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67화 (67/369)

67화

<화이트 브레스>

범인은 반드시 현장에 돌아온다.

이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서민국이 증명하고 있었다.

서민국은 어젯밤 거한 일(?)이 벌어졌던 현장에 다시금 돌아왔다.

그리고 모텔방 아주머니를 설득해 아직 비어 있는 그 방에 다시금 들어가보겠다며 설득하고 있었다.

“아이고 이럼 안 되는데.”

“사용료는 그대로 드릴게요. 그러니까 그때 사용했던 이불이랑 물건들도 확인할 수 있게 해주세요.”

참고로 민국은 CCTV까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정확히 어제 어떤 계기로 이 모텔에 들렸으며! 모텔비용을 계산하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이다. 참고로 모텔방 아주머니에게 물어본 결과, 어제 모텔비용을 계산한 사람은 서민국 자신이었다고 한다.

“아이고… 원래는 안 되는 일이지만 내 청년이 잘 생겨서 봐주는 거유!”

“하하, 고맙습니다. 저도 저 잘 생긴 거 잘 아니까 칭찬하실 필요 없어요.”

너스레를 떨며 농담하듯 말하는 서민국이었지만, 뒤에 덧붙인 그 말이 장난이 아니란 걸 아는 사람은 알았다.

“흐음.”

이윽고 CCTV를 확인하는 서민국이었다. 역시 별 거 없었다. 폭력적인 유이의 횡포와 더불어 진하게 엉겨 붙는 은별이, 그리고 훌쩍훌쩍 울고 있는 강서라.

‘근데 잘 생각해보니 이 여자들 술버릇 한 번 고약하네.’

술집에서 술에 취하기 전까지의 일은 모조리 기억하고 있는 서민국이었다. 그녀들의 술버릇을 완전히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셋 다 상당히 특이한 술버릇으로 민국을 골치 아프게 했던 건 기억했다.

“고맙습니다. 그럼 잠시 방에 들를게요.”

이윽고 모텔비용을 낸 뒤 키를 받아 복도로 나오는 민국이었다. 그런 민국을 기다리고 있는 이가 둘이나 있었으니… 바로 서라와 유이였다.

“형 어떻게 됐음?”

“CCTV는 별 거 없네. 이제 방으로 들어가서 확인해보자.”

“…저기.”

“아? 유이 씨도 수사에 협조해주시려구요? 훗… 은근 탐정의 일에 관심이 있는가 보군요?”

또다시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마는 유이였다. 울컥울컥한다.

“형 들어가기 전에 이거 쓰셈!”

“어? 이거 뭐냐?”

“모텔방 주인에게 잠시 빌려온 안경임! 본래 탐정물의 주인공은 이걸 써야 하는 게 법칙이잖음.”

“아!”

짜악! 민국은 서라와 기다렸다는 듯이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그건 마치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서태웅이 마지막에 하는 하이파이브와 같았다.

“역시 네 녀석… 보통 덕후가 아니로구나.”

“훗. 닷시는 코난을 무시하지 마셈.”

그렇게 코난으로 빙의하기 위해 알 없는 안경을 쓰며, 민국은 모텔 방으로 향했다. 이윽고 민국 일행이 하룻밤 잠을 잤었던 방문 앞에 도착하자 크게 긴장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꿀꺽.”

“침 꿀꺽.”

“…….”

막연히 지켜보는 유이가 있는 가운데, 민국은 ‘연다?’하고 신호를 주고는 서서히 열쇠로 문을 잠금해제 시켰다. 딸칵…!

“…….”

끼이이익…. 조심스레 열리는 문.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어둠! 어젯밤의 사건 현장에 범인들이 다시 돌아왔다!

“조심하셈 형…. 지문이라도 묻으면 나중에 위험해질 지도 모름.”

“훗. 한 때 조커의 제자로서 이름을 날렸던 내가 그런 헛점을 남길 리가 없지.”

“저기….”

“들어간다!”

“이응이응!”

문을 열어젖히고 어둠을 치우기 위해 벽면의 스위치를 누른다! 강대한 불빛이 모텔방 내부를 비추기 시작하고, 명탐정 서민국은 다소 진지해진 얼굴로 주위를 슥슥 둘러보기 시작했다.

‘역시! 나가기 전과 달라진 게 없어!’

“서라야! 일단 이불 근처를 확인해봐! 전에 있던 피 말고 또 다른 피가 있을 지도 모르니까!”

“알겠음!”

다행이 이쪽 모텔이 손님이 많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몇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았다. 고로 민국은 나가기 전의 사건 현장 그대로를 들춰볼 수 있었다. 서라가 민국의 명령에 따라 이불을 젖히고 있을 때, 민국은 거울이 있는 서랍 쪽을 확인해보고 있었다.

“!”

그러다가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발견하고는 놀라는 민국! 유이는 그저 두 사람의 쇼를 방 안에서 말없이 지켜볼 따름이었다.

‘이것은… 콘돔!’

하지만 보통 콘돔이 아니었다. 무려… 뜯겨져서 실제로 사용된 듯한 콘돔이었다! 민국은 턱을 지고 진지한 표정으로 혼란스러워했다.

‘어째서지? 어째서 봉투가 뜯겨진 채로 서랍 위에 내버려진 콘돔이 있는 거지?’

그것도 마치 사용된 흔적이 있는 콘돔 같았다.

“…….”

하지만 유이는 저것을 보는 순간 망각하고 있던 또 다른 기억이 떠오르는 걸 느꼈다. 사실 저 콘돔이 봉지에서 뜯겨진 까닭은 아주 간단했다.

‘너 콘돔으로 맞아봤냐.’

‘예?’

‘콘돔을 안 사용하니까 콘돔이 슬퍼하잖아 자식아!’

퍽! 괜히 서랍 위에 있는 애꿎은 콘돔을 발견하고 봉지에서 뜯어 그것을 쥐고 주먹을 휘둘렀던 것이었다. 물론 가해자는 유이였고 피해자는 민국이었다.

‘본래 역할에 사용되지 못한다면 폭력으로라도 쓸 수 있게 해주는 게 물건을 슬프게 하지 않는 일이야! 알아들어!’

“…….”

술에 취한 것도 아니었으나 유이는 순간적으로 휘청였다. 설마 어제의 자신이 그런 헛소릴 지껄였을 줄이야….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유이는 이번 일을 계기로 술에 취해 망각했던 모든 사실들이 다음 날에 떠오르는 타입이란 걸 느꼈다.

“형! 큰 일 났음! 여기에 또 다른 피가!”

그때 서라가 민국을 부르며 이불을 젖혔다. 그러자 침대에 다소 많은 양의 핏물이 묻어 있는 걸 보았다.

“헉!”

“어쩐지 가랑이가 아프다더니!”

민국은 놀랄 노자였고 서라는 자신의 처녀막이 뚫린 것 마냥 가랑이 사이를 오묘히 가리는 제스쳐를 취했다. 민국은 두근두근 거리는 맘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피가 흥건히 묻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이, 이건….”

“…….”

민국은 기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침의 기억을 누구보다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유이는 알고 있었다.

“저건 제가 아침에….”

“이, 이럴 수가! 내, 내가 정말로!!!”

털썩하고 무릎을 꿇어버리는 서민국! 그의 위기가 기어코 찾아온단 말인가? 절대 아닐 거라 확신했던 일이 사실은 맞다는 반전. 그것이 지금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

하지만 진상을 알고 있는 유이는 또다시 말할 타이밍을 놓치자 입을 다물었다. 저 피는 아침에 서민국을 때려서 나온 또 다른 코피였다.

어젯밤 서라의 크로스라인에 맞고 왼쪽에서 코피가 흘러 내렸다면, 오늘 아침엔 유이의 발차기를 맞고 또다시 굳었던 왼쪽 코피가 터져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민국은 오늘의 사건이 너무나도 충격이 컸던지 그런 세세한 부분까진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내가… 기어코 세 여자를 범했단 말인가?”

머리를 쥐어뜯는 민국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바다를 누빈 적도 없는데 해적왕이 된 느낌이다. 롤도 한 적이 없는데 페이커가 된 느낌이다. 소설도 안 썼는데 소설가가 된 느낌이란 말이다!

“핫!”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민국은 일시적으로 요동치는 자신의 ‘그것’을 느꼈다. 민국의 쇼를 말없이 지켜보던 유이가 다시 입을 연다.

“그러니까….”

“…잠깐만.”

하지만 이번엔 민국의 손에 제지당하고 만다. 울컥하다 못해 파르르르 떨릴 지경.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민국의 시선은 자신의 아랫도리로 향해 있었다.

“그래, 그게 있었어.”

“…….”

“왜 지금까지 기억하지 못했던 거지?! 이 방식을 사용한다면 알 수 있을 터인데!”

마치 중요한 흔적 한 가지를 발견한 모습이었다. 서라가 ‘형?’하면서 의아해하는 가운데, 민국은 그늘 진 얼굴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유이와 서라를 향해 조용히 말을 하는 민국이었다.

“서라야, 유이 씨. 미안한데 잠시 밖에서 기다려 주세요.”

“…….”

“이 사건의 중요한 열쇠, 제가 드디어 찾아냈습니다.”

은별을 납득시킬 수 있는 열쇠! 그리고 여기 있는 두 사람 모두 이해할 수밖에 없는 열쇠! 민국은 확증이 될 수 있는 한 가지를 기어코 발견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저기….”

하지만 사건의 진짜 진상을 알고 있는 유이로선 답답하기 그지없어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내뱉을 뿐이었다. 그러나 유이의 부름이 지금 민국에겐 들리지도 않던지, 민국은 다시 진지해진 얼굴로 ‘유이 씨!’하고 그녀를 불렀다.

“나를 믿어요. 내가 반드시 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겠습니다!”

“…….”

뭐 이런 ㅂㅅ이.

“그리고 서라 너는 이 병에 있는 내용물 화장실 변기에 가서 버리고 와줘.”

“알겠음!”

그렇게 하여 민국은 화장실 변기에 내용물이 버려진 병을 서라에게서 받았다. 이후 일단 유이랑 서라는 복도로 나갔다. 그래도 민국이 무엇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겠다는 건지 내심 궁금했던 것이다.

어차피 이 사건의 주요 인물은 서민국 자신이었기 때문에, 그가 스스로 해결하겠다는데 뭐라 할 인물은 없었다. …그리고 3분이 흘렀을까. 끼이익! 쿵! 문이 열리고, 이상하게 아까보다 상당히 지친 듯한 민국의 모습이 나타났다.

“형,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 거임?”

“그래 인마… 드디어 내가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냈다.”

꽤나 초췌해진 눈빛. 그의 수중에는 아까 전 서라에게서 받은 병이 들려 있었는데, 어둠 속이라 그런지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일단 진실을 밝혀내기 전에… 고맙다 서라야.”

“읭읭?”

“넌 좋은 반찬이 되었어.”

“어멋! 바, 반찬이라니! 무슨 반찬? 개구리반찬?”

“아니.”

민국은 병에 들려 있는 그것을 앞으로 내보이면서 소리쳤다.

“딸감이다!”

“…….”

“…….”

순식간에 정적.

“그러고 보니 난 방송을 하면서 거의 2주간 자기 위로를 하지 못했지. 과제니 방송 일이니 많이 쌓여 있어서 말이야. 그래서 지금 만일 내가 딸을 친다면 남들보다 더 많은 폭주를 할 거라 자신했지. 그리고 이게 바로 그 증거물이야!”

“…으아앗!”

병에 들려 있는 하얀 내용물을 보여주려는 민국의 모습에 서라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면서 손으로 눈을 가리려고 들었다. 그리고 ‘변태다! 변태가 나타났다!’라고 외치는 걸 놓치지 않았다.

“봐봐! 일반 남자애들이랑은 내용물이 확연히 차이가 나지?! 하도 쌓여 있던 지라 만드는데 얼마 걸리지도 않았어!”

“…….”

“보라구! 봐봐! 내 말이 맞지? 난 역시 너희들을 덮치지 않았….”

투다다다다닥! 유이는 진짜 뭐 이런 ㅂㅅ이 있나 싶었다. 그녀는 곧장 김갑판 발차기를 이용해 민국을 하늘 높이 날게 만들었고, 사건의 해명을 할 수 있던 자신의 말을 몇 번이고 씹었던 것까지 합하여 통쾌하게 복수(?)했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으어어어어….”

그건 바로… 민국의 수중에 쥐어진 병에 뚜껑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유이에게 맞고 있던 민국은 졸지에 병을 떨어뜨리게 되었고, 떨어지는 병은 추락하면서 액체를 분산시켜 머지않아 당면에 있는 서라에게….

“꺄아아아아아악!”

드래곤 브레스 이후 화이트 브레스를 당하게 된 제2의 피해자, 강서라.

쌓여 있던 액체들의 분노는 제2의 피해자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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