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현대(現代) 왕의 죽음>
120발이 들어 있는 돌격소총을 들고 나란히 걸어가는 콩딱지와 현대왕. 타앙! 그 순간이었다.
“꺼….”
먼저 신음하며 앞으로 쓰러진 것은 콩딱지였다. 콩딱지가 울상을 지으며 눈물 어린 목소리로 절규했다.
“혀어어어어어엉!”
“딱지야!”
현대왕의 돌격병이 일부러 쓰러진 콩딱지의 돌격병 옆에 앉아 보였다.
“형! 내, 내 마이 프래셔스가! 으으으! 내 마이 프래셔스가아아아!”
“…좀만 참아라 딱지야. 의사 선생님에게 부탁하면 치료할 수 있어!”
“내가, 내가 심형이라니이!”
“딱지야아아아!”
“으윽! 형…… 미안해! …아무래도 난 여기까지인 것 같아…. 형과 함께 해왔던 추억 이젠…… 끄으윽! 추억을 떠올리니까 갑자기 괴로워졌어!”
“딱지야! 흐흑! 더 이상 말하지 마 딱지야!”
“윽… 형…. 마, 만일… 전생에 내가 여자로 태어나면… 나랑 사귀어 줄 거야…?”
“흐흑! 꺼져.”
“슈밤.”
딱지의 시체가 사라지고 강변요새에서 다시 부활하는 딱지였다. 이제 달랑 목숨이 하나만 남게 된 현대왕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호텔 쪽을 바라보았다. 강한 패기가 그의 등 뒤에서 흐르고 있었다.
“와라! 난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내 패기를 보여주지!”
“우오오오오!”
“난 과자 사먹으려고 편의점 갔다가 빵 사갖고 나온 남자다! 패기스럽지?”
“우오오오오오오!”
“뒷태보고 여자인 줄 알고 대시했는데 알고 보니 남자였던 적도 있다! 존나 패기스럽지?!”
“…우오오오오오오!”
그리고 후다닥 호텔 쪽으로 질주하는 현대왕이었다. 지그재그 형식으로 달려간 것도 아니고 그저 직선으로 달려가는 현대왕. 그야말로 죽음을 반기는 사나이였다.
“와랏!”
그러다 보니 어느 덧 현대왕은 호텔 앞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옥상을 올려다보면서 그렇게 고함을 치는데, 어찌 된 연유에선지 탄알이 날아올 생각을 않는다.
[뭐지?]
[왜 안 쏘지?]
[설마?]
시청자들이 무언가를 추측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현대왕도 하게 되었다.
“왜 안 쏜데?”
“일단 올라가볼게. 저놈이 대기타고 있다가 쏘려는 걸 수도 있어.”
현대왕의 패왕색에 지리기라도 한 것일까? 호텔의 기다란 사다리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는데, 빼꼼하고 옥상 위에서 누군가가 얼굴을 내미는 게 보였다. 현대왕과 콩딱지가 ‘헉!’하고 질겁했다.(콩딱지는 현대왕의 방송을 도방하고 있었다.)
“이제 끝인 건가….”
마치 주연 주인공이 찾아온 위기에 눈을 감으며 중얼거리는 대사 같았다.
“이럴 때 보통 여자 히로인이 나타나서 ‘따, 딱히 도와주고 싶었던 건 아니니까….’하면서 도와주는데.”
그렇게 사다리 쪽에서 멈춰선 채로 옥상을 보고 있던 현대왕이었다. 옥상 위에서 빼꼼 올라오는 현대왕을 보고 있던 저격 고수가 갑자기 몸을 돌려 사라진 것이다. 이를 본 현대왕과 시청자들, 콩딱지가 ‘?’를 달았다.
“어?!”
“설마?!”
“야! 씹! 이건!”
“형! 빨리 쳐! 저 간나 색… 총알 바닥났어!”
“그래! 알아! 씹알! 내가 놓칠 거 같아?”
저격 고수의 총알이 바닥났다. 요컨대 이제 플레이어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권총조차 사용이 불가능한 저격 고수였기 때문에 이건 현대왕이 자살을 하지 않는 이상 승리가 분명했다.
“야 이 아이스크림에 마요네즈 뿌릴 쉐끼야아아아아아아!”
“으으으! 형! 이제 다 도착했어!”
“그래! 저 놈 내가 반드시 죽인다!”
막 옥상에 도착했을 즈음이었다. 현대왕이 옥상 위에 당도한 것을 눈으로 확인한 저격 고수가 곧장 옥상 아래로 뛰어내렸다. 보통 FPS였지만 죽었겠지만 배틀 필드는 아니었다. 낙화산이 있었기 때문에.
“낙화산 펼친다 끼약!”
“끼 개 저! 내가 죽! 죽인다! 으아아!”
“형! 형! 빨리! 달려!”
“으아아아! 웨딩피치의 요술봉을 받아라 새꺄!”
저격 고수를 따라 똑같이 낙화산을 타고 떨어지는 현대왕! 그리고 그 상태에서 방아쇠를 당겨 저격 고수의 등을 사격한다! 두두두두두두두!
“끼야아아아아아!”
“크오오아아아아아꺄아아아!”
그리고 그 순간! 기적이 벌어졌다.
“대왕 혀어어어어어아아아으앙아아아아어아아우아아아아아아너아아!”
“야이 개색딱지야아으어아아아아후아아아아러아아아아아!”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한 번에 해소되었는지 정체 모를 비명을 질러대는 현대왕과 콩딱지. 죽어버린 저격 고수는 처참한 시신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ㅋㅋㅋㅋㅋㅋ말도 안 돼.]
[뭐 이런 막장이 다 있어 ㅋㅋㅋㅋㅋㅋㅋ]
“시밤! 보셨습니까? 시청자 여러분! 이게 바로 저희의 실력입니다! 저격 고수의 탄알을 모두 소비하게 만들어서 죽게 만드는 일종의 살인 기술!”
“나의 비중이 참으로 컸지!”
“딱지야!”
“대왕 형!”
실제로 만났으면 포옹이라도 할 것처럼 소리쳤다.
“잘했다!”
“형도 잘했어!”
“흐흐흐흐흐흫! 시밤!”
“킥킥킥!”
두 사람은 미친 듯이 웃어대며 좋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질 줄 알았던 게임에서 승리한 것 아닌가? 둘도 진짜로 이런 전개가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터라 무척이나 어이가 없던 터였다.
“그나저나 이제 벌칙만 내리면 되는 건가?”
“기다려봐 형. 내가 저격 고수 분 방에다가 초대할게.”
“그래. 나 이제 배틀필드 끈다.”
“엉.”
배틀 필드 게임을 종료하고 스카이 라이프 방으로 돌아온 현대왕이었다. 피 터지는 전설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가슴까지 숨을 끌어다 내쉬는 그의 방으로 저격 고수가 초대되었다. 콩딱지가 먼저 소리쳤다.
“저격 고수니이이임!”
“종말 종말 재미있었뗘요!”
“근데 어떠케요? 우리한테 졌잖아! 낄낄낄낄!”
“깔 깔 깔!”
“봤냐! 쉐꺄! 이게 우리들의 힘이다!”
“개쉑! 저격 한 자루만 있으면 온 세상 다 가진 줄 알았지? 착각도 유분수다!”
마구마구 비난을 퍼붓는 두 사람을 향해 저격 고수가 ‘아, 예….’하고 무미건조하게 대꾸했다. 이윽고 현대왕이 ‘흠흠’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중얼거렸다.
“아무튼 저격 고수님. 이제 저희가 이겼으니 저희가 제안하는 노예빵 받아들이셔야죠?”
“…네. 그래야죠.”
“뭐로 할까?”
“뭐로 할까 대왕 형?”
“흠… 아! 그게 좋겠다!”
“뭔데?”
현대왕은 두 사람만 볼 수 있는 스카이 라이프 채팅창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저격 고수의 안색이 창백해졌고 콩딱지의 입가엔 환한 미소가 피어졌다.
“저… 아무래도 그건 좀….”
“형 쩔어! 역시 형은 아이디어 뱅크야!”
“그렇지? 엣햄. 당연히 내 머릿속은 만능의 보석 상자 같은 곳이지.”
“저격 고수님 뭐해요? 얼른 하셔야죠. 설마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건 아니겠죠? 그럼 고추 때셔야 해요. 진짜로.”
저격 고수를 콩딱지가 재촉하고 있는 가운데, 현대왕은 스카이 라이프 채팅창을 캠으로 보여주었다. 그것을 보게 된 시청자들이 [ㅋㅋㅋㅋ]하고 웃어댔다.
‘강강에게 고백하기.’
[아 저게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똑같이 만들겠다 이거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격 고수님 제2의 불쌍남 되겠네 ㅋㅋ]
벌써부터 애도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현대왕은 나만 당할 수는 없지 라는 심정으로 그것을 제안했고 다행히 콩딱지도 맘에 들어하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콩딱지에게 계속해서 재촉을 받던 저격 고수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그러니까 그분 스카이 라이프 모르는데….”
“아 그래요? 그럼 제가 방에 초대해드릴게요.”
그리고 콩딱지가 강강을 스카이 라이프에 연락했다. 현재 강강은 방송 중이었다. 그녀는 게임 도중 자신에게 발신이 온 상대를 확인하더니 곧 통화를 받아 보였다.
“네. 왜 그….”
“…….”
그러다가 접속한 방에 현대왕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침묵하는 강강이었다. 악독한 시청자들은 벌써부터 [ㅋㅋㅋㅋㅋㅋㅋ]거리며 비웃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현대왕 님….”
“네. 안녕하세요 절 차버린 강강 님?”
“…….”
“괜찮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저를 불쌍남으로 부른다 한들 저는 절대 굴하지 않아요. 전 그런 남자니까요.”
“맞아. 속풀이는 저한테 전화해서 다 풀었으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강강님.”
“야 이 새꺄.”
“헤헤.”
“…….”
침묵하던 강강이 운을 띄었다.
“그런데 저한테 무슨 볼 일로…?”
“다름이 아니라 저격 고수님 있잖아요. 저분이 강강님에게 뭔가 고백을 하고 싶은 게 있대요.”
“…네? 저분이요…?”
현대왕과는 그나마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그러나 저격 고수는 처음 보는 낯선 인물이었다. 현대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저격 고수님이 그쪽에게 볼 일 있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저희 게임 중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강강님 여기다 부른 거예요. 저희에게 감사하세요.”
“아, 고, 고마워요 대왕 님.”
하란다고 진짜로 하는 강강이었다.
“그런데 저한테 무슨 일로…?”
“…….”
침묵하는 저격 고수. 그러나 그 정적 속에서 느껴지는 현대왕과 콩딱지의 강한 압박은 저격 고수의 입을 저도 모르게 열게 만들었다.
“저, 그러니까… 강강님….”
“……네.”
“저랑 사귀어 주세요….”
‘돌직구!’
웃음이 튀어 나오려는 것을 막는 현대왕이었다. 필시 콩딱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청자들은 이미 [ㅠㅠㅠㅠㅠㅠ]울음바다였다.
“…….”
침묵하는 강강. 잠시 후 그녀가 기운을 눈치 챘는지 중얼거렸다.
“이거 거짓….”
“아닙니다 강강 님! 저번처럼 거짓이 아니라요! 이번엔 진짜입니다! 저분은 진짜 강강님을 좋아해서 고백한 거예요!”
‘저번처럼 거짓.’이라는 말을 붙이는 현대왕이었으나 그 어느 누구도 그 부분을 맞장구쳐주지 않았다. 그 부분이 여러모로 슬픈 현대왕이었다.
“…그럼 정말로…?”
“…….”
저격 고수는 미안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네. …진짜로 좋아합니다.”
“…….”
“저랑 사귀어 주세요.”
‘깔깔깔.’
현대왕은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어차피 받아줄 리 없는 고백이었다. 저격 고수가 제대로 농락당할 모습을 떠올리니 현대왕은 내면 속에 숨겨져 있는 사디스트 끼가 발휘되는 것을 통감했다.
‘고백 거절당하는 순간 너도 나와 같은 불쌍남이 된다니까! 그럼 나만 불쌍남 소리 들을 필요가 없어진다니깐!’
“조….”
‘그럼 이제부터 내가 불쌍남 소리를 듣는 숫자도 적어질 테고! 크하하하하핫! 이건 다 계획대로다!’
악랄한 생각을 하던 그때였다.
“좋아요.”
“…….”
“…….”
정적이 찾아왔다. 잠시 후 그 정적을 깨뜨린 것은 저격 고수였다.
“…네?”
“좋다고요. …저랑 사귀어요 고수님.”
“…….”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사귄다고?”
“…….”
“지금 그거 받아들인 거야?”
믿기지 못한다는 목소리로 현대왕이 말했다. 강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헐!”
“…….”
말을 잇지 못하는 세 사람이었다. 콩딱지가 입을 열었다.
“헐, 강강님. 저격 고수님이랑 진짜 사귀려고요? 왜? 왜요? 둘이 안 본 사이 아니에요?”
“…안 본 사이 맞아요.”
“그런데 왜?”
다시금 껴들어서 질문하는 현대왕. 잠시 머뭇거리던 강강이 말을 이었다.
“그냥… 좋은 느낌이 나서요….”
“…….”
입을 다무는 저격 고수. 그도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지 당황했다. 현대왕이 제지하고 나섰다.
“아니 잠깐! 왜? 대체 왜? 저격 고수 얼굴도 안 봤으면서 어떻게 사귈 생각을 해?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래도….”
“뭐 이런!”
“아 형! 그냥 진실 말하자!”
콩딱지도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곤 생각 못했는지 그렇게 소리쳤다. 현대왕도 ‘그래!’하고 소리치고는 저격 고수님을 부르려고 했다.
“저격 고…!”
“잠깐만요.”
저격 고수가 진지하게 두 사람의 부름을 잘랐다.
“…저도 생각이 바뀌었어요. 진짜 사귀고 싶어졌습니다.”
“…….”
이게 뭐야?
“강강님의 진지한 태도가 저의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습니다. 이런 여자는 생에 처음입니다. 그 어느 여자도 목소리만으로 제 마음을 흔들지 못했는데, 강강님이라면 확실히 저의 여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격 고수님….”
“…….”
아니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아니, 야! 잠깐! 그럼 난 왜? 왜 안 된다고 한 건데?!”
어이가 없어서 진심을 담아 소리치는 현대왕이었다.
“…….”
“말이 안 되잖아! 왜 모르는 사람 고백은 받아주고 나는 안 받아줘! 이거 이상한 거 아냐?! 너희들 몰래 카메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대왕 진짜 진짜 멘붕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
웃고 있는 시청자들 속에서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리고 그 말은 명언이 되었다.
“현대왕 님보단 나을 것 같잖아요….”
“…….”
시청자 채팅방은 순식간에 울음 바다가 되었다. 이윽고 저격 고수와 강강이 서로를 친추하고 스카이 라이프 방에서 나가 보였고, 현대왕과 단 둘이 남게 된 콩딱지는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형, 힘내. 세상에 여자는 많잖아?”
“…….”
“풋.”
뿅하고 방에서 나가는 콩딱지였다. 할 말이 없어진 현대왕은 그 상태에서 바로 빡종했다.
빡종 : 빡쳐서 방송 종료.
그리고 이 날 있었던 방송은 현대왕을 다시 한 번 네이년(네이버) 인기 검색어에 오르게 해주는 신화를 창조했다. 밤새 1위를 등극한 채 떨어지지 않은 현대왕은 한층 사람들에게 명성을 알리게 되었으며, 불쌍남이란 이미지를 한층 끌어 높여 주는 역할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89년 후, 현대왕은 죽기 전 자식들에게 유언으로 묘비에 이런 말을 남기라 명한다.
“씨발 나 안 불쌍하다고!”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