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36화 (36/369)

36화

<보복>

“여러분, 어쩌면 오늘은 현 21세기에 새 역사 하나를 긋는 날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

[갑자기 왜 저래?]

아무것도 모르는 시청자 딴에선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만반의 준비를 끝낸 현대왕은 생방송 캠에 자신이 보고 있는 화면을 드리웠다. 그러자 시청자들도 곧 납득한 듯 [아!]하고 열렬히 환호하는 모습이었다.

[오오오올!]

[복수전? ㅋㅋㅋㅋㅋ]

더도 말고 할 것 없었다. 바로 강강에게 연락을 하는 현대왕이었다. 뚜루루루루…. 접속해 있는 스카이 라이프의 강강에게로 신호가 가고, 몇 차례의 기나긴 신호 끝에 마침내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현대왕 님?”

“부왁!”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현대왕이었다. 그것을 보고 시청자들 몇 명이 [ㅋㅋㅋㅋ]웃어댔고 [졸렬하다 현대왕 ㅋㅋㅋㅋ]하면서 비난하기도 했다. 허나 현대왕의 보복은 아직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대왕은 다시금 연락을 취했다. 이윽고 강강이 받아 보였다.

“…….”

“지읏시옷이요. 제 손에서 떨어진 땀방울이 마우스 왼쪽 커서를 클릭하게 만들어 스카이 라이프 방을 종료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굳이 화를 내시려면 우리들의 사이를 잠시나마 갈라놓은 땀방울 녀석에게 한 마디 하세요.”

“…아니에요.”

소심하게 답하는 강강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현대왕에게 했던 소리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현대왕 딴에선 몰래카메라를 한 것이 분명했으나, 현대왕의 팬들과 쿠왁의 팬들이 합동 작전을 펼쳐 그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강강은 그가 진짜로 자신에게 고백한 것이라 여태껏 오해 중인 것이다. 몇 번이고 오해의 소지를 풀어 보려고 노력은 했으나, 그녀는 납득하지 못했고 말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연락하셨어요…?”

“아 다름이 아니라 강강님. 저랑 혹시 게임 한판 땡겨 보시지 않겠습니까?”

“…….”

침묵하는 강강이었고 시청자 중 한 명이 [아무래도 오해한 듯 ㅎㅎ]하고 웃어댔다. 잠시 후 강강이 말했다.

“현대왕 님. 혹시 저번 일 가지고 아직 마음에 품고 계신 거라면….”

“아니 이 무슨! 강강님은 제가 그런 쫀쫀한 남자로 보이셨습니까? 제가 아무리 그런 망신과 굴욕을 경험했다 한들 저번 일에 앙금을 품고 있을 만큼 찌질하고 추악한 인물은 되지 못합니다! 전 그런 남자가 아니에요! 혹시 강강님은 저를 그렇게 보신 겁니까? 정말 실망이군요! 절 그렇게 보시다니! 강강님은 잎사귀에 달라붙은 무당벌레를 향해 ‘바나나는 먹음직스럽다!’가 아니라 ‘사과야 말로 맛있다!’라고 소리치는 인물이었습니까? 그런 거예요?”

“…….”

“예? 그런 겁니까?”

한참 뜸을 들이던 강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그런 건….”

“그럼 그냥 순순히 저랑 게임 몇 판 땡깁시다. 아, 이참에 노예빵 어떻습니까? 심심하던 차인데 저랑 같이 노예빵이나 한 번 신명나게 해보죠.”

“노예빵이 뭔지 잘….”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만일 저랑 강강님이랑 게임을 골라서 몇 판 땡겼어요. 3판 2선승제라고 하죠. 그럼 거기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골라 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이름 하여 쪽팔려에 가까운 거죠. 어떻습니까? 해볼 마음이 드시지 않습니까?”

“…….”

“강강님도 컨텐츠가 부족할 거 아닙니까? 이참에 저랑 한 번 재미나게 게임을 해서 레전드 역사를 한 번 새로이 써봅시다. 그럼 강강님도 좋고 저에게도 좋겠죠. 강강님은 파뿌리 TV의 비제이로서 랭킹도 더 올라가고 마침내 레전드 비제이로서 저와 동등한 위치에 올라가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땡끼시지 않나요?”

[처절하다 ㅋㅋㅋㅋ]

[진짜 졸렬하고 처절하다….]

어떻게든 보복 한 번 하겠답시고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소리치는 현대왕이었다. 강강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말을 이었다.

“전 정말로 괜찮은데… 그리고 저 방송하고 있는 게 이미 따로 있어서….”

“님! 사랑함!”

“…….”

“아 이건 개소리고 님을 어디까지나 비제이로써 사랑한다는 겁니다. 이성적으로, 여자로서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사랑합니다! 그러니까 제발 게임 한 판 해주시죠? 진짜 제가 님 방송 얼마나 즐겁게 보고 있는지 아십니까? 진짜 님 녹방 만날 챙겨봅니다. 하루에 한 번씩 꾸준히요!”

“정말요…?”

“훼이크다 이 병신들아!”

“…….”

“아 지금까지 개소리였고 강강님 제발이요, 한 번만 해주세요. 네? 아니! 여자로 태어나서 남자가 바라는 고작 그런 사소한 것 하나 못 해줘 이 여자야?!”

막무가내인 현대왕이었다.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강강도 어쩔 수 없는 입장이 되리라.

“음….”

“진짜! 내가! 이후에는 연락 안 할 게요! 그쪽이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이상 제가 님 방송하는 거 방해하는 일은 추호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한 판만 땡깁시다!”

간절히 애원하면 이루어지리라. 노력하면 불가능한 일은 없으리라. 그 말은 현대왕을 통해 다시 한 번 떠오르게 되리라.

“…알았어요.”

이윽고 강강이 현대왕의 승부를 받아들였다. 제안이 받아들여지길 기다리고 있던 현대왕이 곧 주먹을 꾹 쥐면서 ‘으오오오오오!’하면서 거하게 소리쳤다.

“님 진짜 존나 짱임! 자! 한 판 뜹시다! 일단 뭐로 땡기시겠습니까?”

“저… 그러니까… 노예빵이라는 걸 하는데 몇 판 몇 승제인 건가요…?”

“일단 총 세 가지 게임을 합니다. 한 게임 당 3판 2선승제로 진행하는 거죠. 한 게임에서 두 번 이기는 사람이 진 사람에게 노예빵을 하는 겁니다.”

“한 게임에서 이긴 걸로요…?”

“그렇지요! 요컨대 세 게임 전부 이긴 사람은 총 세 번 노예빵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만일 강강이 게임을 잘한다는 전제 하에 세 번 노예빵이 가능하도록 제안한 것이었다. 이럴 때는 머리가 아주 졸렬하게 잘 돌아가는 현대왕이었다. 이윽고 강강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만요.’하고는 생방 중에 진행 중이던 컨텐츠를 종료했다.

“끄셨습니까?”

“네. 음… 뭘 해야 하죠?”

“뭐 님 어떤 게임 잘하십니까? FPS라든지 RPG라든지 잘하는 게임 말해보십시오.”

“잘하는 게임….”

“예, 가장 잘하는 게임 말입니다.”

“크레이지 아케이드…?”

“크레이지 아케이드? 그 물풍선 터트리기 게임?”

“네.”

“오케이. 그럼 그거 제외하고 합시다.”

“…….”

“왜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게임으로 하면 붙는 사람 입장에선 얼마나 불리하고 불공평하다 느끼겠습니까? 세상은 평등하게 돌아가야 해요. 평등 속에 있는 대립이야 말로 깨끗한 명승부라 불리울 수 있는 겁니다.”

[말은 잘 한다.]

강강의 팬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했다. 현대왕 방에 있던 시청자들 역시 [와 진짜 개졸렬 ㅋㅋㅋㅋ.]하면서 웃어댔는데 현대왕은 어이없단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니, 이게 왜 졸렬해? 저 양반이 잘하는 게임으로 하면… 아 그래 좋아! 한 번 해보자! 해보자고! 뭐. 어이, 강간님. 잘하신다고요? 크레이지 아케이드? 그래요 그거 한판 해봅시다.”

강강이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런데 저 강…간이 아니라….”

“뭐요? 아, 실수요 실수. 미안요 강간님. 제가 원래 혀가 쪼매 짧습니다.”

“…….”

의도적인 게 자명했다. 이윽고 현대왕이 곧장 크레이지 아케이드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사용했던 아이디를 찾기 위해 아이디 찾기를 클릭하고 주민번호를 입력해 찾았다. 금세 아이디를 찾은 현대왕이 그것으로 로그인을 한 다음에 게임을 받아 보였다.

“정말이지 삽시간에 다운로드가 되는군요. 자, 강강님은 벌써 서버에 접속하셨습니까?”

“네.”

이윽고 강강이 서버와 방을 알려주었다. 현대왕은 한 때 했던 기억이 있는 만큼 순조롭게 방에 접속해 보였다. 그리고 이내 강강의 캐릭터를 보게 된 시청자들이 하나같이 [허거걱!]하면서 놀라는 눈치였다.

강강의 계급이 워낙에 높았던 것이다. 허나 게임에 자신이 있던 현대왕은 당당하게 가슴을 피면서 한 마디 했다.

“게임은 실력으로 하는 겁니다. 계급빨은 겉으로 보기엔 그럴 싸해보일 뿐이라는 뜻이죠.”

“…….”

“자, 그럼 강강님? 한 판 땡겨 봅시다.”

“…….”

말은 없었다. 곧장 게임 스타트를 누르는 강강이었다. 맵은 랜덤이었고 캐릭터도 랜덤이었다. 1대1로 진행되는 물풍선 대결 경기였고,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기본적인 룰이었다. 그냥 무조건 물풍선을 통해 상대방을 죽이면 끝나는 경기!

- Les't Go!

이윽고 게임이 시작되었고, 현대왕이 걸린 캐릭터는 배찌였다. 강강이 걸린 캐릭터는 에띠였고 말이다.

“와, 강강님이 걸린 캐릭터 정말 강강님 실물이랑 닮은 것 같지 않습니까?”

“…….”

강강은 침묵하면서 묵묵히 게임에 임했다. 앞을 막고 있는 상자들을 물풍선으로 부수면서 나오는 아이템들을 드문드문 먹는 모습이었는데, 강강은 약 몇 초 채 되지 않는 사이에 좋은 아이템들을 수북 먹어 보이는 실정이었다.

[대박….]

[강강님 운이 너무 좋은데….]

“아이템 운은 다 네가 가져가라! 허나 승리는 내가 가져간다!”

그리고 게임에 임하는 현대왕이었다. 어느 틈엔가 두 사람을 막고 있던 장애물이 사라지고, 현대왕과 강강이 그대로 격돌하게 되었다. 에띠는 스피드와 물풍선, 파워가 골고루 갖춰진 상태였고 현대왕은 물풍선 달랑 두 개에 파워만 무식하게 쌜 따름이었다.

“아뵤오!”

요상한 괴음을 내면서 현대왕이 계속해서 물풍선을 뿌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 현대왕을 곧잘 잡기 위해 강강이 계속 물풍선을 주위에 터트리기 시작했는데, 머지않아 현대왕이 그 물풍선에 걸려 가둬지는 모습이었다.

“요시!”

허나 한 때 사두었던 캐쉬 아이템 바늘을 이용해서 물풍선에서 나오는 현대왕이었다. 채팅창의 시청자들이 [뭐야 ㅋㅋㅋㅋㅋ], [캐쉬 아이템 사용해도 되는 거였어?]라고 웅성거렸다. 현대왕이 그런 이들을 향해 한 마디 했다.

“제가 물풍선에 갇혔다고요? 꿈도 참 아스트랄하게 꾸시는군요.”

“…….”

강강은 군말 없이 게임에만 임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게임에 열중하던 두 사람이었다. 잠시 빈틈을 드러낸 강강이었고 현대왕이 그 틈을 노리고 물풍선을 마구 뿌리기 시작했다.

“으랏차!”

“…….”

허나 그건 사실 강강이 노리고 있던 것! 물풍선 두 개를 뿌리는 현대왕을 피한 강강이 곧장 다섯 개의 물풍선을 연속으로 배치하고 그대로 구석으로 도망쳤다. 퍼엉!

“엉?”

“…….”

퍼엉! 순식간에 첫 게임에서 패배하는 현대왕. 강강은 마치 승부에서 손쉽게 이긴 무사마냥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

잠시 침묵하던 현대왕이었다. 어느 덧 게임이 끝나 방으로 돌아온 현대왕이 더도 말고 한 마디했다.

“이건 제가 봐드린 겁니다. 레이디 퍼스트 모르십니까?”

역시 졸렬의 왕답게 멋지게 변명하는 현대왕이었다. 이윽고 그렇게 두 번째 판이 시작되었다. 현대왕은 이번엔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강강과 게임에 임했다. 퍼엉!

“…….”

그러나 3판 2선승제의 첫 번째 게임은 손쉽게 강강의 것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게임이 시작된 지 단 1분 만에 끝나고 만 것이다. 어이가 없던 현대왕이 혀를 내두르면서 ‘뭐 이런….’하고 중얼거리는데 강강이 차츰 중얼거렸다.

“노예빵….”

“아 예! 하십시오! 하시고 싶다는데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

투덜투덜 대는 현대왕을 뒤로하고 강강이 잠시 잠수를 하겠다면서 침묵했다. 현대왕은 이 양반이 대체 무슨 노예빵을 시키려는 건지 궁금하면서도 한 편으론 두려웠다. 이윽고 5분 후 돌아온 강강이 말했다.

“스카이 라이프로 보시면 되요….”

“…….”

살짝 불안해하며 스카이 라이프 채팅창으로 옮기는 현대왕이었다. 이윽고 강강이 적은 노예빵이 드러났다.

‘쿠왁에게 고백하기.’

“…….”

예전에 강강에게 몰래 카메라를 하듯 고백하는 형식이 아니었다. 강강이 채팅창에 구체적으로 고백 형식을 적어놓았는데, 이번엔 대사대로 쿠왁에게 고백을 하는 방식이었다. 근데 그 대사가 참 가관이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전지현이 했던 대사 그대로 하는 것.’

고백당하는 상대만 다를 뿐이지 대사는 똑같이 말이었다.

[엽기적인 그녀?]

[아 그 산봉우리에서 소리치는 거?]

견우야~ 미안해. 이 부분 말이었다. 현대왕이 잠시 침묵하다가 강강에게 물었다.

“나보고 이걸 하란 말입니까?”

“…네.”

“…….”

이거 은근히 무서운 여자였다.

“쓰읍….”

많이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현대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쿠왁에게 고백을 하라니! 쿠왁은 여자도 아니고 남자 아닌가? 이건 말 그대로 게이가 되어서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강강이 노린 수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시청자들도 이미 [으악 ㅡㅡ]하면서 괴로워하는 눈치였다.

“후우….”

허나 질질 끌어봤자 좋을 게 없었다. 이 모든 것은 강강 저 무시무시한 작자를 골탕 먹이기 위한 것! 이미 굴욕이란 굴욕은 그녀에게 다 당해본 현대왕이었는데 이 정도 굴욕가지고 괴로울 리 전무했다.

‘시밝.’

괴롭지 않을 리가!

“그럼… 해주세요….”

“…….”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게요….”

카운터도 세지 않고 기다리고 있겠단다. 이걸 배려라고 보아야 할지 현대왕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윽고 한참동안 신중하게 고심을 하고 침착하게 자신을 타이른 끝에 현대왕은 마음을 잡고 노예빵을 시작했다.

“…쿠왁아. …크아뤄후러아라악!”

쿠왁을 언급하자마자 손톱이 오그라드는 현대왕이었다. 허나 강강은 ‘다시….’하고 소심하게 중얼거렸고 현대왕은 결국 몇 번의 노력 끝에 제대로 노예빵을 하게 되었다. 쿠왁을 향한 고백을 말이다.

“…….”

쿠왁아.

…들려?

쿠왁아….

미안해.

나 정말 어쩔 수가 없나봐….

쿠왁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도 어쩔 수가 없나봐 흐헝헝헝헝….

난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어쩔 수 없는… 여, 여… 게이인가봐….

쿠왁아!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이후 쿠왁을 향한 현대왕의 고백 영상은 파뿌리 TV에 널리 널리 퍼지게 되었고, 훗날 이것을 보게 된 쿠왁은 한참동안 현대왕과 거리를 두었다고 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