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 제네시스의 권능 (3)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프라미누스?”
로안이 앞을 가로막자 대악마 프라미누스와 악마 에투파스는 흠칫 놀랐다.
‘크윽! 이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로안의 몸에서 뻗어나간 무극의 기운이 형성한 압력 때문이다.
마신력이 사라지고 강등으로 레벨이 대폭 하락한 지금 그들은 로안의 앞에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지경인 것이다.
이에 프라미누스가 사정하듯 말했다.
『부탁이다, 인간. 이대로 날 놔주면 두번 다시 마계 밖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겠다.』
“지금 살려달라고 비는 거냐?”
『인간! 네가 아무리 신검 제네시스를 얻었다 하지만 그것을 남용한다면 차원계에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 엄습해올 것임을 모르느냐?』
“재앙이라고?”
『큭! 모른다면 알려주마. 나와 같은 마계의 신들이 사라지면 마계는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차원의 균형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당연히 카오니아 대륙에도 끔찍한 재앙의 여파가 미치게 될 것이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대재앙! 세상이 멸망할 수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카오니아 게임에서도 있던 내용이니까.
신계의 여신들이 모두 사라지거나 혹은 반대로 마계의 마신 즉, 악마들이 모두 사라지는 경우는 좋지 않다.
그것은 이 세계의 균형을 파괴하는 일이 되는 터라 시스템이 밸런스 조정 작업을 하게 된다.
‘그러면 꽤 혼란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신계와 마계에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와 연계된 카오니아 대륙에는 천지개벽과 같은 대혼란이 벌어질 건 당연지사.
‘게임에서야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현실에서는 대재앙이나 다름없을 거야.’
물론 태초의 빛을 가진 로안이야 설령 이곳 세계의 종말이 와도 별 걱정은 없다.
회귀해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으니까.
그렇다 해도 원하지 않은 순간에 세상에 종말이 와서 강제적으로 회귀를 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감이 오느냐, 인간?』
로안의 표정이 굳어 있자 프라미누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네놈이 쥐고 있는 그 무기가 얼마나 끔찍한 재앙을 가져올 수 있음을 말이야.』
“물론이다. 그래서 나도 너희 마신들을 몰살시킬 생각까지는 없어.”
『크큭! 그래도 말이 통하는구나, 인간. 그럼 나는 이만 마계로 돌아가도록 하마.』
순간 로안이 싸늘히 웃었다.
“착각하지마라! 마계에서 조용히 웅크려 있는 마신들까지 손 볼 생각은 없다는 뜻이야. 너처럼 마계를 임의로 벗어나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마신들은 모조리 징벌한다.”
그말과 함께 로안의 오른 손에서 섬광이 피어났다.
트렐라의 와인잔에서 피어난 와인빛 광채!
그것이 톱과 같은 기파를 형성해 프라미나스의 몸체를 향해 날아갔다.
『자, 잠깐!』
프라미나스가 기겁했다.
눈으로 보면서도 피할 수 없는 공격.
그의 몸은 여전히 무극의 기운이 형성한 압력에 눌린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당장 멈춰라, 인간! 후회하기 싫다면.』
그때 들려오는 웅장한 외침.
그 사이 주변에 환상처럼 모습을 드러낸 존재들.
대악마 바알커스와 일단의 악마들.
그리고 무력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붙잡힌 채 비틀거리고 있는 두 명의 여신들.
‘헤나와 그라나스?’
베로니카와 카보네스에게 제압되어 신계 어딘가에 갇혀 있다던 그녀들이 바알커스 패거리 악마들에게 붙들린 채 나타난 것이다.
그녀들은 염화조차 날리지 못하도록 신력을 봉인당한 터라 그저 로안을 향해 슬픔이 가득한 눈빛만 보낼 뿐이었다.
‘꼴이 말이 아니군.’
그러나 로안은 프라미누스와 에투파스를 향한 공격을 거두지 않았다.
촤아악! 콰드드드!
『크아아아악! 제발 멈춰!』
『카아아악―! 사, 살려줘!』
처참한 비명과 함께 두 마신들의 몸체가 무자비하게 잘려나갔다.
본래라면 이 정도로 몸체가 부서지는 정도는 마신들에게 별다른 타격을 줄 수 없겠지만.
신검 제네시스의 권능이 깃든 징벌의 파괴력 앞에 그들은 평범한 육체를 가진 인간들처럼 무력했다.
『쿠아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악―!』
얼마나 끔찍한 고통이 느껴지는지 마신들이 죽어라 몸부림치며 절규를 하고 하고 있었다.
『감히! 멈추라는 말을 못들었느냐, 인간 놈!』
바알커스로부터 엄습하는 거대한 힘!
대마신의 마신력!
그야말로 미증유라 느껴질만큼 가공스러운 압력이 로안의 몸을 휘감아왔다.
그러나 기세 좋게 엄습하던 그 압력은 로안이 쥐고 있는 신검 제네시스의 광채 앞에 너무도 무력하게 소멸되어 버렸다.
‘쓸데없는 짓들을 하는군.’
신검 제네시스의 소유자는 미처 상대를 강등시키지 않았다고 해도 쉽게 당하지 않는다.
제네시스 자체에 신력이나 마신력을 무력화시키는 권능이 있기 때문이다.
즉, 방금처럼 마신에게 선제 공격을 당했다고 해도 어렵지 않게 방어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계속 같은 상황이면 상대하기 피곤할 수밖에 없다.
‘강등!’
손쉽게 해치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망설일 이유가 있을까?
[강등의 권능을 펼칠 대상을 정해주십시오.]
“전방의 적들 모조리 강등!”
[신검 제네시스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광역 강등이 펼쳐집니다.]
번쩍!
제네시스에서 피어난 강렬한 광채가 바알커스를 비롯한 새로 나타난 악마들의 몸을 휘감았다.
화아아아악!
이 모든 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린 바알커스 등의 눈에 그 사이 처참한 고기 파편이 되어 널브러진 프라미누스 등의 모습이 보였다.
[대악마 프라미누스의 인장을 얻었습니다.]
[악마 에투파스의 인장을 얻었습니다.]
두 악마들의 몸체에서 인장을 갈취한 후 그것을 스탯으로 교환하는 건 당연한 일.
로안은 바알커스 등이 두 눈 시퍼렇게 뜨며 쳐다보고 있는 와중에도 태연히 그짓을 했다.
《로안이 태초의 빛 신검 제네시스로 대악마 프라미누스를 징벌했습니다.》
《로안이 태초의 빛 신검 제네시스로 악마 에투파스를 징벌했습니다.》
그렇게 두 악마가 마계의 어둠 속으로 봉인되어 버리자 바알커스가 로안을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인간 놈! 대체 네가 어떻게 그 물건을 얻었는지 모르겠다만.』
그는 붉은빛으로 번쩍이는 마검 두 자루를 각각 헤나와 그라나스의 목에 가져다댄 채 로안을 노려봤다.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하면 이 두 여신의 목은 사라진다.』
“고작 협박을 하러 나타난 건가?”
『네가 하기에 따라 협박일 수도 있고 협상일 수도 있다.』
“협박은 대충 뭔지 알겠는데 협상은 뭐지?”
로안이 궁금한 듯 묻자 바알커스가 키득 웃으며 말했다.
『네가 들고 있는 그 무기를 영구 봉인해라. 그러면 이 두 여신을 너에게 넘기도록 하마. 어떠냐? 이 두 여신은 너를 꽤 아끼고 있는
모양인데 이대로 영원히 잠들게 만들고 싶지 않겠지?』
“내가 거절한다면?”
『그러면 이 두 여신들은 영원히 잠들게 될 것이다. 물론 이 두 여신들의 가호를 받고 있는 카오니아 대륙의 인간들도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용사 아이린을 필두로 아르곤 왕국이 대재앙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뜻.
그뿐이 아니다.
로안의 부하인 용사 오델리아 또한 석화되어 잠들게 될 것이다.
그라나스의 가호를 받고 있는 다른 인간들도 마찬가지.
다시 말해 지금 로안의 결정 하나로 인해 두 여신뿐 아니라 수많은 인간들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뜻.
“안 됐지만.”
로안은 담담히 웃었다.
보통 영화같은 곳에서 보면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은 소중한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서 적의 요구를 들어주곤 한다.
대표적인 일이 바로 무장해제.
총이나 검 같은 걸 바닥에 던지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는 적에게 죽도록 당하지.’
즉, 소중한 존재들을 살리기는커녕 오히려 더한 위험에 처하게 된다.
물론 그런 식으로 주인공이 죽어버리면 안 되는 터라 누군가 다른 이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 적들을 물리치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짓을 했다간 그대로 끝장이지.’
다시 말해 로안이 여기서 태초의 빛 신검 제네시스를 봉인하게 되면 그거야 말로 가장 바보같은 짓이라는 뜻이다.
“안 됐지만 그 따위 협박은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
로안이 협박을 무시한 채 무르키를 타고 돌진하자 바알커스가 두 눈에서 악독한 흉광을 뿜어냈다.
『크카카카카카! 여신들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건가? 뭐 좋아! 그렇다면 네 뜻대로 해주마.』
곧바로 바알커스의 마검이 헤나의 목을 뎅겅 잘라버렸다.
헤나는 그대로 머리와 몸체가 분리된채 바닥에 널브러졌다.
《대악마 바알커스가 여신 헤나를 봉인시켰습니다.》
《여신 헤나가 잠들었습니다.》
헤나가 잊혀진 여신으로 전락했다.
지금쯤 용사 아이린 등도 석화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로안은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헤나가 봉인된 건 안타까운 일이긴 하다.
‘지금은 어쩔 수 없어. 나중에 깨워준다.’
헤나 등을 살리자고 손에 쥔 칼자루를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무르키! 전력을 다해 돌진해라!”
“크큿! 알겠습니다, 로드!”
그러자 바알커스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다시 마검을 휘둘렀다.
『크카카카카! 진정으로 상처뿐인 승리를 얻겠다는 것이라면 소원대로 해주마. 네놈은 영원히 피눈물을 흘리며 오늘의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라나스 또한 목이 잘려 쓰러졌다.
《대악마 바알커스가 여신 그라나스를 봉인시켰습니다.》
《여신 그라나스가 잠들었습니다.》
그렇게 두 여신을 봉인시킨 바알커스는 양손에 각각 마검을 쥔 채 로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모두 저놈을 죽여라!』
바알커스 뿐 아니라 다른 악마들도 죽기살기로 돌진해왔다.
레벨이 강등된 상태라 승산이 희박했지만 순순히 당하지 않겠다는 듯 그야말로 이판사판이었다.
“후후, 얼마든지 와라. 그렇게 나와야 나도 죽일 맛이 나지.”
악마들과 타협은 없다.
당연히 자비를 베풀 생각도 없다.
그냥 화끈하게 죽여버린다.
그것이 바로 태초의 힘을 얻은 징벌자로서의 자세다.
‘무극붕! 천룡폭! 무극광······!’
트렐라의 와인잔에서 뻗어나간 천룡무극도법의 기파들이 악마들의 몸체를 휩쓸었다.
콰콰콰콰콰―!
번쩍! 파파팟―!
태초의 빛이 깃든 징벌의 힘!
패기좋게 마지막까지 악을 쓰며달려들던 악마들의 표정이 공포심으로 물들었다.
대악마라 불리는 바알커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놈은 부하 악마들이 무참히 도륙당하는 모습을 보자 안되겠다 싶었는지 도주하기 시작했지만.
“도망가게 둘 것 같나?”
『잠깐! 살려주면 영원히 충성을 맹세하겠다!』
항상 그렇지만 악마들은 최후의 순간에 매우 비굴하다.
“그럼 죽어라. 그게 나에 대한 충성이야.”
와인잔에서 뻗어나간 붉은 섬광이 바알커스의 가슴을 꿰뚫었다.
『크아아아아아악―!』
심장이 박살난 바알커스는 로안을 원독어린 눈빛으로 노려보다 이내 가루로 변했다.
[대악마 바알커스의 인장을 얻었습니다.]
《로안이 태초의 빛 신검 제네시스로 대악마 바알커스를 징벌했습니다.》
악마들의 인장은 꼼꼼하게 챙겨 스탯으로 변환시켰다.
사실 이제는 스탯 같은 건 별 의미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챙길 건 철저히 챙기는 게 고인물로서의 바른 자세라 할 수 있으니까.
‘이제 두 여신들만 남았군.’
베로니카와 카보네스.
비록 신검 제네시스를 손에 쥔 상태지만 신계를 장악해 막강한 신력들을 보유한 두 여신들과의 전투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여기서 패리드 호수로 귀환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
아직 신계의 영향력 포인트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여기서 앞으로 남은 시간을 버틴다면 자동으로 트렐라의 승리가 된다.
그 경우 트렐라의 모든 신력이 회복될 뿐 아니라 베로니카와 카보네스는 패배로 인해 트렐라의 포로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즉, 굳이 로안이 위험을 무릅쓰고 신계로 들어가 베로니카 등과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 카오니아 대륙은 엉망이 될 거야.’
9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베로니카 등이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다.
그녀들의 성격 상 로안과 맞서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테니까.
‘시간 끌 것 없어. 지금 당장 간다.’
곧바로 로안은 무르키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방해하는 녀석들이 없으니 신계의 문으로 돌진해라, 무르키!”
“크하하하핫! 맡겨주십시오, 로드!”
로안에 의해 악마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것을 본 무르키는 잔뜩 고무되어 있었다.
“저곳이 신계의 문입니다!”
잠시 후 전방에 나타난 신비한 광채의 게이트.
험악하게 생긴 거대 맹수 형상의 가디언들이 게이트 근처에 잔뜩 포진하고 있었다.
“지키는 녀석들이 꽤 많군.”
“저들은 신계의 가디언들입니다, 로드.”
신의 숲 가디언이었던 무르키로서는 선망의 대상인 존재들.
그는 신계의 가디언이 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로안 또한 그 사실을 기억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전쟁이 끝나면 널 신계의 가디언으로 임명해달라고 트렐라 님께 부탁해보마.”
그러자 무르키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감동받은 듯 두 눈이 촉촉해졌다.
“그것을 기억하고 계셨군요, 로드. 예전에는 신계의 가디언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아니라고?”
“예. 로드의 탑승 가디언으로 있는 것이 신계의 가디언이 되는 것보다 훨씬 영광스러운 일이죠. 부디 영원히 로드를 모실 수 있게
해주십시오.”
꽤 기특한 말을 하고 있다.
로안은 흐뭇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해라.”
“감사하옵니다, 로드!”
그렇게 무르키의 충성심을 재확인한 로안은 전방을 향해 외쳤다.
“신계의 가디언들이여 들어라! 나는 태초의 빛 신검 제네시스의 소유자 로안이다. 신계를 어지럽힌 여신 베로니카와 카보네스를 징벌하려
하니 그대들은 상관하지 마라.”
신계의 가디언들은 신계의 문을 지키는 매우 중요한 병력이다.
굳이 봉인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때 가디언들이 잠시 의논하더니 대답했다.
“태초의 빛 신검 제네시스를 소지한 분이라면 저희들이 막을 수 없지요.”
“부디 혼란을 잠재우고 신계를 평화롭게 만들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로안은 미소지었다.
“말이 통해서 다행이군.”
곧바로 그는 신계의 문으로 진입했다.
그런데 게이트의 막에서 무르키는 뒤로 튕겨져나갔다.
반면에 로안은 저항없이 통과했다.
동시에 울리는 알림.
[신계에 입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