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25화 (25/369)

25화

<게임(?) 방송을 하다>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자취방에 홀로 남게 된 민국은 열심히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고대하고 고대하던 희열의 순간이었다.

‘남자가 우는 일은 일생에 딱 세 번 있다고 하지. 첫 번째가 바로 태어났을 때, 두 번째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세 번째는 디아블로 쓰리가 출시되었을 때야.’

민국이 현재 즐기고 있는 게임은 다름아닌 디아블로 쓰리였다. 민국이 유일하게 즐기는 RPG 게임이었는데, 몇 시간째 몰두하고 있자니 어느 덧 저녁이 찾아오고 있엇다. 열심히 키보드와 마우스를 놀리던 민국은 불현듯이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게 되었다.

“헐. 벌써 밤이야?”

과제나 공부를 할 때는 지루하도록 흐르지 않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고작 게임 한 판 땡기고 나니까 전광석화처럼 흘러 가는 시간이라니!

‘마치 일요일을 기다리며 6일을 보냈다가 막상 일요일이 다가오니 내일 있을 월요일이 무서워지는 느낌?’

적절한 비유라면 적절한 비유였다.

“그나저나 슬슬 방송할 시간이네.”

방송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오늘은 주말이었다. 사실상 방송을 하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민국은 좀 달랐다. 과제도 어제 미리 다 해두었고, 할 게 너무도 없었던 지라, 방송 한 번 땡겨 보아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접속 중이던 디아블로 쓰리를 로그아웃하고 방송국 홈페이지로 접속했다. 그러자 왼쪽 상단에 파뿌리 TV의 메인 간판이 떠올랐다. 민국은 방송에 들어가기 전, 방송국 자유 게시판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의 글을 몇 개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다지 눈길을 끄는 내용은 없었다. 고개를 가로젓고 자유게시판에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의도치 않게 새로고침을 누른 민국은 새로이 등장한 게시글 한 개를 발견하고 의문을 담았다.

‘이건 뭐야?’

제목부터가 끌리는 글이었다. 민국을 비롯한 시청자들도 그 제목에 궁금증이 돋았는지 팍팍 클릭하고 있었다. 급상승하는 조회수였다.

[현대왕님, 저랑 사귀실 생각 없으세요?]

벌써부터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는 그 게시글의 제목을 클릭해 보았다. 그러자 장문의 내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현대왕님 전 여고를 다니고 있는 1학년 여고생이에요 ㅎㅎ 현대왕님! 정말 방송 잘 보고 있어여! 원래는 현대왕님 라디오 하시면 한 번 사연 적어서 보내려구 했는데… 몇 개월 째 라디오 방송을 안 하시더라구요?(힝 뿌잉뿌잉 ㅠㅠ) 그래서 그냥 자유게시판에 올려보는 거예요 이거 보시겠죠? 안 보시려나? 현대왕님, 하여튼 저 진짜 여고생인데요 저랑 사귀어 주시면 안 될까여? 저 요리도 잘하구요~ 엄마 말도 잘 듣구요, 진짜 기본적인 건 다~~~ 잘해요. 아마 저랑 사귀게 되시면 조강지처 납셨다고 좋아하실 거에요 정말여.]

아래에 적힌 시청자들의 댓글은 열광적이었다.

[으아닛! 고백이라닛!]

[흐음… 현대왕님 이미 애인 있으시지 않나?]

[츤고딩님이 있으실 텐데… 아, 근데 현대왕님 강강님에게 차여서 마음의 상처가 아직 덜 나으셨을 걸요 ㅋㅋㅋ]

“너 블랙.”

세 번째 댓글의 작성자는 일주일 간 블랙을 받게 되었다. 이윽고 30초 즈음이 흐르고 다시금 새로고침을 해본, 두 번째 댓글에 작성자의 댓댓글이 달려 있었다.

[상관없어여. 제가 빼앗을 테니까.]

[오오! 도발하는 거 보소!]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벌써부터 조회수 100을 넘고 있었다. 워낙에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던 현대왕인지라 게시판도 하루하루마다 난리가 아닌 것이라. 민국은 어떻게 할까 잠시 고심을 하다가 댓글을 달았다. 그의 댓글은 약 아홉 번째 것으로 작성되었다.

[얼굴 랭크 말해보셈. S,A,B,C,D가 있음. 참고로 난 좀 되는 남자이기 때문에 A부터 받음. 아니다 S는 부담되니까 무조건 A랭크만 선호함.]

그렇게 현대왕이 댓글을 남기자 몇몇 시청자들이 [진짜로 진짜가 나타났다!]면서 댓댓글을 달았다. 현대왕은 곧잘 무시해주고 작성자의 댓글을 기다렸다. 한 1분 정도 기다렸을까? 작성자가 댓글을 달아왔다.

[A에여. 현대왕님 저 진짜 예뻐여. 현대왕님도 보시면 반하실 거예여.]

민국도 곧장 달아주었다.

[난 스스로를 A랭크라고 말하는 여자는 자만하다 생각해서 싫어함. ㅅㄱ.]

[그럼 B여.]

[B? 너무 낮네. 마음에 안 듬. ㅅㄱ.]

[S.]

[아 부담스러워. ㅅㄱ]

[C!]

[오크시네요.]

[D!]

[저는 동물 안 키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애초부터 어떤 랭크로 답하던 간에 차버릴 생각이었다. 극악무도한 서민국의 위엄이랄까. 이윽고 작성자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했다. 자존심이 상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민국은 장난이라 생각하고 너그럽게 이해해주길 바랐다.

‘…안 되면 말고.’

이윽고 민국이 더 이상의 장난은 그치고 방송하기를 클릭했다.

“큼큼.”

일단 목 상태를 점검해보았다. 괜찮았다.

“좋아, 그럼 시작해볼까.”

꾸준하고 성실하게 방송하는 서민국! 이젠 현대왕으로 변신할 차례다!

“안녕하세요? 현대왕입니다.”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우르르르 시청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평소엔 방송을 하지 않는 주말 때임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찾아왔던 시청자들 같았다.

현대왕은 본방에 입성하고 환호하는 그들에게 짤막하게 인사를 하고 오프닝 곡을 틀었다. 어제까지는 ‘어쩌라고 씨발 좆또.’라는 노래를 틀었다면, 오늘은 좀 색 다른 노래였다.

“영광 굴비~ 네가 우째 그 맛을 알겠느냐. 코를 팍팍 찌르는 홍….”

“아니, 이게 아니지.”

실수로 다른 음악을 틀어 버리는 현대왕이었다. 곧장 다른 노래로 바꾸었다. …이윽고 웅장한 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여러 명의 성악가들이 합창하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가 이번에 틀어 보인 곡은 2005년 경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제5공화국.’의 OP - Deus Non Vult였다.

“공익이 공익이 버스를 이십 번이나 혼자 타네~ 공익이, 공익이 버스를! 이십 번이나~ 혼자 타네~ …개~ 새~ 끼~ 개~ 색~ 히~ 개~ 새~ 오오오오잉 저 개~새~끼~ 개~새~끼~개~새~ 오 오오오잉.”

들리는 대로 노래를 중얼거리는 현대왕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실은 Deus Non Vult라는 곡이 진짜 그런 가사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다시 한 번 인사드립니다 현대왕입니다.”

[현대왕이다!]

[꺄아아아악! 이건 꿈이야!]

이윽고 오프닝이 끝나고 현대왕이 다시금 인사를 하자 시청자들이 열렬하게 환호했다. 현대왕이 흐뭇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모처럼 주말에 방송을 하는군요. 원래 주말은 쉬는 날이지만 오늘은 왠지 마음이 바뀌어서 말입니다. 저를 애타게 찾고 있을 시청자 여러분이 떠올라 방송하고 싶어지더군요. 어떻습니까? 정말로 착하고 선량한 비제이 아닙니까?”

[착해요!]

[엉덩이 때려드리고 싶어요!]

“엉덩이 때려드리고 싶다는 분? 니 엉덩이나 때리세요.”

[ㅠㅠㅠㅠ 네.]

[ㅋㅋㅋㅋㅋ]

“흠, 사실 오늘은 딱히 할 만한 게임이 없습니다. 애초에 컨텐츠를 생각하고 방송을 킨 것도 아닌 지라 준비된 것도 없군요. 처음엔 라디오나 할까? 생각했는데 귀찮더라고요.”

[여성 비제이 분이랑 같이 라디오 해요!]

[맞아! 남고딩!]

“아 귀찮다니까. …아니 근데 님들은 왜 이렇게 여성 비제이만 좋아한답니까? 남자 비제이도 좀 사랑해줘요! 그 뭐냐, 콩딱지나 쿠왁도 있지 않습니까? 걔네들도 좀 사랑해주란 말입니다! 비록 걔네들이 파뿌리 TV에서 시청자들에게 달이나 받아먹는 달창남에 못나고 못 생기고 한심하고 개념 없고 콧물이나 질질 짜는 그런 애들이지만! 그래도 여러분의 사랑을 강렬히 원하는 녀석들입니다!”

[디스야 뭐야 ㅋㅋㅋㅋ]

“아무튼 오늘은 귀찮으니까 혼자 할래요. 흠, 정말 할 만한 거 없나? 어디 떠오르는 컨텐츠 없어요? …아니 컨텐츠도 준비 안 했으면서 비제이 보고 어떻게 방송을 하라는 거야?”

진심으로 시청자들에게 컨텐츠를 요구하는 현대왕이었다. 스스로 준비해야 할 컨텐츠를 시청자들에게 준비해오라니! 세상에 이런 막장 비제이가 어디 있겠는가! 이윽고 착하고 선량한 시청자들이 하나 하나 괜찮을 듯한 컨텐츠를 제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컨텐츠가 여자 비제이를 데리고 해야 하는 컨텐츠였기 때문에 관두는 현대왕이었다.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여자 삼인방을 통하여 정신적 고통을 다 느낀 상태가 아니었나? 여자라는 단어만 들어도 절로 진저리가 쳐질 지경이었다.

[현대왕님이 나오는 미연시가 제작되었대요!]

“응? 그건 또 뭔 소리랍니까?”

그렇게 시청자들의 의견을 하나 하나 받던 도중, 불현듯이 한 명의 시청자가 그런 발언을 하였다. 지루하게 채팅창을 둘러보고 있던 현대왕이 눈을 크게 뜨며 마우스 스크롤을 위로 움직였다. 이윽고 방금 전 시청자의 발언을 다시 한 번 눈으로 확인하는 현대왕이었다.

“내가 출연하는 미연시? 그런 미연시가 제작되었다고?”

그러자 다른 시청자들도 하나 되어 [ㅇㅇ]를 외치기 시작했다.

[현대왕님이 주인공인 미연시래요!]

[현대왕 미연시!]

“흐미… 그런데 잠깐만, 미연시라는 게 무슨 약자입니까? 미소녀 연애 시물레이션?”

[ㅇㅇ]

“근데 내가 주인공으로 제작된 미연시가 나왔다고?”

[ㅇㅇㅇㅇ]

“그럼 미연시니까 여자가 나오겠네?”

[네.]

[맞아요.]

“시밝 안 해. 여자 질렸어.”

[…….]

보다 못한 시청자 한 명이 중얼거렸다.

[그럼 남자랑 하던지 ㅅㅂ]

바로 벙어리 30초를 선사하는 현대왕이었다.

“닥쳐, 넌 해선 안 될 말을 했어. 벙어리다. …사람이 해도 될 말이 있고 해선 안 될 말이 있는 법이야. 내 가슴에 상처를 입혔으니 30초 벙어리나 쳐먹어라.”

[ㅋㅋㅋㅋ]

“흠, 하여튼 내가 출연하는 미연시가 제작되었다 이 말이지? 한 번 해보고 싶어지긴 하는데.”

[제가 파일 가지고 있는데 메일로 보내드릴까요?]

“오오! 사랑하는 시청자들이여, 역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척척 전부 준비를 하시는구만요! 아따 출중하신 분들입니다 참말로!”

[ㅋㅋㅋㅋ]

“그럼 빨리 이메일로 쏴주십쇼. 제 이메일 아시죠? 제 방송국 메인에도 적혀 있습니다. 그리로 쏴주시면 되니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현대왕은 이메일을 켜두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메일 사이트를 몇 번 새로고침해보자, 현대왕에게 파일을 보낸 다섯 명의 이름이 등장했다. 현대왕은 굳이 다 살펴볼 필요 없이 첫 번째 것을 클릭하며 말했다.

“첫 번째로 메일을 보내주신 김소질 씨 감사합니다. 응? 다운로드가 별로 길지 않네. 용량이 많이 적은가 보군요.”

이윽고 다운로드가 완료된 후였다. 실행을 클릭하자 바로 미연시 특유의 메인 화면이 등장했다.

“오오미. 바로 시작이군요. 근데 이거 그림 누가 그렸대? 잘 그리는데?”

아직 현대왕이나 다른 비제이 캐릭터들이 등장한 그림은 아니었다. 드넓은 시골 풍경이 그러진 메인 그림이었는데, 그린 결과물로 보아 그림에 소질이 있구나 추측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감탄하면서 현대왕은 떠오른 미연시 메인 화면을 훑어보았다. 메인 화면에 ‘현대왕 미연시’라고 적혀 있었다.

“현대왕 미연시. 어디 얼마나 재미있는지 한 번 실행해보겠습니다. 제가 한 번 경험해보고 평가해드리도록 하죠.”

그리고 바로 시작하기를 누르는 순간이었다. 잠시 검은 공백이 생기는가 싶더니, 이내 학교 교실의 풍경이 드러났다. 텅 비어 있는 학교 교실에 혼자 누워 있던 현대왕 캐릭터가 눈을 뜨고 있었다.

“뭐야, 저게 나야? 얼굴이 왜 저렇게 여자같아?”

미소년 현대왕이었다.

(.....)

「여긴 어디지?」

“아무래도 (....)에 캐릭터 이름이 들어가는 모양이고 「」안에 그 캐릭터의 대사가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캐릭터 이름은 언급하지 않고 캐릭터의 대사만 가볍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캐릭터 이름을 왜 안 밝혀놓았나. 미소년인 걸 보니 나란 걸 바로 알겠구만. 행!”

스페이스를 눌러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러자 (...)으로 돼있던 캐릭터 이름이 (현대왕)으로 바뀌었다.

(현대왕)

「아, 여긴 학교구나. 그런데 난 왜 앉아있지? 아, 자고 있었구나. 왜 자고 있었던 걸까? 아 졸려워서 잔 거구나.」

“…아무래도 주인공이 병쉰인가 봅니다.”

(현대왕)

「이제 일어나야겠어. 웃차. 끄응, 왜 이렇게 다리가 아프지? 어? 이게 뭐람? 으악! 모기한테 물렸잖아? 500원짜리 모기 존나 아파!」

“여기서 500원짜리가 왜 나와?”

다음 화면으로 전환하는 현대왕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미연시 속의 현대왕이 책상에서 일어나 아무도 없는 텅빈 교실의 뒷문으로 향했다. 이미 현대왕 미연시를 진행해본 몇몇 시청자들이 머지않아 벌어질 일을 떠올리며 [ㅋㅋㅋㅋ] 웃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미연시 속의 현대왕은 복도로 나가는 순간 자신에게 찾아온 인영을 바라보았다. 현실 속의 현대왕이 중얼거렸다.

“어, 이 새낀 누구야? 모습이 까매서 정체를 모르겠는데? 누구지?”

(콩딱지)

「안녕 대왕아!」

“아니 씨발?”

진심으로 욕하는 현대왕이었다. 모습이 까맸던 이의 정체가 드러났다. 콩딱지였다. 미소녀처럼 순화된 모습이 실소를 머금게 만들었다.

(현대왕)

「안녕 딱지야! 너 왜 여기에 있어?」

(콩딱지)

「그거야 학교에서 수업을 받았으니까 그러지! 너는 왜 여기에 있니?」

(현대왕)

「그야 학교 수업을 받다가 졸려워서 잤으니까 그러지.」

“아니 사나이들 하는 대화가 왜 이렇게 여성스럽습니까? 이거 제작자가 여성이에요? 왜 남자들을 하나같이 게이로 만들어두었답니까?”

다음 장면을 누르는 현대왕이었다. 그러자 미연시 속의 콩딱지가 눈웃음을 지으며 두 손을 등 뒤에 살포시 얹었다. 그리고 어깨를 살짝 치켜든 채 아양을 부리듯 얘기를 시작했다. 참고로 미연시 속에 나오는 현대왕과 콩딱지 두 사람 모두 남자란 설정이었다.

(콩딱지)

「이제부터 뭐할 거야?」

“엉?”

- 원하는 선택지를 선택해주세요!

이제 미연시 고유의 루트 프로그램이 실행되었다. 1번부터 4번까지 콩딱지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겨났고, 그것을 쭈욱 훑어보는 현대왕이었다.

1번 : 집에 가서 사과나무를 심을 생각이야.

2번 : 슬슬 집에 가야지

3번 : 집에 가서 잠이나 자게

4번 : 한 번 게이나 되어볼까 생각 중이야.

“…참 무슨 생각으로 이런 루트를 만들었는지 의문이 드는군요. 일단 저는 1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구 멸망하는 것도 아닌데 사과나무를 심을 필요가 없죠. 4번은 당연히 아니고, 2번이나 3번 같은데 아무래도 2번이 현재 상황에 맞을 것 같으니 이걸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2번을 선택하는 현대왕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현대왕의 선택지는 옳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미연시는 상식적이지 못했다.

(현대왕)

「슬슬 집에 가야지.」

(콩딱지)

「…이 암퇘지년이!」

갑자기 현대왕을 덮치는 콩딱지였다. 미연시 속의 현대왕이 비명을 질렀다.

(현대왕)

「꺄악! 왜, 왜 그래…!」

(콩딱지)

「가만히 있어봐 이 암퇘지야! …해해, 바지에서 오줌 냄새가 좀 나는데? 제대로 털긴 털었어?」

그리고 차마 표현할 수 없는… 남자로서 참을 수 없는 숨 막히는 장면들이 등장했다. 현대왕은 차마 입도 열지 못하고 얼이 빠져 버렸다. 채팅방의 시청자들은 [ㅋㅋㅋㅋ!]하면서 웃는 사람도 있는 반면, [ㅡㅡ]정색하면서 멘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콩딱지)

「비누 주울 때 자세로 서! 얼른 서라고! 헤헤, 우리 대왕이. 엉덩이 빡빡 씻었나?」

(현대왕)

「…흑흑! 제발 이러지 마! 왜 이러는 거야!」

(콩딱지)

「이년이 팅기는 거 보소! 말 안하면 안 넣어준다? 」

(현대왕)

「…흑흑!」

(콩딱지)

「말해! 나는 게이 새끼라고! 」

(현대왕)

「…말 못해!」

콱! 대왕이의 엉덩이를 잡는 딱지! …찰지구나!

(콩딱지)

「말하지 않으면 안 넣어줄 거야. 얼른 말해. 나는 게이다! 라고 전국민들을 향해 외치듯 말하라고!」

(현대왕)

「흐흑!」

(콩딱지)

「얼른!」

(현대왕)

「흑! ……나는.」

(콩딱지)

「그래, 나는.」

(현대왕)

「나는, 나는 게이다아아아…!!!!!!!!!!!!!!」

(콩딱지)

「잘했어 이 숫퇘지야!」

퍽!

(현대왕)

「…Ang!」

철썩 철썩! 고귀하고 찰진 소음이 스피커 속에서 빵빵 터지는 가운데, 미연시 속의 현대왕은 콩딱지에게 끝내 범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콩딱지에게 후…장을 내주고 새로운 종족(?)으로서 거듭난 현대왕. 잠시 후 두 사람의 그림이 사라지고 어두운 공백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머지않아 한 문장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엔딩이 끝나는 순간, 게임의 본래 메인 화면이 돌아왔다. 하지만 아까 전 보았던 메인 화면과는 뭔가 틀렸다. 무엇이 틀린가 싶어 훑어보는데, ‘미연시’라고 적혀 있던 글자가 ‘게연시’로 바뀌어 있는 게 보였다. 시청자 중 한 명이 약삭빠르게 그 세 글자의 뜻을 이해하고 중얼거렸다.

[게이 연애 시물레이션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현대왕이었다.

============================ 작품 후기 ============================

옛날에 현대왕을 쓰던 때가 떠오릅니다솔직히 현대왕이 다른 작품에 비해 진심을 많이 담은 작품이긴 했었습니다 다만 그땐 전업작가였기 때문에 자금에 대한 욕심이 컸고, 수익을 별로 챙겨주지 않는 현대왕 때문에 결국은 신경을 안 쓰게 되었던 게 떠오르네요.

이번엔 신경 많이 쓰겠습니다.

현대왕은 매일 밤 12시에 게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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