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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1화 (1/369)

1화

<현대(現代) 왕의 표본>

민국은 1학년 대학생이었다. 그는 워낙 사교성이 좋고 화술이 뛰어나 동성 이성 불문하고 인기가 많았는데, 남들보다 머리 하나 더 있는 큰 키에 아이돌을 연상케 하는 곱상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 같은 학과 여학생들도 내심 흠모하고 있었다.

“민국아!”

“응. 왜?”

“나 이 과제 너무 어려워서 그러는데 이따 내 자취방에 와서 도와주면 안 돼?”

여학생 한 명이 앙탈을 부리며 민국에게 접근했다. 평소에 인자한 미소로 친구들을 대하던 민국은 픽 웃으면서 반문했다.

“자취방에 가서 과제만 하자고?”

“웅… 그럼 또 뭐하려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순진무구한 얼굴로 올려다보는 여학생을 향해 민국은 다시 한 번 피식 웃으면서 제안을 거절했다.

“과제는 해줄게. 근데 가능하면 학교에서 하자.”

“헐! 왜? 어째서? 여학생 자취방에 가는 거 싫어?”

“아니 멀어서.”

“응?”

“집이 멀잖아.”

“아….”

여학생은 쿡쿡 웃었고 민국은 그런 여학생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의 부드러운 행동에 여학생은 뿅간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고 민국은 곧잘 손을 때고 몸을 돌려 유유히 학과 밖으로 나갔다.

이때만 해도 민국은 대학교에서 제일 잘 나가는 학생 베스트 파이브에 들었다. 다른 학과 학생들도 민국에게 사심을 갖고 접근이 잦았다.

“예나야.”

“어서 와 민국아.”

대학교 1층 테이블에 도착한 민국이 손을 흔들었다. 학과 과제를 공부 중이던 한예나도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예나가 숙제 중인 과제를 훑어본 민국은 맞은편 의자에 앉으면서 그녀를 보았다.

“어떤 과제야? 내가 도울 수 있는 건가?”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려고?”

“그래.”

“나야 고맙지, 하지만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한예나. 민국과 소꿉친구 시절부터 친구 사이로서 지내온 이성 친구였다. 그녀와 만난 것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였는데, 그때부터 무슨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매년 지날 때마다 같은 반이 되었다.

중학생 때는 잠시 민국이 남중으로 가게 되어 헤어졌으나 곧 남녀공학인 고등학교에서 같은 반이 됨으로서 초등학생 시절의 추억을 다시 되새겼다. 그리고 수능 시험을 끝으로 그녀와 사회로 나아가 헤어질 듯싶었는데, 그녀와 자꾸만 조우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듯 또다시 같은 대학교에서 만나게 되었다. 다만 학과가 달랐다.

“흐암.”

“졸려?”

“아, 조금. 목도 좀 아프네.”

칼칼한 목을 주물럭거리는 민국의 모습을 보고 한 마디 하는 예나였다.

“발표 많이 해서 그런 거 아니야?”

‘발표라.’

“요즘 들어 목이 많이 상한 것 같은데 좀 쉬엄쉬엄 해. 그러다가 큰일 나.”

“알았어. 흐아암! 나 계속 하품 나온다. 이제 집에 가볼게.”

“어? 벌써 가게?”

“그래. 너 어차피 다음 수업 있지? 기다려주고 싶은데 일이 있어서 빨리 가봐야겠다.”

“무슨 일? 여자 일이야?”

조금 느린 목소리로 경계심을 드리우고 묻는 예나를 향해 픽 웃으며 민국은 손을 내밀었다. 그가 손을 뻗자 움찔한 예나가 고개를 숙이더니 머리를 만지는 손길에 부드러움을 느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돈 벌어야지. 다음 학비 마련하게.”

그리고 민국은 다음에 보자며 집으로 향했다. 그는 대학교에서 몇 정거장 되지 않는 지역에 머물며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부모님은 이혼하셔서 맞벌이로 따로따로 생활하고 있었다. 민국은 가능하면 그런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대학교 생활을 하려고 했다.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서.

‘그래.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겠지.’

민국은 학업에도 열중했고 사교성도 뛰어난 편이었으나 그에게 타고난 재주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민국이 가진 재주 중 가장 돋보이는 재주가 하나 있었다.

“어디 오늘도 간만에 몸 좀 풀어볼까.”

자취방에 들어온 민국은 ‘아아!’하고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 보았다. 참고로 자취방은 방음이 되어 있어 이곳에서 어떤 소리를 내던 간에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다.

민국은 열려 있는 창문을 닫고 의자에 앉아 해드셋을 착용했다. 그리고 컴퓨터 전원을 켠 뒤 해드셋의 마이크를 입에 갖다 붙이고 한 사이트에 접속했다.

‘파뿌리 TV.'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는 파뿌리 TV였다. 인터넷 방송을 하는 방송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사이트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활성화되면서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대중성 있는 사이트로 변화하였다.

이 사이트는 방송을 하는 사람들과 방송을 신청하는 사람들로 나뉘었는데, 간혹 방송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존재하곤 했다. 물론 돈을 버는 태반이 남자의 성욕을 노리고 방송을 진행하는 여자 비제이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런 여자를 속칭 뭐시기 X녀라고 불리었다.

‘참 별의별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단 말이지.’

민국도 이 사이트에서 방송을 하는 방송인 중 한 명이었다. 다만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얼굴을 파는 비제이들처럼 방송하지 않았고 오로지 자신의 위트 있는 언변과 게임으로 접근하였다. 사실 처음에 방송을 하게 된 계기는 그냥 장난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거듭되다 보니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렸고, 그의 두터운 팬 층이 생겨 민국은 사이트 내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민국은 이제 생방을 시작하면 평균 청취자 3천명을 거뜬히 넘는 유명인이었다. 다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민국 한 명뿐이었다. 친구들에겐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수가 없었다.

아직 인터넷 방송인을 향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사람들 딴에선 남아 있었고, 굳이 알린다고 해서 좋을 것도 없을뿐더러 인간관계가 번거로워질 따름이었다.

‘시작해보자.’

녹방이 아닌 생방이었다. (녹방 : 녹화방송)민국은 오늘은 어떤 얘기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줄까 고심하며 생방송 방을 만들었다.

그의 명성을 아는 시청자들이 금세 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민국은 피식 웃으면서 마이크에 대고 중얼거렸다.

“안녕하세요 비제이 현대왕입니다.”

비제이(BJ) 현대왕.

평균 생방 시청자 수가 약 삼천 명을 거뜬히 넘어간다는 유명한 비제이였다. 인터넷 상에선 그가 세운 업적이 사람들의 블로그에 세심하게 적혀 있었고, 그가 진행하는 방송은 공영방송의 예능 프로그램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다고 태반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었다.

물론 그만큼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치러야만 하는 대가가 한 가지 있었다. …여유 없고 매사에 불만적인 사람들의 욕설. 현대왕은 비제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의 이유 없는 표적으로 삼아졌고 끝없는 질타와 비난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매사에 쿨하기로(또한 졸렬하기로) 소문난 현대왕은 그런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며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관심을 주는 시청자들에게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한 지 어연 3년. 고등학생 2학년 때 무심코 했던 장난이 결국엔 하나의 직업으로 변하여 돈까지 벌고 있는 실정이었다. 물론 그 돈을 지급하고 있는 것은 비제이의 열성 팬들이었다.

파뿌리 TV에는 달풍선이라는 것이 존재했는데, 개당 수수료 10원까지 해서 110원 가치를 하는 유료 아이템이었다. 열성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비제이에게 그 아이템을 지급했고, 달풍선을 받은 비제이는 환전을 하여 환전 금액을 받을 수 있었다. 비제이가 받게 되는 달풍선의 환전 금액은 이러했다.

일반 비제이 : 개당 60원. 1000개부터 환전 가능.

베스트 비제이 : 개당 70원. 베스트 달풍선으로 불리며 500개부터 가능.

TOP 10 : 개당 80원. 500개부터 가능.

본래 한 회원이 비제이에게 지급할 수 있는 달풍선의 한도는 15000개였다. 그러나 파뿌리 TV의 명성이 더욱 자자해지면서 달풍선의 한도가 그 두 배로 증가했다.(30000개) 이 때문에 비제이들의 수입은 더욱 짭짤해졌고 베스트 비제이에 속하는 현대왕(서민국) 역시 직장인들 못지않게 돈을 벌었다.

‘거참, 주지 말라고 해도 또 주네.’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벌써부터 누군가가 달풍선을 뿌리고 앉았다. 참고로 현대왕은 시청자들이 자신에게 달풍선을 지급하는 것에 감사함과 민망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자신을 방송에 드러낸다는 명목 하에 흥미를 느끼고 시작했던 것이어서, 달풍선이란 돈을 받게 됐을 땐 매우 당황했었다. 그리고 그 달풍선이 무엇인지 깨달은 찰나, 자신은 다른 비제이들처럼 달x남이라 불리긴 싫다며 달풍선을 지급하지 말라 당부했었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방송 시작 시 평균 시청자 수만 3천명을 넘고 생방을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그의 닉네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 매회 평균 시청자수가 3~9천명을 기록했다. 심지어 그를 좋아하는 공식적인 팬 카페까지 존재하는 실정이었다. 그렇게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 상황에서 웃음을 파는 비제이에게 필히 보수를 주고 싶어 하는 팬들이 있을 것이었다.

그런 일부의 팬들은 현대왕의 말을 묵살한 채 계속해서 달풍선을 지급하는 것이었고, 현대왕도 지금은 포기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물론 처음엔 거리낌과 불쾌함을 느껴 이를 계속 거절했지만, 그럼에도 계속되는 팬들의 언행에 나중엔 감사하다며 인사하는 것으로 그쳤다. 솔직히 돈을 주는데 마다할 사람은 없었다. 그저 자존심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던 것인데, 팬들이 이렇게까지 질기게 나오니 그도 막을 이유가 없었다.

“달풍선 300개 투척해주신 skmdf23님 감사합니다. 한 개당 저에게 60원 들어오는 거 아시죠? 아니 베스트 비제이니까 70원 받겠구나. 고놈의 70원 주려고 110원 짜리 아이템 구매해서 40원 날려먹은 skmdf23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인생 잘 사시고 다음번에도 꼭 나한테 달풍선 투자해라. 두 번 해라 세 번 해라.

꼭 해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의 그런 몇 마디에 벌써부터 파뿌리 TV의 채팅창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대학교 친구들이 본다면 그의 기존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에 넋을 잃을 지도 몰랐다.

비제이 현대왕…. 아니 서민국은 그 정도로 파뿌리 TV에서 일상과는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일상에선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친절하고 자상한, 여자들의 이상형과도 같은 남자라면… 파뿌리 TV에선 지나친 성드립과 웃긴 유행어를 서슴없이 입에 담고 남을 까는데도 망설임이 없는 막장 비제이였다.

‘현대왕 멘붕.’

‘현대왕 노출.’

‘현대왕 얼굴.’

현대왕을 네이버에 검색하면 뜨는 관련 검색어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중에서 제일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부분은 바로 현대왕의 얼굴이었는데, 서민국은 지금까지 비제이를 하면서 단 한 번도 팬들에게 얼굴을 비춘 적이 없었다.

달x녀라 불리는 비제이들이 캠으로 자신의 얼굴과 몸뚱이를 보여주고 있을 때 현대왕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게임 세계를 보여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게임 세계에서 상당한 컨트롤과 뛰어난 재치를 보여주면서 사람을 웃기는 것이었다. 이게 현대왕 서민국이 가진 가장 뛰어난 재주였고 재능이었다.

그는 그 재능을 살려 파뿌리 TV의 비제이를 하고 있는 것이었고 말이다.

‘물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다시 한 번 언급되는 바지만 서민국 혼자였다.

“그나저나 오늘은 뭘 해야 하나. 간만에 온라인 게임? 스타크래프트? 콜? 예~ 콜. 스타크래프트는 제가 한 때 선수로도 나갈 뻔했던 게임이죠. 아마 나갔으면 조작으로 돈 좀 벌었을 거예요.”

스타크래프트 조작 사건에 대해서 아는 팬들은 은근슬쩍 디스하는 서민국의 모습에 웃어댔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스타크래프트에 접속하는 서민국. 근데 그 순간 어질한 이마 때문에 손을 들어 올렸다. 잠시 비틀거린 몸을 바로하며 민국은 생각했다.

‘전부터 왜 이러지?’

요즘 들어 과제 발표니 인맥 쌓기니 무리를 많이 해서 그런 가… 전부터 이상하게 머리와 목이 아파왔다.

‘아무래도 이번 방송하면 좀 쉬어야겠네.’

일주일 간 휴식기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며 서민국은 신명나게 방송을 진행했다. 그리고 약 여섯 시간에 걸쳐 간만에 방송을 끝낸 서민국은 ‘바이바이 베이비. 나도 사랑해요.’하고 시청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침대에 엎드리며 누웠다.

============================ 작품 후기 ============================

bj물보단 현실 코믹물에 가깝습니다. 스트레스를 받는 분들에게 좋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리메이크 시작합니다. (후반부터 내용이 크게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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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파트는 재밌는데 게임 파트는 재미없어 하는 분들이 많으셨던 거로 압니다.

고로 게임도 기존에 존재하는 게임은 조금 나오고 대중에 맞는 게임으로 바뀔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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