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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13화 (13/369)

13화

“…….”

하나가 되어 현대왕을 애도하는 시청자들. 덕분에 강강은 또다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흐흐흐흐흑!”

“아나! 진짜 몰카라니깐요?! 왜 그렇게 사람을 못 믿니!”

“하지만… 시청자들이…….”

현대왕의 본방에서 관람하고 있는 시청자들도, 쿠왁의 본방에서 관람하고 있는 시청자들도, 강강의 본방에서 관람하고 있는 시청자들도, 그리고 그 본방들을 통해 중계방에서 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하나가 되어 현대왕이 불쌍하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졸지에 진짜로 여자에게 고백했다가 차여버린 불쌍남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멋졌습니다.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남자답다! 기죽지 마 현대왕!]

“아, 여러분들도 다들 왜 이러십니까? 몰래 카메라 계획했던 거 여러분도 보셨잖아요?”

[애도를 ㅠㅠ]

[애도의 물결을….]

하지만 시청자들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단합해서 현대왕을 고백했다가 차인 불쌍한 남자로 만들고 있었다. 역시 현대왕의 팬들답게 사람 속이는 재주가 타고난 듯했다.

현대왕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하면서 아리송해하는데, 그 찰나였다. 모두가 yes를 할 때 no를 하는 사람이 있듯이, 눈에 띄고 싶어 하는 시청자 한 명이 다짜고짜 [쿠왁님이 낚았어요!]하고 진실을 말한 것이다.

현대왕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뭐?’하고 그 시청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용기 있는 시청자가 계속해서 얘기했다. 물론 나머지 시청자들은 그가 한 이야기를 볼 수 없도록 계속해서 타자를 쳐서 스크롤을 올리고 있었다.

[올려!] - 단합 시청자 A

[올려버려!] - 단합 시청자 B

[현대왕님이 사이퍼즈 계속 패배시켜서 짜증났대요! 그래서 벌 준 거래요!] - 진실을 말하는 시청자

[저런 미친!] - 단합 시청자 C

[방해꾼 보소!] - 단합 시청자 D

[쿠왁님이 빡쳐서 현대왕님 불쌍남으로 만들어버린 거래요!] - 진실을 말하는 시청자

“…….”

그러니까 이 사람의 말대로라면, 쿠왁은 현대왕 때문에 계속해서 사이퍼즈에서 깨져 화가 난 상태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어떻게 복수할까 시청자들과 고심하는 도중이었고, 갑자기 현대왕이 강강을 속이자며 좋은 제안을 해왔다는 것이다.

쿠왁은 자신의 본방 시청자들만이 볼 수 있도록 메모장을 켜서는 그걸로 시청자들과 어떤 계략을 펼칠지 의논을 나누었고, 현대왕의 본방에 있는 시청자들에게도 사전에 채팅창으로 알려서는, 현대왕을 완전히 불쌍남으로 몰아넣었다는 뜻이다.

“…….”

얼이 빠진 현대왕이었다. 설마 이렇게 통수를 맞을 줄이야! 하지만 이대로 당하고 있을 현대왕이 아니었다.

“쿠왁도 참… 어이가 없네. 그 정도 통수에 내가 당할 것 같냐? 채팅창 스크롤을 맨 위로 쭈욱 올려서 시청자들이랑 대화 나누었던 거 스크린샷 찍으면 되잖아? 그 다음에 그걸로 해명하면…….”

- 매니저가 채팅창을 깨끗하게 했습니다!

“…….”

그때였다. 현대왕의 영상을 매주 녹화해주는 매니저, 이정남이 갑자기 지우개를 쓴 것이다. 덕분에 스크롤을 맨 위로 올려 스크린샷을 찍으려던 현대왕은 마우스를 멈추게 되었다.

“야.”

[…….]

“이정남!”

- 이정남(매니저)님이 나가셨습니다!

“…….”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었다.

[매니저님도 매수된 거였어 ㅋㅋㅋㅋㅋ]

[아까 채팅창에서 얘기하기론 현대왕님이 고백하는 부분부터 녹화했대 ㅋㅋㅋㅋㅋ]

[아 끝장이다 현대왕 ㅋㅋㅋㅋ]

“…….”

몇몇 시청자들이 웃어 보이기 시작했다. 현대왕은 최후의 반격으로 웃고 있는 시청자들의 본심이 드러난 채팅창을 캠에 드러냈지만, 현대왕의 본방에 있는 그 많은 시청자들이 다시 단합하여 채팅을 치기 시작했고, 스크롤은 금세 올랐다.

물론 현대왕은 이제 매니저도 없겠다 스크롤을 위로 쭈욱 올려 청자들이 적어놓은 본심을 중계방까지 고스란히 보여주었으나, 이미 일은 너무 커진지 오래였다. 오해는 오해를 불러냈고,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이미 현대왕이 강강에게 고백을 했다가 차였다고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차인 것을 어떻게 만회하고자 몰래 카메라라고 뻥을 쳤다는 슬픈 전설도 맴돌고 있었다.

“흑흑….”

“…….”

“대왕 님…… 미안해요….”

“강강님! 진짜 거짓말이라고요! 지금 보면 시청자들이 다 단합해서 속이는 거고요. 실은 저랑 쿠왁이 사전에 계획을 했습니다! 둘 중에 한 명이 강강님에게 고백을 해서 골탕을 먹이기로요! 그러니까 강강님은 저한테 죄송하다고 하면 안 되고 사실은 욕을 해야 합니다!”

“정말 미안해…. ……내가 죽일 여자예요 정말! …하지만 당신 같은 남자랑 사귀긴 싫어요…!”

뚝, 하고 스카이 라이프가 끊겼다.

“…….”

강강이 나가버린 것이다. 강강은 그 후로도 한참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대다수의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쿠왁이 꾸민 계략에 제대로 속아 넘어간 여인이었다.

“…….”

하지만 이보다 더 처참한 사람이 있으랴? 졸지에 한 여자에게 고백을 했다가 깨져버린 남자로서 거듭난 현대왕. 본방의 시청자들은 다시금 연기를 하면서 현대왕이 불쌍하다고, 갸륵하다고 애도를 표하고 있었다. 뚜루루루루. 그때였다.

어느 틈엔가 스카이 라이프 방에서 나가 있던 쿠왁이 현대왕에게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시청자들 몇몇이 [오오]하면서 기대하는 모습으로 그가 전화 받길 기다렸다. 현대왕은 곧장 발신자를 확인하고 스카이 라이프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흘러오는 적막감을 깨뜨리는 쿠왁의 한 마디.

“ㅋ.”

뚝,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쌤통이다!]

모두가 단합하여 구석에 현대왕을 몰아버린 상황! 머리가 어질했던 현대왕은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혼자 있고 싶습니다. 다들 꺼져주세요.”

그렇게 방종을 하는 현대왕이었다.(방종 : 방송 종료)

이 날 있던 방송으로 말미암아 현대왕은 졸지에 불쌍남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리고 현대왕의 매니저 정남과 쿠왁이 녹화한 영상을 서로 조합하여, 이것을 인터넷에 올리게 되었고 이것은 청자들의 합동으로 퍼지고 퍼짐으로서 오늘 밤 12시에 ‘불쌍남 현대왕.’으로 인기 검색어 네이버 1위에 등극하게 된다. 현대왕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더욱 좋은 계기가 된 것이다.

* *

본방이 종료된지 한 시간 즈음 경과했을 때였다. 은별에게서 전화 한 통이 온 것이다. 민국은 아직 약속 시간까지 두 시간이 남아 있는데 이 여편네가 무슨 연유로 연락을 한 것일까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눌러 운을 띄우는데….

“왜 전화했나? 내 열 두 번째 여편네야.”

“역관광 당하셨다면서요, 현대왕님?”

“…….”

“좋으시겠어요? 그동안 타 비제이들만 관광시키다가 직접 당해본 기분이 어때요? 짜릿해요? 아주 좋아 죽죠?”

“너 방송 중이냐?”

“아니, 방송 껐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비아냥거려? 마치 과자인 줄 알고 먹었는데 실은 바퀴벌레 씹은 사람처럼.”

“하하… 우리 사이에 뭘요? 우리 원래 이러고 놀았잖아? 오프라인에서든 온라인에서든.”

“흠. 하긴 원래 열두 번째 아내가 어울려주기 까다로운 여자이긴 했지. 내 아내로 받아들일 때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하던지 그만 차버릴 뻔했어. 하지만 어쩌겠나? 멘탈이 봉지를 찢으면 가루 더미가 흩날려오는 초코하임처럼 약해 빠진 그녀였는데, 남자인 내가 당연히 참아야지.”

“두뇌에 물 뿌렸는데 알고 보니 얼음 덩어리여서 부피만 더욱 커져버린 남자 새끼가 왜 이렇게 말이 많대?”

“원래 머리는 자고로 차가울 수록 잘 돌아가는 법이지. 특히나 논리적인 면에서 능력치가 떨어지는 암컷 돼지를 상대하기엔 딱 좋아.”

“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흠. 그런데 너 내가 역관광 당한 건 어떻게 알아? 설마 도방이라도 했어?”

“흥. 그래! 채팅방에서 시청자들이랑 협동해서 너 몰아댔어. …못 봤나 봐?”

“아아!”

“왜?”

“아깝다! 알았으면 블랙한 건데!”

“…….”

잠시 휴전.

“그나저나 왜 전화했냐? 아직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까지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설마 어제 우리가 맹세의 계곡에서 목숨을 걸고 맹세했던 약속 시간을 갑자기 바꾸자고 연락한 것은 아니겠지?”

“맞는데?”

“너 척살!”

“척살은 무슨! 없는 소리 맘대로 지어내지 마! 맹세의 계곡은 씨불… 눈이 어떻게 달려 있으면 모텔을 계곡으로 연상할 수가 있냐!”

“어? 난 그 계곡 말한 게 아닌데?”

“그럼 뭔데?”

“그거야….”

소곤소곤 숨결처럼 뭔가 말을 중얼거리는 서민국. 그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은 은별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 변태 새끼가!”

“역시 야한 말엔 귀가 밝아지는 여자야.”

휴전은 훼이크였다. 은별은 민국이 언급한 계곡이라는 것이 모텔이 아닌, 여자의 신체 부위 중 상체 쪽에 위치한 봉긋한 것의 중심임을 깨달았다.

“정말 너 같은 변태 새끼를 어떻게 교육해야 교육시설에서 잘했다고 칭찬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가르쳐온 동물 중에서 가장 지능이 떨어져!”

“원래 사람이 끼리끼리 모이듯 동물도 끼리끼리 모인다고 하지. 끼리끼리 모인 동물들은 서로가 마음에 들면 교미를 하게 되는데 여기서 암컷 돼지가 엉덩이를 내밀고 수컷 돼지는…….”

“더 이상 말해봐! 너 죽을 줄 알아!”

“그래~.”

이제 진짜 휴전이었다. 잠시 정적. 먼저 말을 꺼낸 건 현대왕이었다.

“근데 약속 시간 바꿀 거면 언제로 바꿀 건데? 참고로 어제 말했듯이 난 병 때문에 열두시 안으로 만나야 돼.”

“나도 그거 알고 연락한 거거든? 지금 만나자.”

“지금?”

“응.”

“아니 왜?”

“나 내일 수업 아침에 있단 말이야. 그리고 가능하면 만날 때 매일 여덟 시쯤에 만나는 걸로 해. 열 시가 뭐야 열 시가? 방송 끝내고 지친 몸으로 쉴 시간에 맨몸으로 밖을 나가야겠어?”

“허허. 팅기는 거 보소, 그렇군. 이제 밤에 하는 건 싫다 이거지?”

“하긴 뭘 해!”

“같은 시간대에 행해지는 늘 지루하고 똑같은 행위에 질려버린 너를 위하여 까짓것 색다른 시도로 스릴을 즐겨보도록 하지. 좋았어, 그럼 지금 바로 만나자고?”

“후우! ……그래.”

은별은 이제 상대하기도 귀찮다는 모습이었다. 잠시 후 그렇게 약속을 잡은 민국은 뚝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서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민국은 키도 훤칠하고 외모도 곱상했기 때문에 인물이 곧잘 살아났다.

‘그럼 가볼까.’

쿠왁에게 역관광 당한 타격은 상당했으나, 그래도 녀석 덕분에 이번 컨텐츠의 결과는 매우 흡족스러웠다. 현대왕은 시청자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할 수만 있다면 이 한 몸 내팽개치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도 나중에 쿠왁에게 복수를 하긴 해야겠어.’

역관광을 시킨 쿠왁에게 언젠가는 복수를 하고 말리라 다짐을 하면서 민국은 집을 나왔다. 그리고 곧장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데, 인도의 몇몇 여자들이 비껴 지나가는 민국의 기다란 비율과 뛰어난 외모에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허나 민국은 이미 그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가볍게 외면하고는 지하철로 향했다.

이윽고 지하철에 탑승한 민국은 인파로 가득한 내부 안에서 여자들의 시선을 받으며 손잡이를 쥐었다. 가능하면 택시를 타고 싶었으나 매일 그랬다간 택시비로 쓰여 지는 지출이 상당할 터였다.

잠시 그러고 서 있는데 마침 은별이가 사는 동네 지역에 도착했다. 민국이 곧장 지하철에서 내려 보였고 그 순간 뒤에서 ‘저기요!’하고 어느 여성이 소리를 쳐왔다.

민국은 고개를 돌려 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후다닥 달려온 긴 생머리의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민국을 올려다보면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저 혹시…… 여자 친구 있으세요?”

“…….”

민국은 상냥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없는데요?”

여자는 눈에 띄게 조아라 하면서 미소 지었다.

“그럼 혹시 번호 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그쪽이 맘에 들어서요.”

“네. 그 정도야 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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