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54화 (54/369)

54화

<드래곤 브레스>

그러니까, 은별이에게 정식으로 사귀자고 고백하기 전날이었다.

‘흠….’

열성팬과 통화를 하고나서 많은 고심에 들었다. 그녀가 건 마법이 사람을 솔직하게 만드는 마법이었다면, 은별은 호감 이상을 가지고 민국을 바라보았던 게 아닌가.

“으음.”

어렴풋이 짐작은 했다. 그녀가 취하는 행위들은 일반적인 호감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각별한 마음을 가졌을 때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팔짱을 끼고 무릎을 쭉 피며 고뇌하던 끝에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난 은별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자문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선뜻 나오지 않았다. ‘끄응.’거리며 관자놀이를 짓누른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행위를 멈추게 되었고, 민국은 골똘히 예전의 추억들을 돌이켜보았다.

저주 속에서 인연이 닿아 지속적으로 은별이와 조우했던 장면들을 말이다.

‘…….’

영화의 필름처럼 차근차근 지나가던 장면들 속에 민국은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그 또한 호감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던 것이다. 친구 이상의 선을 넘보지 않을 계획이었다면, 굳이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없었다.

‘예나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겠지.’

일정 시간 동안 가슴을 만져야 살 수 있다는 조건이 삶의 목적에 추가되었을 때, 민국은 그녀를 먼저 떠올렸고 연락을 건 것이다. 이로써 확신했다.

“역시 진짜 여편네가 됐음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던 거야.”

깨달음이란 항상 목적을 탄생시키고 갈구하게 만든다. 갈증 해소를 위해 물을 마시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말이다. 민국은 내일 일찍이 그녀와 조우하여 정식으로 고백하자 마음먹었다.

* *

그리고 민국은 고백했다.

자신의 마음을 확신 시 하게 된 그는 이제 남고딩을 여인으로 받아들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강은별 역시 민국에 대해 일정 이상의 호감도 있었고, 둘은 잘 어울리는 연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웃겨… 내가 왜 니 애인이야?”

“읭?”

휴대폰으로 애인이 된 기념으로 첫날 데이트나 하자고 제안을 건 민국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강은별의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하… 님아. 뭐 잘못 드셨어요? 초코파이 봉지 뜯었다고 초코파이 내꺼라고 생각하시는 거 아니죠? 내가 그때 웃으면서 받아주었다고 그게 애인이 된 거라고 생각해?”

“…허허 츤고딩이여, 생리라도 하시는가? 우리 서로의 마음도 확인했고 이제 불타는 금요일의 감정을 끌어안고 하나가 되어 하늘로 승천하는 일만이 남았….”

“그래! 나 너 좋아해!”

은별은 진솔하게 대답했다. 민국을 이성으로서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싫어하지!”

그리고 민국을 누구보다도 경멸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은별은 아직 몰래카메라 건에 대해서 용서를 할 수가 없던 것이다.

“너 좋아하는 사람 마음 가지고 이리저리 장난치고 그러는 거 정말 나쁜 짓이야, 알아? 네가 날 좋아한다고 내 학교 앞까지 찾아와서 고백까지 했다지만,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또 어떻게 알아? 또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치는 건지 아닌지 어떻게 아냐고.”

“아니 이 여인아, 내가 말했잖아. 그 몰래카메라 건은 어디까지나 내 컨셉에 의존한 컨텐츠로 내가 생각해도 좀 경솔했던….”

“아 몰라 몰라! 하여튼 네가 날 좋아하고 내가 널 좋아하는 거랑은 다른 거야! 넌 신뢰하지 못할 행동을 했으니까!”

몰래 카메라 건은 강은별에게 큰 상처였다. 개개인이 고백을 하는 것으로 장난을 쳐도 상처를 받는 마당에 온갖 사람들이 다 지켜보는 방송 안에서 그런 장난을 쳤다.

물론 민국은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능력도 좋다! 또라이 기질이 다분히 있지만 어느 정도 사람을 위한다는 것도 강은별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장점들을 모조리 씹어 먹을 만큼 민국에겐 아주 큰 단점이 있다. 그건 바로 그 또라이 기질이 가끔 눈치 없이 튀어나와 사람들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것!

‘흠….’

부정할 말이 하나도 없음에 민국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은별은 민국의 그런 반응에 ‘어때? 내 말이 맞지?’하고 단호하게 덧붙였다. 잠시 뜸을 들이며 깊은 생각에 빠져 들었던 민국이 소리쳤다.

“좋아! 알았어. 그럼 너에게 내가 신뢰 있는 사람이란 걸 다시 증명시켜주면 되는 거지?”

“뭐?”

이래봬도 엄마 아빠가 하나가 된 그 날, 정자들과의 힘겨운 사투에서 1등을 차지한 민국이었다. 수 억마리에 달하는 살인마(?)들과의 배틀로얄에서 철저하게 생존한 그란 말이다!!! 민국은 잘못한 만큼 죄를 받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학교야?”

“…너 또 무슨 꿍꿍이야?”

“별 꿍꿍이는 아니고. 집엔 언제 돌아오는데?”

민국의 상냥 나긋한 물음에 은별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확실히 서로가 서로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민국의 대하는 태도가 묘하게 달라진 건 사실이었다.

“한 네 시쯤….”

“좋아! 기다리고 있지!”

그리고 민국은 통화를 끊었다. 은별은 통화가 끊긴 직후 휴대폰의 액정을 보면서 이 새끼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건가… 두려움에 떨었다. 반대로 통화를 끊은 민국은 무사히 통화가 끊긴 것을 확인한 후 확신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준비하자!”

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네 시가 되었다. 민국은 집으로 돌아왔다는 은별이의 메시지를 받자마자 곧장 컴퓨터를 키고 파뿌리 TV에 로그인하라고 답장했다. 그리고 이내 마찬가지로 컴퓨터 전원을 키고 파뿌리 TV에 로그인하는 서민국. 그의 컴퓨터 책상 위에는 어마어마한(?) 것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서민국의 작은 두상에 딱 알맞는 가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직도 사이트는 개판이구만.’

서민국의 방송 게시판에는 시청자들의 열렬한(?) 원성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대부분 츤고딩의 팬들이 글을 쓴 것이었고, 내용이 어찌나 적나라하던지 너네 부모님 잘 계시냐는 안부는 기본이었다. 민국은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는 거야. 이건 내가 잘못한 거니까.’

사실 민국의 방송 컨셉 상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는 건 아니었다. 그의 컨셉은 초초 막장 컨셉이었고 이전에도 언급되었다지만 여성 비제이들이 제일 위험하게 여겨야 하는 표적 1순위였다. 그만큼 죄 없는 비제이들을 상대로 애꿎은 짓을 하면서 컨텐츠를 만들어온 것이다.

‘이런 컨텐츠가 좋아서 나를 따라주는 사람도 많다지만, 반대로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도 다분히 있었지.’

남고딩 방송국도 막장 그 자체였다. 오히려 현대왕의 컨셉 방송일 뿐인데 왜 그리 과민반응하냐는 글도 적혀 있었다. 원래 빠와 빠가 붙으면 돌이킬 수 없는 비논리 대결이 펼쳐지는 법이다.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이 모든 일은 내가 다 책임진다!”

서민국은 로그인을 했다는 강은별의 문자를 보자마자 곧장 가면을 썼다. 그리고 논란이 되는 자신의 방송국에 공지 하나를 올리고는 대뜸 은별이에게 자신의 방송으로 접속하라 답장했다.

[대체 뭘 하려는 건데?]

자신의 방송국과 민국의 방송국을 확인하던 은별은 그가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걸까 꽤나 두려운 모양이었다.

‘후후, 나에게 다 맡기라고.’

그리고 민국은 가면이 떨어지지 않게 끈을 교정하고 컴퓨터의 캠을 위로 올려 자신이 잘 보이도록 테스트했다. 파뿌리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해보니 아주 잘 보였다.

‘역시 난 가면을 써도 잘 생겼군. 상대방의 거시기를 차서 쓰러뜨리고 ’넌 나의 상대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눈빛이야.’

자신의 눈빛에 홀딱 반하던 것도 잠시 서민국은 방송을 켰다. 시작하자마자 논란이 되고 있는 그의 방송으로 수많은 시청자들이 접속해오기 시작했다. 이제부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 *

현대왕의 시청자 채팅방은 엉망진창이었다.

[츤고딩한테 사과해 ㅂㅅ아]

[진짜 못된 새끼야 어떻게 남자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냐 ㅉㅉ]

[윗님들 닥치시죠^^ 컨셉에 진지빠는 어리석은 닝겐들]

[후후… 흩날리라능… 천본앵능…]

관심 좀 달라는 오덕후와 폭주하는 시청자들 속에서 현대왕은 캠으로 자신의 얼굴을 비췄다. 그 모습이 방송으로 고스란히 나가자 몇몇 시청자들이 ‘오오’하면서 크게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왕이 실제로 얼굴을 비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얼굴이 비춘 것을 무사히 확인한 현대왕이 ‘흐읍’하고 숨을 끌어 모았다가 뱉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현대왕입니다.”

이전과는 달리 점잖은 목소리였다. 물론 그의 목소리에 논란은 여전했다. 너네 부모 만수무강 잘하냐는 대사부터 비롯해서 이기주의 현대왕! 이라는 소리 또한 쉴 틈 없이 적혀 나가고 있었다. 현대왕은 다 인정했다.

“예예, 여러분의 말이 다 맞습니다. 저 이기주의예요! 못된 놈임다!”

현대왕은 크게 오버하듯 말했다.

“크으… 설마 남고딩이 정말로 날 좋아할 줄 몰랐지! 내가 잘못한 거야! 그 아까운 애를!!!”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

[와 이 새끼 진짜 답도 없다….]

“그래! 난 답 없어! 그러니까 수많은 시청자들이 나의 막장 방송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지! 그리고 한 편으로는 엄청 욕을 하지! 부모는 잘 계시다 이 새끼들아! 그리고!!!”

현대왕은 기다렸다는 듯 눈을 질끔 감고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앞으로 허리를 조금 숙이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못난 비제이를 둔 팬들과 남고딩 팬들에게 미안하다!!!!!!!!!”

남고딩도 현재 자신의 본 아이디가 아닌 다른 아이디로 접속해 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사과 이후 현대왕은 정면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자, 사과는 사과고. 이제 정당하게 죄를 받아야겠지? 그래요 여러분. 오늘 제가 방송을 킨 것은 저의 죄를 제 스스로 받기 위함입니다. 그간 많은 여자 비제이들이 저 때문에 울먹거리고 상처를 받았죠! 정말 맘 같아선 따귀를 몇 대씩 두드려 때리고 싶었을 거예요! 압니다 잘 압니다! 그리고 기어코 이런 사건이 터지고 말았고 전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정말 밥에다가 치킨 소스 뿌려 먹는 짓을 많이도 했구나!”

[그거 맛있던데.]

[뭐? 미친놈아 그게 뭐가 맛있어?]

[닥쳐 내 취향 무시하지 마라]

“그런고로 오늘은 저도 여러분에게 제 솔직한 감정을 얘기하고 저에게 벌을 주는 컨텐츠를 진행해볼까 합니다. 자! 일단 여기 보십시요!”

현대왕은 책상 앞에 두었던 그것들을 들어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시청자들은 처음엔 ‘저게 뭐야?’하는가 싶더니 곧 크게 놀라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현대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예! 맞습니다! 불닭볶음 30개와 야쿠르트 100개 입니다!”

심지어 그냥 불닭볶음도 아니었다. 불닭볶음 중에 초특급으로 매운 불닭볶음 30개였다. 하나만 먹어도 다음 날 피똥을 싼다는….

“식신조차도 버거워 할 정도의 양이죠! 하지만 여러분 제가 누구입니까? 현.대.왕입니다! 설사 제 몸이 망가진다 한들 저는 제가 받을 죄를 이렇게라도 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차마 이런 거로밖에 사과할 수밖에 없는 못난 나의 모습에 미안하다!!!!!”

시청자들의 의견은 가지각색이었다. 고작 그런 거 가지고 남고딩이 받은 상처가 사라지겠냐는 것부터 비롯해서, 진짜 재밌겠다 하는 이야기도 오갔다.

몇몇은 자칫하다간 정말 죽을 지도 모른다며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왕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선 이 방법 말곤 없다고 생각했다. 뭐 어쩌겠는가? 실제로 남고딩의 팬들을 만나서 따귀를 맞을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는데. 그리고 이런 식으로라도 방송을 켜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는 건 다름 아닌, 이 방송을 지켜보는 남고딩 때문이었다.

“자, 그럼 한컵씩 모조리 뜯어서 물을 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앗, 개뜨겁네 부들부들…. 하지만 전 여기서 포기하지 않죠. 현대왕이니까요.”

우우웅 휴대폰이 울렸다. 문자 메시지는 남고딩의 것이었다.

[야 너 미쳤어?]

이를 확인한 현대왕은 가볍게 휴대폰을 내려놓고 하던 일을 반복했다. 그러던 끝에 마침내 초특급 매운 맛인 불닭볶음 30개에 물을 따르고, 야쿠르트 100개를 책상에 완전히 나열하는데 성공했다.

“휴, 촌나 오래 걸렸네. 역시 세상만사 작은 일들도 모이게 되면 쉬운 일이 아니게 되는군요? 좋은 교훈이 되었어.”

현대왕은 나무젓가락을 뜯었다.

“자, 그럼 한 번 죄를 사하여봅시다.”

참고로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만 해도 무려 3만명이 넘어갔다. 그만큼 이 사건이 엄청난 문제로 제기됨과 동시에 큰 이슈로 퍼져나갔다는 것이었다. 현대왕은 이참에 작정하고 자신의 굴욕샷이나 남기자고 마음먹었다.

“오오미, 매운 향이 얼큰하게 느껴지는 구만? 콧속으로 느껴지는 이 강렬한 기운은 마치 지하철에서 느닷없이 찾아오는 변비의 복통과도 같은 것 같습니다.”

더 말은 길게 하지 않겠다. 콧속으로 스며들어오는 매운 향을 무시하고, 현대왕은 곧장 불닭볶음으로 얼굴을 가까이 하며 면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후루루룩.

“후루룩.”

ㅋ….

“컼! 쿠왘!”

반응은 격렬했다!

“마, 마케나이….”

-마케나이 : 지지 않아…의 일본어아직 한 번 먹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손이 바르르르 떨린다. 아마 내일 현대왕은 다른 의미로 아파서 못 움직일 지도 모른다.

[미친 놈아 먹지마!]

[누가 저 새끼 좀 말려줘요!]

[신이시여! 제발 구원 좀!]

현대왕의 팬들은 그가 비춘 각오에 눈물을 흘릴 듯이 애타게 외쳐댔다. 하지만 그에 반면 츤고딩 팬들은 [고작 먹는 것 가지고 ㅉㅉ]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과연…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런 반응을 할 수 있을까?

“야, 야쿠르트 아줌마! 물 좀 주세요!”

현대왕은 곧장 야쿠르트를 들어 한 번에 다 마셨다. 불닭볶음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했다. 마치 위가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이윽고 한 개를 다 먹는데 성공한 현대왕이 조금 풀린 눈으로 입술에 묻은 양념을 닦으면서 말했다.

“이제 한 개 먹었습니다….”

현대왕은 곧장 두 개째에 손을 갖다댔다. 아직은 괜찮았다. 좀 더 힘을 낼 필요가 있었다. 현대왕은 곧장 용기를 내어 다음 불닭볶음에 손을 내밀었다.

“후루루룩!”

요즘은 의리하면 김보성이다. 하지만 예전엔 의지하면 티아라였다. 현대왕은 티아라만큼 의지로 똘똘 단결된 인물이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혼또니 마케나이!!!’

그렇게 무려 다섯 개쯤 먹었을 때였다. 현대왕의 상태가 슬슬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혹시나 이를 대비해서 미리 오후까지 속을 비운 상태로 있었는데 이제 배는 거의 다 찬 느낌이었다.

‘요쿠르트도 아직 70개나….’

하지만 마케나이! 현대왕은 마치 식신으로 빙의된 것처럼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후루룩! 수루루룩! 후루루룩!”

사람이 언제 미친다고 생각하는가? 사랑하던 사람에게서 잊혀 졌을 때? 아니… 가족이 억울하게 죽었을 때? 아니다… 바로 매운 걸 과하게 먹었을 때다.

“크어어어어어!”

마치 공룡이 된 것처럼 사자후를 지르면서! 현대왕은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는 하나의 기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우우웅! 그리고 이때 이를 심상치 않게 여긴 남고딩이 계속해서 문자를 남기고 있었는데!!! 현대왕은 사과에 신경이 쏠려 보지도 못했다.

[야 저러다 죽겠다!]

[누가 경찰에 신고해!]

[미친 새끼 ㅋㅋㅋㅋ]

이젠 이를 지켜보며 욕하던 츤고딩 팬들도 상당수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가면 갈수록 좀비처럼 휘청거리는 현대왕의 모습에 그의 팬들도 상당수가 공포에 질려 있었다.

‘20개!’

방송을 킨 지 어연 세 시간이 지났다. 현대왕은 접신처럼 음식에만 집중한 끝에 어연 불닭볶음 20개와 야쿠르트를 50개 먹는데 성공했다.

“…욱!”

하지만 그의 몸은 어느 덧 기력이 쇠하고 있었다. 몸속에 있는 무공의 힘이 이젠 찾아오는 마기의 기운을 억누르지 못하고 점점 나약해져 가는 것이었다!

‘낭자… 내 이 세상을 등지고 이별하더라도 죄는 끝까지 사하고 사라지겠소!’

마치 무협지의 한 주인공처럼! 현대왕은 포기하지 않았다!

“꿀꺽 꿀꺽!”

그렇게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을까? 한 시간 동안 빠른 속도로 나머지 불닭볶음과 야쿠르트를 해치우는데 힘을 낸 현대왕은, 식신도 차마 엄두를 내기 어려울 기네스북 기록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꿀꺽.”

[…….]

지켜보는 시청자도 긴장. 가만히 말도 없는 현대왕의 몸도 긴장. 탕탕탕! 그런 그때였다.

“야! 이 바보야! 문 열어!”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누군가가 소리쳐왔다.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 현대왕은 그녀의 목소리를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린 현대왕이 생각했다.

‘츤고딩…?’

“문열라구! 이 수학 점수 만점 나와 놓고 답 밀려 쓴 놈아!”

애탄 그녀의 목소리에 현대왕은 힘겹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웁.”

먹은 게 도중에 올라오려고 했지만 현대왕은 포기하지 않았다. 방송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무시하는 가운데 현관으로 향하는 현대왕. 계속해서 두드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현대왕은 마침내 문을 열어젖혔다.

“이 바보야!”

문이 열리자마자 남고딩이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때릴 줄 알았던 것과는 반대로 남고딩은 그를 와락 껴안았다. 눈망울에 눈물이 조금 맺혀 있는 모습이었다.

“근육도 없는 게 뇌에는 근육이 가득 찼어? 병신 컨셉도 정도가 있지 어쩜 그런 미친 짓을 해?!”

“자, 잠시… 흔들면 웁….”

현대왕은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남고딩이 ‘이씨….’하면서 현대왕을 올려보다가 다시 말했다.

“이런다고 내가 널 용서해줄 거 같아?”

“…….”

“절대 안 해줘! 아니! 절대 못해줄 거야! 그런 바보 같은 짓으로 용서해줄 여자는 어디에도 없단 말이야 멍충아!”

사실상 은별이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그에게 원했던 건 이런 것이 아닌….

“미안해.”

그때였다. 서민국으로 돌아온 그가 힘없이 강은별을 껴안은 것이었다. 일렁이는 속을 참느라 그는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과하고 싶었는데, 그게 뜻대로 잘 안 되더라고.”

“…….”

“니 마음 가지고 놀아서 정말 미안해.”

단 한 번도 자기 잘못에 대해서 사과를 하지 않았던 민국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은별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씨…….”

강은별은 민국의 복부를 툭하고 밀었다. 그리고 그와 눈을 다시 마주한 뒤 말을 이었다.

“너… 정말… 나빠….”

“…….”

“알아? 이 나쁜 놈아…?”

민국은 싱긋 웃음 지었다. 꽤나 창백한 그의 얼굴엔 조금 안도의 감정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서로를 포근히 껴안았다. 아니, 이번엔 은별이가 먼저 껴안았다고 볼 수 있었다. 방송은 아직 켜진 상태로, 시청자들은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쌓여 있던 앙금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제 좀 괜찮아진 건가.’

민국은 진심으로 안도했다. 하지만 좋은 일이 생기면 위기는 반드시 찾아오는 법이다.

‘웁!’

민국은 지금까지 은별이를 신경쓰느라 차마 신경 쓰지 못했던, 뒤늦은 위기를 다시금 깨우쳤다. 그리고 그 깨우침은 전에 찾아왔던 위기보다 더 강렬한 위기를 안고 찾아왔다.

“…애인은 되어줄게. 하지만 나한테 다시 한 번 그런 짓했다간 그땐 진짜 용서 안할 거야.”

은별이의 말이 나릇나릇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응? 알아들어?”

대답이 없는 민국의 행동에 은별이 안았던 몸을 다시 떨어뜨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마침 민국은 보다 창백해진 안색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의 빵빵해진 볼에는 마치 올라오는 무언가를 꾸역꾸역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웨에에엑!”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쉬도 새도 없이 퍼지는 민국의 분노! 드래곤 브레스가 은별이의 얼굴에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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