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60화 (60/369)

60화

단지 공식석상에 입장했을 뿐이다. 하지만 특유의 넘쳐나는 매력과 뛰어난 외모로 강서라는 좌중의 시선을 일제히 받았다. 때문에 그녀와 초면인 사람들 딴에선 우아한 이미지를 뇌리 속에 각인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 환상 같지 않은 환상은 삽시간에 으깨져버렸다. 서라의 개성 넘치는 맛깔나는 제스쳐로 인해 말이다.

“…….”

당연히 민국과 함께 하는 자리의 일원들은 침묵할 뿐이었다. 애당초 그녀와 구면인 인물은 민국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도무지 그녀의 첫 마디와 더불어 취한 괴상한 행위를 인정할 수 없던 것이다. 이미지와 너무나 괴리감이 있었기에.

“요 형!”

민국은 혀를 내둘렀다. 난감함보단 기쁨이 어우러진 행위였다.

과연 서라는 서라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녀는 비록 남장을 했으나 기존의 외모를 곱상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 외모지상주의가 격심한 대한민국에서 외모에 맞지 않게 천연덕스러운 행동을 보인다.

보통 한 인물 한다는 사람들은 무게감 잡느라 가슴 피고 다니는데 서라는 그런 것도 없다. 하나 하나가 지극히 인간적이고 오바스럽다.

‘그랬기에 이 녀석이랑 어울렸던 거지.’

민국도 지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요! 제임스 존슨!”

유일하게 그녀와 맞장구 쳐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이윽고 서라의 행동이 어딘가 익숙해 보였던 은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콩딱지…?”

“으아닛! 절벽녀 데스까?!”

서라의 날카로운 발언에 은별이 움찔하는가 싶더니 곧 살쾡이 같은 눈빛으로 돌변한다. 콩딱지 역시 한 때 남고딩을 놀려대는데 도가 났던 인물로서 얄미운 건 표현할 것도 없었다.

이윽고 은별의 지독한 눈빛을 받으며 서라가 ‘헤헤헤!’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민철과 유이, 강철남 셋은 여전히 말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진짜 남자가 맞는지 의문을 품는 눈빛이다.

“앉아도 됨?”

“엉. 그래라.”

비어 있는 마지막 자리에 냅다 착석하는 서라. 민국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맞은편 자리였다. 일원들 대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라의 외모에 입을 다무는데, 민국은 쌀쌀 맞은 기운이 자신을 겨냥함을 통감하고 고개를 돌렸다.

“…….”

“…….”

은별이 어떻게 된 거냐는 눈길로 무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난 번 일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호박벌 때문에 서라를 불렀다가 졸지에 은별까지 나타나 난해하게 되었던 상황. 그때 민국은 처절한(?) 방어를 통해 서라를 위기에서 보호했다. 허나 방송을 하며 들어왔던 음성하며, 얼굴하며, 도무지 은별이 며칠 사이에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을 리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심지어 한 가지 더 난감한 문제가 있었다. 그 시기에 서라가 입었던 복장은 남자 옷이 아닌 여자 옷이었다. 때문에 은별은 서라를 거의 여자라 확신 중에 있었다. 혀를 내두르며 웃음 짓고 묵비권을 행사하는 민국. 그런 그의 속내를 꿰뚫은 서라가 미리 문제점에 대한 방안을 준비해왔다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남고딩 님 맞죠? 보고 싶었음 헉헉.”

“…….”

가면을 쓰고 있건만 누가 누구인지 감이 오는 모양이었다. 과연 촉이 좋은 서라였다.

“실은 저번에 만났을 때 제가 형이랑 벌칙 싸움해서 여장을 했거든요. 그래서 차마 얘기하기가 부끄러워서 도망쳤던 거임.”

뭔가 기가 막히는 변명거리였다. 허나 그것 말곤 막상 변명할 게 없었다. 민국도 기회라는 것처럼 서라를 거들었다.

“맞아. 실은 그때 서라랑 게임해서 여장하기로 벌칙을 정했었거든. 3연패로 내가 이기고 서라가 여장을 했었지.”

“서라?”

“어. 딱지 본명이야.”

“…이름이 꼭 여자 같네.”

“헐!”

서라가 과장스럽게 어이 상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은별에게 소리쳤다.

“님 지금 나 여자 같다고 하는 거임? 와 레알! 트루 화남! 나 남자인데! 그것도 달려 있는데! 민국 형이랑 똑같이 가정폭력범인데!”

“…….”

할 말을 잃는 은별이었다. 강철남이랑 유이는 이미 전부터 입을 다문 모습이었다. 민국은 스르륵 테이블에 모인 일원들의 생김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워낙 정신이 사납던 지라 그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확신할 여지가 없었다.

‘일단은. 흐음.’

민국은 대학교에서 입은 옷차림 그대로 시상식에 참여했다. 다만 시상식을 위해 보다 고급스런 양복 같은 차림으로 꾸며서 왔다. 은별은 골반까지 내려오는 주름 진 푸른색 롱코트와 달라붙는 기다란 스닉커즈 바지를 입고 있었다.

유이는 그녀답지 않게 유들유들한 허벅지 선이 빤히 드러나는 핑크 치마와, 살짝 파여 있는 브이넥의 핑크 상의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매사에 소심한 성격임을 알고 있었기에, 민국 딴에선 과감한 도전이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서라는 남장을 한답시고 아버지 것을 입었는지 블랙 넥타이와 화이트 긴팔 와이셔츠, 블랙 자켓, 모직 슬랙스 등등으로 전신을 꾸몄다. 그리고 다른 남자 일원들의 옷차림은… 이하 생략한다. 중요하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제일 의문이 가는 상대는.’

민국의 시선이 유이에게 집중되었다. 그녀가 가장 의문가는 상대였다. 다른 비제이들은 다 그렇다 쳐도, 왜 그녀가 맨 얼굴로 시상식장에 당도한 것일까? 초면이라고 부끄럽다며 가면을 쓰던 그녀였다. 근데 무슨 까닭에?

“…….”

마침 민국의 시선을 통감한 유이가 살짝 눈을 마주쳤다가 급히 회수했다. 저렇게만 보면 어엿하고 순수한 소녀답다. 허나 그녀는 일본 야쿠자와 정면으로 대결해도 과감히 무찌를 법한 바람의 파이터….(이것도 이하 생략)

“모두 하이 데스요.”

이윽고 서라가 한 명 한 명 인사를 나누며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민철과 철남 역시 그 인사를 받기에 이르렀는데, 정말이지 동성이란 게 용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당연하지. 여자니까.’

홀로 진실을 알고 있는 민국으로서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는 노릇. 이윽고 서라가 마지막 차례로 유이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름이?”

“…유이에요. 비제이 강강으로 활동하는….”

“오오! 강간!”

“…….”

“아! 말실수! 지읏시읏! 근데 가슴 진짜 크시다!”

‘헤헤.’거리면서 변태스러운 눈빛을 짓는 서라. 언제든지 가슴을 조물딱 거릴 자신이 있다는 것처럼 허공에서 손을 움직이는 모습에 은별이 눈매를 찌푸렸다. 가슴이 없는 자의 한이 서린 표정이었다.

“야. 민국아.”

그때였다. 민국의 옆자리에 있던 민철이 은근슬쩍 귓속말을 해온 것이다. 민국이 뭐냐는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쟤 진짜 남자 맞아?”

“그런데?”

“허….”

민철은 도무지 말을 못하고 서라의 얼굴을 뜯어볼 듯이 주시했다. 그런 그에겐 심히 미안한 마음뿐이지만, 어찌하겠는가? 서라가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알려주지 말라고 하였는데.

“헤헤. 모두들 잘 부탁드림.”

서라의 인사를 끝으로 슬슬 시상식이 시작할 시점에 이르렀다. 좌중이 입을 다물었고 단상 위에 오른 한 남자 직원이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파뿌리 TV에서 종사하고 있는 유석호라고 합니다. 오늘 진행할 시상식의 진행의원을 맡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진행의원 유석호의 등장에 시상식 내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저마다 파뿌리 TV 방송계에서 이름 좀 알려진 인물들이었다.

물론 걔 중엔 달풍선을 받아먹으며 먹고 사는, 소위 달창도 있었다.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이지만,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방송하는 사람들은 그런 달창들을 결코 좋게 바라보지 않는다.

고로 시상식에 참석한 비제이들은 공통된 사람들끼리 자리를 갖는 것이다. 달창은 달창끼리, 웃음을 위한 비제이들은 웃음을 위한 비제이들끼리.

“일단 시상식의 진행 순서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파뿌리 업계를 세운 회장님의 가벼운 말씀과 더불어 차례대로 시상식 수상이 있을 예정입니다. 짬이 나는 동안엔 신나는 게임도 있을 예정이오니 많은 참여 바라겠습니다. 그럼 이 회장님의 한 말씀이 있겠습니다.”

파뿌리 계를 세운 오십 대쯤의 남성이 단상에 올라와 마이크를 독단으로 차지했다. 사람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고, 남성은 고개 숙여 깍듯이 인사해 보이더니 서서히 한 말씀 늘어놓기 시작했다.

“…….”

다만 아는 사람은 다 알듯이 ‘가벼운 한 말씀’이라는 게 결코 가볍지가 않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시간만 해도 10분 남짓이다. 민국은 시상식 전에 한 말씀을 듣고 잠에 들 뻔했다.

“그럼 제5회 파뿌리 시상식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참고로 이곳에 모인 비제이들 대부분 상을 받을 후보자들만 참석한 것이었다. 일부는 초대받았거나 구경하기 위함에 직접 신청한 비제이들이었다.

“그럼 일단 첫 번째 상으로, 인터넷 활약상을 뽑겠습니다. 스크린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무대 위의 하얀 스크린이 느리게 등장했다. 그리고 차례대로 인터넷 활약상을 수상 받을 유력 후보자들의 영상이 등장했다.

“받아라! 육봉 스파이크!”

첫 번째 후보자의 목소리. 무언가 익숙한 목소리였다. 민국과 함께 있는 테이블의 일원들이 순간적으로 창피함을 느꼈다.

“나는 강철보다 단단한 자… 이거 말하면 파뿌리 TV에서 잘린다!”

“하하하하!”

처절하게 소리를 지르며 게임 중에 있는 영상 속의 인물은 다름 아닌 현대왕이었다. 방송으로 할 때는 몰랐는데, 실물로 가득한 장내에서 자기가 한 짓을 보니 민국은….

‘존나 조쿤!’

만족했다. 이래봬도 그는 뼈 속까지 방송인이었다.

“으… 부끄러….”

은별과 다른 일원들은 오히려 당당히 가슴을 피는 민국 때문에 살짝 부끄러움을 느꼈다. 서라만이 ‘오올!’하면서 짝짝 박수를 치고 칭찬해주었다.

“뉴턴 개새끼야!”

아무튼 민국의 후보자 영상이 끝이 나고, 다른 이의 후보자 영상이 드러났다. 별로 친하지 않은 비제이들의 등장에 살짝 관심이 식었다.

허나 과연 현대왕이었다. 대상 유력후보일 뿐만 아니라 방송 신인들이 갈구하는 인터넷 활약상에도 또다시 후보에 선정되다니.(이미 민국은 한 번 후보에 선정된 적이 있다. 다만 그땐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럼 첫 번째 상을 발표하겠습니다.”

후보자 확인이 끝나고 다시 단상을 차지한 진행의원이 인터넷 활약상의 주인공을 발표했다. 물론, 민국은 아니었다.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다른 이가 그 상을 대신 타갔다. 허나 서운한 감정은 느끼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대상을 노리고 시상식에 당도한 것이었기에.

“소감 좀 듣겠습니다.”

그렇게 시상식은 여느 시상식과 마찬가지로 수상을 받고 소감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우아한 장내에서 온화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시상식에 사람들은 슬슬 매료되는 모습이었다. 민국도 생각보다 재밌는 분위기에 흡족했다.

“그럼 다음으로 커플 상입니다.”

그렇게 여러 상이 휩쓸고 간 자리였다. 10분간의 휴식 시간 이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할 커플 상. 유력 후보들이 스크린을 통해 보여 지고 있었다.

“내껄 빨지 않다니!”

“이 미친놈이!”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어디선가 익히 들어본 목소리였다. 머지않아 스크린에 뜬 두 사람의 이름에 은별은 화악 얼굴을 붉혔다. 민국은 씨익 웃엇고 말이다.

“생일 때 친구들에게 생일빵을 맞았다고?”

“그래! 그래서 얼굴이 얼마나 더러워졌는지 알아?”

“흠! 얼굴에 범벅이 된 하얀 생크림이 흡사 무엇과 같아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우리는 incoming를 한 번 정리해야 할 때다.”

“푸하하하!”

현대왕과 남고딩의 치고 박는 애드립에 장내가 폭소로 시끄러웠다. 은별은 화악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지만 민국은 오히려 의자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며 인사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쾌활한 행위에 사람들은 즐겁다는 듯 박수를 쳤다.

“부끄러….”

“뭐가?”

씩 웃으며 자리에 앉은 민국이 웃으며 은별을 바라보았다. 은별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쥐마냥 중얼거렸다.

“왠지 쪽팔리단 말이야….”

“허허. 왜 이러실까? 나의 여자 친구님이. 고작 이 정도로 멘탈이 약하셨음?”

진정하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은별을 달래는 민국. 은별은 서서히 그의 부드러운 행동으로 말미암아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반대로 이를 보는 두 여인의 눈빛엔 알게 모르게 씁쓸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자, 그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윽고 진행의원 유석호가 발표자가 적힌 종이를 들고 이름을 불렀다.

“현대왕과 남고딩 커플!”

당연히 민국과 은별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상 후보로 유력한 두 사람이 커플상을 받다니! 졸지에 두 사람은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에 오르게 되었다. 여자 직원이 건네주는 커플상을 받으면서 말이다. 진행의원이 앞으로 다가와 질문했다.

“두 분 모두 대상 유력 후보로 선정된 가운데 커플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소감 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늘 당당하게 의견을 표출하던 때는 언제고, 부끄러움에 고개 숙이고 있는 은별. 민국이 대신하여 마이크를 받고 중얼거렸다.

“오오미… 솔직히 지릴 뻔했습니다.”

“하하!”

“아니, 생각도 못했거든요. 내가 커플상을 받을 줄이야! 그것도 작은 가슴의 그녀와 함께!”

퍽하고 옆구리를 때리는 은별. 장내는 소소한 웃음이 넘쳐났고 민국이 씩 웃었다. 기분이 좋아진 진행의원이 한 번 더 질문했다.

“두 분이 진짜 커플인 것을 밝힌 지도 한 주 정도 지난 걸로 압니다. 외람되지 않다면 어디까지 가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어디까지 가? 뭐요, 성관계?”

“하하!”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서로 좋아하는 감정 말입니다.”

“아~.”

민국이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대뜸 은별이의 양어깨를 붙잡고 자신의 쪽으로 돌렸다. 서로 대치하게 된 사이에 민국이 슬쩍 얼굴을 들이밀었다. 마치 키스라도 하려는 모습에 사람들이 ‘오오!’하고 소리치는 가운데, 살짝 붉어진 얼굴로 기대 중인 은별의 이마에 민국의 이마가 대진다.

“흠.”

이윽고 그리 숨을 내뱉으며 민국이 은별과 멀어진다.

“안타깝지만 가면이 우리의 사랑을 방해하는군요.”

“한 번 벗어주실 수는 없습니까?”

“벗을 의향은 있지만, 제 여자 친구가 저를 워낙 좋아해서요. 만일 제가 가면을 벗고 이곳에서 얼굴을 공개한다면 이곳 남자들은 전부 게이가 될 겁니다.”

“푸하하!”

진행의원이 다시금 물었다.

“여자보다 남자를 끌리게 하는 얼굴인가 보군요.”

“가슴이 부족한 이들은 모두 저에게 끌립니다.”

또다시 퍽하고 치는 은별이었고, 장내는 다시 웃음바다가 되었다. 뿌듯한 얼굴로 진행의원이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하면서 두 사람을 조심히 내려가도록 안내했다. 이윽고 테이블에 당도한 민국은 은별과 기쁘게 담소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서라와 유이는 알게 모르게 그를 향한 쓴 마음을 느낄 따름이었다.

“그럼 2회는 10분 후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다들 즐거운 얘기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대상을 앞두고 10분간의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서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장실 좀 갔다 오겠음!”

“어, 그래라.”

서라가 먼저 장내를 나가 보였다. 민국은 태연하게 테이블의 일원들과 담소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내 은별도 살짝 생리현상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화장실 좀 갔다 올게.”

“내가 같이 가줄까?”

“미쳤어?”

“왜? 여자들은 화장실 갈 때 같이 손 잡고 간다던데. 나도 그러면 안 되나?”

“…미친 놈.”

그렇게 욕설을 퍼붓고는 급히 화장실로 향하는 은별이었다. 민국은 그런 은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여유롭게 콧노래를 부를 따름이었다.

“후우.”

화장실 칸에 들어간 서라는 급히 볼 일을 보았다. 남자 옷을 입고 일을 보는 것은 어지간히 힘들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서둘러 시상식 장으로 돌아가기 위함에 화장실 칸에서 나오는데.

“아.”

“…….”

그대로 익숙한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은별이었다. 그제야 실수했음을 직감하는 서라. 남장을 했단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만 여자 화장실에 들어온 것이다.

“…….”

“…….”

급한 볼 일로 화장실에 왔던 은별의 눈매가 살짝 무언가를 추리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