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네.”
“그때 강강님 카트랑 제 카트랑 붙게 되었죠. 저는 카트에서 꼴찌를 하고 있는 상태였고 그래서 맨 마지막 바퀴를 달리고 있는 강강님의 카트를 막기 위해 정면으로 충돌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강강님은 아찔한 간격 차로 그것을 간신히 피해 보였고 제 훼방을 피하여 1등을 하였습니다. ……내 카트를 피한 여자는 당신이 처음이에요. 난 그런 당신의 뛰어난 카트 실력에 반했습니다.
나중에 운전면허 따서 차 사면 카트 할 때처럼 멋지게 드리프트 한 번 해주세요. 물론 사고나면 그쪽이 알아서 하시고요.”
“……역시 이거 몰카죠?”
“아니라니깐?”
중계방에 기하급수적으로 몰려온 시청자들은 현대왕이 장난으로 저러는 것인지 진심으로 저러는 것인지 아리송해했다. 진실을 아는 시청자 일부분은, 실은 이게 몰래카메라이며 강강님을 속이고 있는 것이라 밝혔지만, 곧 머지않아 입을 다물고 잠잠해졌다. 잠시 잠잠하던 쿠왁이 입을 열었다.
“강강님. 원래 현대왕이 저렇게 말장난 많이 쳐서 사람을 아리송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현대왕은 많이 진지한 편이에요. 대왕이는 진짜로 강강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
‘잘하네 쿠왁.’
사이퍼즈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났을 줄 알았는데, 오해였던 모양이었다. 현대왕도 더욱 힘을 내서 강강 속이기에 몰두했다.
“강강님. 내 존재 가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 존재 가치는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이 맛있는 바나나라고 하면 전 그 바나나를 덮어주는 바나나 껍질이 되는 것이죠. 전 당신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당신이 눈을 감고 내가 누구인가 떠올리면, 이미지로 가장 먼저 바나나 껍질을 떠올리는 그런 사람. 당신이 바랐으면 좋을 제 모습입니다.”
“잠시만요… 너무 당황스러워서요….”
강강은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다. 뷕뷰를 이용해서 현대왕의 본방에도 진입해봤건만, 이미 많은 시청자들이 단합해서 강강 속이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현대왕의 고백을 절실히 응원하고 있었다.
[와 진짜 멋지다….]
[할 땐 하는 남자네. 난 늘 허세만 떨어서 안 좋게 봤는데. 오늘부턴 좀 다르게 볼 수 있겠다.]
[진짜 저런 남자 버리면 강강님 평생 동안 후회한다!]
그런 시청자들의 대화 글을 읊어볼 때 도무지 현대왕이 던진 고백이 거짓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순진무구한 강강은 어느 틈엔가 진지해진 얼굴로 현대왕의 이야기에 고민하고 있었다. 물고기가 낚시줄에 걸려들고 있음을 직감한 현대왕이 재촉하듯 말을 이었다.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죠? 강강님?”
“잠깐만… 잠깐만요 대왕님. ……저 잠깐만 생각할 시간 좀 가질 수 있을까요?”
현대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래도 됩니다. 다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저는 한 순간 한 순간 당신과 대화를 나눠야만 활기가 돋는 꽃입니다. 당신이 잠시 동안 잠수를 타는 것은 저에게 지옥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죠. 가능하면 제가 당신의 기운에 다시 활짝 필 수 있도록 일찍 와주시기 바랍니다.”
“네….”
혼란스러웠던 강강은 그 직후 잠수를 탔다. 이를 본 현대왕은 피식 웃었고 현대왕의 본방에 있던 본방 시청자들은 그제야 본 모습을 드러내고 [ㅋㅋㅋㅋㅋㅋㅋㅋ]웃어댔다. 역시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인다고 하던데, 그 악독한 비제이에 그 악독한 시청자라는 말이 어울릴 법했다.
‘월척이다.’
큰 물고기를 기다리는 현대왕이었다.
강강은 의자에 앉은 채 진심으로 고민했다. 강강의 본방을 시청 중인 시청자들 역시 반신반의하며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상황.
[진짜 진심이구나 현대왕….]
[난 여태껏 몰카인 줄 알았어. 하지만 쿠왁님이랑 대화하는 거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해.]
채팅창의 시청자들 역시 슬슬 인정하고 있는 눈치였다. 강강은 입을 다물었을 뿐이지 해드셋 너머로 들려오는 현대왕과 쿠왁의 음성을 꾸준히 듣고 있었다.
“하…! 강강은 정말이지 나에게 밤꽃 같은 여자야.”
“네가 강강을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바로 고백할 줄은 몰랐다.”
“아침에 눈을 뜨면 불끈 솟아오르는 그런 것처럼, 당장에라도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 그녀를 얻기 위해선… 내 모든 것을 다 바칠 수가 있어.”
“눈뜨면 솟아나는 것도 바칠 수 있냐?”
“그건 제외. 소중이는 소중이 해야지.”
현대왕의 고백이 단순히 진심일까? 어쩌면 낚시를 하기 위해 걸어 던진 미끼 투척이 아닐 런지…. 강강은 하도 현대왕에게 당한 타 비제이들이 많다 보니 진심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으아앙! 현대왕 이 개자식아아앙!’
‘캬캬캬캬캬캬캭!’
‘네, 네가 어떻게!’
‘푸히히히히히힛!’
타 비제이들을 속이고 비웃던 현대왕의 소름끼치는 웃음소리! 한 때 녹화 영상으로 그것을 접했던 강강은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Yes를… 해야 하나…?’
무엇보다 강강은 극도로 소심한 여자였다. 남들이 무언가를 빌려달라고 하면 그 사람이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을 원치 않아 무조건 들어주려고 하는 문제 많은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아무리 현대왕이 남자로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대시를 걸어온다면 결국엔 받아줄 수밖에 없는 노릇이리라.
…그렇다! 강강은 이미 현대왕에게 yes 의사를 표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몰래 카메라라면 속아 넘어간 것이니 기분이 창피하고 속상할 터였다. 하지만 현대왕의 고백이 진심이었고 그것을 거절한 것이라면?
‘…받아줄 수밖에 없어. 대왕님에게 상처를 줄 수는 없다고. 차라리… 내가 상처를 받는 게 나아.’
이토록 순진무구한 어린 양을 괴롭히는 현대왕의 생각은 사악했다.
‘걸려라 걸려. 제발 걸려라.’
현대왕은 자신이 제안한 컨텐츠를 살리기 위해 강강이 미끼에 걸리기만을 죽도록 바라고 있었다. 애초에 현대왕은 방송 컨텐츠를 중요시했다.
‘타 비제이들을 이용하여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줄 수 있다면, 타 비제이들도 현대왕의 앙큼한 짓에 화는 나겠지만 만족하리라.’ …라고 자기합리화를 항상 시도하던 현대왕이었다.
‘아 진짜 안 걸리네.’
“현대왕 님….”
“아, 네. 마네카솔의 향긋한 냄새 같은 강강님.”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왜 그렇게 부르면 안 됩니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호칭으로 부르면 안 되는 건 대체 무슨 이유에서죠?”
“…….”
“그나저나 얼른 대답을 듣고 싶군요. 당신의 아름다운 입술에서 보드랍게 새어 나오는 숨결과, 그 색기 넘치는 음성에 황홀이 빠지고 싶습니다.”
“저는…….”
강강은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대답을 입에 담으려고 했다. 현대왕 역시 기대하고 있다는 것처럼 귀를 기울였다. 쿠왁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저는…….”
강강은 몇 번이고 망설였다. 아직 현대왕이 누구인지 얼굴도 못 본 사이였다. 그런 사람의 고백을 대뜸 받아주는 것은 역시 아니하지 않은가? 그리고 현대왕은 여자 비제이들에게 피해야 할 숙적 베스트 1위로 거듭나 있었다.
워낙에 여자들을 말빨로 구슬리고 괴롭히다 보니, 컨텐츠용으로는 좋아도 남자 친구용으로는 사귀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물론 그분은 제외다.)
‘아! 어떡하면 좋아!’
강강은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다소곳이 가랑이 사이에 두 손을 넣고 깍지 낀 다음 찔끔 눈을 감았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하늘은 어찌하여 이런 무고한 사람에게 애꿎은 형벌을 내리려고 한단 말인가.
현대왕이 고백을 하는 것만으로도 진저리가 나고 손톱이 오그라들 것이라고 소리치던, 여자 비제이들이 뒷담화 했던 그 소리가 귓전으로 어른거린다.
“흐으윽….”
결국 강강 역시 버틸 수가 없었다. 그녀 역시 악마와 손을 잡고 짝짝꿍하는 것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흐윽! 미안해요! 대왕님!”
“…….”
매몰차게 거부하는 강강이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그 목소리는 현대왕으로 하여금 침묵하게 만들었다. 중계방을 비롯하여 본방에서 시청하고 있던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ㅠㅠ], [현대왕 차였다….], [토닥토닥]을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현대왕은 다른 의미에서 얼이 빠져 있었다.
‘뭐야? 우는 겨?’
쿠왁도 순간 당황했는지 이렇게 질문했다.
“강강님? 울어요?”
“흑흑! 미안해요! …미안!”
“…….”
순진한 어린 양을 기어코 울려버리고 말았다. 이런 건 현대왕과 쿠악의 계획에도 사전에 없었던 것이었다. 설마 고백을 거절하면서 울어버릴 줄이야!
현대왕은 고백을 거절 받더라도 그녀를 망설이게 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놀릴 거리를 만들었다고 생각 중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거절한 것에 크게 충격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일을 크게 벌릴 필요가 없어졌으니 조아라 하면서 놀려대려고 했다.
“흑흑….”
“…….”
그런데 대뜸 강강이 울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현대왕의 고백을 거절한 것에 진심으로 미안해하면서. 이렇게 되면 현대왕은 무슨 행동을 표해야 한단 말인가? 이미 본방과 중계방의 시청자들은 고백하다가 차인 현대왕과 강강에게 [흐규흐규 ㅠㅠ….], [둘 다 불쌍해….]하면서 동정을 표하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시청자 채팅방을 확인한 현대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왜 불쌍하다고 동정을 받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현대왕은 아까 전 사이퍼즈를 시작하기 전부터 본방의 인원을 풀로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현대왕의 몰래 카메라 계획을 사전부터 알고 있었고, 현대왕이 진심으로 고백을 한 게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현대왕에게 동정을 표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무슨 연유에선지 본방의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현대왕과 강강을… 특히 현대왕을 유독 불쌍하다면서 애도를 표하고 있었다. 그건 중계방의 시청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들 하나가 되어 현대왕에게 깊이 애도를 표하고 있었다.
[애도를 표합니다.]
[무사히 가세요.]
‘이거 왜 이래? 이렇게 되면 내가 마치…….’
진짜로 현대왕이 강강에게 고백을 했다가 차인 것 같지 않은가?
‘…….’
그렇게 자문하던 순간이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불안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현대왕은 스카이 라이프 방에 함께 있는 쿠왁에게 소리쳤다.
“야! 쿠왁!”
“…….”
하지만 무슨 연유에선지 쿠왁은 대답이 없었다. 아무리 그를 불러보아도, 쿠왁은 절대로 입을 열지 않았고 덕분에 상황은 더욱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몰래 카메라 계획을 도중에 본 시청자들은 진심으로 현대왕이 강강에게 고백을 했다가 차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었고, 중계방의 숫자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그 오해는 LTE 같이 퍼지기 시작했다. 현대왕은 더 이상 일이 복잡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혼자라도 대처를 하기 시작했다.
“흑흑….”
“아! 이런…. 강강님! 몰래 카메라예요! 몰래 카메라라고요!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
“흐으으윽!”
“몰래 카메라라니깐요? 쿠왁이랑 다 짜고 친 거예요! 왜 그렇게 울어요? 난 그냥 장난삼아 시도한 건데 설마 그렇게 울 줄은 몰랐네.”
“…몰래 카메라라구요?”
울음 섞인 목소리로 강강이 간신히 흐느낌을 멈추고 물었다. 그러자 현대왕은 ‘예!’하고 당차게 소리쳤다. 강강은 잠시 울음을 멈추고 자신의 방에서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들의 대화를 보았다.
[현대왕님, 이미 늦었습니다.]
[어떻게든 차이지 않은 척을 하려고 있어!]
[아………… 진짜 불쌍하다…….]
[현대왕님께 애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