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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45화 (45/369)

45화

“…….”

물귀신 작전을 쓴 지 어연 한 시간이 경과했다. 민국은 아직도 도착지 않은 콩딱지를 생각하면서 이놈의 지지배가 집에서 화장을 떡칠하고 출발할 생각인가 의문을 품었다. 그런데 그 찰나였다. 똑똑똑!

“온니쨩 데스까?”

“…….”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민국은 침묵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어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똑똑똑!

“문 좀 열어 보랑깨? 세 마리 치킨을 가지고 배달왔당깨? 물론 네 번째는 너랑깨?”

보통 때는 ‘호성성님!’하고 깜짝 놀란 척 맞장구 쳐주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민국은 곧장 ‘들어와!’하고 이불 속에서 얼굴만 내민 채 버럭 소리쳤다.

문은 다행히 아까 전에 잠그지 않았다. 은근히 문 잠그는 것에 소홀한 민국이었다.

이윽고 신발장에서 ‘웃차!’하고 신발을 벗은 서라가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온니쨩, 어디 데스요? 혼또니 방망이 들고 찾아왔으니 빨리 나와 보시랑깨 데스까?”

민국은 침대 안에서 서라 쪽을 보려다가 천장을 주시했다. 천장 위에 벌이 찰싹 들러붙은 채로 거동하고 있던 날개를 잠시 쉬어주고 있었다. 민국은 벌이 언제 움직일까 주의 깊은 눈동자로 주시하다가 ‘아차!’하고는 서라에게 소리쳤다.

“서라야! 들어올 때 문 열어놓고 들어와!”

“알았당깨. 잠시만 기다려 보랑깨? 치킨 사왔으니 같이 맛나게 먹어 보장깨.”

양념 치킨 특유의 냄새가 콧속으로 스멀스멀 들어오는 것이 정말로 치킨을 사온 모양이었다. 허나 민국은 서라에게 고마운 것은 둘째치고, 일단 저 벌을 어떻게든 처리해주길 바랐다. 이윽고 서라가 현관의 작은 거실을 넘어서 민국의 침대가 있는 방에 도착했다.

“찌얍! 내가 왔다! 나는야 파워 레인저 피, 핑크는 아니고 레드!”

사온 치킨을 두 손 높이 치켜들면서 그렇게 소리치는 서라. 입고 있는 옷은 교복이 아닌 사복이었다. 아무래도 옷을 다른 것으로 갈아입고 온 모양이었는데, 윤기 있는 허벅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핫팬츠와 봉긋한 가슴이 유난히 부각되는 하얀 반팔셔츠 차림이었다.

“오오….”

“엣헴! 혼또니 온니쨩 데스까를 위해서 가지고 온 치킨이니 만큼 음탕하게 먹어 보자능!”

오덕 특유의 말투로 소리치면서 서라가 치킨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민국은 순간 순수한 아이를 이런 위험한 상황에 빠뜨린 자신에 대해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꼈으나, 그래도 자신의 이득이 먼저였기 때문에 서라에게 소리쳤다.

“서라야! 일단 그건 둘째치고!”

“응응. 뭐 하고 싶은 말 있음? 근데 형 왜 침대 위에 누워 있음?”

“그러니까 서라야!”

그때 서라가 또 오바스럽게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뒤로 두 걸음 빠르게 물러났다. 그러고는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호, 혹시! 아직 날이 저물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 그 짓을? 누, 누굴 생각하면서? 혹시…… 이 집안에 끌어들인 이유가 나를 딸깜으로 삼기 위함이냐능!”

“야! 그게 아니고 천장 좀 봐봐!”

노골적으로 야한 단어를 입에 담던 서라였다. 민국의 버럭 치는 외침에 서라가 자동적으로 고개를 올렸다. 그리고 천장에 들러붙어 있는 그것을 빤히 주시하게 되었다.

“…….”

“…….”

민국은 얼른 저것을 이 집에서 쫓아내달라고 애원하는 눈동자로 서라를 바라보았다. 한참동안 천장의 그것을 주시하던 서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게 뭐야?”

“호박벌.”

“저게 왜 여기 있음?”

“네가 좀 잡아달라고 있는 듯.”

서라가 빠르게 고개를 내렸다. 민국과 서라의 시선이 마주되었고, 눈치가 보기보다 약삭빠른 쪽에 속했던 서라가 ‘아앗!’하고 외쳤다.

“나 낚인 거임? 합동방송 같이 하자고 해서 온 건데!”

“아니, 그러니까 나도 그때까지만 해도 합동방송을 같이 하려고 했어! 그런데 갑자기 저 벌 새끼가 어디 구멍 안을 비좁고 들어와서는 집안에서 왕이 되려 하잖아!”

“으아! 형! 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긴 것 같음! 미안하지만 다음에 보셈!”

“어, 야! 야!”

민국의 외침을 무시하고 몸을 빠르게 회전시키던 서라였다. 위이이잉! 하고 호박벌이 빠르게 날개를 왕복시키기 시작하더니 머지않아 천장에서 발을 때고는 서라 쪽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려 몸을 돌리던 서라는 툭하고 달라붙은 꺼림칙한 감촉에 그대로 멈췄다.

고 말았다.

“…….”

“…….”

민국과 서라 모두 굳어버린 얼굴로 호박벌이 착지한 곳을 바라보았다. 하얀 반팔 셔츠에 유난히 부각되고 있는 가슴, 그곳에 벌이 착지한 채로 파리처럼 손을 비비적비비적 거리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처음으로 과장된 것이 아닌, 진실 된 비명을 내뱉으며 서라가 펄쩍 펄쩍 뛰기 시작했다. 민국은 펄펄 뛰는 그녀의 가슴에서 떼어져 다시금 허공을 날기 시작하는 호박벌을 주시하다가 서라를 향해 외쳤다.

“어, 어서 이쪽으로 와!”

펄쩍 뛰던 서라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민국의 침대 쪽으로 불쑥 뛰어들었다. 지나친 소음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 서라를 주시하고 있던 호박벌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으아앗!”

“닫아! 닫아 이 멍청아!”

이불 안으로 들어와서는 틈을 내주고 있던 서라가 민국의 윽박에 몸을 움츠렸다. 이윽고 침대 위의 이불 안으로 무사히 숨어든 두 사람! 두 사람에게로 날아들던 호박벌이 갑작스레 궤도를 꺾더니 다시금 천장에 찰싹 붙었다. 졸지에 캄캄한 이불 속에 서로 밀착하게 된 민국과 서라, 거칠게 숨결이 이불 속을 지배했다.

“헉헉.”

“하아, 하아.”

정말이지 절대 절명의 위기 순간이었다.

‘뭔 놈의 호박벌이 저렇게 지성이 높아? 다크아칸에게 마인드 컨트롤이라도 당했나?’

호박벌의 행동에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윽고 한참동안 호흡을 가다듬으며 숨을 내쉬고 있던 두 사람. 머지않아 역력했던 긴장이 살짝 누그러진 얼굴로, 서라가 새우 자세로 민국을 올려다보았다.

민국 역시 서라와 마찬가지로 옆으로 누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윽고 서라가 살짝 민국을 쏘아보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좋은 물고기였습니다.”

“아니, 내가 말했잖아. 너랑 방송하자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을 때 갑자기….”

“우웨에엑!”

“…그래 이년아. 맞다! 내가 벌이 촌나 무서워서 너에게 도움 좀 요청하고자 연락했다! 근데 너도 벌이 좀 무서운 것 같구나! 그치?!”

서라가 기다렸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면서 소리쳤다.

“500원짜리 독침 쏘이면 존나 아파!”

“그래! 1000원짜리 독침 쏘여도 존나 아프지!”

그리 맞장구를 친 두 사람이 슬그머니 이불 속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천장 위에 들러붙어 있는 호박벌은 언제라도 싸울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윽고 이불 속으로 다시금 머리를 숨긴 민국과 서라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형! 어떡할 거임?! 나 형 때문에 순결을 유지한 채 죽게 생겼음!”

“그럼 순결을 유지하지 않은 채 죽는 걸 바라냐?”

“따, 딱히 그런 것은 아니지만은!”

하여튼 큰일은 분명했다. 두 사람 다 벌을 극심히 무서워하는 체질이었고, 호박벌은 꽤나 자극을 심하게 받은 것인지 움직이는 뭔가가 있으면 바로 공격할 것 같았다. 민국은 어릴 때 벌에 쏘였던 기억이 다시금 새록새록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몸서리치고 말았다. 민국이 짐짓 신중하게 물었다.

“너 아는 사람 중에 벌 잘 잡는 사람 없어?”

“아! 기다려 보셈!”

이윽고 서라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듯 주머니 속을 꼼지락대더니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휴대폰의 전화번호 목록을 몇 번 뒤져보더니 이내 서라가 다시금 ‘아!’하고 탄성을 지었다. 민국이 살짝 기대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래?”

“휴대폰 배터리가 없음.”

“…….”

“꺼져버렸음.”

이로써 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민국은 서둘러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보았다. 마찬가지로 배터리가 다 달아있는 실정이었다.

“…….”

휴대폰 충전기가 컴퓨터 뒤편에 있긴 했지만 그것에 지금 휴대폰을 꽂을 자신이 없었다. 자칫해서 화나 있는 벌에게 쏘이면 어떡하겠는가?

“으아! 다 형 때문임! 얼른 날 낚시대에서 놓아주셈!”

“…야! 발버둥 치지 마!”

낚시에 걸려 버린 것이 상당히 화가 났는지 이불 속에서 마구마구 발버둥치기 시작하는 서라. 민국은 그런 서라가 이불을 은근슬쩍 걷어차고 있단 사실을 가늠하고는 어떻게든 그녀를 말리려 들었다.

위이이잉! 그리고 그 순간 다시금 들려오는 호박벌의 날개 소리. 귀를 꽂는 그 소음에 민국과 서라가 다시금 ‘우아악!’,‘꺄아악!’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엎치락뒤치락 이불 속에서 움직였다.

“…….”

“…….”

다행히 이불 바깥에 부위를 드러내지는 않아 쏘이진 않았다. 다만 움직임이 끝났을 때 뭔가 요상한 자세를 취하게 되었는데, 민국은 뜨끈뜨끈한 이불의 기운 속에서 서라를 올려다보았다. 졸지에 서라가 민국의 위에 올라타 있는 자세가 되었다.

허나 이불이 긴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라는 허리를 비스듬히 세운 채로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만일 이 상태에서 자세를 바꾸려 들다가 자칫해서 이불이 미끄러지기라도 했다간, 벌에게 진짜로 쏘일 지도 몰랐다.

(물론 이 두 사람이 심하게 과민반응 하는 것도 있었다. 워낙에 벌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으아… 형 꼼짝도 못하겠음….”

“그러니까 너 왜 발버둥 쳐가지고….”

그때 물컹하고 서라의 엉덩이가 민국의 골반 아래쪽에 닿았다. 민국은 순간 야릇한 감촉에 음흉한 감정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서라 역시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응?’하고 살짝 고개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가 살짝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 모양새였다.

“형 팬티 차림이었음?!”

“…….”

“으아! 역시 오늘 합동방송은 성행위 방송이었음? 난 물고기가 아니라 대어였던 거임?!”

“…그게 아니라니깐! 그러니깐 그만 움직여!”

아예 이불 바깥으로 나가려 드는 서라였다. 결국 민국은 하는 수 없이 그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허리를 꽉 두 손으로 붙잡아 껴안아 버렸다. 민국의 완강한 힘에 결국엔 서라가 민국의 가슴 쪽에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고, 이것도 이것대로 뭔가 야한 자세가 되고 말았다.

“…….”

“…….”

시간이 경과하면 경과할수록 풍기는 묘한 분위기. 이불속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야릇한 기운에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을 담지 못했다. 이윽고 현자로서의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민국이 저도 모르게 흘끔하고 서라의 목을 곁눈질하게 되었다.

“…….”

부드러워 보이는 그녀의 목. 애써 시선을 때어놓지만 결국엔 다시금 그녀의 부위를 훑기 시작한다. …핑크빛 입술, 말랑말랑한 팔목, 예쁜 손과 라인이 잘 살아 있는 다리…. 봉긋하게 튀어나와 있는 가슴과 빵빵하게 빈틈없이 핫팬츠를 매우고 있는 엉덩이.

‘그러고 보니….’

그동안 함께 방송을 하는 이로써만 생각해온 민국이었다. 타 비제이에겐 절대로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지 아니했고, 그저 서로를 장난식으로만 생각해오던 그였다. 하지만 서라는 은근히 마음이 잘 맞는 녀석이었다.

여자인데도 여자들이 거부 반응을 일으킬 단어에 전혀 화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 하나에 즐겁게 맞장구 쳐주었었다.

‘그래서 느끼지 못했던 것인데.’

알고 보면 이 녀석도 여자인 것이다.

‘비록 목소리는 남자로 오해 받는 굵은 목소리라고 해도.’

예쁜 여자인 것이다.

‘요즘 여자답지 않게 성적인 단어를 함부로 발설해도.’

예쁜 여자라서 용서되는 것이다.

‘은별이나 유이 씨 또한 이 녀석에겐 외모로는 안 되지.’

역시나 예쁜 여자니까.

“…….”

역시 남자는 예쁜 여자면 다 되는 것이다.

“꺄읏!”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민국의 가슴 쪽에 그대로 엎어져 있던 서라가 순간 은밀한 감각을 아래쪽에서 느낀 모양이었다.

민국도 순간 당황해서는 자신이 왜 이러나 자문했다. 하지만 무어라 입을 열어 해명할 수가 없었다. 그녀 또한 느꼈을 감각에 대해 무어라 변명할 수 없는 것이리라.

…하지만 서라 또한 화를 낸다거나 실망이라고 얘기를 한다거나, 절대 그런 말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래쪽에 느껴지는 불끈불끈한 감각에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민국이 누워 있는 침대에 손을 비집고 넣어서는, 꾹 그의 허리를 붙잡으며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형.”

“…어?”

잠시 머뭇거리던 서라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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