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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11화 (11/369)

11화

<내가 너 좋아하면 안 되냐? 어? 내가 너 좋아하면 안 돼?>

시청자들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사이퍼즈에 처음에 임하기 전 자신이 했던 말을 책임지고 이행해주는 현대왕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많은 감동의 물길을 흘렸다.

통합랭커 100위권 안에 드는 쿠왁은 이미 말을 잃은 지 오래였다. 잠시 후 패배 창이 뜨면서 게임이 끝이 나고, 맵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역시나 쿠왁과 마찬가지로 말을 잃고 있던 현대왕이 분노를 머금고 소리쳤다.

[현대왕 또 졌다 ㅎㅎㅎ]

“졌다고요? 안 졌는데요? 졌… 안 졌다고! 내가 지긴 뭘 져! 내가 뭐 5연패라도 했을 거 같아?”

[올 ㅋ]

“아놔! 하여튼 이 병청자들! 하여간 이 사이퍼즈란 게임은 존재 가치를 못 느낄 게임이에요! 이 게임 만든 제작자 누구야! 나와 보라고 해!”

[ㅋㅋㅋㅋ]

이미 사이퍼즈를 계속할 마음은 사라졌다. 현대왕은 더도 말고 사이퍼즈를 종료하더니 스카이 라이프의 접속자를 확인해 보았다.

“어? 강강님이 계시군요.”

스카이 라이프에 접속한 강강을 확인한 현대왕이었다. 그리고 그런 강강을 주시하던 현대왕의 머릿속으로 좋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야. 쿠왁아.”

“…….”

“쿠왁아. 정신 차리고 내 말 좀 들어봐.”

“어 왜.”

쿠왁의 목소리는 패닉에 가까워 있었다. 현대왕은 졸지에 살짝 미안해졌다.

“지금 강강님 접속해 있는 거 보이지? 스카이 라이프 봐봐.”

“어 봤어.”

“우리 강강님 속이고 놀아볼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는 현대왕이었다. 쿠왁도 그 제안에 혹했는지 물었다.

“어떻게?”

“그러니까 몰래 카메라 같은 걸 하는 거야. 우리 중에 한 명이 강강님 속이고…… 아, 그게 좋겠다. 고백하는 거 어때? 한 명이 강강님에게 좋아한다고 방송 중에 고백을 하는 거야. 지금 보니까 강강님도 방송하고 있네.”

“그럼 누가 고백하는 쪽 할 건데?”

“그건 게임으로 정해야지. 아니, 아니다. 그냥 가위바위보하자. 또다시 게임하긴 귀찮으니까.”

안 그래도 싸이퍼즈 때문에 돌 것 같은 현대왕이었다. 쿠왁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현대왕의 제안을 승낙했다.

“그럼 이긴 사람은 옆에서 설득하는 쪽으로 하는 거야.”

“어, 그래. 그런데 잠깐만. 일단 진행하기 전에 자세하게 어떻게 할지 설명해보자. 뭐 어떻게 할 거야? 너랑 나랑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가 둘 중에 한 명이 강강님을 좋아한다고 했고 그래서 그걸 들은 사람이 옆에서 도와주기로 했다, 뭐 이런 식으로 할까?”

“그래. 그게 좋겠다.”

“오케이. 그럼 뭔 게임으로 할까.”

“가볍게 알까기 한 판 어때.”

“알까기?”

“오키도키.”

“오키도키도키.”

그리고 두 사람은 곧장 넷마블의 알까기 게임으로 접속했다. 그리고 한판 붙게 되었는데, 현대왕은 어떻게든 이번 게임에서 이길 생각이었다. 몰래카메라를 하자고 제안한 건 현대왕이었지만 중요한 역할을 맡기는 싫었다.

‘하나님이여! 이번엔 부디 내게 힘을!’

지기 싫었던 현대왕은 오죽하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하나님에게까지 기도를 빌었다. 그리고 게임은 시작되었고 급속도로 끝났다. 현대왕의 패배였다.

“굿.”

"오예.”

“빨리 시작해.”

"어."

게임에서 이긴 쿠왁은 바로 현대왕에게 명령했다. 한 번 내뱉은 말을 돌이킬 수 없었던 현대왕은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면서 얘기했다.

“삼세판?”

“그냥 해.”

“…쩝.”

이도저도 할 것도 없었다. 현대왕은 곧장 스카이 라이프에 접속해 있는 강강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은 그들이 펼칠 몰래카메라에 금세 떠들썩해져 있었다.

[오오 기대된다.]

[대박 대박.]

“스카이 라이프 도중에 나 끼어주는 거 잊지 말고.”

“알았어. 기다리고나 있어.”

그리고 현대왕은 강강을 향해 전해지는 스카이 라이프의 신호를 기다렸다. 뚜루루루루. 몇 차례 신호 끝에 강강이 연락을 받았다.

“여보세요.”

“사랑한다.”

“……예?”

“사랑한다고 이년아. 닥치고 내 사랑이나 받아줘.”

"……."

[오오, 현대왕님이다!]

[근데 지금 현대왕님 고백하는 거임? ㅋㅋㅋ]

[몰카 아니야?]

강강이 진행하는 생방송을 시청 중이던 채팅방의 시청자들이 느닷없는 고백에 웅성거렸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듯 현대왕은 강간을 향한 고백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진솔하게 표현하자면, 강강을 속이기 위한 몰래 카메라 계획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현대왕의 계략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단합하여 [ㅋㅋㅋㅋㅋ]를 채팅방에 남발 중인 실정이었다. 현대왕의 뜬금없는 발언에 한참을 머뭇거리던 강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현대왕님,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신지….”

“사랑한다고 이 년아. 내 말 못 알아듣겠어?”

강강 딴에선 얼떨떨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정신을 차렸다. 파뿌리 TV 계에서 막장 비제이 컨셉을 일삼는 남자 베스트 1위에 속하는 현대왕이었다. 이 역시 장난임을 머지않아 그녀는 깨우쳤다.

“이거 몰카죠?”

“아닌데?”

강강의 정확한 지적에 순간 멈칫했던 현대왕이었다. 다음으로 강강이 말을 이었다.

“몰카 맞는 것 같은데….”

“아니라니깐. 그나저나 너 자꾸 왜 대답을 회피하냐.”

“네…?”

“내가 고백했잖아. 그럼 그에 대해 적당한 대답을 내려야 할 거 아니야.”

“아니 이거 몰카 같은데 정말….”

“아 진짜!”

강강과 현대왕의 사이는 어색한 편이었다. 애초에 두 사람의 상성이 곧잘 맞는 편도 아니었다.

타 비제이들과 합동방송으로 모일 때 이따금씩 마주쳤던 두 사람이었다. 그래서 강강은 현대왕의 갑작스런 고백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한층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슬슬 강강을 속여가는 분위기에 현대왕은 끊임없이 말을 이었다.

“내 마음은 진심이야. 내가 오늘 눈 뜨고 화장실 변기에 엉덩이 대고 나서야 깨달았어. 널 좋아한다는 걸.”

“…….”

“세상에 실존하는 박테리아들의 수만큼 널 사랑해.”

고백도 이만한 고백이 있을 수 없다. 강강은 침묵하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현대왕 님, 채팅창 보니까 시청자들이 몰카라고 하시는데… 도방하고 왔다고….”

“아! 아니라니까? 끊지 마! 너 끊으면 안 돼! 끊으면 내 남… 아니 내 여자!”

“…….”

스카이 라이프를 종료하려던 것을 눈치 챈 현대왕이 빠르게 제지했다. 참고로 쿠왁은 현재 현대왕의 방에 들어와 도방 중에 있었다. 그래서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야. 강강.”

“…네?”

“너 나 사랑하지?”

“…….”

“내가 이래봬도 눈썰미가 우주 전체를 수 십초 안에 돌고 올 만큼 매우 빨라. 그래서 그러는데 내가 보기에 너는 예전부터 나에게 호감이 있었던 것 같아.”

강강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답했다.

“네. 호감은 있었긴 해요. 하지만…….”

“그렇지?! 그렇다니까. 결국 나도 너의 그런 마음을 눈치 채고 당고개 지하철이 오이도에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 동안 많은 고민을 했어. 나는 여자들에게 참으로 인기가 많은 우월한 존재였으니까 말이야, 그 정도 고민할 시간은 필요했지. 하지만 내 주위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너처럼 알뜰하고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달콤한 마성의 매력을 지닌 여자는 없는 것 같더군.”

메피스토펠레스 : 신화 속의 악마 중 하나다.

“아… 고, 고맙습니다….”

“그래 그래.”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현대왕 진짜 ㅋㅋㅋㅋㅋㅋ 오늘 제대로 터졌네.]

현대왕 쪽의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낄낄 거리며 웃고 있었다. 쿠왁 또한 사이퍼즈로 말미암아 생긴 앙금을 지워 버린 지 오래라는 것처럼 하나가 되어 웃고 있었다. 이윽고 강강이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정말 몰래 카메라 아니에요?”

“그렇다니까. 왜 그렇게 사람을 못 믿어? 속고만 사셨나.”

“하지만… 저희 얼굴도 안 본 사이인데….”

“왜? 얼굴에 자신감이 없어서 그래?”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뭐?! 그럼 얼굴에 자신 있단 말이야? 오오오!”

“…….”

비제이 강강은 극도로 소심한 여자였다. 속으로는 별의별 잡다한 생각을 많이 하는 그녀였으나, 타인을 대할 때는 죽을 만큼 소심해져 입 열기도 어려워하는 편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강강은 타비제이들과 진행하는 합동방송보단 혼자 하는 개인 방송을 자주 하는 주의였다. 태생부터 그런 성격을 지니고 태어난 그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현대왕은 강강의 그런 취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일부러 강하게 나고 있는 것이라 보면 되었다.

[뭐지?]

[그럼 진짜로 고백하는 건가?]

[애매모호하네.]

강강의 방에서 도방을 하지 않은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슬슬 현대왕의 진심 어린 듯한 모습에 아리송해하고 있었다. (보통 시청자들이 방에서 나가지 않는 이유는 인원이 꽉 차면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뷕뷰라는 아이템이 없으면 풀 인원의 방에 접속이 불가능했다.)

“강강아.”

“…….”

“나 사랑해 안 사랑해?”

“에? 저, 저기 그게…….”

“사랑하냐고 묻잖아 이 여자야! 본론만 말해! 내가 자존심 거두고 진솔하게 묻고 있잖아? 자고로 남자가 용기를 내어 고백을 하면 여자는 ‘고, 고백 받아들일게! …흐, 흥! 따, 딱히 사랑해서 그런 건 아니니까!’라고 말을 해야 하는거야.”

“…….”

강강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거 진짜 몰카 같은데….’하며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은 현대왕은 일부러 신경질을 내면서 ‘아 거참!’하고 소리쳤다.

“알았어! 그럼 내가 확인사살을 해줄게! 증인 있으니까 기다려봐.”

“증인이요?”

현대왕은 곧장 스카이 라이프에 쿠왁을 초대했다. 현대왕의 방에서 도방 중이던 쿠왁은 시청자들과 하나가 되어 무슨 이야기를 떠들고 있었는데, 현대왕은 강강을 속이는 것에 전념하고 있어 그가 정확히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알지 못했다.

마우스 스크롤을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쿠왁을 초대하는데 전념했다. 이윽고 현대왕과 강강이 있는 방에 초대받은 쿠왁이 얼떨떨한 척 인사했다.

“왜 불렀냐? 어…… 강강님 있네. 안녕하세요?”

쿠왁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인사하였다. 현대왕과 쿠왁의 방에 있던 시청자들은 [미친 ㅋㅋㅋㅋ]하고 웃어댔다. 강강이 고개를 조아리면서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현대왕이 말했다.

“야 쿠왁아. 너 내가 전에 포장마차에서 얘기했던 거 기억나지? 내가 쿠왁님 좋아한다고 했던 거.”

“뭐? 날 좋아한다고?”

[그렇게 다 게이가 되어가는 거야.]라고 틈을 놓치지 않고 어느 시청자가 중얼거렸다. 더불어 또 다른 시청자 한 명이 [찰지구나!]를 중얼거렸고, 현대왕이 재빠르게 말을 번복했다.

“실수했다. …강강님 좋아한다고 내가 전에 말했었잖아. 포장마차에서 둘이서 술 마시면서. 그랬지?”

쿠왁은 기다렸다는 것처럼 긍정의 의미를 입에 담았다.

“그랬지.”

“그치?”

“어.”

현대왕의 중계방이 두 배로 급증하고 있었다. 쿠왁이 시청자들에게 부탁하여 그들이 다른 타 비제이의 방송에 이 소식을 널리 전하라고 한 것이었다.

생에 최초로 파뿌리 TV에서 비제이가 타 비제이에게 고백을 하는 일이 생겼다고 전해진 소식에 다른 비제이의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이 궁금증에 기하급수적으로 중계방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진짜 고백하는 거임? 이거 고백 중인 거?]

[강강님 되게 당황스러우신 것 같은데…. 그나저나 이거 진짜예요 가짜예요?]

현대왕이 운을 띄었다.

“봐요. 강강님?”

“아…….”

쿠왁의 말을 듣게 된 강강은 살짝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쿠왁님? 정말이에요…?”

“네. 맞아요. 저번에 현대왕이 포장마차에서 저랑 술 마실 때 말해줬어요. 그것도 울면서.”

울었다는 설정은 한 적이 없었으나 현대왕은 그냥 너그럽게 넘어가기로 했다. 쿠왁이 말을 이었다.

“대왕이가 강강님 진짜로 좋아하나 봐요. 진짜로 엉엉 울면서 제 앞에서 강강님 좋아하게 된 계기 말하는데 저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어요. 진짜로 강강님 좋아해요.”

“…무슨 이유로 절 좋아하시는 건데요?”

강강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갔다. 이미 강강 방에서 시청하고 있던 시청자들까지 의문을 증폭하고 있었다. 도방을 하던 몇몇 이들도 현대왕의 본방이나 쿠왁의 본방에서 시청자들이 다 진지하게 듣고 있음을 확인하고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다. 이상하게도 말이다.

“강강님. 예전에 저랑 카트라이더 붙으신 적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정작 뒤에 무슨 상황이 찾아올지 모르는 현대왕은 말을 잇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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