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19화 (19/369)

19화

“딱지야.”

“응 형.”

“아무래도 이대로 가다간 우리가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저격 고수가 정말 저격 고수답게 총을 잘 쏘니까.”

“맞아 형. 저격 고수님은 저격을 고수처럼 다루는 저격 고수라서 우리가 달려들어도 저격으로 계속 맞추는 저격 고수야. 애초에 그냥 뚫는 건 무리가 있었어.”

“그래.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

곧바로 상황극으로 돌입하는 콩딱지였다.

“읏흠!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일단 상대방이 본진으로 잡고 있는 공사현장을 뚫기 위해선 대책이 필요하오! 그러나 우리 둘이 무작정 달려가는 것으론 적진의 성벽을 돌파하는데 무리가 많군! 벌써 병사들의 숫자도 현저히 줄어든 상황이오!”

“우리가 목숨도 많고 병사도 많았는데 이렇게 밀리고 있다니! 상대는 이순신인가?”

“그럼 우린 도요토미 히데요시오?”

“아니? 젠장. 말이 그렇게 되는 군.”

“어쩌면 적은 학익진을 펼치고 있을 지도 모르오!”

“저격병이 한 명인데 어떻게 학익진을 펼친단 말이오?”

“상대는 이순신이잖소?”

“아…….”

콩딱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 그만하자.”

“그랴.”

현대왕이 다시금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튼 내가 생각해놓은 작전이 있는데 그걸로 한 번 해보자.”

“이응.”

“한 사람이 저격병을 혼란시키고, 나머지 한 사람이 러시아 본군 기지 쪽으로 이동해서 뒤에서 치면 될 것 같다. 우리가 그냥 강변요새나 민가 쪽에서 공사현장으로 달려가다 보니 상대방이 어느 정도 위치를 추측하고 쏜 것도 있어.”

“맞아. 오히려 지금까지 죽은 게 잘 된 걸 수도 있어.”

죽은 목숨을 절대로 허무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현대왕과 콩딱지는 지금까지 죽인 것이 실은 저격 고수의 시야를 좁게 만들기 위한 전략의 일부분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믿지 않았다. 당연히 뻥이었기 때문이었다.

“흠. 그럼 누가 미끼를 하지? 형이 할래?”

“미끼는 원래 네 역할 아니냐?”

“헐! 내가 언제 미끼가 내 역할이라고 했어? 이 사람 웃긴 사람이네!”

“아니 이놈이? 너 츤고딩에게 사랑한단 소리 듣고 싶냐?”

“살려줘!”

콩딱지의 애원에 현대왕이 포옹력 깊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어떤 카오스보다 더 큰 재앙을 맛보기 싫다면 순순히 내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거야, 이누야샤.”

“크윽… 나루토…….”

여하튼 그렇게 하여 콩딱지가 미끼 역할을 맡게 되었고 현대왕이 뒤에서 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시청자들은 채팅방에서 [이제 좀 풀리려나?]하고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기대감을 물씬 품고 있었다. 현대왕과 콩딱지는 초반과는 다르게 상당히 진지해진 태도로 임함으로서, 방송의 분위기를 긴장감 높게 만들었다.

“그럼 내가 계속해서 공사현장 근처를 맴돌면서 저격을 피하고 있을게. 가능하면 빨리 죽여줘. 나 세 목숨 금방 사라질지도 몰라.”

“알았어. 잘만 버티고 있어라 딱지야.”

그리고 현대왕은 강변요새에서 출발하여 바로 바다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헤엄을 쳐서 민가 쪽으로 숨어서 들어갔다. 바다에서 강으로 접어드는 현대왕은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게 저격 고수의 저격을 피하기 위해 애를 썼다.

아무리 높은 건물에서 총을 쏘아대는 저격 고수라 할 지 언 정 설마 이런 곳까지 포착하고 잽싸게 사격을 해댈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캭! 사람 살려! 형! 저격 고수님이 나 쏜다!”

“버텨 이 사람아! 너 죽으면 츤고딩 아들!”

“…우오오오오! 갑자기 힘이 솟아오른다!”

쉴 틈 없이 츤고딩을 계속해서 디스하는 두 사람이었다. 만일 이 사실을 츤고딩이 알게 된다면, 그녀는 ‘병신 두 명이 있으면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곧 멸망하겠네.’하고 욕지거리를 퍼부어주었을 것이다.

“형!”

“왜!”

“죽기 전에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한 마디를 꼭 전하고 싶어!”

“뭔데!”

“사랑해!”

“야이 씨바러마!”

타앙! 또다시 사망하는 콩딱지였다. 정말이지 노련하게 저격을 쏘아대는 저격 고수의 실력에 현대왕까지 혀를 내둘렀다.

현대왕은 그래도 게임을 못하는 편이 아니었다. 고수들보다 잘한다고 자부하진 못했으나 일반 사람만큼은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전략(?)을 쓰기만 하면 저격 고수를 궁지에 몰아넣어 마침내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 가늠했었다. 그러나 상황은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저격 고수는 정말 작명이 헛으로 지은 게 아니라는 것처럼 폐인 근성을 보여주었고, 진짜 저격 폐인답게 현대왕과 콩딱지를 아주 잘 가지고 놀고 있었다. 물론 그건 현대왕이 공사현장이 아닌 호텔 옥상에 있는 것을 공사현장에 있다고 박박 우겨서 일어난 과정이기도 했다.

[근데 내가 보기엔 콩딱지도 호텔이 어딘지 모르는 것 같은데….]

이미 몇몇 시청자들은 저격 고수가 공사현장 건물이 아닌 호텔의 건물 옥상에 자리해 있음을 깨닫고 채팅을 써대고 있었다. 허나 워낙 시청자들의 수가 많았던 현대왕과 콩딱지는 쉴 틈 없이 올라가는 채팅창을 볼 수가 없었다.

본다 한들 시청자들 태반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로 도배를 하고 있어서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실은 시청자들이 현대왕과 콩딱지가 계속해서 낚시 당하도록 놔두는 것도 있었다.) 타앙!

“형 나 또 죽음! 잇힝!”

“걱정 마! 다 왔어!”

어느새 러시아군 본기지에 도착한 현대왕이었다. 현대왕은 그 기지를 쭈욱 맴돌아 공사현장 뒷 부근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현대왕이 다른 위치에 있다는 것을 저격 고수가 눈치 채기 전에 잽싸게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현대왕의 돌격병은 조금도 쉴 틈이 없이 달려야만 했다.

“쨍쨍한 햇볕이 타오르는 오만의 땅에서 쉴 틈 없이 달리고 있는 나님의 돌격병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8데스를 당한 충격 떄문인지 정신에 이상이 와서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현대왕.

“형!”

“다 왔다아아아아아!”

이윽고 공사현장 건물 앞에 도착한 현대왕이었다. 방에서 게임을 진행한 이후 처음으로 당도한 공사현장 건물에 현대왕은 순간 전율했다. 콩딱지가 소리쳤다.

“나 지릴 뻔했어!”

“난 이미 지려서 기저귀 한 번 차야겠다! 아무튼 기다려봐! 내가 올라가서 이놈의 쌈싸대기 쉐끼! 아주 박살을 내버릴 테니깐!”

“오케이! 형만 믿겠어!”

그리고 현대왕은 공사현장의 건물 중에 가장 높은 건물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다리가 워낙 많다 보니 현대왕의 돌격병은 자연스레 느릿느릿하게 오를 수밖에 없었는데, 혹여나 저격 고수가 눈치 채고 사격하는 건 아닐까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타앙!

“나닛!”

“형 무슨 일이야!”

“야! 저격 고수가 나 발견한 것 같다! 지금 위에서 쏘고 있어!”

저격 고수는 호텔 옥상에서 쏘고 있다.

“진짜? 형 저격 고수 보여?”

“보이는 것 같아! …저기 있다!”

[ㅋㅋㅋㅋㅋ 어디 보여?]

[잘못 본 거 아니야? 저거 상자 아님?][현대왕 귀신이라도 보고 있나?]

“형! 내가 계속해서 모래 들판에서 시선을 끌고 있을게! 그놈의 아이스빙판 같은 새끼 잡아서 트리플액셀 돌려줘!”

“아이유 아이라인 같은 새끼! 아이라인 그리다가 실수로 얼굴에 찍힌 점 같은 새끼!”

그렇게 듣지도 못할 저격 고수를 뒤로하고 현대왕은 계속해서 사다리를 올라갔다. 이따금씩 저격 고수의 계속되는 총 소음이 있었으나, 그건 거의 콩딱지를 향한 것이었다. 콩딱지는 이번이 마지막 목숨이라고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남고자 애를 쓰고 있었다.

“우오오오! 이번에 진짜 죽으면 난 내 여자 친구랑 결혼한다!”

[좋은 거잖아 ㅋㅋㅋㅋㅋ]

“조까세요! 내 여친 무서워!”

콩딱지가 저격 고수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사이에 현대왕이 마침내 사다리를 거의 다 올라왔다. 그리고 오만 맵 중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꼭대기에 거의 다 올라왔을 즈음이었다.

“으랏차차차차차! 됐다아! 에베레스트 등산 완료다! 이제 깃발만 꽂으면 끝이야!”

“오오! 대왕 형! 빨리 뽀샤버려! 트리플액셀 돌려!”

“기다려라! 내 이놈을 나선환으로….”

그리고 건물 꼭대기에서 몸을 움직이며 주위를 살펴보는 현대왕의 돌격병이었다.

“어?”

그런데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형! 왜!”

타앙! 계속해서 들려오는 총 소리. 현대왕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야. 없어.”

“응?”

“없다고! 이 새끼 추락했나봐!”

“헉!”

설마 현대왕이 올 걸 눈치 채고 바닥으로 낙하산을 타고 떨어진 건 아닐까 싶어 아래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저격 고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 새끼 어디 갔어? 뭐 귀신이야?”

[호텔 옥상을 보라고 ㅋㅋㅋㅋㅋㅋㅋ]

[으이그 저 답답이 ㅋㅋㅋㅋㅋㅋㅋ]

답답해하는 시청자들을 뒤로하고 현대왕이 한참 꼭대기에서 주위를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호텔의 옥산 한 곳을 보게 되었다.

“어?”

“왜 그래 형?”

“…어라?”

호텔 옥상에 자리하고 있는 저격 고수를 그제야 발견하는 현대왕이었다.

[이쯤 됐으면 알 법도 한데….]

지금까지 헛수고를 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은근히 게임맹이었던 현대왕은 다른 소리를 내뱉었다.

“야! 저 새끼 버그야!”

“버그?”

“어! 공사현장 꼭대기 건물에 분명 있었는데 어느 틈에 호텔 옥상으로 갔어!”

“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였다. 저격 고수가 현대왕이 있는 위치를 발견하고는 바로 그에게로 총구를 돌렸다. 현대왕은 ‘나닛!’하고 놀라면서 도망가려고 몸을 돌렸으나 이미 늦었다. 타앙! 해드샷! 저격 고수의 쏘아진 탄알에 높은 건물 꼭대기에서 추락하는 현대왕이었다.

“으아아아아! 뉴턴 개새끼! 난 지구 종말 날에 너처럼 사과나무는 심지 않을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뉴턴? 스피노자 아닌가 ㅋㅋㅋ]

웃어대는 시청자들과 그 속에서 ‘사과는 맛있쪙!’하고 맞장구치는 콩딱지가 있었다.

* *

“대왕 형.”

“왜.”

“우리 공사현장이랑 호텔을 왜 구분하지 못한 걸까?”

“흠, 그러게. 병청자 여러분은 아십니까?”

“…헉! 형형! 혹시 그걸 지도 몰라…. 병청자 분들이 우리에게 최면을 걸었을 지도 모른다구! 공사현장이랑 옥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하는 최면술!”

“헐! 정말? 그럼 저격 고수도 츤고딩인거 아니야?”

“헉! 그렇게 큰 반전이 있다면 난 자살할 거야. 츤고딩에게 아홉 번이나 뒈지다니!”

“병청자 여러분은 진실을 아십니까? 진실은 무엇이죠? 얼른 지금 당장 말씀해주십시오!”

“맞아! 진실을 얼른 말해! 말하지 않으면 라면 끓여먹을 거야!”

“…아! 아니다 딱지야. 우리 괜한 음모론 만들지 말자.”

“왜 형?”

“우리가 지금 병청자 여러분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병청자 분들은 집에서 구닥다리 컴퓨터나 만지면서 왼손은 팬티 속에 넣고 주물럭거릴 인간들일 텐데!”

“헉! 그런 진실이 있었구나! 미안해요 병청자 여러분…. 저희가 너무 경솔했죠?”

“죄송합니다 병청자 여러분. 저희가 여러분들을 너무 과.대.평.가.했군요? 우리가 공사현장이랑 호텔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인데 여러분들은 방송을 보면서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맞아 맞아. 병청자 분들은 모르는 게 분명해. 형, 지금 채팅창에 ‘우린 알고 있었어요!’라고 뻥치는 병청자도 한 명 있는데 저놈 참 나쁜 놈이야. 어릴 때 아버지 지갑에서 돈 훔쳐서 문방구 메탈슬러그 한 판 땡겼을 게 분명해.”

“그리고 메탈슬러그 쓰리 두 번째 판에서 일부러 좀비 되어가지고 폭탄 써대고.”

“쿠와아아아악~.”

“채팅창 자세히 보니까 내가 공사현장 오르기 전부터 거짓말 치고 있었네. 병청자 분들 정말 너무한 거 아닙니까? 날 인터넷상에서 불쌍남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젠 대놓고 거짓말까지 치다니.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겁니다. 남자는 집까지 귀가할 때도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손을 빼면 안 되는 법이라고요. 설사 여자가 ‘자기랑 손잡고 싶어~.’라고 말할 때도 쿨하게 ‘싫어.’라고 말하면서 두 손에 주머니를 꽂고 당당하게 가슴을 필 수 있는 남자여야 한단 말입니다!”

“병청자 분들! 우리 솔직해집시다 좀!”

이미 이 게임은 망했다고 현대왕과 콩딱지는 생각했다. 어차피 내기에선 확실히 졌고,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에게 웃음이나 선사하고 컨텐츠를 살리는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에이씨. 이제 와서 호텔 옥상 가려고 해봤자 사다리가 있어서 힘들 테고.”

호텔 옥상에 오르기 위해선 건물의 기다란 사다리를 올라가야만 했는데,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그냥 죽자 형.”

그리고 강변요새에서 만난 콩딱지와 함께 현대왕은 싸늘한 모래 들판을 거닐기 시작했다. 이젠 달리지도 않았다. 그냥 칠 테면 쳐보라는 듯이 대담하게 걷는 것이었다.

[패왕색이다!]

원피스 OST - 궁지에 몰리다 BGM을 재생하는 현대왕이었다. 빰빰빰 빰빰빰빰~.

“가자! 위대한 항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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