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신 말고 야동 믿읍시다>
연예인들이 말하길, 치솟는 인기는 한 순간의 거품이라지 않나. 비제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현대왕은 배틀필드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배틀필드를 다시 다운받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다운 받는 동안 뭘 하고 있으면 좋으려나.”
스카이 라이프에 접속 중인 사람이 누구있나 살펴보는 현대왕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유독 접속해 있는 사람의 숫자가 적었다. 남고딩도 오늘은 방송을 빨리 끝마쳤는지 로그아웃 중이었다. 어찌할까 고심하던 현대왕은 그냥 가벼운 담소로 시간을 보내자고 생각했다.
“맞아. 제가 하나 웃긴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고 옆에서 지켜보았던 일인데 한 번 들어보시죠. 아주 맛깔날 겁니다.”
그리고 현대왕은 지난 기억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중얼거렸다.
“예전에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어떤 여자 궁둥이에 붉은색 네모 종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정작 여자 분은 모르셨어요. 사람들은 다 쳐다보고 있는 마당에 그 여자는 존나 시크한 눈빛으로 씩 웃더니 휴대폰 동영상이나 보고 있더군요. 그래서 옆에 있던 남자가 그것을 보고 일어서더니 저기요~ 이러고 톡톡 치더랍니다.
근데 여자가 왜, 무시하면서 막 어깨 움직이고 불쾌한 표정 짓는 거 있잖아요. 남자가 결국 다시 한 번 또 치면서 말을 거니까 이번엔 소리를 지르면서 아 왜요! 그쪽한테 관심 없어요! 라고 하더랍니다. 참고로 그걸 곁에서 듣고 있던 저는 물을 마시다가 빵 터져버렸죠. 멋있게 쪼개고 있는데 남자가 아니요 그쪽 바지 뒤에 만져봐요 이러니까 여자가 그제야 궁둥이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찰진 종이를 발견하더니 열라 쪽팔리는지 급하게 밖으로 내리더랍니다.
자, 여러분. 저는 여기서 큰 교훈을 하나 얻게 되었습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바다를 양쪽으로 갈랐을 때처럼, 현대왕은 우주의 의지를 받아 한 마디 했다.
“착각은 자유다.”
우주의 의지를 받은 것치곤 평범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뭐 그런 일이 있었다 이겁니다. 남녀불문하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걸요? 남성 여러분, 아침에 세수하고 거울로 자기 얼굴 보면 못해도 평타는 칠 거 같죠? …예, 착각은 자유입니다.
여성분들, 음식 종류별로 시켜놓고 별로 먹지 않으면 남자들이 좋아할 거 같죠? 아닙니다, 남자는 예쁜 여자를 좋아합니다. 고로 착각은 자유입니다.
…네, 그런 겁니다.”
[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
[웃긴데 슬프다….]
남녀불문하고 울음바다가 되는 시청자 채팅방이었다. 이윽고 뚜루루루 하고 다시금 콩딱지에게 연락이 걸려왔다.
“왜.”
“다운 몇 퍼센트 됐어?”
“보니까 업데이트만 하고 있네. 아무래도 예전에 깔아놓고 삭제를 안했던 모양이다.”
“아 그래? 그럼 바로 할 수 있겠네.”
“그랴.”
그리고 콩깍지와 함께 배틀필드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찰나였다. 똑똑하고 돌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뭐지?”
현대왕은 잠시 고개를 돌려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현 시각은 늦은 저녁이었다. 이 상황에서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남고딩에게도 예나에게도 연락 한 통 없었다. 가족일 가능성은 완전히 전무했고 말이다. 똑똑. 계속해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현대왕은 결국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불교에서 나왔는데요. 너무 목이 말라서 그러는데 물 한잔만 마실 수 있을까요?”
“…….”
입을 다무는 현대왕이었다. 즉시 머릿속으로 한 가지의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대순진리회인가?’
대순진리회.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이비 종교에 가까운 단체였다. 본래 대순진리회는 바르게 신앙을 하고 수도하는 사람들로 넘쳐났으나, 어느 순간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댐으로서 사람들의 인생 자체에 큰 피해를 주는 사기꾼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필시 현관문 너머에서 소리치고 있을 여자 역시 비슷한 존재이리라. 현대왕은 상대하지 않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 바쁩니다.”
“제가 정말로 너무 목이 말라서 그러는데 한 잔만 주세요. 딱 한 잔이면 되요. 더 바랄 것도 없습니다. 정말요! 너무 힘듭니다!”
애타게 목마른 척 소리를 치는 여자를 뒷전으로 두고 현대왕은 계속 방송을 진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1분이 지나도록 계속해서 현관문 앞에서 끈덕지게 애원하는 여자의 음성에 현대왕은 아무래도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현대왕은 곧장 콩딱지에게 사정을 얘기했다.
“딱지야. 나 잠깐만 불교에서 나왔다는 여자 물 한 잔만 주고 오마.”
“알았어 형, 여기까지도 들리네. 이참에 물 한 잔도 주고 돈도 주고 와.”
“이놈이?”
여하튼 간에 민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이지 1분이 지나도록 끈덕지게 애원하는데 아무래도 이 집의 청년을 속이는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목소리로 보아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 같지도 않은데.’
요즘은 대순진리회를 어린 나이에 행하는 이들도 많다고 들었다. 민국은 한숨을 쉬었다.
‘만일 이대로 문을 열어버리면 어떻게든 우겨서라도 안으로 들어올 거야. 어떻게 상대하는 게 좋을까?’
잠시 고심을 하던 민국은 곧 탄성을 지으며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게 좋겠네.’
그리고 민국은 곧장 상의를 벗어던지고 바지도 바닥에 내팽개쳤다. 팬티만 달랑 입은 상태에서 민국은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선글라스 하나를 착용하고 찬찬히 문 앞으로 당도했다. 여자는 여전히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제발요!”
“아 거참!”
짐짓 화가 난 목소리로 민국은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러자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순한 얼굴의 여자가 미소 지으며 민국을 주시하였다.
“정말로 고마….”
그러나 곧 팬티 패션에 선글라스 하나만 착용하고 있는 민국의 모습에 할 말을 잃는 모습이었다. 민국은 그러거나 말거나 옆구리에 두 팔을 얹으며 당당하게 가슴을 피고 얘기했다.
“뭐요?”
“…저, 정말로 고맙습니다. 저 정말 너무 목이 말라서 죽을 것 같았거든요. 물 한 잔만 주실 수 있을까요?”
“저 지금 그럴 여유 없습니다. 저 이래봬도 바쁜 사람이에요. 지금 입고 있는 옷차림만 봐도 딱 그 모양이 나오지 않습니까?”
“…….”
여자는 굴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하나만 말씀드리고 싶은데 시간이 되실까요? 하나님의 올바른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하답니까?”
“네? 네.”
“하! 그쪽은 지금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단 사실을 모르나 보군요?”
민국의 당찬 포스에 여자는 난처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그게 어떤…?”
“하나님에게 물어보십쇼!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그쪽 때문에 그게 끊겼단 말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아닌데요? 더 중요한 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게 뭐죠?”
이미 서민국에게 슬슬 말려드는 여자였다. 민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소리쳤다.
“야동이요.”
여자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네?”
“야동이라고요. 내가 지금 그쪽 때문에 딸 치던 것도 멈추고 나왔다! 이 뜻입니다! 치다가 끊겼을 때 사람 기분이 얼마나 찝찝한지 그쪽이 아십니까? 어떻게 남자의 딸을 멈추게 할 수가 있어요! 심지어 레어 야동이야! 내가 구한 건 무려 2000원짜리 제휴 컨텐츠 2시간 45분짜리 야동이라고! 어떻게 남자가 야동을 보는데 하나님에 대해 얘기하려 들고 있어!”
“…….”
“안 그러답니까 아가씨?”
민국의 노골적인 얘기에 여자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네, 네….’하면서 급히 몸을 물렸다. 현관문으로 들어오려다가 마는 그녀의 모습에 민국은 산뜻하게 미소 지으며 ‘다시는 남자의 중요한 순간을 끊어버리는 만행은 저지르지 말도록 합시다.
’하고 문을 쿵 닫았다. 그리고 의자 쪽으로 돌아온 현대왕은 자리에 착석하며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끝났다.”
“어, 말하는 거 여기까지 들렸어.”
“존나 쿨하지?”
“존나 쿨한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대왕의 언행에 칭찬하는 콩딱지와 폭소하는 시청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현대왕은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했다. 실은 오늘 만난 대순진리회의 그녀가 현대왕이 다니고 있는 대학교의 학생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말이었다.
* *
“다 됐어?”
“그래 다 됐다.”
배틀필드 다운로드를 완료한 후였다. 콩딱지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 저격 고수님 우리 방에 초대할게.”
“그분도 스카이 라이프 아이디 있었냐?”
“아니, 내가 만들라고 했어. 아까 만드는 방법 알려주느라 전화 끊었던 거야.”
“하긴 스카이 라이프 아이디 만드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 미국에선 필요도 않는 주민등록번호까지 입력하면서 아이디 만들어야 하잖아.”
“근데 그건 우리나라 사이트라면 다 마찬가지잖아.”
“닥쳐.”
“이응.”
참고로 이응은 ㅇ를 의미했다.
“아무튼 간에 연락해볼게.”
“그랴.”
뚜루루루루…. 콩딱지는 곧장 저격 고수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연락을 시도한 저격 고수의 스카이 라이프 닉네임 역시 저격 고수였다. 현대왕이 그걸 보고 한 마디했다.
“참으로 저격 고수다운 닉네임이군요.”
이윽고 저격 고수가 통화를 받았다.
“저격 고수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저격 고수 분. 전 현대왕이라고 합니다.”
“저격 고수님. 일단 방송 중이니까 시청자들에게 인사 한 번 하세요.”
저격 고수가 시청자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허리 숙이고 인사하세요.”
“무릎도 꿇고 인사하세요.”
“…….”
“농담입니다.”
“전 콩딱지가 하라고 해서 한 것뿐입니다. 오해 마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저격 고수입니다.”
인사하는 저격 고수의 모습에 인심 좋은 현대왕의 시청자들은 [ㅎㅇ!]하고 인사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현대왕이 콩딱지를 보고 말을 걸었다.
“이제 시작하지?”
“잠깐만. 저격 고수님, 룰은 제가 저번에 말씀드렸던 거 아시죠?”
“네 압니다. 저격 모드라고 했지요?”
“넵. 그리고 대왕 형이랑 저랑 팀을 하고 저격 고수님이랑 붙는 거예요.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저격 고수님이 저격을 들고 저희는 돌격소총과 권총을 듭니다. 저격 고수님은 오로지 저격만 사용할 수 있고요 목숨은 단 한 번입니다. 저희는 한 명당 열 번씩이고요. 이동수단은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배틀 필드는 단순한 총 게임이 아니었다. 차나 헬기를 타고 그것으로 싸우기도 하는 전쟁 형식 게임이었다. 콩딱지는 이동수단을 사용하면 저격 고수가 백퍼센트 불리한 것을 감안하여 게임에 참가하는 참가자들 모두 이동수단 사용을 전면 금지시켰다. 이윽고 콩딱지가 입을 열었다.
“형 이제 시작해.”
“스타트.”
배틀 필드 홈페이지에 적혀 있는 게임 스타트 문구를 클릭하는 현대왕이었다. 그러자 배틀 필드 특유의 로딩 창이 뜨면서 게임 시작 준비가 진행되었다. 현대왕은 게임이 준비되는 동안 배틀 필드라는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구체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설명해줄 의무감을 느꼈다.
“총 게임입니다.”
그러하다.
“는 농담이고 배틀 필드는 FPS 온라인으로 정식 서비스 중입니다. 청소년 이용 불가 게임이고요. 이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본래 배틀 필드라는 게임은 혼자 하는 1인용 콘솔 게임이었다. 허나 워낙에 인기가 많다 보니 온라인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윽고 배틀 필드의 시작을 알리는 전체 화면이 등장했다. 현대왕은 스카이 라이프를 통해 콩딱지에게 운을 띄었다.
“야, 나 지금 접속했는데 빨리 방 만들어.”
“헐. 형 벌써 접속했어?”
“이게 바로 조립컴의 위력이지.”
“나도 빨리 조립컴으로 바꾸던가 해야 하는데.”
잠시 후 배틀 필드에 마찬가지로 접속한 콩딱지가 방을 생성했다. 병청자들이 난입할 것을 감안하여 방에 비밀번호를 설정하였고 그것은 스카이 라이프 채팅창을 이용해 알려주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콩딱지의 방에 접속한 현대왕과 저격 고수. 저격 고수는 적팀으로 이동했고 콩딱지는 모드에 사용할 맵을 설정했다.
“저격 모드를 진행할 맵은 오만으로 정했습니다.”
오만. 배틀 필드 온라인 현 유저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맵에 가까웠다. 초보였던 이들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경험해보았을 맵으로 굉장히 넓은 편에 속했다. 요컨대 오만이라는 맵에서 저격수 한 명을 찾아 거리를 맴돈다는 것은 가히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윽고 예전에 경험해보았던 오만 맵에 대해서 회상해보던 현대왕이 의문을 갖고 콩딱지에게 질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