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으로 독존한다-237화 (237/240)

신검 제네시스의 권능 (4)

[신계에서는 펫 소환이 불가능합니다.]

[전투 불능 지역입니다.]

[모든 능력이 봉인됩니다.]

[아공간이 봉인됩니다.]

[아공간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염화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

끝도 없이 울리는 알림들.

로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가디언 무르키도 튕겨나가더니 펫 소환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요후로 빙의된 트렐라와의 염화도 불가능한 상황.

‘뭐가 이렇게 안 되는 게 많은 건지.’

신계(神界).

흔히 이곳은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을 거라 예상한다.

신비한 경치와 반짝이는 보석, 수많은 보물들이 쌓여 있는 곳.

그뿐이 아니다.

천사 혹은 선녀와 같은 아름다운 존재들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도 흔히 연상되는 신계의 풍경이다.

그러나.

이곳은 아니었다.

마치 차원의 균열 속으로 들어온 듯 위와 아래의 구분도 없는 기괴한 공간.

심지어 눈에 들어오는 분명한 형체들도 없었다.

온갖 색채가 어우러져 있지만 어떤 규칙성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혼돈(混沌).

카오스의 상태.

‘여기가 진짜 신계 맞나?’

신계로 들어오는 게이트를 통과했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뒤를 돌아봤지만 게이트는 사라지고 없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어딘지 알 수 없는 공간.

‘정말 혼란스러운 곳이군.’

심지어 이곳이 3차원의 공간인지 아니면 그보다 고차원의 기괴한 공간인지조차도 분간이 어려웠다.

한 곳을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려 다시 그곳을 바라보면 보이는 풍경이 또 바뀌어 있었으니까.

물론 그 풍경이래봤자 알 수 없는 광채들이 혼잡하게 뒤엉켜있는 모습일 뿐이지만.

‘후.’

로안은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도 공기가 존재하는 것일까?

숨이 쉬어지는 걸 보면 말이다.

‘그거야 모르지. 어차피 나에겐 태초의 빛이 있어서 어디서든 생존이 가능하다.’

로안은 고인물답게 차분히 이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카오니아 세계에서의 신계는.’

게임의 기억을 떠올려봤다.

게임에서도 신계에 들어와본 적이 당연히 있으니까.

‘신계를 장악한 여신들의 취향에 따라 만들어지는 식이야.’

따라서 신계에서 활동 중인 현역 여신들의 영역마다 풍경이 달라진다.

이를 테면 인간 세계와 흡사한 곳이 여신의 취향이면 카오니아 대륙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반면에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혼돈의 공간이 여신의 취향일 경우도 있다.

‘바로 여기처럼.’

다시 말해 베로니카 혹은 카보네스의 취향이 이처럼 기괴하다는 뜻이다.

‘아니면 일부러 날 혼란시키려고 이 따위 짓을 한 것일 수도 있고.’

왠지 후자같다.

‘틀림없어.’

로안의 입가에 냉소가 피어났다.

‘이렇게 하면 내가 그녀들을 발견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모양인데.’

그거야 말로 고인물을 우습게 보는 거다.

‘여기서 모든 능력은 봉인됐지만 태초의 빛은 예외야.’

애초부터 태초의 빛은 외부의 힘에 의해 봉인될 수 있는 류가 아니다.

여신들의 신력보다 더 상위에 존재하는 이곳 카오니아 세계 최강의 힘이니까.

그러고 보니.

태초의 빛 신검 제네시스가 가진 권능에는 이런 것도 있다.

게임의 기억대로라면.

‘강등!’

[강등의 대상을 정해주세요.]

“신계의 공간.”

설마 이게 될까?

물론 된다.

게임에서는.

여기서든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신계의 공간을 강등시킵니다.]

[신계의 공간이 레벨 83으로 강등됩니다.]

‘오!’

혹시나 했는데 정말 됐다.

화아아악―!

곧이어 혼란스레 번쩍이던 수많은 광채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타난 공간은 하나의 아름다운 섬이었다.

신비한 광채의 물이 바다처럼 둘러싸인 섬.

백사장 위에는 두 명의 미소녀가 허탈해하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로안은 그녀들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봤다.

백색 로브 드레스의 베로니카.

그리고 심플한 디자인의 흑색 전투복을 입고 있는 카보네스.

물론 둘 다 화신이 아닌 본신이다.

이곳은 신계이니까 당연한 일.

“결국은 여기가지 왔구나, 로안.”

베로니카의 말이었다.

로안은 끄덕였다.

“웬만해선 나도 여기까지 오고 싶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지.”

“안타깝다는 건 무슨 뜻이야?”

“누군가를 징벌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니까.”

“유쾌하지 않으면 안 하면 되잖아.”

“하지 말라고?”

“생각해 보면 네가 굳이 나와 싸울 이유가 없지 않니? 우린 얼마든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어.”

그말과 함께 베로니카가 빙긋 웃었다.

여신 특유의 완벽한 미모에서 피어나는 미소.

신성하면서도 맑다.

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완미(完美) 그 자체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저 미소를 보는 순간 그대로 마음을 잃어버리고 말겠지만.

다행히 로안은 비교적 담담하게 그것을 바라봤다.

태초의 빛 권능이 그의 마음을 보호해준 덕분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다.

비록 베로니카의 매혹에는 넘어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인간의 감정을 가진 터라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후! 꼭 죽여야 하나?’

과연 저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미소녀 여신을 영원히 봉인시키는 것이 맞는 일일까?

그냥 좀 봐주면 안 될까?

이런 식의 안타까움과 망설임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는 기계나 로봇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로안!”

그때 로안의 마음이 흔들리는 걸 눈치챘는지 베로니카 옆에 있던 카보네스도 눈부시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로안! 네가 나와 이렇게 대면하는 건 처음이구나.”

“그렇군요, 카보네스 님.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진정으로 영광이면서도 안타깝군요.”

베로니카와는 친구처럼 말을 트기로 했지만 카보네스와는 초면이다.

죽일 때 죽이더라도 일단 여신으로서의 존중은 해주는 게 맞는 일.

그러자 카보네스가 다시 미소 지었다.

“로안! 넌 나를 처음 보겠지만 나는 아니야. 널 계속 지켜봤거든. 네가 나의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줬을 때는 물론이고, 또한 나를 위해

사브라 왕국의 용사 데랄쿠를 각성시켜줬던 일, 그밖의 많은 일로 나를 기쁘게 해줬던 것들 단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지금 이렇게 너와 만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너는 상상도 못할 거야.”

정말로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얘기다.

이렇게까지 말하며 미소 짓고 있는 존재를 향해 칼을 휘두른다는 건 정말로 마음이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리라.

그러나.

로안은 이곳에 온 목적을 상기했다.

‘여기서 마음이 약해지면 끝장이야.’

베로니카와 카보네스는 악마들과 손을 잡은 여신들이다.

지금 이 순간 로안에게 보내는 친근한 미소는 진심이 아닌 가식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설령 진심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베로니카와 카보네스는 여신으로서의 자격이 없으니까.

“로안! 너만 허락하면 우린 널 신계로 받아들일 거야.”

그때 베로니카가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카보네스 또한 끄덕였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이야, 로안. 태초의 빛 권능을 가진 너라면 우리와 함께 이곳에 머무를 자격이 충분해.”

이는 베로니카와 카보네스가 로안을 신으로서 인정해주겠다는 얘기다.

‘뭐 게임이라면 이런 식의 선택지도 흥미롭긴 하겠지.’

정말로 게임이었다면 고인물답게 새로운 재미를 추구해봤을 지도 모른다.

평범한 엔딩은 싱거우니까 악당 여신들과 한패가 되어 신계를 장악해 재미있게 지내는 식으로.

말 그대로 막장 엔딩!

그러나 현실에서 막장 엔딩은 절대 없다.

당연히 지극히 정상적이고 행복한 엔딩을 추구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쓸데없이 말이 길어진 것 같군요. 이제 그만 끝내도록 하죠.”

로안은 신검 제네시스를 앞으로 겨누며 말했다.

그의 눈빛은 무심하게 변했고 꽉 다문 입술은 단호해 보였다.

그런 로안의 표정을 본 베로니카가 탄식했다.

“정말 꼭 그래야겠니, 로안?”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구나.”

카보네스 또한 안타까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녀들의 표정에는 로안을 향한 두려움이 없었다.

강등에 의해 신력이 사라지고 레벨이 83으로 강등된 상태라면, 두려워 떠는 게 정상이다.

악마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그러고 보니 둘 다 기세가 장난이 아니야.’

베로니카로부터 피어나는 기세는 로안이 전력을 다해도 상대하기 쉽지 않을 만큼 가공스러웠다.

카보네스 또한 마찬가지.

신계에서 여신들과 전투를 벌이는 것이라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상상 밖이다.

“이제야 눈치 챘니?”

그때 베로니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네가 아무리 신검 제네시스의 권능으로 우리를 약하게 만들었다 해도 이곳 신계에서는 한계가 있어. 넌 우리 중 한 명도 상대하기 힘들

거야.”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베로니카가 번쩍 로안의 지척으로 다가섰다.

팍!

로안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뭔가가 그의 옆구리를 강타하고 지나갔다.

자그마한 망치다.

아주 귀엽게 생긴 망치 하나가 베로니카의 손에 들려 있었다.

딱 봐도 여의 등급의 무기.

그것이 스치는 순간 로안의 왼쪽 옆구리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방어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데다 주먹만한 구멍이 뚫린 옆구리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그 사이 다시 본래 위치로 돌아간 베로니카가 안타깝다는 듯 로안을 바라봤다.

“보다시피 이게 너의 한계야, 로안. 아무리 태초의 빛 신검 제네시스를 쥐고 있다고 해도 인간인 네가 우리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해.”

그말이 끝나기도 전에 로안은 오른쪽 옆구리에서 강력한 고통을 느꼈다.

촤악!

이번에는 카보네스다.

그녀가 환상처럼 다가와 로안의 옆구리를 검으로 베어버린 것이다.

이로써 로안은 양쪽 옆구리가 엉망이 되고 말았다.

‘무극붕! 천룡섬! 무극광······!’

물론 당하고만 있을 로안이 아니다.

그는 즉각 초월 등급 비급인 청룡무극도법의 필살기로 반격했다.

신검 제네시스에서 피어난 붉은 섬광들이 베로니카와 카보네스를 향해 무더기로 쇄도했다.

스스. 스스스.

그러나 그녀들은 그것을 너무도 가볍게 피해버렸다.

“어리석구나, 로안. 아직도 너의 분수를 모르겠니?”

베로니카가 날린 망치가 로안의 머리를 강타했다.

퍽!

로안의 왼쪽 두개골이 움푹 파이며 피가 튀었다.

상당한 중상이지만 로안은 비틀거리기만 할 뿐 쓰러지지 않았다.

신령한 빛의 성배가 가진 강력한 버프도 있지만 태초의 빛이 주는 불가사의한 생명력 때문이다.

푸확!

그 사이 날아든 카보네스의 검이 로안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가 빠져나갔다.

심장을 정확히 노리고 날아왔지만 로안이 반사적으로 피해 심장이 부서지는 건 피했다.

그래도 상당한 충격을 입은 터라 입에서 붉은 피를 울컥 토했다.

비틀거리는 로안을 보며 카보네스가 차갑게 웃었다.

“미련하게도 넌 우리를 과소평가했다. 우린 네가 어떤 필살기를 가지고 있는지 다 안다. 또한 강등이 되었을 때 널 상대할 방법에 대해서도

미리 대비해 두었다.”

역시 그랬던가.

아무리 존재감 없던 여신들이라고 해도 명색이 여신이다.

악마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각각의 여신들이 악마들과 1:7로 맞짱을 뜰만큼 강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악마들 위에 여신들이 있다면, 여신들 위에는 뭐가 있을까?

당연히 고인물이다.

고인물이 이런 상황조차 예상 못한 채 아무 대비없이 왔겠는가.

“저의 필살기를 모두 알고 있다고 했나요, 카보네스 님?”

카보네스가 오연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가진 능력은 우리가 모두 꿰뚫고 있다. 너의 스탯이 레벨 83에 비해 불가사의하게 높다 하지만, 우리 또한 너를 훨씬 능가하는

스탯을 보유하고 있지. 같은 레벨 83이라고 해도 너와 나의 격차는 어린 아이와 어른과 다름없다는 뜻이야.”

“그렇다면 정말 제가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군요.”

“이제라도 깨달았다니 다행이구나. 하지만 지금에 와서 엎드려 빈다고 해도 널 용서할 수는 없단다. 이제 그만 끝내도록 하자꾸나.”

카보네스는 차갑게 인상을 굳힌 채 로안을 향해 최후의 공격을 펼치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카보네스가 검을 쥔 그대로 몸을 떨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로안을 노려봤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카보네스의 가슴이 길게 베여져 있었다.

단순히 베인 것이 아니다.

그녀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위 아래로 비스듬히 두 쪽이 난 상태다.

회복은 불가능했다.

신검 제네시스의 권능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카보네스는 급격하게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베로니카 역시 자신의 목에 혈선이 그어진 걸 보고 몸을 떨었다.

“로, 로안 네가 어떻게······.”

혈선을 만든 건 물론 신검 제네시스다.

방금 전 그것이 베로니카의 목을 갈라버렸으니까.

“안타깝지만 여기까지야, 베로니카. 그리고 카보네스 님! 당신들을 영원히 봉인합니다.”

로안은 그녀들을 향해 정중히 예를 취했다.

《로안이 태초의 빛 신검 제네시스로 여신 베로니카를 징벌했습니다.》

《로안이 태초의 빛 신검 제네시스로 여신 카보네스를 징벌했습니다.》

[여신 베로니카가 잠들었습니다.]

[여신 카보네스가 잠들었습니다.]

이렇게 신계의 문제 여신들 두 명이 봉인되었다.

그 사이 말끔한 상태로 회복된 로안은 상기된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후!’

사실 방금 전 그는 베로니카와 카보네스가 알지 못하는 최후의 필살기를 펼쳤다.

[시간 정지]

여신 헤트시아가 빌려준 능력이다.

극한 상황에 트렐라를 구해 무사히 귀환하라고 빌려준 것이지만, 로안은 이 능력을 최후까지 아껴뒀다.

‘아주 찰나지만 베로니카와 카보네스의 시간까지 정지시킬 수 있지.’

그 틈이면 그녀들의 몸에 신검 제네시스를 휘두르기엔 충분한 시간.

‘어쨌든 드디어 끝났네.’

로안은 바닥에 처참한 상태로 동강이 나 석화되어 있는 두 여신들의 석상을 보며 씁쓸히 웃었다.

[신계의 전장에서 베로니카 연합이 소멸되었습니다.]

[신계의 영향력 포인트 전쟁이 종결되었습니다.]

그때 들리는 웅장한 알림.

[트렐라가 승리했습니다.]

동시에 로안의 앞에 신비한 빛무리가 모여들더니 아름다운 여신의 형상으로 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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