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그래도 여자라고 배려 차원에서 그녀가 먼저 원하는 게임을 하도록 해준 현대왕이었다. 허나 현대왕은 이제부턴 절대로 져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졸렬하다고 욕을 먹어도 상관없다! 비열하다고 야유를 퍼부어도 상관없다! 현대왕은 오로지 보복이라는 단어 하나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건즈합시다 건즈.”
“건즈요…?”
“예. 강강님 건즈 아시죠?”
“알긴 아는데 해본 적은….”
“없다고요? 다행입니다. 빨리 시작합시다.”
“…….”
“뭐요? 난 크레이지 아케이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강강 님을 위해서 한 번 해드리지 않았습니까? 강강 님도 이제 매너 있게 더치페이 식으로 제가 원하는 게임을 해주셔야죠.”
“크레이지 아케이드 계급이 처음 하시는 계급이 아니던데….”
“우리 할머니 겁니다. 우리 할머니가 한 때 크레이지 아케이드 초고수였어요!”
“…….”
할머니까지 팔아 보이는 현대왕이었다. 그만큼 그는 강강을 패배시키고 싶다는 의지로 똘똘 상추 싸듯 뭉쳐 있었다.
“자, 빨리 시작합시다!”
졸렬하다는 의견이 빗발치는 시청자들의 채팅방을 일체 무시하고 현대왕은 강강에게 몇 번이고 건즈를 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그 제안을 차마 거절할 수 없던 강강이 무사히 승낙하고 건즈에 임하게 되었다.
“헤헤. 강강님 절대 후회하시는 일 없을 거예요.”
“…….”
건즈. 영어로 하면 Gunz. 뜻풀이는 생략하겠다. 2000년도 초기 때 이 게임이 등장함으로서 게임 시대는 또 다른 획을 긋게 되었다.
전지적 시점으로 캐릭터를 날파리 같이 잽싸게 움직이면서 벽을 올라타는 게임! 그 시기에만 해도 대한민국에 절대로 존재치 않았던 신개념의 게임이었다. 참으로 인기가 많았고 넷마블의 전성시대를 열어주었던 게임이라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거의 망해가는 팔자였다. 예전보다 사람이 굉장히 적었고 게임에 미련이 남은 몇몇 고수들만이 팔자 펴고 재미나게 노닥거리는 게임에 불과했다.
현대왕은 2000년도 초기에 이 게임을 연거푸 했던 경험이 있는데, 정말이지 처음으로 보는 신선한 시스템의 게임에 밤새도록 몰두해서 노닥거렸던 적이 있었다.
“일 대 일로 맵 안에서 붙는데 10데스를 하는 사람이 지는 걸로 합시다.”
“네. 좋아요….”
바로 건즈를 다운로드하는 현대왕이었다. 최적화가 워낙 잘 된 게임이었기 때문에 몇 십 분이나 걸릴 필요는 없었다. 이윽고 강강 또한 건즈를 바로 받아 보인 다음 서버에 접속했다.
“접속하셨습니까?”
“네.”
“좋아요. 스카이 라이프로 만날 채널 알려 드릴 테니 거기로 오세요. 안 오면 원숭이… 는 일본 비하 발언 죄송합니다. 그러고 보니 또다시 일본에 지진이 났더군요. 지진 그 녀석, 조금 쉬엄쉬엄하면서 하지. 쉬었다가 한 번에 펑! 터지면 얼마나 좋아? 나 원 참. 고 녀석은 너무 부지런해서 안 되는 거예요. 한 방이 없어 한 방이.”
[ㅋㅋㅋㅋ]
이내 스카이 라이프에 써놓은 채널로 접속하는 강강이었다. 현대왕도 채널로 들어가기 전 캐릭터를 고르는 창을 둘러보았는데, 캐릭터가 딱 두 개였다.
‘음, 잠깐만.’
자신의 높은 레벨 캐릭터들을 둘러보던 현대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님.”
“네?”
“거기 서버에서 나와 다시 캐릭터 설정하는 곳으로 돌아가세요. 이참에 1레벨 캐릭터를 따로 하나 만듭시다. 그리고 그 캐릭터로 게임하죠. 그게 서로에게 평등하고 아무 문제없지 않겠습니까?”
[오오.]
[웬일이래 현대왕? 진짜 이번엔 진지하게 임해보려는 건가.]
렙차와 아이템 빨로 억누를 자신이 있음에도 굳이 1레벨 캐릭터를 생성하자는 현대왕. 이유는 하나였다. 자존심을 완벽히 세우기 위해!
“엣헴, 제가 강강님을 위해서 특별히 양보해드리는 겁니다. 저 캐릭터 레벨 37이에요. 촌나 높죠? 2000년도 초기에 이 정도 레벨이었으면 초보들이 굽신굽신 거리면서 빌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이 캐릭터로 하려다가 만 것을 강강님은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네.”
“강강아, 아빠에게 감사하다 해야지."
“…….”
“우쭈쭈쭈, 이 녀석! 자꾸만 아빠 말 안 들으면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개 사료 안 준다? 아, 이번엔 강아지 비하 발언 죄송합니다.”
이윽고 새로이 캐릭터를 만들어 보인 현대왕과 강강이었다. 이내 현대왕이 만든 방에 접속한 강강. 서로 장비를 갖춘 뒤, 현대왕이 총 사용이 가능한 데스매치로 바꾼 다음 10데스 시 게임이 종료되는 것으로 설정시켰다.
“강강님 준비 되셨습니까?”
“네….”
“예, 전 안 됐습니다.”
또다시 캐릭터 설정을 마친 뒤, 게임 시작 버튼을 눌러 보이는 현대왕이었다. 이제 시작된 두 번째 노예빵! 이번엔 기필코 이기고 말리라 다짐하는 그였다.
“자 덤벼라 어리석은 영혼아. 이 신성한 칼로 너의 얼굴을 성형수술 시켜주지!”
“…칼 총 다 써도 되는 건가요?”
“예! 제가 특별히 강강님은 칼 총 다 쓰게 해드리죠! 전 칼만 쓰겠습니다!”
그리 단호히 약속하는 현대왕이었다. 두 사람이 대결을 펼칠 맵은 노을 타운. 넓음직한 장소에 건물들이 잔뜩 존재했고 중심엔 시계탑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대왕은 곧장 시계탑 쪽에 도착하여 근처에 있는 강강을 발견했다.
‘후후후. 역시 초보답군.’
어떻게 하는지 조작 방법도 모르는 사람처럼 땅바닥만 보고 있는 강강의 여캐릭이었다. 현대왕은 그런 강강의 뒤꽁무니로 졸졸 이동한 다음 바로 근처에 당도하자마자 이렇게 소리치며 칼을 들었다.
“죽어라 마요네즈를 입술에 바르는 신선한 계집아이야!”
휘익! 허나 그 순간이었다. 마치 현대왕이 뒤에서 올 것을 노리고 있었다는 듯 강강이 빠르게 앞으로 대쉬하여 피한 다음 몸을 비틀더니 반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반텝 : 칼과 총, 대쉬를 하면서 사용하는 고수의 기술 중 하나.) 탕탕탕탕!
“…….”
순식간에 사망한 현대왕.
“님.”
“…네?”
“님 고수 아니라면서요?”
강강이 머뭇거리다 답했다.
“네. 제가 했던 게임 중에서 가장 못하는 게임이에요.”
“…….”
가장 못하는 게임이란다. 정말 겸손한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님 본 캐릭터 레벨이 몇이십니까?”
“57….”
부활하자마자 바로 움직이는 현대왕의 캐릭터였다. 이윽고 맵의 중심인 시계탑 쪽에서 반텝을 쓰며 대기하고 있는 강강을 보며 현대왕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강강이 뒤늦게 그를 발견하고 똑같이 거리를 두며 총을 쏘려는데. 탕탕탕탕!
“…….”
갑자기 총을 들어 쏴 죽이는 현대왕이었다.
[뭐야 총 안 쓴다며!]
[ㅋㅋㅋ 어이없네.]
“뭐요, 제가 언제 총 안 쓴다고 했습니까? 전 그런 약속한 적이 없는데?”
뻔뻔하게 어깨를 으쓱이는 현대왕. 하지만 강강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행동했다. 이윽고 강강이 달려와서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현대왕은 그것을 간신히 피해 보이면서 소리쳤다.
“여기서 죽으면 나 츤고딩 노예한다!”
타앙!
“크악!”
[죽었네 ㅋㅋㅋ]
[츤고딩 노예!]
“닥쳐! 원래 약속은 지키지 않으라고 있는 거야!”
필사적으로 싸우는 현대왕! 하지만 결국 첫 번째 게임은 강강이 우위를 점하고 말았고, 승리 또한 강강이 챙기고 말았다.
“슈밝….”
어떻게 된 게 무슨 게임이든 절대로 질 생각을 않는 강강이었다. 현대왕은 아무래도 방식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총 칼전으로 2라운드 진행합니다. 강강님 레디 누르세요.”
“네.”
그리고 강강이 레디를 누른 순간이었다. 빠르게 칼전으로 바꿔 보이는 현대왕이었다. 시작!
“…….”
“손이 미끄러져서 그만 칼전을 눌렀군요? 별 수 있겠습니까? 그냥 합시다.”
“…….”
“아니 설마 강강님? 여자 사람이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경우는 없겠죠? 설마요, 요즘은 남자보다 여자가 우위를 점하는 사회 시대입니다. 리더쉽을 보이셔야죠!”
이럴 때만 여자가 최고라는 현대왕이었다. 강강은 고개를 끄덕여 이번 승부 역시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현대왕이 이번에 고른 맵은 다름 아닌 나락이었다.
‘실력으로 안 된다면.’
얍삽이로 밀어붙이면 되는 것이다. 현대왕은 나락의 중심에서 만나자고 강강에게 제안했다. 강강도 너그럽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덤비십쇼. 제가 특별히 발로 상대해드리겠습니다.”
“…….”
이윽고 강강이 달려들었다. 현대왕 역시 나락의 중심에서 강강과 열심히 칼로 치고박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칼전은 강강과 비슷하게 해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현대왕은 곧잘 밀리지 않았다. 퍽퍽퍽!
“아놔!”
밀리지 않긴 개뿔.
“아! 님! 잠시만! 뼈 맞았음!”
“…….”
“아 진짜… 아무리 그래도 때린 곳 또 때리는 게 어딨나….”
이윽고 휘두르던 것을 멈추는 강강이었다. 현대왕은 그 틈에 확 달려들어서 다섯 대 정도를 연속으로 때렸다. 퍽퍽퍽!
“헤헤헤.”
“…….”
어이없어 다시금 달려드는 강강이었다. 현대왕은 이번엔 튀어서 나락의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나락은 땅바닥과 낭떠러지가 공존하고 있는 맵이었기 때문에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바로 사망했다. 현대왕은 낭떠러지가 바로 코앞에 있는 땅을 밟은 다음에 벽면으로 등을 붙였다.
“오지 말랑깨! 는 함정카드다!”
칼을 휘두르며 날아오는 강강을 그대로 날려 보이는 현대왕이었다. 건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칼 기술은 여러 개가 있었는데 탭 종류가 아닌 기본 종류만 따져 보자면, 왼쪽 마우스로는 그냥 일반 타격. 오른쪽 마우스로는 칼로 상대방을 높이 떠오르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높이 떠오르게 하는 순간 캐릭터는 정지된 상태로 아래로 떨어지게 되는데, 바로 나락에서 주로 상대방을 낭떠러지로 떨어뜨릴 때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쿠헬헬헬!”
“…….”
결국 이렇게 해서 1킬을 따내는 현대왕이었다.
“강강님 의외로 잘 못하시는 군요? 요런 요런, 요렇게 게임을 해서야 뭔 재미가 있겠어? 깔깔깔!”
“…….”
한 번 이겼다고 아주 제대로 비아냥 거려주는 현대왕이었다. 그리고 그 비아냥은 강강의 가슴에 불을 지피게 만들었다. 강강은 오냐 기필코 죽여주겠다는 심보로 나락에서 올리기나 계속하고 있는 현대왕의 옆구리를 노려 칼샷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허나 현대왕도 질세라 계속 올리기를 하면서 마침내 강강을 몇 번이고 낭떠러지로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헐! 강강님 언제 떨어지셨대? 미안! 한 순간이라서리!”
“…….”
남고딩 특유의 말투까지 사용하며 비아냥거리는 현대왕!
“여러분, 이게 바로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겁니다. 건즈는 이런 식으로 해야 하는 겁니다!”
“…….”
심하게 비아냥대는 현대왕의 모습이 워낙에 못 볼 꼴이었나 보다. 그토록 인내심 많던 강강도 결국엔 입을 열었다.
“저… 현대왕 님….”
“왜 그러십니까! 신나게 연패 중이신 우리 강강님!”
“…저 현대왕 님보다 나이 많을 텐데….”
“헐? 님 나이 많아요?”
강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쩌라고요! 깔깔깔!”
“…….”
“은 농담이고, 강강님 저보다 누나셨어요?”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는 강강이었다.
“네. 아마 현대왕 님보다 많을 거예요.”
“야.”
“…….”
“동이 보고 싶은 하루입니다. 농담이고, 본래라면 원래 강강님에게 누나라고 불러야하겠지만 신체 나이는 강강님이 높아도 정신연령은 제가 높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야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 싶군요.”
“…그래도 누나라고 불러주시는 게.”
“너~라고 부를게~ 뭐~라고 하든지~ 남자로 느끼도록~ 꽉~ 안아줄게~.”
“…….”
퍽! 이상하게 현대왕에게 쓰는 기술이 강해지는 강강이었다.
“아니, 강강님? 왜 이러십니까? 뭐 저한테 쌓인 거라도 있으십니까? 여자가 쫀쫀하게 왜 그래요?”
“…….”
퍽퍽!
“헐?”
퍽퍽퍽!
“헐! 니, 님!”
퍽퍽퍽퍽!
“으악! 강간 누나!”
“…강강이에요.”
갑자기 각성한 강강의 공격에 처절하게 대응하는 현대왕. 이로써 2라운드는 현대왕이 챙기게 되었다. 그래도 나락 맵에서 올려치기를 몇 번이고 하여 킬수를 딴 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보셨습니까? 이게 저와 이 여자 아이의 실력 차이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게임도 잘하는 건 아니죠.”
말은 잘하는 현대왕이었다. 그리하여 마지막 3라운드를 붙게 된 현대왕과 강강. 여느 때보다도 처절하게 겨루는 두 사람이었고, 현대왕은 어떻게든 강강에게 노예빵을 시키고자 정말이지 기를 쓰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약 10분간의 처절한 3라운드 싸움 끝에 마침내 승자가 결정되었다.
“깔깔깔!”
“…….”
“나는 그녀를 몇 번이고 파.괴.한.다.”
처음으로 강강에게 승리를 쟁취한 현대왕이었다. 이 얼마나 명예롭고 경건한 승리라 하지 않을 수 있는가!
“후!”
드디어 노예빵을 실현할 순간이었다. 첫 번째 노예빵으로 이미 치욕이란 치욕은 몸소 경험한 현대왕. 과연 그가 제안할 것은 무엇인가? 강강은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강님.”
“…네.”
말을 잇는 현대왕이었다.
“저와 실제로 한 번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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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직업이 소설가였기 때문에 돈에 얽매여 사는 삶이 컸습니다. 그래서 작품이 돈이 안 되면 바로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근데 이젠 직업이 소설가가 아니기 때문에 취미로 자유로이 즐길 수 있고, 독자 분들을 배신하는 일도 더 이상은 없을 것입니다.
고로 연중은 없습니다.
여러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든 하나를 하든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