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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2화 (2/369)

2화

“으….”

가시에 찔린 듯이 목이 아파왔고 이마가 열로 뜨끈뜨끈했다. 서민국은 아무래도 내일 일어나는 즉시 병원에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수업은 다행히 저녁 중에 있었으니 말이다.

“…예?”

민국은 믿지 못했다. 그는 어젯밤 갑작스런 열과 목의 고통 때문에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조금 퀭한 눈으로 근처 병원에 들려 아침 일찍 검사를 받게 되었는데 진찰하신 의사 선생님이 하는 말이 왠지 불안했다.

“이런 병을 보는 건 처음이야. 편도선염이 맞긴 맞는데 그렇다고 만성편도선염도 아닌 것 같고, 큰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어.”

“…….”

민국은 침을 꿀꺽 삼키고 병원에서 나왔다. 그리고 시간이 나는 대로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그는 급히 택시를 타고 큰 병원으로 향했다. 이름 난 병원에 도착한 민국. 진찰 받는데 돈이 다소 많이 들겠지만 무사히 검사를 받은 민국은 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하는 진료실에서 벼락같은 선고를 듣게 된다.

“희귀병인데. 편도선염과 같은 증상을 가지고 있지만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원인은 피로 누적인 것 같은데, 이제 와 생긴 병을 피로를 줄인다고 해서 사라질 것 같진 않아. 정말 안타깝군.”

“…치료 방법이 없는 건가요?”

“아직은 그래. 편도선염은 보통 십 이십대 학생들이 걸리는 병인데 요즘은 약만 먹어도 바로 나을 수 있지. 하지만 학생이 앓고 있는 편도선염은 뭔가 애매하군. 편도선염의 증상을 보이고 있지만 목 안을 내시경으로 찾아보아도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가 없어. 이 상태로는 수술을 해도 도움이 안 되네.”

“…….”

느닷없이 찾아온 날벼락이었다. 민국은 혼돈에 잠겼고 자칫하다간 다신 목을 쓰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절망했다.

민국이 앓고 있는 편도선염은 매우 희귀한 종류로 원인도 알 수 없었으며 계속해서 편도선염과 같은 증상이 발생하는 병이었다. 이는 약을 먹는다 해서 진정시킬 수도 없을뿐더러 점차 아파올 게 분명했다.

의사 선생님은 일단 면역제가 투여된 주사를 주입해줌과 동시에 약을 주긴 했으나 그것의 고통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곤 확답을 내리지 못하는 눈치였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민국은 벙 쪘다. 이래서야 암 선고를 받은 환자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편도선염은 정해진 기간 안에 치료하지 않을 시 그 증세가 심해지고 마침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병이었다.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약물을 투여해 나을 수 있게 된 일반적인 병이었는데, 민국이 앓고 있는 편도선염은 희귀성이라 약물을 투여해도 면역이 돼있어 치료가 되지 않았고, 수술을 한다 해도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올곧게 고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설마… 이대로 죽으라는 거야…?”

큰 절망에 빠진 민국이었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에 죽겠냐는 안일함과 동시에 어떻게든 살아 보이겠다는 의지가 민국의 가슴 속에 곁들어졌다. 느닷없이 찾아온 날벼락 같은 병이었지만 고칠 수가 없다고 절대 생각지는 않았다.

“콜록 콜록!”

어느 덧 그 일이 있은 지 일주일이 경과했다. 핼쑥해진 얼굴로 민국은 기침을 했다. 그는 여느 때보다 야윈 모습으로 밥조차 쉽게 입에 담지 못했다. 무언가를 삼키는데 상당한 고통이 잇따라 식사조차 선뜻 할 수가 없던 것이었다.

“으으.”

침대에 누운 채 민국은 신음했다. 병원에서 판정 받은 희귀병 편도선염은 빠른 속도로 민국의 몸을 악화시키고 있었다.

목뿐만 아니라 몸 전체도 서서히 아프게 하는 병. 덕분에 민국은 이마에 열까지 올라 한층 힘들어하는 처사였다. 민국은 왈칵 눈물이 나왔다.

남들은 다 평범하게 대학 생활을 하고 있을 참에 왜 자신은 갑작스레 이런 병에 걸려 눕게 된 것인지, 하늘이 진심으로 원망스러웠다.

“…….”

그때 휴대폰이 우우웅 진동했다. 민국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짚어 연락을 건 상대를 확인했다.

“예나네… 쿨럭 쿨럭!”

힘들게 기침을 하면서 민국은 쥐어 보인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누른다.

“응… 예나야.”

“몸은 괜찮아?”

“콜록 콜록!”

“내가 해둔 죽은 먹었어?”

입을 막고 기침하던 민국은 힘겨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좀 쉬고 있어. 내가 이따가 한 번 들릴게.”

“아니야, 예나야. …너 과제 때문에 바쁘잖아.”

“내 의지로 하는 거야. 좀만 기다리고 있어.”

예나는 5일 동안 학교를 결석하고 있는 민국을 날마다 걱정하고 찾아와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민국은 끊어진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는 다시 침대 위에 누웠다. 그리고는 콜록 콜록 기침을 하며 옆으로 누웠다. 갑작스런 죽음의 선고는 민국의 마음에 적잖이 절망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

6일 전, 민국과 함께 공부하던 태반의 학생들은 그가 큰 병에 걸렸단 사실을 알자마자 접근을 꺼려했다. 마치 언제 서로가 좋은 추억을 쌓으면서 놀았냐는 양 말이다.

몇몇 친구들은 어떻게 하냐면서 안타까운 듯 걱정스런 시늉을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그 누구도 민국에겐 더 이상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민국은 그 배신감에 눈물이 나기 보단 느닷없는 죽음 선고로 이렇게 되어버린 자신의 상황에 눈물이 났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민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자신의 병을 홀로 고칠 생각이었다. 부모님에겐 단호히 연락하지 않았다. 예나는 그래선 안 된다며 어떻게든 민국의 부모님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지만,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다는 민국의 부탁에 결국엔 포기한 실정이었다.

“…….”

민국은 부모님이 자신의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릴 모습이 머릿속으로 상상되어 무섭고 슬펐다.

‘반드시 살아야 해.’

하지만 펄펄 끓는 이마의 열과 계속해서 지속되는 목의 고통은 민국으로 하여금 살아갈 희망을 저버리게 만들고 있었다. 콜록 콜록! 새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민국은 다시 잠에 들었다.

“…국아!”

“…….”

"서민국!”

불현듯이 들려오는 소리에 민국은 천천히 눈을 떴다. 어느 익숙한 목소리가 현관문 너머로 계속해서 들려왔다. 민국은 힘겹게 뜬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쿵쿵하고 민국의 자취방 문을 두드리는 혹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민국아!”

“예…나?”

“민국아! 일어나봐!”

이불을 뒤척이며 자리에서 일어난 민국은 힘든 걸음으로 현관까지 향했다. 예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민국을 불렀다. 이윽고 민국은 현관문까지 걸어가 잠겨 있는 문을 열어젖혔고, 예나는 금방에라도 울 듯 한 얼굴로 민국을 보고는 소리쳤다.

“왜 이제 여는 거야! 내가 얼마나 불렀는지 알아?”

“…얼마나 불렀는데?”

“10분!”

민국의 힘없는 눈이 살짝 커졌다.

“10분?”

“그래! 이 바보야!”

울상을 지은 예나는 현관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와 민국을 눕혔다. 그리고는 열 때문에 힘들어하는 민국의 이마를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좀 앉아있어. 죽 끓여올 테니까.”

“됐으니까 가도 돼.”

“정말 그러기야?”

“그래도 너 많이 바쁘잖아.”

예나는 울컥하면서 속으로 ‘바보!’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 소리가 민국에겐 들릴 리가 없었다. 민국은 다시 눈을 감고 힘든 기색으로 잠에 들었다. 잠시 후 그가 눈을 떴을 땐 상에 죽을 놓은 예나가 있었고, 민국은 예나의 부축을 받아 침대에서 일어난 다음 그녀가 수저로 떠서 건네주는 죽을 받아먹게 되었다.

“맛있지?”

“잘 끓였네.”

민국의 칭찬에 예나가 싱긋 웃었다. 이윽고 예나의 도움을 받아 죽을 다 먹은 민국이 한결 편안해진 안색으로 침대에 누웠다. 예나는 조금 상태가 나아진 듯한 기미를 보이는 민국의 옆에서 세 시간 동안 간호를 하다가 갑작스런 부모님의 호출로 어쩔 수 없이 집에 가게 되었다.

“…….”

민국이 다시 눈을 떴을 땐 혼자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눈물을 흘렸다. 정말이지 왜 갑자기 이런 병을 앓아서 민국의 속을 상하게 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쿵쿵. 그때였다.

‘누구지?’

눈물을 흘리던 민국이 또다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물을 그쳤다. 그리고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자…. 쿵쿵쿵. 누군가 계속해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콜록! …예나가 다시 온 건가?”

외로웠던 민국은 예나를 떠올리면서 기침을 했다. 계속해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음 민국은 언제 그 소리가 그칠까 두려워 젖 먹던 힘을 다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현관문을 두드리는 상대에게 다가가며 힘겨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누구…세요?”

“…….”

상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민국은 기침을 콜록이면서 다시금 물어보려고 했지만 목이 너무나도 아파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고리를 걸고 문을 열었다. 설마 질 나쁜 범죄자가 대놓고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남자 집에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윽고 고리의 길이에 맞게 현관문이 열리면서 그 사이가 드러났다.

“…….”

정면으로 눈을 향하고 있던 민국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순간 깊게 침묵했다. 고리 길이에 맞게 열린 현관문 너머로는 아무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야 여기.”

그때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왔다. 민국은 고개를 내려 바닥 쪽을 보았다. 그러자 키가 150cm 정도로 유추되는 어떤 꼬마 아이가 보였다. 얼굴이 아기자기한 것이 한 15살 정도로 추정됐다. 근데 방금 이 소녀가 뭐라고 했던가? 민국은 잠시 당황해서 지나칠 뻔했던 대사를 떠올렸다.

“누구시길래 초면부터 반말을….”

“너 현대왕이지?”

하지만 소녀는 민국에게서 그렇게 발언권을 빼앗았다. 민국은 말이 가로채인 것에 불쾌함을 느낄 수도 없었다. 그녀가 방금 전에 입에 담았던 문장은, 민국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를 누구도 모를 거라는 관념을 산산조각으로 부수어지게 만들었다. 민국은 한 차례 콜록이고는 반문했다.

“예…?”

“너 현대왕이잖아. 비제이 현대왕. 다 알고 찾아왔어.”

“…….”

미처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그였기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돌연 민국의 머릿속으로 여러 비제이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한 때 소소한 일로 말싸움을 벌였던 비제이 중 한 명일까? 그 비제이가 인터넷으로 자신의 정보를 캐서 마침내 집 주소까지 알아내고는 보복을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일까? 여러 의문이 안 그래도 아픈 머릿속을 혼잡하게 하는 가운데, 민국이 전혀 예상도 못한 대사가 소녀의 입에서 발음되었다.

“나 네 팬이야.”

* *

“커피라도 한 잔… 콜록 콜록!”

“됐어. 목 상태가 영 아닌가 보네.”

민국은 목을 어루만지면서 콜록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열다섯 살로 추정되는 어린 소녀는 흥미 깊은 눈동자로 주시하다가 잇따라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방송을 못했군.”

“…….”

“일주일째 방송을 안 하길래 걱정이 되어서 찾아와본 거야.”

“제가 사는 집을 어떻게 알고 찾아오신 거죠…?”

분명히 민국은 상대방보다 네다섯 살은 연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말을 놓고 대화할 수가 없었다. 어린 소녀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대꾸했다.

“그냥, 마법으로.”

“…….”

“그나저나 얼굴도 야위어 있는 거 보니 목만 아픈 게 아닌가 봐.”

민국은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해야 하는지 잠시간 동안 고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팬이라면서 걱정을 하고 찾아온 어린 소녀 아닌가. 어떻게 집 주소를 알아낸 것인지는 심히 의문이었지만, 염려하여 찾아온 어린 소녀의 질문을 일절 외면할 만큼 민국은 매정한 성격이 못 됐다.

‘어차피 비제이 일도 못할 테니 마지막 작별 인사나 해둘까.’

살고 싶다는 마음은 가득했으나 현실은 절망적이었다. 민국은 몸소 찾아온 팬에겐 미안하지만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확신했다. 이윽고 머뭇거리면서 말을 꺼낸 민국은 이렇게 선언했다.

“콜록! 콜록! …비제이는 이제 관두려고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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