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라디오를 켜고>
그로부터 이틀이 흘렀다. 알게 모르게 빨리 흘러가는 게 바로 시간이다. 붙잡을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그런 것…. 어느 남자들이 대시를 하던 간에 매몰차게 내쳐버릴 듯한 김태희보다 더한 존재…. 민국은 어느 덧 이틀이 흐르고 자신의 생명치가 끝에 다다랐음에 한숨을 쉬었다.
‘여편네 좀 한 번 봐야겠구만.’
여자 타 비제이들을 하나같이 여편네라고 부르는 민국이었지만 유독 신경을 많이 쓰는 여편네가 한 명 있었다. 워낙에 다른 여자들보다 히스테릭하고 질투심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더 많이 신경을 쓰는 것이었다.
‘조련하기 골치 아파 흠흠.’
민국은 현재 대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수업이 끝나고 민국은 개운하게 기지개를 피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곧장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는 민국. 무슨 연유에선지 오늘은 테이블에 예나가 없었다.
“…아, 오늘 저녁 수업이라고 했던가?”
그럼 그녀와 만나서 함께 가는 것은 무리인 듯싶었다. 민국은 자신에게 관심을 표하기 위해 들이대는 학생들 사이에서 깍듯이 인사 후 대학교 문을 나왔다.
“어?”
근데 돌연 왠지 낯익은 듯한 분위기의 여학생이 민국의 옆을 비껴 지나갔다. 민국은 누구인가 싶어 고개를 홱 돌려 보였다. 그러자 그 여학생의 뒷모습이 눈에 드리웠는데, 예나나 새민이 같진 않았다. 하지만 왠지 그 폼이 익숙했는데….
“저기요.”
민국은 결국 뒤돌아서 대학교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그 여학생을 톡톡 건드렸다. 그러자 그 여학생이 ‘네?’하면서 몸을 돌려 민국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치는 순간, 서로 놀란 얼굴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참고로 민국은 진짜로 놀라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
“…….”
예전에 방송을 하던 날에 어느 여자가 물 한 잔만 달라면서 현관문을 똑똑 두드리지 않았던가? 대리순교회의 인물 말이다. …그 인물과 지금 민국은 마주하고 있었다. 민국과 마찬가지로 한참동안 놀라고 있던 그녀가 천천히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더듬거리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야동…남?”
‘…시밝.’
민국은 홱하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뒤에서 그녀가 민국을 부르짖기 전에, 민국은 곧장 대학교를 후다닥 탈출하여 나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전철에 탑승한 민국은 헐떡거리면서 머리를 박박 긁었다.
‘으아! 왜 그때 본 애가 같은 학교인 거야!’
말이 나오지 않는 황당한 상황이었다. 결국엔 그럼 민국은 무슨 짓을 하고만 것인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괜히 낯익은 느낌이 들기에 톡톡 건드렸더니 졸지에 지뢰를 밟고 만 것이다.
‘지뢰찾기하다가 지뢰 밟은 느낌이네!’
그리고 민국은 집으로 돌아왔다. 수업을 끝내고 돌아가기 전에 대리순교회의 여학생과 마주했던 일에 대해선 해결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는 민국이었다. 뭐 어떻게 하겠는가? 이미 그녀가 대리순교회 짓을 할 때 팬티 차림으로 당당히 ‘나 야동 보는 사람이야!’하고 소리쳤는데.
‘으아!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어쩌면 학교생활에 큰 지장을 줄지도 몰랐다. 여자는 여자들 사이에서 워낙 빠르게 소문을 퍼트리지 않던가? 필시 민국도 그렇게 될 지도 몰랐다.
‘…아니지. 따지고 보면 걔는 대리 순교회를 하고 있잖아? 그걸 빌미로 잡으면?’
별의별 생각을 하면서 고심을 하던 민국은 결국엔 ‘화염차에 지져진 마냥 살이 축축 늘어난 느낌이야.’하면서 그 일에 관해 포기해버렸다. 결국엔 그녀를 만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학교생활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고 최고의 선택이었다. …허나 민국은 아직 자신의 먼 훗날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리순교회의 그녀와 나중에 어떤 방식으로 마주하게 될지 말이었다.
“방송이나 하자.”
그리고 민국은 곧장 모든 것을 까맣게 잊고 방송에 몰두했다. 파뿌리 TV에 접속하자마자 방송하기를 클릭했고, 오프닝 송을 틀자 금세 시청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참고로 오늘의 오프닝 송은 아주 평범한 곡으로 선택했다.
“에이 요! 빠이날리 이즈디스왓 앤유 시 쥐디 유지드러~그. …요마 하~~~트브레이커!!!”
그렇다. 대마브레이커라는 곡이었다.
“나에게 얼른 대마를 줘! 나는 싸구려 담배 안 펴! 일본에 갔다가 대마 배워! 담배를 폈다고 구라를 까!”
참고로 실제로 있는 곡이었다.
“안녕하세요? 현대왕입니다.”
금세 모인 시청자들이 [ㅎㅇ!]하며 반기고 있었다. 현대왕이 말을 이었다.
“참으로 좆은 날씨군요. 여러분의 앞날처럼 창창한 날입니다.”
[날씨 엄청 어두운데?]
[지금 비까지 내리기 시작하네?]
[저게 우리 미래임? 우왕.]
현대왕의 발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은 없었다. 애초에 현대왕은 시청자든 타 비제이에게든 싹수없게 행동하는 컨셉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자, 일단 고민 상담… 아니 아니다.”
방송을 시작하면 어김없이 해오던 고민 상담을 멈추는 현대왕이었다.
“그래. 오늘 할 것도 없겠다, 이 컨텐츠나 간만에 활용해야겠군요?”
그리고 현대왕은 곧장 스카이 라이프에 접속해서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발신을 당하는 이의 닉네임을 확인한 시청자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츤고딩님이다!]
[오랜만에 츤고딩님이랑 합동방송하는 거임?]
[우와! 쩔어!]
“여자 비제이 나오니까 아주 환장하는군요.”
물론 환장하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허나 츤고딩과의 합동방송을 원치 않는 몇몇 시청자들도 있었다. 바로 츤고딩의 컨셉과 상성이 맞지 않는 소수의 시청자들이었다.
[아, 난 츤고딩 님 싫은데….]
[이분 너무 욕해서 싫음.]
“여러분, 별 수 있겠습니까? 저도 따지고 보면 이 여자랑 같이 방송하기 싫습니다. 근데 이 여자가 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하루 1분 1초마다 꾸준히 저만을 생각하면서 아무것도 못하는 게 바로 이 여자입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씩은 꾸준히 같이 방송을 해줘야 이 여자도 먹고 살죠. 제 사랑을 말입니다.”
“…다 들리거든?”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남고딩은 현대왕이 연락을 하자마자 바로 받아 보인 것이었다. 현대왕이 이때를 노렸다는 듯 크게 소리치면서 얘기했다.
“보셨습니까 여러분?! 이겁니다! 제가 연락을 하자마자 바로 받아 보이죠? 이 여자가 바로 이런 여자입니다! 저 없이 하루를 살지 못하는 하루생이 같은 여자!”
“지랄하네!”
“지금도 저렇게 앙큼하게 욕을 하고 있지만 실은 제가 전화를 하자마자 ‘…어머? 현대왕이네? 어떡하지? 어떡하지? 현대왕이 연락을 했는데 어떡하지? 아! 부끄러워!’하고 있었을 겁니다. 맞지?”
“연락한 지 1초도 안 되어서 전화 받았는데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정말이지 수준 떨어져서 같이 못 놀아주겠네!”
“허허, 1초의 의지 모르냐? 사람은 1초안에 많은 걸 할 수 있어.”
“그래 그래, 런던 올림픽 아웃!”
이윽고 남고딩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왜 전화한 건데? 나 밥 먹으려고 했단 말이야.”
“먹방?”
“먹방은 맞지만, 노래 틀어놓고 잠수타려고 했어.”
“야 그럼 잘 됐다. 나랑 방송이나 하자.”
“…밥 때문에 잠수타려고 했다니까?”
“응. 그러니까 먹지 말고 나랑 방송이나 하자고.”
“너 아주 미쳤구나? 상추처럼 생긴 두뇌를 애벌레가 다 갉아먹어버렸니?”
“허허 왜 이러시나, 속으론 징글징글 맞게 좋아하고 있으면서. …혀, 현대왕이 나랑 같이 방송을 한 대! 어떡하지? 어떡하지? 아! 정말 어떡하면 좋아? 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 원빈이 와도 현대왕을 선택할 거야!”
“원빈이 오면 원빈을 선택하지 이 뷰웅신아!”
“원빈이 너한테 가면 아직 한 발 남았다 라고 할 거다.”
[ㅋㅋㅋㅋㅋ]거리는 시청자들이었다. 현대왕과 남고딩은 이렇게 티격태격하는 컨셉으로 많은 시청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각인 받고 있었다. 물론 이따금씩 말하는 드립의 수위가 19금을 뛰어넘을 때가 생겨서 방송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으나. 그것만 제외하면 다 괜찮았다.
“아무튼 내 제안 어떠냐?”
“후… 무슨 컨텐츠 할 건데?”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반문하는 남고딩이었다. 결국 밥 먹는 것을 포기하고 그의 어린애 같은 제안을 받아주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실은 아까 전 현대왕이 농담 삼아 주절거렸던 이야기처럼 남고딩은 내심 조아라 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기 싫었을 뿐.
“라디오나 하자.”
“…너 나랑 라디오 해본 적 있어?”
현대왕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없지. 없으니까 해보자는 거 아냐?”
“라디오 해서 뭐할 건데? 뭐, 고민상담?”
“그런 거 비스름하게 해야지. 애초에 라디오가 거의 그런 형식으로 진행되는 거 아니었냐.”
“음…….”
잠시 고심하던 남고딩이었다. 이윽고 그녀가 제안을 받아들였다.
“알았어 그럼 잠시 기다려봐. 나 밥 좀 가져오게.”
“헐, 이 지지배야 누가 밥을 컴퓨터 책상에 올려놓고 먹으래!”
“그럼 나 간다?”
“아, 님아. 자비 점. 밥상이 불쌍해 보여서 그랬어요.”
그렇게 남고딩과 함께 합동 라디오 방송을 하기로 작정한 현대왕이었다. 현대왕은 일단 라디오 준비를 위해 시청자들에게 보이는 메인 화면부터 변경했다. 그러자 시청자들이 그 메인 화면의 그림을 보고 [ㅋㅋㅋ]웃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ㅋㅋㅋㅋ 함정 카드야?]
함정카드라는 사진의 흑인이 현대왕으로 바뀌어 있었고, 그 현대왕이 들고 있는 카드는 남고딩으로 바뀌어 있었다. 음흉하게 미소 짓고 있는 그림 속의 현대왕은 그야말로 변태의 모습과도 같았다.
이윽고 현대왕이 메인 그림의 공백 쪽에 ‘현대왕과 남고딩의 합동 라디오.’라고 작게 글귀를 적어 보였다. 그리고 노래 하나를 틀어놓고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남고딩이 책상에 밥을 내려놓고 말하였다.
“왔어.”
“근데 너 엄마가 책상에서 밥 먹는다고 해도 뭐라 안 하냐?”
“당연히 하지. 근데 너 때문에 이러는 거 아냐?”
“허허허허, 나 때문이래. 여러분 보셨습니까? 나 때문이랍니다. 고백을 할 때도 츤데레스럽기 짝이 없군요.”
“…이 고자가.”
“아무튼 방송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현대왕이 진지하게 라디오 형식을 말해주었다.
“일단 제가 네이버 메일을 하나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메일인데요, 츤고딩과 그곳에 동시 접속해서 메일을 훑어볼 겁니다. 그 메일로 여러분의 사연이나 질문, 고민, 재미난 이야기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ㅇㅇ!]
기다렸다는 듯 시청자들이 차례대로 사연을 보내기 시작했다. 참고로 현대왕의 현재 동시 접속 시청자는 약 만 명을 넘어갔다. 그러다 보니 네이버 메일이 급격하게 불어났다.
“스팸 메일 뺨치네.”
그리 한 마디 하고는 현대왕이 남고딩에게 말을 던졌다.
“일단 나부터 시작할까?”
“…그러던지. 우적 우적.”
“아! 밥 먹는 소리 안 나게 해라!”
우적우적 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고 있었으니, 현대왕이 강렬히 한 마디 할 따름이었다. 이윽고 현대왕이 첫 번째 사연을 펼쳐 보였다.
“예, 첫 번째 사연이군요? 고민 사연 같은데 꽤나 내용이 착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럼 사연 읊어보기를 시작하도록 하죠. …안녕하세요 현대왕님? 저는 열 일 곱살의 남자 고등학생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요즘 성욕이 크게 들끓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엄마 몰래 피투피에서 야동도 많이 보고 망가도 많이 보고 그러는데요. 요즘 들어 피투피에 있는 파일들을 거의 다 정복해서 볼 게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처음부터 강하다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대놓고 처음부터 야한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대왕은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을 위기(?)에 대해 고민 상담을 해주기 시작했다.
“비누를 한 번 주우세요.”
“…우적 우적.”
“그러면 더 이상 그곳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곳을 사용하게 될 겁니다.”
밥을 먹다 말고 남고딩이 한 마디했다.
“그게 무슨 고민 상담이야!”
“왜? 이거 완벽한 대답인데?”
“완벽한 대답은 맞긴 하지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흠… 그나저나 이 고민을 보니까 갑자기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르는 군요. 제가 망가를 보면서 늘 느끼던 겁니다.”
[?]
[뭐가요?]
남고딩이 지껄이는 소리를 무시하고 중얼거리는 현대왕이었다. ‘흐음.’하고 침착하게 생각하던 현대왕이 ‘왜 망가 속의 여자들은’하면서 운을 띄었다.
“왜 망가 속의 여자들은 박히면 눈물을 흘리는 걸까요?”
[ㅋㅋㅋㅋㅋ]
“…….”
“혹시 츤고딩은 알고 있니?”
“모, 몰라!”
“여자들도 모른답니다. …불편한 진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왜 여자들은 싫다는 척 내숭을 더는 걸까요? 막상 하면 좋아할 텐데.”
“하! 웃긴다! 네가 해보긴 해봤어?”
“뭐? 나? 첫 경험? 당연히 해봤지.”
“네가 해봤다고?”
“엉.”
“우, 웃기고 있네!”
“왜? 헐… 혹시 너 아직도 안… 크흑! …츤고딩에겐 슬픈 전설이 있어.”
“지랄!”
“하지만 그녀는 전설 따위 믿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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