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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35화 (35/369)

35화

이대로 물러나긴 싫었는지 남고딩이 운을 띄었다.

“흥, 대왕 씨의 동정 따위 누가 가져가겠어요? 어느 여자들도 절대로 거들떠보지 않을 걸요?”

“잘 모르시는군. 내가 한 때 여자 복이 장난 아니었던 사람이야. 사실 나는 그쪽이 생각하는 것하고 차원이 다른 남자라고?”

“노아의 방주가 싸닥션 날릴 소릴하네! 누가 들으시면 하렘 천국을 개설한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인 줄 알겠어요?”

“이래봬도 내가 한 때 여자 복이 좀 터졌던 남자지.”

“여자 복이 터졌다고?”

“그래. 다 터지고 없거든.”

“…….”

“흐규흐규 구슬프니까 내 존슨 좀 쓰다듬어줘.”

“꺼져!”

현대왕이 기다렸다는 듯 소리쳤다.

“왜?! 18cm잖아! 여자들의 영웅! 다름 아닌… 네가 직접 선물해준 이름이잖아!”

“…야!”

버럭 소리치는 남고딩이었고 [ㅋㅋㅋㅋㅋ]거리며 웃는 시청자들. [뭐? 18cm?], [가정 파괴범이네!]하면서 놀려대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남고딩은 화끈거리는 얼굴로 정말이지 왜 자신이 그때 그런 별명을 지은 것인가 진심으로 후회했다.

현대왕은 나중에 또다시 짬이 나면 이걸 이용해서 몇 번이고 남고딩을 놀릴 생각이었다.

“하여튼 다음 사연은 네가 읽어야지 이제.”

“말 안 해도 알아.”

이제 밥 먹던 남고딩이 대신해서 읽을 차례였다. 두 번째 사연을 읽는 그녀였다.

“안녕하세요 남고딩 님. 저는 남고딩 님 방송을 항상 꾸준히 보고 있는 남자 시청자입니다. 저는 남고딩 님을 정말 정말 좋아해요. 그런데 현대왕 님이랑 방송하는 거 보면 이따금씩 혹시 두 사람 사귀는 사이는 아닌 가? 의문이 가더라고요. 실제로는 사이가 어떠세요?”

읽어 보고 나니 사연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쪽지를 중얼거린 남고딩이 정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진짜 싫어요.”

“이 머그컵 같은 여자가?”

“…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A컵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여자들을 향한 일종의 배려 섞인 명칭이다.”

“이 존슨 더 베이비오션 같은 새끼야.”

“아닛? 고맙.”

비아냥 서린 웃음을 지으며 남고딩이 말했다.

“여자 복이 다 터져서 없다는 현대왕 님? 빨리 다음 사연이나 읽어주시죠?”

“알겠소. 나에게 조련 당하는 츤데레 여자 조연의 부탁을 필히 들어주도록 하지.”

“병신.”

곧잘 무시해주고 세 번째 사연을 읽는 현대왕이었다.

“안녕하세요? 현대왕 님. 저는 이제 고등학생 3학년이 되는 여자예요. 다름 아니라 저에겐 한 가지 큰 고민이 있어서 그러는데요. 바로 가슴에 관한 거예요.”

우적우적거리며 밥을 소리나게 씹어 먹는 남고딩이었다.

“전 어릴 때부터 또래 여자 애들에 비해 가슴이 두각 되곤 했어요. 가슴 크기가 다른 애들보다 크다 보니까 남자 애들에게도 자연스레 시선을 받게 되었는데요. 어릴 땐 아무것도 몰랐는데 나중에 어떤 남학생이 저보고 가슴 크다고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거 보고 정말 너무 창피해졌어요. 그 후로 가슴을 막 붕대로 감기도 해보고 별 난리를 다 쳐봤는데 그럴수록 더 커지고만 있지 줄어들진 않아요.”

[조흔 가슴이다.]

[파, 파이즈… 더 이상 말하면 추방당할 듯.]

시청자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흥분이 일고 있었다. 특히 남자 시청자들의 흥분이 더했는데, 여자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부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지금 제 가슴은 D컵이에요. 뭐? D컵?”

현대왕은 감탄했다는 듯 사연을 마저 읽었다.

“전 정말 제 가슴이 너무나도 싫어요. 나중엔 성형수술해서 가슴을 축소하고 싶을 정도예요.”

[안 돼!]

“이에 대해서 현대왕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어요. 잘 부탁드릴게요 …오빠. 그럼 수고하세요.”

그렇게 사연이 끝났다. 현대왕은 ‘흐으으.’하면서 잠시 코로 숨결을 내쉬는가 싶더니 말을 이었다.

“저에게 오십시오. 그럼 다 해결됩니다.”

“뭔 개소리세요?”

“아니! 머그컵이 말을 한다? 이런 기적이!”

‘이 고자 새끼가!’하고 소리치는 남고딩이었다. 흠흠하며 헛기침을 하고는 현대왕이 시청하고 있을 사연의 여주인공을 향해 말을 던졌다.

“사연을 보내주신 가호님, 가슴이 크다는 것은 여자로서 남들보다 훨씬 좋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고민으로 생각하시는 것은 아무래도 타인들의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시선 때문에 그런 거 같은데요. 오히려 좋게 받아들이는 쪽이 좋습니다.

세상엔 가슴이 커다랗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이불을 적시는 불쌍한 여자들이 많아요. 그것을 감안할 때 당신은 신의 축복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고 나중에 여유가 되시면 한 번만 만질 수 있게….”

“짐승.”

“정 고민 해결이 안 됐다 싶으면 나중에 개인적으로 저에게 연락을 해주십시오. 제가 그쪽 아이디로 제 연락처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진짜 짐승이야, 너.”

“흠흠. …뭐가? 남자로서 그런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본능적으로 생각을 해. 남자는 여자에 관해선 결코 이성적이지 못해. 여자가 눈앞에 있다! 그리고 그 여자가 굉장히 섹시한 자태를 보인다! 그럼 절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소위 남자라는 동물이야.”

“그렇다고 여자 입장에선 무조건 가슴이 크다는 게 좋은 건 아니거든? 그 큰 거 달고 댕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

“님 달고 댕겨보셨음?”

“…….”

“머그컵.”

“닥쳐.”

“종이컵. 아니, 유리컵이 좋으려나.”

얼굴이 붉어진 남고딩이 고함쳤다.

“아무튼 무조건 가슴이 큰 게 좋은 건 아닐 거라고!”

“누가 그래!”

노하신 현대왕이었다.

“촌나 좋아하는데! 가슴 큰 계집아이 촌나 좋아! 이 사연을 보내주신 가호느님! 가슴 축소술 하지 마세요! 남자들이 슬퍼하게 됩니다! 가호님 만세! 시청자들 모두 외쳐! EE!”

[만세!]

[EE!]

금세 채팅창은 남자 시청자들의 [EE]로 가득 차게 되었다. 정말이지 열렬한 EE소리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채팅창에서 [감사해요….]라고 말을 적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이번 사연의 주인공 가호였다.

“오오! 가호님! 마침 채팅방에 있었군요! 하하하!”

친절하게 구는 현대왕이었다. 시청자들 역시 채팅방에서 가호를 발견하고 [가호느님!]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졸지에 여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 가호가 머쓱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여자들이 말하기론 가슴이 너무 크면 남자들이 오히려 싫어한다고… 차라리 작은 게 낫다고….]

[지랄 똥을 싸네!]

[그 말을 믿으세요?]

시청자들을 따라 현대왕도 한 마디했다.

“그건 가슴 사이즈가 지 학점인 놈들이나 하는 소리고! 보통 남자들은 다 좋아합니다!”

대부분 여자들은 은근슬쩍 가슴 큰 여자를 모욕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큰 가슴의 여자들은 그것을 콤플렉스라 여기게 된다. 물론 되게 클 경우에는 너무나도 무거워서 허리나 자세에 문제가 발생. 둔해 보일 수 있단 단점이 있으나 남자들은 엄청나게 좋아한단 장점이 있다.

[가슴 크면 진짜 별론데.]

마침 한 여성 시청자가 질투삼아 그렇게 얘기했다.

“꺼져 열폭 열성 유전자 덩어리야!”

곧장 그 여자에게 벙어리 30초를 주는 현대왕이었다. 가슴 큰 여자 앞에선 두려울 게 없었다. 채팅방의 남자들 역시 일심동체가 되어 소리치고 있었다.

[가슴! 가슴!]

[난 가슴 큰 여자 사귀고 싶었어!]

“맞아! 그동안 절벽 조물딱거리느라 죽는 줄 알았다!”

“뭐야?”

현대왕의 말에 남고딩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던 말던 상관않고 가호에게 말을 잇는 현대왕이었다.

“그나저나 가호님. 그 정도 가슴이라면 남자 애들에게 당연히 많이 대시를 받으셨을 텐데요. 지금 남자친구는 있습니까?”

[네. 있어요.]

“아, 있어요?”

[네.]

가호에게 5분 벙어리를 주는 현대왕이었다. 시청자들이 [ㅋㅋㅋㅋㅋ]거렸고 현대왕이 말을 이었다.

“자, 그럼 다음 사연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츤고딩님?”

“…….”

“뭐하냐? 빨리 읽지 않고.”

‘하아….’하고 한숨을 쉰 남고딩이 다음 사연을 읽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남고딩님, 전 남고딩 님의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열혈 시청자예요. 제가 이야기하려는 건 남고딩님 저번에 현대왕 미연시 통해서 게이물….”

갑자기 말을 멈추는 남고딩이었다. 현대왕이 ‘응?’하면서 물었다.

“왜 읽다 말아?”

“…이거 안 읽어.”

“헐. 왜 안 읽음? 빨리 읽어. 지금 시청자들이 몇 분간 생각하고 노고를 치러서 작성한 쪽지를 무시하겠다는 거야? 시청자의 정성을 무시하겠다 이거임?”

“좆까! 안 읽어!”

“허허, 좆 까면 아픈데.”

씩씩거리며 다른 사연을 읽는 남고딩이었다.

“안녕하세요 남고딩님. 전 남고딩 님 방송을 좋아하는 시청자예요. 실은 저에게 연하의 여자 친구가 한 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전에 딱 100일이었거든요. 그 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서로 만족하고 헤어졌어요. 그리고 103일째 되던 날에 저녁에 만나서 데이트를 하고 역시 즐겁게 보냈는데요. 데이트 도중에 저녁 식사를 했고 카페에 들려 커피를 먹자고 해서 커피도 먹었어요. 그 후 9시쯤에 만났던 장소에서 헤어졌죠. 집에 와서 제가 그녀에게 잘 들어갔냐고 문자를 했거든요. 그러자 걔가 잘 들어갔다고 말하고는 잠을 자겠대요. 전 알았다고 답장을 했는데 갑자기 2일 후에 헤어지자고 통보가 왔어요. 이거 왜 헤어지자는 건가요?”

[왜 헤어지자고 했대?]

의문 어린 남자 시청자들이었다. 남자인 현대왕 역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말 왜 헤어지자고 했대냐?”

“이거 당연한 거 아니야?”

허나 여자인 남고딩은 금세 풀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저녁 늦게 만난 거, 커피만 마시고 바로 헤어진 거, 집에 데려다 주지 않은 거, 잘 들어갔냐고 문자로 한 거, 바로 알았다고 성의 없는 수긍해버린 거, 이것들이 모두 적립돼서 여자는 남자에게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한 거 아니야? 그래서 화가 났을 텐데?”

“미친. 당신이 한국의 남도일입니까? 이제 너랑 같이 다니는 사람들 하루에 한 명씩 죽어 나갈 듯. 남도일 씨.”

“왜? 여자 입장에선 이게 당연한 거거든?”

“남자 입장에서 이딴 걸 어떻게 풀라고. 뭐 이건 데이트가 아니라 추리 맞추기 게임이잖아. 추리에 대한 답을 알아야만 헤어지지 않고 사이를 유지할 수 있네 슈발 막장.”

“참나! 어이없네. 그 정도도 못하니까 네가 여태까지 모태솔로인 거야!”

“야 좋아. 그럼 내가 문제 하나 내볼게. 이건 남자들의 문제야. 남녀가 데이트를 했다. 6시에 밥을 먹었어. 8시에 영화를 보았고 10시에 빠빠를 하고 집에 들어가서 잘 자라고 한 뒤 다음 날 남자가 이별을 통보했다. 그 이유가 뭐겠냐?”

“몰라.”

“네가 못 생겨서야.”

“즐이나 쳐먹어 고자 새끼야. 단점만 해도 수 천억가지가 넘는 게.”

“아니 그리 심한 말을? 그리고 내가 단점이 수 천억가지라니. 함부로 거짓말 치다가 18cm 늑대에게 잡아먹힐 수 있다. 어리석은 양치기 소녀여.”

“웃기네. 무슨 넌 단점 없는 줄 알아? 너도 은근히 많거든?”

“허허, 내 단점이 뭔데?”

“키 작고!”

“허허.”

“얼굴 못 생기고!”

“허허.”

“냄새나고!”

“냄새나냐?”

“그래도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고 티슈에 적어놓았으니 힘내렴. 파이팅!”

풋하고 가볍게 웃어 보이는 현대왕이었다.

“이런 여자입니다.”

“뭐가 이런 여자야?”

“저렇게 저를 미워하지 않으면 저를 사랑하지 못하는 여자입니다 남고딩은. 절 너무 사랑하다 보니 저렇게 되어버렸어요. 하아… 모두 애도를 빕시다.”

“…병신.”

두 사람을 향한 메일은 아주 폭풍적이었다. 라디오 합동 방송을 한다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현대왕과 남고딩의 이메일로 계속해서 폭풍 이메일이 쏟아졌는데, 걔 중엔 스팸 메일이나 야한 사이트로 자동으로 들어가는 메일 역시 존재했다.

“한 명당 하나씩만 보내 이 게이들아.”

한 사람당 다섯 개씩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으름장을 놓으면서 현대왕과 남고딩은 계속해서 합동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였다. 허나 라디오 방송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쌓여 있는 메일은 많았는데, 안타깝게도 남고딩이 약속이 있어 나가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혹시 날 버리고 다른 남자애와 손잡고 짝짝꿍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고 하면 어떡할 건데?”

“허허! 나에게 질려서 잠시 바람을 피려는 건가? 하지만 결국 나중엔 후회하게 될 텐데? 내 매력은 장시간 동안 유지되고 어느 순간 질리게 되지만, 결국 다시 보고 싶어지게 하는 매력이 있거든.”

“…지랄한다. 여튼 나 갈래. 수고.”

“바바이.”

그렇게 두 시간 만에 합동 라디오 방송을 마치는 현대왕이었다. 현대왕은 현재 시각을 확인했다.

“으음, 아직 시간이 많은데.”

마저 사연이나 읊으면서 라디오로 시간을 보낼까 싶은 현대왕이었다. 허나 그러기엔 왠지 조금 지루하고 심심한 감이 있었다. 잠시 라디오를 멈추고 파뿌리 TV를 두리번거리는 현대왕. 그러다가 머지않아 방송 중인 타 비제이들을 발견하고 둘러보기 시작했다. 둘러보던 도중 눈에 띈 비제이 한 명이 있었는데.

“…….”

바로 현대왕에게 큰 굴욕을 안겨 주었던 강강이었다. 그녀는 아무래도 생방으로 혼자 게임 중인 모양이었는데, 돌연 현대왕의 머릿속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씨익 미소 지으면서 당한 일에 대한 복수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현대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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