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얽히고 얽히는 사이>
여자의 신비로운 그 날을 만끽하고 있는 강은별. 가랑이 사이로 느껴지는 축축함과 쓰라린 통증에 그녀는 극심히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만일 이 상태에서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버럭버럭 대들어댔다간 허그작작 뼈도 남김없이 갉아먹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민국도 이번엔 그녀를 감정적으로 건드리지 말자고 생각했다.
“신비로운 마법의 날을 보내고 있는 꽃사슴이여, 마법사가 된 소감은 어떠한가?”
“네가 아주 뼈가 산산 분리되는 느낌을 맞보고 싶어 환장했구나?”
“파이어볼트는 삼가해주게, 꽃사슴이여. 나는 동정이 아니라 마법을 못 쓰거든. 고로 이 대결은 평범한 인간과 신성한 마법사의 대결이라네.”
“…….”
“마마! 부디 주먹을 거두어주시옵소서!”
여자는 생리할 때, 남자는 스물다섯 살까지 동정일 때,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속설이 인터넷에서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차피 속설이니 만큼 거짓일 가능성이 농후하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그녀를 건드리지 말자고 생각하는 민국이었다. 이윽고 은별이 주먹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오늘 우리 집 안 되는 거 알지? 모텔에서 해.”
“왜 안 되는데? 어머니 때문에?”
“그래! 내가 너 돌아가고 난 후에 엄마에게 얼마나 잔소리 들었는지 알아? 그때 회상하면 진짜… 어휴!”
“흠흠, 원래 좋은 남편을 모시기 위해선 아내의 어쩔 수 없는 생고생이 있는 법이지.”
“…너 확 주스 갉아버리는 통에 넣고 뱅뱅 돌려버린다?”
“역시 마법의 날이라 그런지 입이 험하구만.”
‘…칫.’하고 고개를 돌리는 강은별이었다. 매섭게 보일 수도 있을 테지만 그런 그녀 역시 민국의 눈엔 하염없이 귀엽게 보이고 있었다.
“하여튼 빨리 움직여.”
이윽고 은별과 민국이 근처 모텔로 향하였다. 오늘은 민국이 대신 모텔비를 낼 생각이었다. 돌이켜보면 은별이 요 몇 주 동안 자신에게 해준 것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가슴도 만지게 해주고 모텔비도 대신 내주고, 어머니에 관련된 일도 많이 도와주었으니까.’
이래봬도 민국은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무조건 자기 받을 것만 받고 무시하는 매몰찬 사람이 아니었다. 만일 민국의 인성의 한계가 그 정도였더라면 곁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으리라.
“자, 들어가자.”
“…….”
이윽고 모텔에서 미리 계산을 마친 민국이 그녀를 데리고 앞장서서 움직였다. 은별은 유유히 복도를 거닐고 있는 민국의 뒷모습을 보면서 정말이지 자신의 처지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조금은 후회하게 되었다. 물론 그녀 또한 민국에게 내심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허락해주고 있는 것이었지만….
‘아니야! 나는 그저… 불쌍해서 도와주는 것뿐이라고!’
애써 그렇게 부정하는 은별이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몇 시간 동안 만져도 돼?”
“하루에 한 번씩 만나는 거 너나 나나 불편하잖아, 그러니까 이삼일 치 한꺼번에 해.”
“오늘도 탐스러운 토마토의 싱그러운 감촉을 느끼겠군.”
“…….”
“아, 님아. 요즘 여름철이라 큰 토마토도 많아요.”
뭐만 하면 불끈 주먹을 들어 올리는 은별이를 두 손으로 제지하며 민국이 중얼거렸다. 은별은 정말이지 ‘이런 녀석을 내가 왜….’하고 생각을 하다가 한숨을 내쉬고 침대에 안착했다. 민국은 기다렸다는 듯 가볍게 헛기침을 해보였다.
“그럼 만진다?”
“얼른 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가만히 앉아있는 강은별. 그리고 그런 은별이의 성 부위로 천천히 손을 가져가는 민국. 정말이지 몇 번이고 반복해온 일이지만 이 순간이 영 적응 될 수가 없었다. 서로 경험을 가진 남녀도 아니고, 그저 살기 위한 목적 하에 가슴을 만지고주는 이들이라니. 만일 주위 커플이 이 소식을 듣게 되면 참으로 신기하게 쳐다볼 것 같았다.
“읏.”
이윽고 은별이의 봉긋한 가슴에 민국의 손이 대졌다. 민국은 손을 대는 순간 ‘오?’하고 살짝 놀라게 되었다.
“님 흥분했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분명 토마토여야 할 가슴이 참외가 되어 있어서.”
“…….”
“그날에는 가슴이 커지는 마법도 쓸 수 있는 건가!”
이걸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욕설로 받아들여야 하나? 고심하던 은별이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내 주위에 노골적으로 성드립을 치는 남자는 너밖에 없을 거야.”
“내가 한 성드립 좀 하지.”
“하핫! ……웃겨.”
“내가 한 웃김도 좀 하지.”
“웃겨요? 그걸 또 스스로 인정하시네? 개그맨해도 되시겠어?”
“몰랐어? 나 이래봬도 개그맨한테 싸인도 받았던 남자야. 나중에 그 개그맨은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다.”
“개그맨이 사람들에게 싸인해주는 건 당연한 거고! 그걸 왜 너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건데?”
“스물다섯 살에 빌게이츠와 짝짝쿵하게 될 인물이니까.”
“하! 아직도 그 꿈 버리지 않으셨어요? 서양녀랑 결혼하겠다는 생각은 여전한가 보네!”
살짝 질투 담긴 음성으로 그리 소리치는 은별이었다. 민국은 픽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질투하는가 내 여자여? 하지만 걱정 마라. 내가 비록 서양녀랑 결혼 하더라도 너는 내 열 네 번째 여자로서 이혼 않고 곁에서 살림할 수 있도록 해줄 테니까.”
“…병신!”
“고마움을 츤데레 식으로 표현하는 너의 알뜰한 마음에 나는 마냥 웃기만 하는구나.”
확실히 오늘따라 이상하게 은별이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몇 주째 민국과 함께 하고 있는데, 그를 남자 친구가 아닌 그냥 남남인 사이로 여기는 게 애매했다.
‘대체 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은별은 유독 심각하게 혼자서 그리 자문하고 있었다. 대체 민국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과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마구마구 솟구쳤고, 은별은 행복하면서도 한 편으론 강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아무래도 그녀는 정말로 그를….
“내가 웃긴 이야기 해줄까?”
하지만 민국은 정작 은별이가 원하는 말은 입에 담지 않았다. 다만 생리 때문에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녀를 웃겨주고자 그리 제안할 따름이었다. 잠시 상념 중이던 은별이 가늘어진 눈으로 말했다.
“뭔데?”
“너 나한테 동생 있는 거 알지?”
은별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안했지만 민국에겐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
“어.”
“내가 초등학교 때 일인데, 그 녀석이랑 같이 목욕을 했었거든. 그런데 글쎄 동생이 나한테 차가운 물을 뿌리는 거야. 난 그 물이 몸에 닿는 순간 일어나서 한 마디 했지.”
“뭐라고?”
“하아앙.”
“…….”
“아무리 생각해도 차가운 물은 존나 음란한 녀석이 분명해.”
은별은 피식 웃었다. 민국은 그런 그녀를 향해 싱글벙글 웃음 짓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런 그를 보면 한없이 어리고 순수한 남자처럼 보였다. 물론 실상은 그러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다른 거 하나 더 들려줄까?”
“이번엔 또 뭔데?”
이번에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까 기대하는 은별이었다.
“너 스타크래프트 알지?”
“그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스타크래프트처럼 성공한 게임도 대한민국에선 없을 것이다.
“거기서 나오는 러커 있잖아. 그 러커는 바이오닉한테 쎌 수밖에 없어.”
“왜 쎈데?”
“가시가 바이오닉 곧휴를 찌르거든.”
“…….”
“메딕은 좋겠지?”
이번 건 좀 오바였지만 말이다. 은별은 고개를 도리도리 가로젓더니 진지하게 주제를 돌렸다.
“너 파뿌리 TV 시상식은 어떡할 거야?”
“뭐가?”
“참여할 거냐고. 너 대상 후보잖아.”
올해 파뿌리 TV 방송계에서 많은 업적을 거둔 민국! 그는 대상을 받을 유력 후보로 찍혀 있었다. 민국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별 거 아니라는 듯 얘기했다.
“당연히 참여해야지.”
“얼굴은 어떡할 건데? 시상식에선 가릴 수도 없잖아.”
하긴 그게 문제이긴 했다. 그래서 민국도 몇 번이고 많이 고심을 했고, 이참에 그냥 나가는 것을 관둘까 생각했다. 하지만 대상일 시 무려 천만원이란 거금을 받는다. 천만원이면 대학 등록금을 무려 두 번이나 낼 수 있는 양!
“가면 써야지. 설마 시상식에서 가면 하나 쓴다고 해서 뭐라 하진 않을 거 아냐?”
“음….”
“넌 나올 거냐?”
민국의 물음에 은별은 과묵히 침묵했다. 은별은 민국과 마찬가지로 대상 후보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민국보단 방송 횟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워낙에 컨텐츠를 잘 살리는 쪽에 속했던 은별이었기 때문에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난 좀 더 생각해보고.”
“허허, 우리 도도한 라이벌이시여. 설마 여유를 부리는 것인가?”
“…흥. 난 그쪽 라이벌로 생각한 적 한 번도 없는데요? 나는 어디까지나 내 자신이랑만 싸울 뿐이에요.”
“오오 진부한 드립. 하지만 오늘은 그날이니까 그냥 넘어가주도록 하지.”
그날이니 만큼 많이 배려해주는 민국이었다. 물론, 많이 배려해주어서 이 정도였다는 게 제였지만.
“킁킁.”
“…왜 그래 갑자기?”
“어디서 타는 냄새 나지 않냐?”
또다시 무슨 꿍꿍이인지 이번엔 모텔 방안을 킁킁거리며 냄새 맡고 있는 민국. 은별은 그런 민국을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다가 반문했다.
“설마 ‘내 마음이 불타고 있잖아요.’ 라는 마가린 같은 대사 따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으아닛, 혹시 나에게 그런 대사를 듣고 싶었나. 남고딩? 알게 모르게 느끼한 취향을 좋아하는 여편네로군 흠흠. 메모지에 적어두어야겠어.”
“…미친.”
“아, 장난은 그만두고 어디서 시큼한 냄새가 나는데 뭐….”
이윽고 민국이 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납득한 듯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바로 은별이의 가랑이 사이였다. 은별이는 민국이 조준하고 있는 시선을 따라가 시야에 담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 붉어진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민국이 중얼거렸다.
“진짜 생리 안 하게 임신시켜줄까?”
“꺼져!”
버럭 소리치며 은별은 민국에게 약 세 시간 동안 가슴을 내주었다. 무려 세 시간 동안 둘이서 그 자세로 요지부동하고 있었는데도, 두 사람은 은밀한 상황을 만들어간다거나 절대 그러진 않았다. 험하게 담소를 나누어도 두 사람은 결국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있던 것이다.
“가자.”
이윽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모텔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날씨는 슬슬 어둑어둑해지고 있는 즈음이었고, 민국은 여자 혼자 가도록 놔둘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은별이를 집까지 데려다줄 생각이었다.
“네가 동물을 키운다고?”
“어. 그저께부터 키우기 시작했어.”
“뭐 키우는데? 강아지?”
“고양이.”
“고양이? 그렇군.”
“넌 뭐 안 키워?”
“나? 나야 진즉에 키우고 있었지.”
“뭐 키우는데?”
“비싼 애완동물이다. 강은별이라고, 돈 졸라 쳐묵하는데 그립감은 아주 죽여줘.”
“…….”
퍽! 정강이를 아주 세게 강타 당한 민국이 ‘커헉!’하고 비명을 토했다. 더불어 맞은 발을 잡고 바닥을 동동 뛰었는데, 그런 민국을 보며 은별은 씩씩거렸다.
“진짜 확…!”
더는 상대하기도 싫었는지 은별이 홱 몸을 돌려 횡단보도를 저벅저벅 가로지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민국이 눈을 크게 뜨면서 부여잡고 있던 정강이에서 손을 땠다. 더불어 빠른 속도로 바닥을 박차더니 뒤에서 은별이를 껴안고 그대로 뒤로 끌어당겼다.
“…꺅!”
갑작스런 완력에 은별이는 그대로 민국의 품안에 껴안기게 되었고, 방금 전 은별이 있던 횡단보도로 트럭이 빠르게 지나갔다. 빠아앙 하는 크락션과 함께.
“…….”
“…….”
하마터면 위험한 사고가 날 뻔했음에 두 사람이 아찔해하는 중이었다. 그녀보다 먼저 정신을 차린 민국이 품안에 있는 은별이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괜찮아?”
“…….”
트럭의 기습에 놀라서 심장 박동이 요동친 것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 까닭만 있는 건 아니리라. 은별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슬그머니 고개를 올려 민국을 바라보았다. 민국은 자신의 품속에서 빼꼼 고개만 들어 올려다보는 은별이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그러니까 조심해야지.”
“…….”
마치 어린애를 가르치듯 그리 말하고는 민국이 천천히 손을 뻗어 은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은별은 자기도 모르게 그 쓰다듬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붉어진 얼굴로 마냥 민국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윽고 민국이 은별이를 품에서 때어내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횡단보도의 빨간불이 초록불이 되기를 기다리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으….’
은별은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쿵쾅 뛰어대는 심장 박동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붉어진 얼굴 채로 고개를 푹 내려 숙였다. 만일 민국이 작디작게 중얼거리는 혼잣말을 듣지 못했더라면, 은별은 그 자세로 시종일관 하루를 맞이했을 것이다.
“역시 애완동물 교육은 힘들어. 애완동물 센터에 상담 좀 받아야하나?”
“…….”
놓치지 않고 그 말을 엿들은 은별이 홱하고 몸을 돌려 그를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노려보기 시작했고, 민국은 조크삼아 던졌던 말을 그녀가 들었음에 깜짝 놀라서는 제지하려 들었다. 허나 이번에도 역시 민국이 한 차례 늦은 탓에 또다시 정강이를 내주고 말았다. 퍽!
“으악!”
“흥!”
또다시 발을 잡고 동동 구르는 민국을 외면한 채, 은별은 초록불이 된 횡단보도를 당당히 걷기 시작했다. 역시 둘은 알다 모를 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