”
“…그래요.”
“여튼 감사의 답례로 보상 하나 드릴게여.”
서라는 주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쳐다보는 것도 신경 안 쓰고 두 손을 머리 근처에 올렸다. 그리고 좌우로 까딱까딱 귀염스럽게 움직이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니코니코니! 아나따노 하트에 니코니코니!”
“…….”
“움~다메다메다메~ 니코니는… 밍나노거야~!”
요즘 대세인 니코니코니를 한 차례 선보여주고는, 서라는 손을 흔들면서 곧장 지하철을 타기 위해 멀리 떠났다. 유이는 점차 멀어지는 서라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다가 천천히 내렸다.
“…….”
그리고 자취를 감추는 서라의 뒷모습을 보면서 유이는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을 곱씹었다. 사실은 기억하고 있었다. 어젯밤 있던 모든 일을 말이다.
‘흑… 흐윽….’
눈물을 격심히 흘리면서 민국의 옷자락을 붙잡던 서라의 모습. 그녀가 했던 대사까지도 말이다.
‘오빠를….’
유이는 끝내 말하지 못했다.
‘좋아한단 말이야….’
* *
민국은 집으로 돌아와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남기기 시작했다. 물론 메시지를 받는 이는 남고딩, 강은별이었다.
[이 여자야 왜 안 받아? 내가 멋진 추리로 사건의 진상을 전부 파헤쳐냈다니까.]
[진짜로 다 알아냈다고. 아무런 일도 없었던 거야. 유이 씨가 말해주었어.]
전화를 받지 않자 결국엔 메시지로 내용을 남기는 민국이었다. 그러자 여태까지 받지도 않고 답장도 없던 은별에게서 메시지가 또로롱하고 왔다.
[지금 가족들이랑 식사 중이야. 이따 연락해.]
퉁명스러운 대사처럼 들려왔지만 민국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말이 헤어지잔 거지 실제로 은별도 그러기 싫었던 것이다. 또한 민국이 모텔방에서 아무런 일도 없었다며 얘기하고 있으니, 이야기를 자초지종 들어보고 싶기도 했다.
‘마음 좀 풀어줘야지.’
마음의 상처가 깊게 남아 있을 은별을 달래기 위해 민국은 거의 처음으로 비위를 맞춰주듯 문자를 전송했다.
[시스타 노래 중에 ‘니가 있다 없으니까 숨을 쉴 수 없어~’라는 가사가 나오는 노래가 있잖아. 여기서 ‘니’가 뭘 의미하게?]
가수 씨스타의 노래, '있다 없으니까'라는 노래의 가삿말이었다. 민국은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며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컴퓨터 전원을 키고 있을 때 ‘우우웅’하고 휴대폰이 울려왔다. 민국은 곧장 답장을 확인했다. 은별의 답장은 이러했다.
[산소 병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