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65화 (65/369)

65화

“그렇게 할게.”

“정말?”

“응….”

은별이 부끄러운 얼굴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유이 역시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눈빛이었다. 민국은 흡족한 마음으로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소파의 세 여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가자!”

“…어딜?”

“모텔로! 나의 위엄을 보여주지!”

과한 발언이었지만, 민국의 과한 행동이 결코 싫진 않은 모양이었다. 이윽고 세 여인이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슬그머니 민국을 따라 커피숍을 나온 여인들은 모텔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해줘야 해? 한 번 경험했다지만 지금 내 입장에선 처음이니까….”

“알았어. 유이 씨도 준비됐죠?”

“…네.”

유이가 수줍은 얼굴로 흰 천을 들어 몸을 가렸다. 허나 풍만한 가슴이 부각되는 건 숨길 수 없었다. 민국은 씩 웃으며 나머지 두 여인을 훑어보았다. 은별은 어느 틈엔가 침대 위에 누워 라인이 살아 있는 종아리를 돋보이고 있었다. 서라도 옷을 벗더니 창피한 듯 두 손으로 몸을 가리며 은별의 옆에 누웠다.

“형….”

“왜 서라야.”

“살살해줘.”

기대 반 불안 반이 어린 눈동자로 주시하는 서라에게 흥분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국은 냅다 도약하여 두 여인을 덮쳤다.

“진정한 유토피아를 선물해줄게!”

“꺄앗!”

“아앙!”

“하하하하하! 너희들은 다 내꺼야!”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연예인 저리가라 할 법한 외모의 여인들이 민국의 아내가 된다니!

민국은 진정 이게 현실인가 실감이 안 났다. 하지만 서로 몸을 접촉하면 접촉할수록 이것이 비로소 현실임을 직감하고 흡족해하게 됐다.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

민국이 바라던 꿈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투다다다다닥!!!!

“끄어어억!”

민국은 소리 지를 힘도 없이 막무가내로 쳐맞기 시작했다.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인간이 발차기를 통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진귀한 사실을 발견하고 있었다. 유이는 한참동안 말없이 슈퍼 발차기를 선보이다가 10초가 되어서야 끊었다. 털썩! 시체처럼 변모하여 쓰러진 서민국.

“…….”

그런 민국을 망연히 바라보던 은별이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다. 민국은 쓰러진 자신을 일으키기 위함에 일어난 줄 알고 ‘으, 은별아….’라고 입을 열며 손을 내밀려고 했다. 퍽퍽퍽퍽!

“컥! 커헉!”

“죽어 넌 좀 죽어도 돼.”

“끄, 끄억! 바, 발에 가버렷!”

오죽하면 폭력에 폭자도 쓰지 않는 강은별이 민국을 짓밟고 있을까! 민국은 하도 여러 여성에게 발로 맞고 있자 자신의 몸속에 내재돼 있는 발 패티쉬가 깨어나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깨우침을 느끼기 전에 아쉽게도 은별이의 발 때리기가 앞서 끝났다.

“흥!”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강은별. 보다 처참한 모습이 되어버린 서민국을 보며 강서라가 ‘형!’하면서 다가왔다.

“형! 아직 안 죽었어? 죽었으면 좋겠는데!”

“…….”

오죽하면 서라도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참으로 씁쓸한 민국의 인생!

“…화장실 좀….”

아직도 민국의 발언에 열이 식지 않는지 유이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풍만한 가슴으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유유히 여자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 도착하자마자 유이는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씻기 시작했다. 차디찬 물이 뜨거운 체온을 식게 해주는 느낌이었다.

“…….”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물론 그런 급작스러운 일에 쉽게 대응하리라 유이도 생각지는 않았다. 허나 ‘셋 다 내 아이를 임신해라! 내가 책임져주겠다니….’ 대인배인지 미친놈인지 분간이 안 가는 발언이었다. 특히나 일부일처제를 중시하는 이 한국에서 말이다.

“…….”

이윽고 몸을 식힌 유이가 손에 있는 물기를 털고 화장실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움찔! 돌연 화장실을 나가던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는 경직했다. 그것도 잠시, 고개를 돌려 천천히 거울을 바라보는 유이.

“…….”

뭔가 잊으면 안 되는 기억을 잊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유이는 세 사람이 까먹은, 마치 세계 곳곳에 뿔뿔이 흩어진 사혼의 조각 같은 그 기억들을 되찾기 시작했다. 전후사정을 가장 먼저 기억해낸 건 다름 아닌 그녀였던 것이다.

* *

“하자아….”

“흑흑!”

“덤벼! 이 우스운 놈아.”

‘미치겠네.’

시간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세 여자와 함께 술자리를 마치고 길거리를 향하던 즈음, 민국은 혀를 내두르면서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이건 정말로 아니었다. 유이의 협박으로 일정 한계치까지 술을 퍼마신 민국이었다.

속이 영 좋지 못했고 시야가 어른거렸다. 그 와중에 여인 세 명까지 막무가내로 술버릇을 구사하고 있으니, 민국은 어디 잠들 자리가 없나 헌신을 다해 찾고 있었다.

“어? 너 뭐야? 너도 내가 우스워? 너 죽고 싶구나!”

큰 가슴을 덜렁거리며 유이는 비틀거렸다. 그녀와 사소한 까닭으로 시비를 붙고 있는 상대는 다름 아닌 바닥이었다. 사람들이 이미 몇 번이고 밟고 다녔을 그 거리를 유이는 휘청거리며 무섭게 쏘아보았다. 민국은 흐트러진 정신을 가까스로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천천히 유이에게로 손을 뻗는다.

“유이 씨. 괜히 애꿎은 바닥에 화풀이하지 마시고….”

“이거 놔! 이 자식이 내 빵을 부셔버렸어!”

“…….”

“난 네 우유를 부셔버릴 거야!”

“…….”

“넌 이미 죽어 있다!”

뭔 소린지 도통 모르겠다. 필시 그 대사를 입에 담고 있는 주인 또한 마찬가지인 심정이리라. 민국은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인 유이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부축했다. 근데 그 사이 부축 받던 서라가 동떨어져 바닥에 철푸덕하고 무릎을 꿇었다. 가엾게 흐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흑흑! 내가… 내가 얼마나 오빠를…!”

“으아….”

주위 사람들이 술렁이면서 길을 가로지른다. 다행히 인적이 많은 시내 길거리라 그렇지, 사람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면 앙큼한 목적을 갖고 접근하는 이들이 수두룩했으리라. 그때 요상한 걸음으로 다가온 누군가가 민국의 가슴팍에 찰싹 달라붙었다.

“하자구우….”

은별이었다. 그나마 가장 이상적인 술버릇으론 은별이가 나았다. 유이 같은 경우엔 폭력과 협박을 동원한 술버릇이라 무시무시한 경향이 있었고, 서라는 도통 까닭 모를 흐느낌만 해대고 있으니 다그치기 힘들었다.

‘정신… 정신을 가다듬자….’

사나이로서의 의지를 잊지 않도록 노력하며 민국은 세 사람을 이끌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처음엔 본능적으로 집으로 향하자 계획했다. 그러나 집으로 향하기엔 시간과 거리를 계산하니 적지 않게 벅찼다. 결국 어지러운 시내 거리를 돌아다니던 끝에 민국은 ‘모텔’이라 쓰여 진 간판을 발견하고 결정했다.

‘저기다.’

저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후에 깨어났을 때 어떤 역경과 고난이 찾아올 지는 생각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이 절박했으니까 말이다. 민국은 용케도 세 사람과 함께 모텔 방에 자리를 잡았고, 철푸덕 주저앉은 채로 있는 그녀들을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방으로 옮겼다.

얼마지 않아 세 사람 모두 방안으로 옮겨졌을 때 민국은 현관문을 걸어 잠그고 바로 땅바닥에 앉아 버렸다.

‘버틸 수가 없다.’

견딜 수 없는 피로에 졸도할 지경이었다. 민국은 스스럼없이 눈을 감고 푹 잠에 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오는 누군가의 기척이 있었다. 아쉬움과 더불어 의문을 느끼고 육중한 눈꺼풀을 슬그머니 들어 보이는 순간….

“하자….”

“…….”

금세 코앞으로 다가와 면면을 들이밀고 있는 은별이가 보였다. 그녀는 색기 어린 눈빛으로 민국의 전신을 탐할 기세였다. 아무 힘도 없던 민국은 이제 나도 모르겠다 싶어 에라이 눈을 다시 감으려고 들었다.

“…….”

어느 덧 민국의 품에 다다른 은별은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안타깝게도 술버릇은 거기서 그칠 모양이었다. 더는 다가오는 피로를 막을 자신이 없던 것이다.

“야.”

허나 그건 은별이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 민국은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야.”

“…….”

갑작스런 부름에 민국은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러자 민국의 늘어진 손을 붙잡고 앞으로 끌어당기는 여인이 있었다. ‘부…왁!’거리면서 간신히 균형을 잡고 일어서게 된 민국. 손을 붙잡고 있는 주인은 바로 유이였다.

“맞짱뜨자.”

“…….”

“맞짱뜨자고 이놈아.”

이건 또 뭔 개그 같은 소리인가. 민국은 더 이상 답해줄 의향도 없어 두 손을 휘휘 저었다. 더불어 고개도 저었건만, 유이는 어느 틈엔가 파이팅 포즈를 잡고 있었다.

“너의 그 카사노바 같은 순둥이 기질은 처음 볼 때부터 맘에 안 들었어. 이 못 생긴 자식아, 각오해.”

“유이 씨… 진정하시고….”

“닥쳐. 오크 대장.”

가까스로 제지를 가했건만 들어줄 용무는 없었다. 술김에 부자연스럽게 휘청거리면서도 유이는 금방 주먹을 뻗을 자세를 보였다. 민국은 뭐 이런 막장 같은 술버릇이 다 있나 속내로 중얼거리며 스르르 감기려는 눈꺼풀을 주체하지 못했다.

“오류겐!”

강렬한 스킬 명이 발음됨과 더불어 유이가 도약했다. 허공에서 무릎이 기억자로 떠올랐고 좀 더 올라가 민국의 턱을 가격할 듯싶었다.

“흑흑… 오빠!”

그런데 마침 흐느낌의 절정에 다다라 있던 서라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두 사람 사이에 낀 서라는 마침내 레슬링 기술의 표본에 속하는 ‘크로스 라인’과 비슷한 현상을 선보였다. 허수아비처럼 두 팔을 좌우로 나란히 뻗은 채 달려든 결과, 민국과 유이는 동시에 ‘컥!’하고 신음하게 되었다. 쿠웅! 퍽!

“…….”

“…….”

“흑흑….”

쏟아지는 졸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우두커니 서 있던 민국은 서라의 손에 맞고 코피를 흘렸다. 도약하여 무에타이 킥을 선보이려던 유이는 서라의 방해로 말미암아 균형이 흐트러졌고, 치켜 올라간 무릎을 자신의 턱에 꽂고 말았다.

그 결과 민국과 유이는 기절. 처참한 시신처럼 두 사람은 차가운 바닥에 늘어 뜨러졌다.

“……해 오빠 흑흑….”

“…….”

정신을 잃은 민국에게 그 소리가 들릴 리 없다. 그저 부글부글 콧속에서 끓어오르는 액체를 흘러내릴 따름이다. 민국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슬그머니 잠에 들고 있는 서라를 뒤로하고, 막 취침에 들었던 은별이 귀찮은 소음을 듣고 살짝 눈을 떴다. 눈엔 여전히 취기가 강렬히 어려 있었다.

“…….”

그녀는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바닥에 누워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왠지 이상 깊게 보였다.

“4….”

그리고 그 광경은 훗날 논란을 일게 할 만한 거리를 장만했다.

“4P….”

야한 술버릇이 달구어낸 결과물이었다. 현관문 앞에 쓰러져 있던 은별이 자리에서 일어나 세 사람에게로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널브러져 있는 그들을 위해 서랍 위의 이불이 있는 쪽으로 향하더니, 도저히 술에 취한 여인으로 신뢰되지 않을 만큼 가지런히 이불을 펴기 시작한다.

“4P… 4P….”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술버릇에 의해 갖게 되는 목적 달성을 위한 애절한 몸부림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연거푸 '4P'라는 단어만 속닥거리며 은별은 네 사람이 누울 이불을 전부 펴보였다. 아쉽게도 이불의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네 사람이 편안히 잘 만한 공간을 마련할 수 없었다.

“뭉쳐… 뭉쳐….”

무의식 속에서 4P를 바라는 은별은 서서히 쓰러져 있는 세 사람을 데굴데굴 굴려 이불 쪽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상대는 다름 아닌 민국이었는데, 그는 흘러내리고 있던 코피를 새하얀 이불에 달짝지근하게 묻히고 말았다.

“4P….”

잠들기 전까지도 비단 그 단어만 발음하며 은별은 세 사람의 옷을 찬찬히 벗겨댔다. 일단 서라가 먼저였다. 깊게 잠든 그녀의 옷을 전부 벗겨 보인 은별은 다음 대상을 찾았다. 바로 유이였다.

“슈퍼 찐빵….”

커다란 가슴을 손아귀로 주물거리며 그리 발언한다. 이상한 감촉에 음란한 기분을 느낀 유이가 순간 꿈틀거렸다. ‘죽어….’라고 힘없이 발음하는 입술이 보인다. 은별은 그러거나 말거나 꿈나라 저 편으로 사라진 유이의 옷을 전부 벗겨 보였다.

“이제….”

‘남은 가정파괴범….’이라 속닥거리며 민국의 옷을 전부 벗기기 시작한다. 속옷까지 한 점 남김없이 말이다. 머지않아 달랑거리는 그의 코끼리 손을 보았을 때 은별은 ‘풋.’하고 소소하게 웃어 보였다.

“이제 나….”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옷을 벗으며 나체가 되어 보이는 은별이었다. 그녀는 자신까지 비롯해 전원 나신이 되었음을 확인하고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제 4P 시작….’이라 입을 열더니 바로 민국의 가슴팍에 얼굴을 기대며 잠에 들고 말았다.

민국의 콧구멍에선 한참동안 쏟아지던 피가 멎고, 딱지가 붙고 있었다.

“…….”

그날 밤의 상황은 대충 이러했던 것이다.

“…….”

거울을 바라보면서 유이는 수 초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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