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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30화 (30/369)

30화

<강려크한 반전>

역경과 시련을 모두 견뎌내고 드디어 평일이 찾아왔다. 민국은 이제 이틀 남은 생명치를 염두 해두고 여유 있게 대학교에 등교했다. 이윽고 학과실에 당도하자 많은 학생들이 민국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민국 왔어?”

“주말 잘 쉬었냐?”

모두들 하나같이 민국을 잘 대해주는 모습이었다. 민국은 짐짓 눈웃음 지으면서 대꾸했다.

“잘 쉬었지. 너희들은?”

“말도 마라, 우리 소개팅 가졌는데 다 차였어. 아무래도 다음번엔 네가 있어야겠더라. 너 없으니까 여자들이 그냥 말 걸 기회도 안 주고 사라지던데?”

민국의 친구 중 한 남정네가 그리 얘기하고 있었다. 민국은 ‘설마 그 정도야 하겠어….’라면서 웃음 짓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속내로는 ‘내가 원래 그 정도 가치가 있는 인물이란다.

’하고 승리의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대학 학과의 학생들은 민국이 병에 걸렸다 나은 이후로 더욱 잘 대해주려고 기를 쓰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저번에 한 번 버렸던 게 그들 생각에도 영 걸렸던 모양이었다.

“새민아, 민국이 왔어.”

“…….”

민국에게 다가가 친근하게 대하던 여학생 한 명이 자리에 고스란히 앉아있는 새민이에게 외쳤다. 민국의 시선이 자연스레 새민이에게로 돌아갔다.

새민이는 앉은 자리에서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않고, 잠시 고개 돌려 민국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책상 쪽으로 다시 고개를 내리는 모습이었다. 민국은 그런 새민이를 주시하면서 그녀가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가 쉽게 답을 알 수 있었다.

‘그때 그 일 때문이겠지.’

토요일 날, 느닷없이 들이닥쳤던 두 여인. 그리고 마지막에 은별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알려주어야만 했던 민국이 앓고 있는 병. 특히나 그것이 희귀병이라는 것을 인지한 순간 새민이는 민국에게 호감을 느끼되 예전처럼 접근할 자신을 못 느끼는 모양이었다.

‘당연한 걸지도 모르지.’

애초에 민국과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새민이었고, 그녀는 민국의 겉모습과 겉으로 드러나는 능력에 반해 연거푸 대시를 해온 것이었다. 아직 깊게 사긴 인연도 아니었던 지라, 새민이는 민국이 그런 희귀병을 앓고 있단 사실을 알고 매정하게 뿌리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편으론 인간적으로 실망할 수밖에 없는 게 민국의 심정이었다.

‘그냥 더는 생각 말고 넘어가자.’

어차피 여자 사귈 생각으로 대학교에 들어온 것도 아니지 않은가? 보통 또래 애들처럼 연애를 위해 대학교를 들어왔다기 보단, 앞으로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대학교를 들어온 민국이었다. 꾸준히 과제나 시험도 잘 보고 있었고 말이다.

문제 없이 생활하면 그만이지, 타인의 행동 하나 하나에 세심하게 신경 쓸 까닭은 민국에게도 없었다.

“여기로 와라 민국아. 내가 너 올 거 감안하고 이 좋은 자리 남겨두었어.”

“그래? 고마워.”

친구 녀석이 실실 웃어대며 비위를 맞추어댔다. 민국은 그가 가리킨 빈 자리에 착석해서는, 서서히 자신에게로 모여드는 아이들을 좋게 좋게 대해주기 시작했다. 대학교 생활을 취하는 민국의 모습은 방송을 할 때와는 영 거리가 멀었다.

* *

이윽고 민국이 수업을 마친 후였다. 들러붙는 학과 친구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1층으로 내려온 민국은, 오늘 역시 어김없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시종일관 공부에만 몰두하고 있는 예나를 반겼다.

“주말 잘 지냈어?”

드르륵 예나의 맞은편 의자를 당겨 착석하며 민국이 물었다. 공부에 한껏 집중하고 있던 예나가 그제야 민국의 기척을 느끼고 ‘아.’ 탄성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어느 때보든 그녀는 정말이지 예쁘장한 외모의 여자였다.

“너는?”

“나야 잘 지냈지. 그나저나 내가 먼저 묻지 않았던가?”

“잘 지냈어. 나쁘지 않게.”

소꿉친구 예나의 대답이었다. 민국은 사뿐히 미소 지으며 그런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공부에 집중하던 예나가 그 시선을 느끼고는 집중이 안 됐는지 천천히 고개 들어 물어보았다.

“이제 수업 남아있는 거 없어?”

“없어. 넌 아직 수업 있지?”

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저녁 수업 있어.”

“그래? 그럼 아쉽게도 나 먼저 가보아야겠네.”

그리고 민국이 스르르 의자에서 일어났다. 보통 때라면 그녀와 함께 있을 민국이었으나, 요즘 들어 사건 사고가 많이 터져서 그런지 몸이 많이 무거운 상태였다. 고개 들어 민국을 빤히 쳐다보던 예나가 우물거리다 입을 열었다.

“아픈 건.”

“응?”

“아픈 건 괜찮아?”

예나가 아무렇지 않은 듯 천천히 물어왔다. 민국은 침묵했다.

그녀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얼추나마 추리할 수 있었다. 필시 가슴에 대한 병 때문에 그러리라.

민국은 저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이며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자문했다. 새민이도 예나도, 모두 알게 모르게 그 일을 계기로 자신을 대하는 태도의 분위기가 살짝 달라져 있었다.

이윽고 민국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듯 대답했다.

“괜찮아. 이틀 동안은 괜찮을 거야.”

“…….”

이틀 동안은 괜찮다. 아무 문제없이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소식이었다.

새민이는 그 소식을 듣자 안도가 되면서도 한 편으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민국이 말했길, 한 시간 동안 가슴을 만지면 하루 동안 살 수 있는 생명치가 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말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민국은 삼일이나 이틀 남짓 한 여자의 가슴을….

“예나야?”

“…아, 아니야.”

예나가 경계심이 꼿꼿이 서 있는 목소리로 애써 부인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윽고 짐짓 싱긋 미소 짓는 예나.

“잘 들어가.”

민국도 그런 그녀를 보며 천천히 미소 지었다.

“그래. 무슨 일 있음 연락하고.”

그렇게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민국은 대학교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유유히 사라지는 민국의 뒷모습을 빤히 주시하고 있던 예나는 저도 모르게 풀고 있던 과제 쪽으로 고개를 내리며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내꺼 만져!’…라는 소리 한 번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운 예나였다.

* *

“끝났다아아아아 씨발!”

오전 즈음에 일찍이 대학교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민국이 혼자 있는 자취방에서 큰 소리로 우람하게 소리쳤다. 다행히 이웃집과는 간격이 조금 먼지라, 민국의 그런 외침을 들을 수 있을 리 전무했다.

“끝났다! 끝났다고! 새로운 시작의 월요일이다!”

지옥의 월요일의 시작이었다! 민국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 주말을 뒤로하고 어김없이 찾아온 평일의 지루함에 소리쳤다.

“뉴옥에서 시카고까지 1,271km! 시카고에서 뉴옥까지 1,271km!”

1층에서 16층까지 = 15층! 16층에서 1층까지 = 15층!

“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6일! 일요일에서 월요일까지 1일! 야 이 기분 좋다!”

만세 삼창 자세로 소리치던 민국이 대뜸 팬티 바람으로 변신했다. 그러고 후다닥 침대 위로 달려가 도약하여 추락했다.

“씨발! 내 사랑스런 침대여!”

만일 민국이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와 결혼을 한 여자는 집안에서 달라지는 그의 행동에 정말이지 많은 충격을 먹을 지도 몰랐다. 여자들이 결혼을 하고 나면 많이 바뀐다고 하지 않던가? 아마 민국은 그보다 더할 것이었다.

“오늘은 그대와 한 번 뒹굴어볼까 하오!"

그러고 민국은 한 시간 동안 침대에서 이불을 잡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뒹굴거렸다. 타인이 그런 그를 보았더라면, 이불과 짝짓기를 하고 있다고 오해했을 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민국은 이불을 사랑(?)해주었다.

“이제 그만하고 방송 좀 해볼까.”

그리고 민국은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컴퓨터로 향했다. 전원을 키고 잠시 후 등장한 메인 화면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파뿌리 TV에 들어간다. 현대왕 방송국엔 많은 사람들이 요즘 방송 정말 재미있다며 칭찬을 자잘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역시 합동 방송보단 개인 방송이 더 인기가 많군. 타 비제이들이 내 뛰어난 진행 실력을 맞받아쳐주지 못하니까 그동안 합동 방송을 할 때 찬양글이 없던 거야.’

저번 개인 방송을 통해 현대왕의 방송국 자유게시판은 열렬의 환호성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대왕을 주인공으로 제작한 ‘현대왕 미연시’때문이었지, 굳이 그가 뛰어난 비제이 진행력을 갖추어서는 아니었다. 요컨대 비제이인 현대왕보단 현대왕을 게임으로 만든 미연시가 환호를 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현대왕 미연시도 내가 주인공이었으니까 이만큼 환호를 받는 거야!’

그렇게 자부를 하며 서민국이 방송을 켰다. 마침내 현대왕으로 방송할 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현대왕입니다!”

기운차게 인사하며 현대왕은 오프닝을 틀었다. 오늘은 사람을 낚을 때 주로 사용한다는 함정카드 BGM을 틀어 보이는 현대왕이었다.

현대왕이 방송을 시작했음을 알아챈 시청자들이 조금씩 조금씩 접속하기 시작하고, 들려온 함정카드 BGM에 [흑형!]하고 일제히 소리치고 있었다. 이윽고 시청자들의 찬양 소리를 받으면서 오프닝이 끝나고, 현대왕이 말을 이었다.

“오늘의 고민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현대왕님. 현대왕님의 방송을 자주 보고 있는 시청자 중 한 명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 여자 친구가 했던 질문 때문에 화가 나서 이렇게 사연을 적어봅니다. 저는 저보다 약 두 살 어린 연하와 연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여자 친구가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

오빠 어머니랑 내가 깊은 물살에 떠밀리고 있어, 오빠는 누굴 구할 거야?

“…슈밤. 저는 그 질문에 차마 어떻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대답은 우역곡절 끝에 하긴 했죠. 그런 질문을 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자 여자 친구는 남자 친구라는 작자가 고작 그 정도 질문에도 대꾸하지 못해주냐면서 울상을 짓고 섭섭해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겐 진심으로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여자 친구를 구하겠다고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여자 친구는 잠시 기뻐하는가 싶더니! 이번엔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소리치더군요.”

어떻게 부모님을 버릴 생각을 할 수 있어?!

“진짜 열불이 터져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결국 홧김에 그럼 어머니 구할게! 라고 소리치자, 이번엔 아예 울상을 지으면서 이렇게 외치더군요.”

우리 헤어져!

“정말 미칠 노릇입니다. 지금 저는 그녀와 연락을 끊고 이틀째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왕님, 대체 여자들은 왜 이럴까요? 왜 여자들은! 답이 없는 대답을 해서 남자 친구를 이렇게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일까요? 이유가 정말이지 궁금합니다!”

사연이 끝나자 많은 시청자들이 사연의 주인공을 향해 공감과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사연을 모두 읽어본 현대왕은 단호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정답은 있습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오오!]하는 소리가 퍼져 나왔다.

“여자 친구가 또다시 그쪽에게 오빠 어머니를 구할 거야, 아니면 나를 구할 거야? 라고 하면 이렇게 먼저 말씀하십시오.”

어머니.

“그러면 여자 친구는 불같이 화를 낼 겁니다. 그때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어머니를 구하고 니 뒤를 따라갈게, 죽는 날도 함께하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러면 만사 오케이입니다. OK?”

사연의 주인공이 채팅창에서 [고맙습니다!]하면서 감명 깊게 소리치는 가운데, 시청자들은 뻥 터져서 웃고 있었다. 현대왕은 오늘은 무슨 게임을 할까 잠시 고심을 했다. 그때 방송을 키면서 접속했던 스카이 라이프에서 콩딱지에게 연락이 왔다. 뚜루루루루.

“왜 그러냐!”

현대왕이 받자마자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콩딱지가 대응했다.

“땎뜨!”

뚝하고 통화가 끊겼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왔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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