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살살 발라요.”
“…….”
스윽스윽.
“으아닛?! 이 여자가 지금 사람 죽이려 환장했나?”
“…….”
“당신 어디서 온 누구입니까? 혹시 CIA인가? 마피아 쪽에서 온 겁니까? 나 인터넷에 마피아 비하 딱 한 번밖에 한 적이 없는데? 그것도 댓글로, 그저 동요되어서 한 건데? 양심이 있다면 한 번만 봐주시죠.”
…식사는 어이없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식당에서 느닷없이 난동을 부리다 못해 기절까지 해버렸는데, 음식을 먹도록 식당 주인이 내버려둘 리 없었다. 결국에 민국과 유이는 식당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은 근처 약국에서 약을 바르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나저나 여자 손이 그렇게 거칠어서 어떡합니까? 나중에 남자친구 안마해주다가 어깨를 뽀개 버리겠네.”
코끝에 후시딘을 발라주고 있던 유이의 손이 멈추었다. 그러고 아직 내용물이 묻어 있는 손을 티슈로 스윽 소심하게 닦아 보이더니 대꾸하는 그녀였다.
“…안 그래요.”
“안 그러긴 뭐가 안 그럽니까. 나한테 아까 김갑판 발차기 102단 콤보 쓰는 거 보고 답이 나왔건만.”
“…….”
“킹오브 파이터즈 좀 하셨나 봅네다.”
계속해서 비아냥거리는 민국이었다. 그러다가 한 대 맞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심정도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잘 생긴 코에다가 상처를 주지 않았는가? 뽀얀 송중기 같은 피부에 상처의 흔적이 선명하게 생겼으니 민국 입장에선 마냥 좋은 기분일 리 없었다.
“그런데 유이 씨, 발 놀리는 거 보니까 풋잡 잘할 듯.”
“…….”
“아, 농담입니다.”
전혀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이었다.
“아무튼 볼 일도 봤으니 이만 나가죠.”
이윽고 소파에서 일어난 민국이 곧장 약국에서 나왔다. 유이도 그를 따라서 천천히 밖을 나왔다. 참고로 그녀는 아직도 가면을 쓰고 있었다. 보다 못한 민국이 다시금 그에 대해 지적했다.
“이미 얼굴을 봤는데 왜 가려요? 무슨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
“그렇다고 못 생긴 것도 아니고요. 솔까말 예쁜 편에 속하는데 왜 자꾸 가리시는 건지 도통 모르겠네.”
예쁘다는 표현에 유이가 순간 흠칫했다. 이윽고 선선이 민국을 바라보며 묻는 유이였다.
“예뻐요…?”
“왜요? 아, 예쁘다는 표현 들으니까 기분 좋아서 그래요?”
“…….”
“그런데 단순히 기분 좋게 해주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 솔직하게 유이 씨 예쁜 편이에요. 무슨 이유에서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가면 이제 좀 벗었으면 좋겠어요. 보는 걸로도 더워지려하네.”
“…….”
그러나 그 말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안 벗겠다 때를 쓰는 유이였다. 민국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거참….’하고 중얼거리며 참으로 고집이 센 여자라 감안했다. 이윽고 머리를 긁적거린 뒤 몸을 돌려 길을 나서기 시작하는 민국. 유이는 자기도 모르게 콩닥콩닥 뛰어대는 심장의 박동 소리를 느꼈다.
‘뭐, 뭐지… 이게?’
유이는 여태까지 그 누구에게도 예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남성들의 음란한 시선은 많이 받았지만 말이다.
그녀는 자신을 갖고 음담패설을 나누는 남자들의 대화를 엿듣고 사람을 싫어하는 기피증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결과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로 각성해버렸다. 근처 바깥을 나갈 때도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녔고, 큼지막한 가슴을 가리기 위해 붕대를 매본 경험도 있었다.
허나 그리 노력해도 겉으로 보이는 것들을 가리는 데는 부족함이 있던 지라, 결국 포기해버렸던 그녀였다.
“…….”
그런데 그런 그녀를 진심으로 예쁘다고 칭하는 민국이었다. 유이는 실제로 정말이지 예쁜 편에 속했지만, 늘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비하하는 쪽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 칭찬을 듣자 마음이 녹아내리는 기분을 통감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처음으로 방송 때 민국이 했던 고백을 거절했던 게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코 진짜 아프네.”
“괜찮아요…?”
“괜찮지 않습니다. 맘 같아선 너 고소! 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
덮치려고 했던 쪽은 다름 아닌 민국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민국은 최대한 뻔뻔스럽게 나갔다. 원래 그런 편에 속하는 남자였으니까 말이다. 이윽고 유이가 조금 미안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제가 잘못한 거니까… 원하는 게 있으면 하나만 들어드릴게요.”
“…….”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고 스스로의 귀를 의심했던 민국이었다. 그러나 고개 돌려 멈춰서 있는 유이를 바라보는 순간 절대 착각이 아님을 확신시하게 되었다. 이윽고 민국이 물었다.
“정말입니까?”
“…네.”
설마 무언가 범상치 않은 일을 시키진 않으겠거니 생각하는 유이였다. 가능하면 밥을 사준다든가… 그런 걸로 그치고 싶은 그녀였다. 허나 늑대로서의 야성미를 지니고 있는 민국은 절대로 그런 것을 제안할 것 같진 않았고, 한동안 팔짱을 낀 채 길게 고심하는 태도였다.
“흠흠, 유이 씨가 그렇게까지 사과를 하고 싶어 하시니 어쩔 수 없지요. 본래 저는 무척이나 심성이 고운 편에 속하는지라 상처를 입었어도 자비로운 예수 맨탈로 넘어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유이 씨가 저에게 사과 안 하면 무릎까지 꿇을 기세를 취하고 있으니 별 수 있습니까? 좋습니다. 제안해드리죠.”
“…….”
괜히 그런 말을 했다고 후회하는 유이였다. 하지만 이미 시간을 돌리기엔 늦은 상태였고 민국은 턱에 손을 짚고 다시금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어떤 것을 시키는 게 좋을까?’
별의별 것들이 다 떠올랐다. 극단적이고 나쁜 것들은 절대 시킬 마음이 없었다. 아무리 직접적이고 변태스럽다고 할 지 언 정, 그것을 행동으로까지 보이는 타입은 아니었으니까.
“…….”
그 순간이었다. 뇌리 속을 스쳐가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민국은 턱에 짚고 있던 손을 내렸다. 그리고 그대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좋습니다. 좋은 게 떠올랐어요.”
“…….”
과연 무엇을 시킬까, 조금 불안한 눈길로 유이가 그를 바라보았다. 민국은 어디보자 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사람 한 점 없는 좁은 골목길을 발견했다.
“저기로 갑시다.”
이윽고 민국이 좁은 골목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그곳으로 이동했다. 유이는 무엇인가 범상치 않은 일을 시키려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들어 언제 어느 때든 싸울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이래 보여도 싸움 하난 특출나게 잘하는 그녀였으니까 말이다. 이윽고 골목길 안에 들어온 두 사람이었다.
보는 사람 한 점 없단 사실을 새삼 깨우친 민국이 그제야 몸을 돌렸다. 흠칫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유이가 움츠린 모양새로 그를 주시했다.
이윽고 민국이 입을 열었다.
“원하는 거 해주신다고 했죠? 제가 원하는 건 바로 이겁니다.”
과연 무엇일지 의문을 갖는 순간이었다. 홱하고 민국이 두 손을 하늘 높이 치켜 올렸다.
“일단 두 손을 올려 보세요.”
“…….”
“올려 보시라니까요? 설마 이제 와서 남아일어중천금을 어길 생각은 아니시죠?”
남아일어중천금. 남자가 한 입으로 말을 했으면 반드시 책임을 지어야 한다는 속뜻의 말이었다. 허나 유이는 여자였기 때문에 굳이 그것에 따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민국은 완고했다.
“빨리 올려 보라니까요. 제가 하려는 건 아주 간단한 거예요.”
“…….”
결국 머뭇거리면서 두 손을 조심스레 하늘 높이 올려 보이는 유이였다.
“좀 더 빳빳하게, 크고 아름답게 솟구치도록 해보세요.”
무언가 어감이 참으로 야했다.
“오케이, 좋습니다. 자, 이제 그대로 뛰어 봐요. 한 자리에서.”
“…….”
이상한 걸 시키는 민국이었다. 두 손을 하늘 높이 치켜든 채 제자리에서 통통 뛰어대기 시작하는 민국. 그것을 곧장 따라하라는 민국의 명에 유이는 요상함을 느끼면서도 곧잘 따라하는 모습이었다. 통통 제자리에서 뛰어대는 유이의 모습에 그제야 민국이 행동을 중지하고 중얼거렸다.
“오케이, 그러고 20초만 있어보세요.”
“…….”
민국의 말에 통통 거리면서 바닥에서 사뿐히 뛰어대는 유이.
“흠….”
참으로 아름다운 절경이 아닐 수 없었다.
“흐음….”
이것은 마치 조물주가 만들어낸 최고의 부위가 아닐까 싶었다. 출렁 출렁.
“음….”
출렁 출렁.
“오예….”
출렁 출렁.
“…….”
시간이 경과할수록 유이는 왠지 자신을 쳐다보는 민국의 눈빛이 음흉해지는 것을 통감했다.
도대체 까닭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민국이 쳐다보고 있는 시선을 바짝 따라 가보는데….
“…….”
출렁이고 있는 커다란 살덩어리를 발견하고 나서야 유이가 뛰는 것을 멈추었다. 뒤늦게 의도를 들켰음에 민국이 ‘흠흠!’하고 입술에 주먹을 대고 어색하게 헛기침을 해댔다. 유이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그저 멍하니 민국을 바라보고만 있는데, 그 찰나였다.
“따봉.”
“…….”
주르륵. 콧구멍에서 떨어지는 붉은 액체와 더불어 민국이 엄지손가락을 빠짝 치켜들었다.
“으앗, 코피.”
“…….”
“아무튼 좋은 절경 감사… 아니, 이제 볼 일도 마쳤으니 나갑시다. 으어… 갑자기 왜 코피가 흐르고 난리야.”
기분 좋게 흘러내리는 코피를 소매로 닦아 내면서 민국이 몸을 돌렸다. 유이는 유유히 골목길에서 빠져 나가는 민국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잠시나마 그를 좋게 바라본 내가 바보지, 하고 말이다.
“아무튼 이만 헤어집시다.”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작별 시간이 다가왔다. 민국의 발언에 유이가 천천히 고개를 까닥였다.
유이와 민국이 사는 동네는 완전히 반대편. 요컨대 타고 가야 하는 전철도 완전히 반대편이었다. 이윽고 개찰구 쪽에서 민국이 손을 흔들어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유이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보지 않을 것 같은 민국의 실물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으면서 꾸박 고개 숙였다. 그러고 둘은 헤어졌다.
“흐아암.”
에스컬레이터에 탑승하여 전철이 있는 쪽으로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민국은 갑작스레 쏟아지는 피로에 가늘게 눈을 떠보이다가 중얼거렸다.
“이제 츤고딩을 만날 차례인가.”
가슴을 만져야 생명치가 불어나는 몸뚱이를 위해서, 민국은 오늘도 은별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민국은 어제도 그녀와 만난 실정이었다. 이틀치 보충돼있던 생명치는 어제 저녁에 끝나버렸으니까.
‘참 그 여편네는 질투가 많아서 탈이야. 내가 강강 실물 보러 간다고 하니까 엄청나게 불안해했었지.’
어제 방송을 종료한 직후, 강강과의 노예빵 소문을 들은 츤고딩이 먼저 연락을 걸어왔었다. 민국 입장에선 어제 반드시 만나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조아라 했었는데, 연락을 받자마자 그녀가 무작정 욕설을 담았었다. 늘 하던 짓처럼 말이다.
‘그 녀석은 왜 늘 그런 식으로 나에게 관심을 받으려고 하는 건지 몰라. 후후, 귀여운 녀석.’
그렇게 은별이에 대해서 생각 중일 즈음이었다. 우우웅, 하고 휴대폰이 울려왔다. 천천히 주머니 속으로 손을 가져가 그것을 꺼내보니 연락하는 발신자의 이름이 보였다. 민국은 ‘하핫.’하고 소탈하게 웃으면서 과연 암퇘지가 제 말 하면 찾아온다고 중얼거렸다.
“왜 그러나 꽃사슴이여.”
“…전화 받자마자 구역질 나는 소리 할래? 어디야?”
“내가 어디 있든 말든 그건 왜 묻나 꽃사슴이여, 혹시 내가 다른 여자와 모텔에서 이러쿵저러쿵이라도 할 것 같아 노심초사 하는 건가?”
“지랄하고 앉았네! 어디냐니깐?”
왠지 오늘따라 더욱 신경질을 내는 은별이었다. 민국은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 전철타려고.”
“집에 갈 거지?”
“아니, 너 만나러 바로 가야지. 근데 너 왜 그렇게 신경질이냐? 생리라도 하냐?”
저돌적으로 돌직구를 날리는 민국이었다. 참고로 민국의 에스컬레이터 앞 칸에는 두 명의 여자 무리가 서 있었다.
“맞아. 해.”
“아, 진짜임?”
“어. 그러니까 건들지 마. 건들면 아주 죽여 버릴 거야.”
아무래도 여자의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마법 때문에 매우 예민한 모양이었다. 민국은 그런 은별이를 향해 어떤 배려 섞인 말을 하는 게 좋을까 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생리 안하도록 내가 임신시켜줄까?”
“…꺼져 병신아!”
뚝하고 전화를 끊는 은별이었다. 민국은 전화가 끊긴 휴대폰을 바라보면서 혀를 날름거렸다.
“튕기긴.”
앞 칸에 있는 두 여자가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도 깔끔히 무시해주는 민국이었다. 역시 비제이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