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시상식>
그러니까… 사건 발생 몇 시간 전, 시상식이 끝난 뒤였다.
“축하드려요.”
“축하드립니다. 정말 잘 되셨어요.”
대상을 받고 오늘의 주인공으로 결정된 인물은 여러 사람들의 축하와 박수 세례를 받았다. 끝내 대상을 받지 못한 두 명 역시 그 사람을 향해 칭찬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축하해.”
“…….”
다정스런 얼굴로 그리 말하는 민국을 향해 은별이 고개를 올렸다. 그녀는 대상의 주연으로 품안에 꽃다발을 잔뜩 들고 있었다. 혼자 들기엔 너무나 버거워 보여, 민국이 대신 몇 개 들어주었다. 왠지 모를 미안함에 은별이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화 안 났어…?”
“화? 내가 무슨 화?”
민국은 천연덕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사랑하는 이가 오늘의 주연으로 뽑혔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화를 내겠는가? 심지어 감동하여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에 민국도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하고 있었다.
“…….”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은별은 상당히 미안함을 숨기지 못했다. 그토록 바래왔을 대상일 텐데, 그것을 대신 받았다는 게 영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허나 민국은 그런 그녀의 가면에 손을 대며 핀잔했다.
“얄밉게 그러고 있을래? 사람들이 축하하는 거 안 보여? 왜 울려고 해?”
“…흑.”
어지간히 의외였던 모양이다. 더군다나 시상식 전에 그런 사건이 터지고 애청자들의 분노를 샀으니, 얼마나 마음이 심란했을까. 은별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민국이었기에 슬쩍 그녀를 안아주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포옹에 ‘오오!’하고 더욱 힘차게 박수를 터트렸다.
은별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면서 한참동안 민국의 온기 어린 품에 안겨 있었다. 민국과 한 테이블에 앉았던 일원들도 한껏 박수를 쳐주는 모습이었다. 다만, 유이와 서라는 오늘 들어 유난히 쓰라린 감정을 몇 번이고 느끼는 처사였다.
‘그래. 이걸로도 충분해.’
그토록 목표로 하던 대상은 결국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은별은 충분히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여자였다. 어느 컨텐츠로 임하든 간에 항상 재미있게 방송을 살리곤 했으니까. 오히려 사건 발생 이후, 그녀의 가슴에 새긴 마음의 상처를 아물도록 돕지 못한 민국이 미안했다.
“미안해.”
진심으로 정성 어린 사과를 자그맣게 중얼거리며 민국은 더욱더 그녀를 포옹했다. 잠시 후, 그녀의 울먹임이 어느 정도 그쳤을 때 민국은 일정 간격을 벌린 다음에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파티 하러 가야지? 술집 어때?”
“…….”
은별이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눈동자로 민국을 올려다봤다. 술기운에 민국에게 실수를 저질렀다 생각하는 그녀로선 영 좋지 못한 제안이었다. 허나 해맑은 그의 웃음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 한 켠이 편해져 저도 모르게 승낙하고 말았다.
“좋아.”
“오오! 진짜?”
“대신, 난 마시게 하지 마.”
“에이~ 그런 게 어딨냐? 술집에 가면 술을 마셔야지, 그리고 당신은 오늘 밤 저의 노리개가 되는 겁니다.”
“…이.”
또다시 한 차례 으르렁거리는 은별이었다. 귀엽다 생각한 민국은 마냥 웃음 지었고 말이다.
그리하여 민국 일행은 치킨전문식당에 들리게 되었다. 일행의 인원은 은별, 민철, 서라, 철남, 유이, 민국까지 총 합해서 여섯 명이었다. 민국은 여자 친구가 대상을 받은 각별한 날이니 주저 없이 술을 시키라고 권하였다. 다만, 더치페이는 잊지 말라고 덧붙이며 말이다.
“저는 아무래도 술은 좀….”
“헐! 술집에 들어왔으면 술을 마셔야지! 그쪽이 가슴이 작은 것도 아니고 왜 주저하십니까?”
퍽! 기어코 매를 번다고 은별에게 한 대 맞는 민국이었다. 유이는 주저하며 술을 마시길 꺼려했다. 애초에 이곳에 있는 여섯 사람 중 유독 술에 강한 사람은 민철과 민국, 단 둘이었다. 철남 역시 술에 조예가 얕은 편이라고 이실직고했다.
“쩝! 하는 수 없지요. 그럼 여기 있는 여자 세 명이 쓰러지는 순간 한 명씩 데리고 모텔로 갑시다. 정 원하시면 6p도 나쁘지 않을….”
퍽! 두 번 매를 벌면 맞는 강도도 높아지는 법이다. 씩씩거리며 주먹으로 한 대 치는 은별. 민국은 ‘쩝.’하고 입맛을 다시면서 안타까워했다.
철남은 그의 저돌적인 발언에 ‘하하….’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유이의 눈치를 보았다. 유이는 아무 말 않고 침묵 중에 있었다.
이윽고 민국이 발음한 대사에서 의문점을 느낀 민철이 물었다.
“여자 세 명? 여기 여자 두 명 아니냐?”
뜨끔! 하고 저도 모르게 서라를 슬쩍 바라보는 민국이었다. 서라 또한 당황한 얼굴을 짓는가 싶더니 이내 신중하게 발언했다.
“민국 형은 항문이 비어 있대요!”
“…야 이놈아!”
서라의 재빠른 대처로 여유 있게 위기를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허나 은별은 일순간 수상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화장실에서 서라를 목도했던 기억이 있는지라, 영 그녀로선 찝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서라가 은별 자신의 눈빛을 의식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빨리 술 시키자!”
여섯 비제이가 총 집합한 술집 안에서 민국은 화목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술을 시켰다. 치킨전문식당에서 시킬 술은 맥주 말고 없었다. 술이 약한 편에 속하는 이들에겐 좋겠지만, 주량이 센 민국과 민철은 살짝 아쉬움을 느꼈다.
“…많이 마시지 마.”
걱정된 까닭에 은별이 한 마디 던졌다. 민국이 씨익 웃으면서 옆자리의 은별을 봤다.
“왜? 너 덮칠까봐?”
“많이 마시면 땅바닥에 드러 누울까봐 그래!”
“걱정 마, 내가 술에 취하면 차라리 너를 덮치지 땅바닥에 드러눕진 않아.”
“…….”
은별은 설마 ‘이 자식… 진짜로 덮치고 싶어질 때까지 술을 퍼마실 생각은 아니겠지?’하는 눈빛으로 민국을 바라보았다. 눈빛에 어려 있는 게 두려움과 기대감이라는 게 함정이었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이윽고 치킨 두 마리가 테이블에 올려졌다. 그리고 맥주잔 여섯 개와 크나큰 맥주병도 등장했다. 민국은 크나큰 맥주병을 들며 은별에게 소리쳤다.
“자! 은별아! 나의 맥주를 받아라!”
“왜 나부터야?”
“그야, 널 취하게 만들어야 오늘 내 목표가 이뤄지니까.”
“미친….”
욕설을 내뱉으며 맥주잔을 들어 보인다. 민국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맥주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일정 양이 잔에 차올랐을 때 ‘기울여.’라고 중얼거리는 민국. 허나 이해 못한 은별은 결국 민국의 도움을 받아 맥주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자! 그럼 나머지 분들도! 제가 따르는 술을 받으시면서 은별이가 앞으로도 만수무강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쇼.”
“무슨… 내가 할머니야?”
“할머니 될 때까지 오랫동안 살면서 내 사랑을 듬뿍 받아야지?”
“…퍽이나.”
은별은 멘트가 썩 나쁘진 않았는지 가볍게 칭얼거리며 맥주를 홀짝였다. 머지않아 네 사람의 잔에 모두 맥주가 채워졌다. 민철이 어이없다는 듯 소리쳤다.
“야! 난 안 따라주냐?”
“넌 네가 알아서 따라 마셔 자식아.”
“와, 이런 고추잠자리 같은 놈.”
칭얼거리며 자기 잔에 술을 따르는 민철이었다. 민국도 마지막으로 잔에 술을 따르고 높이 들어 보였다. 나머지 일원도 민국을 보며 높이 잔을 드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민국이 소리치며 건배를 외쳤다.
“나의 소망, 일부다처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건배!”
“야 이 나쁜 놈아!”
은별이 고함쳤고 서라가 눈을 크게 떴다.
“와! 형 일부다처제가 소원임? 대박이네!”
“자고로 남자는 상 남자의 덕목을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여자 세 명은 기본적으로 거느려야 하지.”
“네가 아주 맞고 싶어서 환장했지? 그렇지?”
“하하….”
어색하게 웃는 철남이었다. 유이는 벌써부터 술을 홀짝하며 입에 대는 실정이었다. 서라가 이를 보고 경악하며 일러바쳤다.
“형! 강간… 아니! 유이 씨가 먼저 잔에 입을 댔어!”
“뭐시?! 어떻게 그럴 수가!”
“네, 네…?”
당황하는 유이였다. 서라가 정말이지 큰일이라는 듯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민국도 한숨을 쉬며 무척이나 실망이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그런 돌발적인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까? 유이 씨.”
“제가 무슨….”
“술에 입을 댔잖아요! 강간 언니… 아니! 유이 씨 정말 실망이에요!”
“서라 말이 맞습니다! 어떻게 허락도 없이 맥주잔에 입을 댈 수가 있습니까? 매너 플레이라는 거 몰라요? 지금 유이 씨는 아주 큰 실수를 범한 겁니다!”
“…….”
도무지 영문을 모르는 유이로선 입을 다물었다. 허나 그들이 함정에 빠뜨리려는 수작이라는 걸 다음 제안으로 깨닫는 그녀였다.
“그런고로 유이 씨는 지금부터 여기서 장기 하나를 선보여야 합니다. 할 수 있는 거 있음 아무거나 해보세요. 성대모사도 좋고 춤사위도 좋습니다. 제일 좋은 건 역시 슴가… 아니, 난 아무 말도 안했다 은별아?”
“헤헤! 슴가라니 슴가…!”
뻔뻔스럽게 시치미 때는 민국과, 침을 질질 흘리며 연기하는 서라였다. 난해한 상황에 유이는 그저 입을 꾹 다물었고, 이를 보던 철남이 짐짓 웃음 지으며 얘기했다.
“제가 대신 해도 될까요…?”
“오오! 철남 씨가 대신 하시려고요?”
“네…. 제가 하겠습니다.”
“흑기사다 흑기사! 꺄악!”
흑기사의 출연에 좋탄다 황진이 춤을 추는 민국과 서라였다. 실로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철남은 어색하게 웃음 짓다가 유이를 슬쩍 바라보았다.
고개 올려 그를 쳐다보는 유이의 눈빛엔 살짝 미안함이 서려 있었다. 허나 한 때 사랑했던 연인으로서 이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다 생각한 철남이 가볍게 성대모사를 선보였다.
“내, 내가 고자라니!”
물론 그 성대모사는 망했다.
“그러니까 경제와 사회가 요 지경 꼴로 돌아가고 있다 이 말이야!”
치킨전문식당에서 치러진 파티는 꽤나 재미있게 흘러갔다. 여섯 사람 모두 의외로 상성이 안 맞는 이가 없었고 어느 주제로 얘기를 하던 간에 막힘없이 곧잘 이어졌다. 민국은 세상에 이토록 잘 맞는 이들이 있나 많이 놀란 상태였다.
‘이거 의외로 길게 이어질 수 있는 사람들일 지도 모르겠네.’
물론 유이나 철남 같은 경우에는 워낙 소심한 편에 속하다 보니 어울리지 못하는 부분이 조금 존재했다. 그래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 쳐주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자, 마셔 마셔!”
“…너 정말 나 취하게 할 셈이야?”
은별이 살짝 상기된 얼굴로 민국을 노려보았다. 민국은 천연덕스럽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뭐가? 지금 마신 거 세어보니 두 잔밖에 안 됐는데. 난 지금 세 잔 마셨잖아?”
“…나 술 약하단 말이야.”
정말 약하긴 약한 모양인지 발음하는 혀가 조금 꼬이는 모습이었다. 허나 민국은 괜찮겠거니 한 번 더 그녀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괜챃아 괜찮아. 이번 한 번만 마셔. 한 잔은 더 마실 수 있지?”
“…….”
대답은 없다. 허나 잔에 따라진 술을 지그시 응시하는 게 반드시 마셔 보이겠단 사명감을 느끼는가 보다. 피식 웃음 짓는 민국과는 반대로, 이를 지켜보는 두 여자의 마음은 쓰라렸다.
"……."
"……."
왠지 모르게 타들어가는 마음에 유이와 서라의 들이키는 술잔의 내용물은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아, 이런."
마침 열정적으로 경제와 사회에 관해 분을 토하던 민철이 휴대폰을 들었다.
“엄마네.”
“가야 되냐?”
“기다려봐.”
민철은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애정 깊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때문에 성인임에도 늦게까지 놀 수 없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필시 요번 술자리까지 물러나야 할지도 몰랐다. 이윽고 전화를 받고 온 민철이 테이블로 돌아오면서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다. 난 이만 슬슬 가봐야겠다.”
“그래, 잘 가라.”
“안녕히 가세요.”
민국과 철남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머지에게도 손을 흔드는 민철이었다.
“다들 안녕히 계세요. 연 되면 또 보죠. 유이 씨랑 은별 씨도 수고하시고, …서라 씨도 나중에 인연되면 꼭 봐요.”
유독 서라의 이름을 담을 때 머뭇거린 민철의 행위에 민국이 피식 미소 지었다. 이내 인사를 고하는 민철을 향해 유이가 붉어져 있는 얼굴로 천천히 고개만 숙여 인사했다. 서라도 좀 취했는지 상기한 얼굴로 ‘음… 안녕히 가데스네!’하고 인사했고, 은별은 술만 홀짝홀짝일 뿐이었다.
“유이 씨, 그만 마시세요. 취하겠어요.”
“…….”
철남의 제지가 있었으나 유이는 굴하지 않고 술을 머금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지긋한 시선이 향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고는 입을 다문다. 은별이에게 해맑은 얼굴로 장난을 치고 있는 민국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상기된 얼굴로 잔을 들고 그 둘을 시야에 담는 유이의 모습에 철남은 한참동안 침묵했다. 그러다가 ‘하아….’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스르륵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국 씨. 저도 이만 가볼게요.”
“아, 철남 씨도 가시려고요? 유이 씨는 어떡하고요?”
비록 헤어진 사이라지만 서로를 대하는 관계에 앙금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물어본 것인데, 다시금 유이를 눈에 담던 철남이 쓰게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유이 씨는 아무래도 좀 더 여기 있고 싶으신가 봐요. 저는 할 일도 있고 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고요.”
“흠. 그러시군요.”
“유이 씨 좀 잘 부탁드릴게요.”
“옙. 어차피 저도 좀 있음 일어나려고 했으니까. 잘 들어가십쇼.”
‘부탁해요.’라는 말을 끝으로 철남 또한 식당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로써 두 시간 남짓한 시간에 남은 인원은 총 네 명이었다. 민국, 은별, 서라, 유이. 민국은 슬슬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은별도 보기보다 많이 취한 상태 같았고, 서라나 유이도 의외로 술을 많이 마신 모양이었으니까.
“자… 그럼.”
벌떡 일어나 일단 계산부터 하려던 민국이었다. 그런데 덮썩하고 누군가의 보드라운 손이 그의 옷깃을 쥐었다. ‘엉?’하고 고개 돌린 민국이 대번에 눈을 크게 떴다. 은별이 상당히 상기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가게…?”
“응? 아, 계산해야지. 그냥 오늘은 내가 내기로 했으니까.”
민국의 대답에 ‘으응….’하면서 잠시 비적거리는가 싶더니 가슴팍에 얼굴을 기대는 은별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민국이 살짝 헛웃음 지으며 혼잣말처럼 ‘취했구나?’하고 중얼거렸다. 이윽고 은별이 중얼거렸다.
“민국아….”
“응. 왜? 머리 아파?”
“아니… 그게 아니구우….”
발음이 살짝 꼬이고 있었다. 고개를 느릿느릿 젓던 은별이 그대로 민국을 올려다보았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위치였다.
“나… 하면 안 돼…?”
“…….”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해줘 좀….”
“아, 집에 가고 싶다고?”
“아니, 그게 아니구우…!”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은별이었다.
“섹스으….”
“…….”
참고로 흑마법사는 은별에게 솔직해지는 마법을 걸었다고 했다. 허나 은별은 술에 취하면 굉장히 솔직해지는 술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엔 하지도 못하는 창피한 발언을 서슴없이 입에 담는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고로 은별은 평소 민국에게 느끼고 있던 부분에 대해 창피함 없이 얘기하고 있었다.
“섹스으 하자….”
“…….”
“으응…?”
난처하게 혀를 내두르면서 민국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술을 많이 마시게 했나 보네.’
세 잔쯤이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 정도도 은별이 마시기엔 버거웠나 보다. 살짝 미안함을 느끼며 민국은 은별의 어깨를 잡고 살짝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최대한 침착한 얼굴로 대꾸했다.
“일단 계산부터 하고 올게.”
“…….”
애타게 바라는 그녀의 눈빛을 외면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이었다.
“야.”
“…….”
“거기 똑바로 서.”
무척이나 사나운 도발에 얼음장처럼 일어나다 말고 멈춰서는 민국이었다. 슬쩍 소리가 들린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자, 맞은편에 있던 유이가 보였다.
그녀는 고개를 내린 채 얼굴에 깊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는데, 도무지 방금 전 내뱉은 말이 그녀의 입속에서 나온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이윽고 민국이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질문했다.
“유이 씨?”
“…….”
살짝 몸을 비틀비틀 거리는 게 유이 또한 취한 모양이었다. 일단 계산부터 하고 정리하자 생각하며 벌떡 일어나는 순간!
“거기 서라고 했잖아!”
“……!”
사자후 같은 고함에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을 느끼며 정지해버렸다. 이때 벌떡 일어난 유이! 그녀는 언제라도 쓰러질 듯 중심이 휘청거리는 형태였지만, 민국을 바라보는 눈빛엔 한 점의 소심함도 없었다.
“유, 유이 씨?”
살짝 쫄은 민국이 지레 겁먹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엇보다 그녀의 강함을 온 몸으로 맛본 경험이 있었다. 이윽고 민국을 마주하던 유이가 살짝 고개를 내리숙이며 옹알거렸다.
“내가, 우스워?”
“무슨… 왜 그러세요 유이… 님?”
“내가 우습지? 내가 우스우니까 그러는 거지!”
술이 깨고 난 후의 유이는 오늘의 기억을 떠올리며 어찌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볼성사나운 눈매로 민국을 응시하던 유이가 휘익하고 은별을 바라보았다. 은별은 색기 넘치는 여성처럼 야한 숨결을 하아 하아 내뱉고 있었다.
“만날 성드립에 당해주고 놀림 당해주니까 내가 우습지? 그치? 내가 우습잖아!”
“으아아! 왜 그러세요!”
“진정하라고? 못해! 못한다고! 가만 안 둘 거야!”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이란 말인가? 치킨점의 혹자들도 이를 목도하고 얼떨떨해하는 모습이었다. 허나 유이의 등에 지고 있는 사나운 기세에 선뜻 제지하러 나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위기에 빠진 민국으로선 정말이지 호러물 속의 주인공 같은 위기를 경험 중이었다.
‘이게 대체 뭔 일이야!’
공포에 오들오들 떠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옆에서 착 달라붙었다. 참고로 은별은 오른쪽에 있었다. 감각을 느낀 것은 왼편이었는데, 들러붙은 이는 양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서라야?”
“…….”
말없이 달라붙은 서라가 슬쩍 상기된 얼굴로 민국을 올려다보았다. 척 봐도 이 애 역시 술을 한계치에 달하게 마셨구나 가늠할 수 있었다. 이윽고 서라가 고개를 푹 숙이고 민국의 가슴팍에 얼굴을 붙였다. 심지어 두 손으로 꽉 그의 허리를 조여 매는데.
“오빠….”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서, 서라야?”
“오빠아… 흑… 오빠….”
이건 또 뭐시란 말인가? 마치 실연당한 여자가 차버린 애인에게 애걸복걸할 때나 나올 법한 울음소리였다.
“오빠 왜… 왜 그런 거야….”
“…….”
“내가 오빠를… 오빠를 얼마나….”
‘흐윽!’하고 눈물을 터트리는 서라. 난처함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오른편에선 섹시한 눈빛으로 착 달라붙는다.
“섹스으 하자….”
“…….”
아무래도 둘 다 제정상이 아니다 싶어 일단 일어나려는데…. 콰앙! …으아!
“마셔.”
“…….”
“빨리 마셔!”
정면엔 터프하게 술을 권하는 유이가 있다. 왼편에선 오빠라며 울먹이는 서라가 있다. 오른편에선 얼른 하자고 속내를 있는 힘껏 드러내는 은별이 있고…. 민국은 세 여자가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표하자 이걸 어찌 해결해야 되는지 알 수가 없어 혼란을 맞보았다.
“빨리 마시지 못해!”
“으아아! 마, 마시겠습니다!”
권하는 술을 꿀꺽 꿀꺽 입에 담는 민국이었다. 유이는 그런 민국을 보고 흡족하다는 듯 씨익 음흉하게 웃어 보였고, 민국의 허리를 감싼 서라는 훌쩍이며 울었으며, 은별은 쌕끈한 숨결을 내뱉으며 권유했다.
"오빠…."
"하자…."
"마셔!"
'이게 대체 뭐야!'
그의 입장에선 총체적 난국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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