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식당 주인 아줌마가 두 사람이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테이블에 당도했다. 예쁘장한 외모의 서라는 바로 코앞에 당도한 오므라이스 돈가스를 보고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오오미!’하며 감탄했다.
“오오옷, 향긋하고 구수한 냄새가 내 콧구멍으로 스윽~ 들어와서는 나를 현혹에 빠지게 만드는 구려!”
“시끄럽고 빨리 먹으렴 아가야.”
“넵! 잘 먹겠습니다요 형님!”
충성심 어린 인사와 함께 서라가 포크와 칼을 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오므라이스 돈가스를 잘근잘근 썰기 시작하는데, 그 폼이 어찌나 엉성하고 서툴해 보이던지 보다 못한 민국이 혀를 내두르면서 돕기에 나섰다.
“에휴, 비켜봐.”
“오옹?”
서라를 대신해 자연스럽게 돈가스를 잘라주기 시작하는 민국. 그런 민국의 모습에 서라가 감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 내 돈가스를 대신 잘라주고 있어. 저 손놀림… 매혹적이야… 반할 것 같아….”
“이 정도에 반하려 들고, 너도 참 쉬운 여자구나?”
“헉! 나, 나를 도발했어… 날 도발한 남자는 횽아가 일생일대 처음이야!”
“옛다, 다 잘랐다.”
“엉. 고마워.”
편하게 찔러 먹을 수 있도록 돈가스를 전부 잘라준 민국이 다시금 자신의 오므라이스로 포크와 칼을 옮겼다. 서라는 냠냠 오므라이스 돈가스를 입안에 담으면서 즐거워했다. 그 모습에 피식하고 웃어 보인 민국이 뒤늦게 식사를 시작했다.
“오, 온니 쨩!”
허나 그 순간이었다. 막 입안에 오므라이스를 담으려던 민국의 얼굴로 그녀의 포크가 들이밀어진 것이었다. 그 포크에는 아까 전에 민국이 잘게 썰은 오므라이스 돈가스가 찍혀 있었는데, 서라가 짐짓 찔끔 눈을 감고 귀엽게 소리치고 있었다.
“내, 내 보답을 받아주세용!”
“…….”
오므라이스 돈가스를 대신 잘라준 보답인가 보다. 민국은 먹여 주려는 서라의 행동을 얌전히 지켜보다가 ‘이걸 어떻게 받아칠까.’ 잠잠히 고심했다. 이윽고 한 가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린 모양인지 민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거만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온니쨩 다이스키라고 불러주면.”
“헐! 먹여주는 건 난데!”
“먹어주는 건 나잖아?”
“끄응… 부정할 수 없는 강한 논리이다!”
무어가 강한 논리인지 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좀처럼 알 수 없을 터였다. 이윽고 가슴을 당당하게 피고 있는 민국을 향해 서라가 마치 악당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주인공인 마냥 ‘크윽! 포크에 찍힌 돈가스야 미안’하고 고개를 옆으로 홱 세차게 돌렸다.
잠시 후 서라가 정면을 돌아보며 귀여움 가득한 얼굴로 민국을 향해 앙탈 부렸다.
“온니쨩~ 다이스키~.”
‘…와나. 슈밤.’
농담이 아니라 심장마비로 죽을 뻔했다. 왜? 너무 해괴망측해서? 아니면 너무 충격적이라서? 절대로 아니다. 앙탈 부린 그녀가 너무나도 귀여웠기 때문이다.
‘진짜 이 녀석은 목소리만 여자다웠더라면 천하를 지배했을 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는 민국이었다. 서라는 민국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찔끔 눈을 감고 의도적으로 귀여운 포즈를 취해 포크를 내밀고 있었는데 민국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려 그 포크의 돈가스를 냠하고 먹어주었다.
실눈을 뜨고 있던 서라가 포크에 찍혀 있던 돈가스가 사라졌음을 확인하고 ‘꺄아~.’하고 비명을 질렀다. 서라가 얼굴에 두 손을 댄 채 고개를 도리도리 젓기 시작했다.
“형아가 불쌍한 돈가스를 먹어버렸어~ 아파하는 돈가스를 무시하고 입안에 넣어서는, 청결한 치아를 이용해 돈가스의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있어. 돈가스가 아프다고 울부짖는데 그것도 무시하고… 잔인한 사람!”
“너도 먹어주리?”
“헉! 그런 대담한 발언을? 하지만 난 아까 전에 말했듯이 자, 잦 잦… 거기가 크지 않으면 반하지 않아!”
“네가 아직 내껄 안 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지.”
서라가 ‘호오.’하고 물었다.
“형아 큼?”
“너보다 큼. 나 가정파괴범임.”
“흐미… 지리겠네. 어디 한 번 나중에 목욕탕에 가서 누가 큰 지 정정당당하게 판결을 내려 봅시다!”
그렇게 온갖 개드립이 이어진 후였다. 민국과 서라는 진짜로 식사에 집중했다.
이윽고 돈가스와 돈가스 오므라이스를 깨끗이 처리한 두 사람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국이 카운터로 향해서는 식사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계산을 끝낸 직후 옆으로 총총걸음으로 다가온 서라가 민국의 오른팔에 꽉 안기면서 기댔다.
“더치페이에 더 짜도 꺼내지 않는 나 같은 여자 아웃!”
“네이트 OUT!”
“헐! 형, 그건 아니야. 네이트 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소녀시대 윤아보다 예쁘고 개념차고 알뜰한 여자들로 구성이 이루어져 있어. 스스로 그렇게 말했단 말이야. 그리고 그 중에 절대 나쁜 사람들은 없어.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아. 천사 같은 네이트의 여성분들을 모욕하는 발언은 삼가주셨으면 해! 왜냐면 나도 네이트녀니까!”
“너의 여성을 배려하는 디스 같은 소리에 내가 담았던 발언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게 되는구나!”
“모든 여자를 더치페이 안하는 여자로 만드는 일부의 몰상식한 여자들 OUT!"
애초에 여자로서가 아니라 귀여운 동생으로서 만나는 사이였다. 민국은 서라의 뼈가 담긴 듯한 발언에 피식 웃으면서 식당을 나갔다. 민국의 오른팔에 찰싹 붙은 채로 서라가 입을 열었다.
“형, 이제 내 집에 갈 거임?”
“그래. 집에 부모님 계시지?”
“헉헉 안 계심. 형이랑 함께 하는 집안에서의 뜨거운 공부가 기대된다능!”
“개드립 좀 그만치고 이 녀석아. 그나저나 부모님 안 계시면 인사는 못 드리겠네. 근데 여자 혼자 있는 집에 나 혼자 가는 건 불안하게 생각하시지 않겠어? 너네 부모님이?”
“아냐 형. 우리 부모님은 나처럼 되게 쿨해서 그런 것도 가볍게 넘기셔. 특히 성적인 부분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 굉장히 개방적이지.”
“맞다, 넌 엄마 아빠랑 서로 야한 얘기도 한다고 했지.”
“그렇다능!”
어떻게 보면 콩가루 집안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발언이었다. 허나 여기서 서라가 입에 담은 야한 얘기라는 것은, 성적인 부분에 대해서 개인적인 견해를 갖고 의논하는 것에 불과했다.
설마 진짜로 몸을 접촉해서 그런 범죄에 해당하는 짓거리를 하겠는가? 아무리 개방적인 집안이라 할 지 언 정 지킬 것은 반드시 지키는 서라 가족이었다.
“어디야? 저기?”
“거의 다 왔음!”
이윽고 민국을 집 앞에 데리고 도착한 서라였다. 생각보다 기대 이하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물론 일반인의 시선으로 볼 땐 중상 측에 속하는 1층의 넓은 저택이었는데… 워낙 서라가 예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다 보니, 꼭 부자 집안에서 생활할 듯한 여자처럼 느껴진 것이다.
“꽤 좋은 집에서 생활하네.”
“헤헤, 내가 원래 좀 잘 삼요. 근데 형 우리 집 처음 오는 거지? 내가 오늘 집안 구경 제대로 하도록 해드리겠음.”
“오키도키. 그럼 기대해보도록 하지.”
그리고 서라가 열쇠를 꺼내 저택의 현관문을 열었다. 이윽고 현관문으로 들어간 서라가 집의 구조를 하나하나 열성을 다해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거실임.”
일단 거실부터였다.
“저긴 부엌.”
그리고 손가락으로 부엌을 가리켰다.
“저기는 화장실.”
그 다음에는 화장실을.
“저기 방 세 개 있는데 엄마 아빠 내 방임.”
“끝이야?”
“엉.”
“참으로 구체적인 설명이구나?”
“다 형한테 배운 거지 헤헤.”
싱크대 쪽으로 뛰어가는 서라였다.
“형 뭐 마실 거야?”
“마실 거 뭐 있는데?”
“아마 형이 말하는 건 다 있을 듯.”
“흠, 그럼 나는 이태리 장인이 한땀한땀 정성을 다해 만든 와인을 부탁하지.”
이태리 장인이 와인도 만들던가?
“알았어 기다려봐 형.”
허나 서라는 민국의 드립에 굳이 딴죽 걸지 않았다. 만일 은별이었다면 ‘별의별 쌩쇼를 다하시네요. 인기가요 출연하셔서 드립 한 번 치면 관객석에서 하하 호호 다 웃어주겠어?’하며 핀잔을 내뱉었겠지만. 이윽고 서라가 무언가를 컵안에 따르더니 그대로 가지고 왔다.
“형이 그토록 원하던 이태리 장인이 한땀한땀 정성을 다해 만든 와인임.”
“이게 뭔데?”
“칠성 사이다임.”
“하하! 역시 우리 딱지는 드립을 쳐도 참 남다른 드립을 치는 구나! 다른 비제이들이 캔 사이다에 불과하다면 넌 칠성사이다 같은 여자야.”
“어멋! 그런 멋진 프로포즈를! 아잉 부끄부끄~.”
서라가 건네준 칠성사이다를 홀짝이면서 민국이 본격적으로 중요한 화제에 들어갔다.
“자, 그럼 무슨 공부할 건데? 일단 나한테 배우고 싶은 과목들 가지고 와봐.”
“알았어 잠깐만.”
기다렸다는 듯 서라가 벌떡 소파에서 일어나 자기 방으로 향했다. 민국은 그동안 칠성사이다를 홀짝이면서 거실 내부를 찬찬히 구경했다. 이윽고 배우고 싶은 과목의 책을 들고 서라가 거실에 다시금 당도했다. 민국이 칠성사이다가 담긴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그녀가 가져온 과목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사회 정치?”
“응. 내가 워낙 사회 부문에서 머리가 안 돌아가거든. 형 사회 잘해?”
민국이 자신감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 부럽지 않게 공부 좀 했지.”
“오오, 전교 몇 등인데?”
“1등.”
“올! 레알?”
“레알이라능?”
서라는 진짜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형, 지금 내가 신님이 귓속말 하는 것을 들었는데 다시 한 번 거짓말 치면 거기 잘라버린대.”
“자르는 순간 난 억울하게 죽은 애처로운 남자가 되겠지. 하여튼 진짜야, 나중에 성적표 보여줄 테니까 확인하던지.”
“와아….”
서라가 진짜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민국이 공부 좀 했다 한들 그 정도로 잘한다고는 생각도 못했던 서라였다. 이윽고 민국이 서라가 가져온 책을 펼쳐서 내용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책 군데군데 적혀 있는 요약글 전부 네가 적은 거야?”
“응.”
“그래도 학교에서 성실하게 선생님 말씀 들으면서 공부했나 보네.”
“헐 아냐. 선생님 말씀보단 다른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공부했어.”
민국이 고개 돌려 서라를 바라보았다.
“누군데?”
“사과박스!”
“그게 뭐하는 곳인데?”
“소설 사이트! 조아라라는 숙적을 지닌 곳이야!”
“소설 사이트에서 공부도 가르쳐주냐?”
“요즘 비엘 소설에선 공부도 가르쳐준다능!”
왠지 서라의 말에 누군가가 ‘시밝….’하면서 욕을 할 것 같다면 착각이다. 아마도 말이다.
민국은 ‘애휴’하면서 책을 덮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서라가 과장되게 놀란 표정으로 ‘헐! 형 지금 사과박스 무시하는 거임? 조아라의 작가들을 현혹시켰던 그 유명한 사이트를 지금 무시하는 거임?!’하고 발언했다.
대체 뭐라는 건지….
“하여튼 주저리 주저리 대는 건 이제 그만하고 얼른 공부나 시작해보자.”
“온니쨩의 스고이한 지식을 머릿속에 팍팍 주입할 테니 잘 도와주셈!”
본격적으로 서라를 가르치기 시작하는 민국이었다. 서라가 배우는 사회 부문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미 민국이 몇 년 전 한 번 열내서 열심히 공부했던 적이 있는 과목이었고, 페이지의 글귀들만 살짝 살짝 훑어보니 바로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건 말이지.”
“엉.”
서라는 민국의 가르침에 곧잘 응했다. 비록 막장스러운 그녀였지만, 이럴 때만은 다른 학생들처럼 착실하게 공부에 임하는 모범적인 아이였다.
민국은 열심히 배우는 서라의 태도에 가르치는 즐거움이 한층 더 해져, 모르는 부분을 알려주는데 헌신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덧 저녁이 깊어져오고, 잠시 휴식을 하기로 결정한 민국이 팬을 놓고 소파에 등을 붙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서라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형!”
“또 왜 부르냐.”
빤히 그를 쳐다보는 서라.
“어떻게 형은 그렇게 잘 생기고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할 수가 있어? 여자들에게 인기 많겠다.”
“흠! 내가 원래 한 인기 좀 하지. 이래보여도 받은 러브레터만 오십 개가 넘어갈 걸?”
“우와~ 완전 에프포네?”
“에프포? 꽃보다 남자에서 나온다는 그 에프포?”
“노노! 알트 에프포!”
“…이 새끼가.”
“헤헤.”
참고로 Alt + F4(알트 에프포)를 동시에 누르면 실행돼있던 창이 꺼진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면, 알트 플러스 큐큐?”
Alt + Q + Q를 누르면 게임이 종료된다.
“네가 한 번 나랑 치열한 명랑해전 한 판 치르고 싶은 모양이구나.”
민국의 음흉한 목소리에 서라가 짐짓 깜짝 놀라며 홱 몸을 옆으로 돌리고 거칠게 자신의 몸을 껴안았다.
“어멋! …날 침대로 데려갈 생각이에요? 덕후 오빠?”
“오냐, 침대 위에서 전투씬 한 번 치르자!”
“힝~ 싫다능! 난 노량해전 아니면 전투안 할 거라능!”
“젠장! 명랑해전밖에 없는데!”
“노량해전은 마지막 스테이지라능! 좀만 더 노력하고 오라능!”
“이응!”
역시 노닥거릴 때랑 공부할 때 지나가는 시간 차이는 격심했다. 공부할 때만 해도 그토록 시간이 걸음마 짓을 하더니, 놀기 시작하자 바로 달리고 있었다.
“어? 형 벌써 부모님 올 시간 다 됐어.”
“그래? 그럼 이제 슬슬 가봐야겠네.”
슬슬 가볼 때가 되었다는 듯 민국이 스윽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런 민국을 따라 똑같이 일어난 서라가 질문했다.
“헐. 우리 부모님 안 보고 갈 거임?”
“일 끝내고 돌아오셔서 피곤할 텐데 만나는 건 민폐잖아. 그냥 슬슬 돌아가야지.”
“흠! 아님, 나에게 방법이 하나 있음!”
“뭔데?”
“형이 내 집에서 자고 가는 거임!”
“…진짜로 침대 위에서 전투씬 찍고 싶냐?”
“혀, 형이라면야 마다할 것도 없지만 서도…….”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부끄러운 척 표정을 짓는 서라. 그러나 그것이 연기임을 민국은 곧잘 알아챌 수 있었다. 허나 연기이긴 했지만, 그 연기에 농담 반 진심 반이 어려 있다는 걸 민국은 알아채지 못했다.
“아 그럼 잠깐만. 마지막 방법을 하나 사용해볼게.”
일어서 있던 서라가 갑자기 자기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나타났다. 금빛의 목걸이였는데 척 봐도 장난감임을 알 수 있었다. 이윽고 서라가 그것을 천장 위로 뻗어들었다. 민국은 그때까지만 해도 서라가 무슨 짓을 하려는가 알지 못했다. 이윽고 서라가 장엄한 목소리로 외쳤다.
“시간을 거스르는 자!”
“…….”
“안 되네? 역시 타임리프하려면 시달소의 주인공처럼 바닥을 굴러야 하나?”
시달소 :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영화. 원작으로 책이 먼저 나왔다.
보다 못한 민국이 결국 ‘병….’하고 욕설을 내뱉었고 서라가 ‘헤헤.’ 웃으면서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시간을 거스르는 자!’를 외칠 때 사용했던 금빛 목걸이를 민국의 손에 건네주었다.
“받아 형. 이거 내 선물.”
“나보고 시간을 거스르라고?”
“실은 이거 공간을 지배하는 자 사용할 때 쓰는 거임.”
“덕후스러운 드립 즐이요.”
“헐! 내 덕후심을 무시하다닝!”
그렇게 웃고 즐기면서 신발장까지 안내받은 민국이었다. 신발장 아래에 있는 자신의 신발을 끼워 신고 민국이 고개 올리며 서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를 배웅해주려던 모양인지 두껍게 옷을 입으려 들고 있었다. 그런 서라를 보며 민국이 제제했다.
“나오지 말고 그냥 집안에 있어.”
민국의 그런 배려 섞인 말에 외투를 입고 있던 서라가 입다 말고 멈춘 채 민국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곧 외투를 벗으면서 아양 어린 표정으로 민국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나 여자라고 배려해주려는 거얌? 그런 거얌?”
“…으이그.”
정말이지 못 말리겠다는 것처럼 민국이 손을 뻗어 서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서라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아잉 쓰담쓰담.’하면서 그 따스한 손길을 느꼈다. 이윽고 민국이 현관문의 손잡이를 열면서 서라에게 ‘나 진짜로 간다.
’하고 손을 흔들었다. 서라도 기다렸다는 듯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어여쁜 외모의 그녀에게 작별을 고하고 마침내 현관문을 닫은 민국. 쿠웅! 밖으로 나온 민국은 어느새 하늘이 저물어 저녁빛깔을 내세우고 있음에 ‘후우….’하고 숨결을 내뱉었다.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르고 천천히 길을 나서는 민국. 투다다다닥! 그런데 그때였다.
“혀엉!”
“……?”
다시금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민국이 진심으로 의아해하며 돌아왔던 길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기어코 외투를 입고 나와서는 집 앞에서 그를 향해 손을 흔드는 서라를 발견했다. 서라는 해맑은 웃음으로 민국을 향해 계속해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었다.
“잘가!”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코 나오네.”
하긴 서라의 고집을 누가 말리겠는가? 불똥 같은 고집은 오히려 은별이보다 서라가 쌨다. 민국은 피식 웃고 주머니 속에 꽂고 있던 손을 들어 똑같이 흔들어주었다.
그런 민국의 행동이 사랑스러웠는지 서라가 산봉우리 정상에 도착했을 때 ‘야호!’하는 동작처럼 두 손을 입가에 모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소리를 치는데… 참고로 길거리에는 퇴근하여 집으로 귀가하는 직장인들이 네 다섯 명 정도 있었다.
“오늘도 발기찬 하루 되세요!”
“…….”
“발기찬 하루 돼 형!”
쑥스럽지도 않은지 계속해서 해맑게 손을 흔드는 서라. 거리를 가로지르는 사람들 몇몇이 그런 서라와 민국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민국은 ‘이 뭐 병….’ 같은 표정으로 서라를 바라보다가 홱 몸을 돌려서는 허겁지겁 거리를 뛰기 시작했다. 그런 민국의 등을 보며 해맑게 웃고 있던 서라가 다시 한 번 소리 질렀다.
사람들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늘도 발기찬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