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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으로 독존한다-223화 (223/240)

신령한 빛의 성배 (3)

한편 오크로 위장했던 로달린 백작은 그 사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전신을 떨고 있었다.

그는 오늘 황제 디우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대전장에서 생명보험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걸로 확인됐다. 그러니 죽지 않도록 주의하라.〉

청천벽력과도 같은 내용이다.

그동안 악마 각성자들이 카오니아 대륙의 기반을 버리고 대전장에 들어와 거점을 확보했던 이유는 죽어도 다시 부활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것이 불가능해졌다니!

그러면 차라리 카오니아 대륙으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다.

로달린은 그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중 급작스러운 습격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신봉하던 악마 가버스가 로안 앞에서 너무도 비굴한 모습을 보이다가 죽임을 당한 모습을 목격했다.

‘으! 저놈은 대체 뭔가?’

어지간해야 대항해보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숭배하던 대상을 장난감처럼 다루다 죽여버린 로안 앞에서 그런 저항은 무의미했다.

그는 즉시 납작 엎드린 채 빌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순간 로안이 고개를 돌려 로달린을 내려다봤다.

방금 전 로안은 일부러 로달린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않고 악마 가버스의 분신을 소환했다.

‘이놈을 잡아서 조금의 정보라도 더 알아내는 게 좋을 테니까.’

악마 분신이 사라진 이상 로달린은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냥 죽여없애는 건 화풀이에 불과할 뿐.

조금의 정보라도 얻어낸 후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그때 처리해도 늦지 않다.

그러나 로안은 그런 내심과 달리 로달린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너를 살려줘야할 이유를 말해봐라.”

“뭐든 당신이 시키는대로 다 하겠습니다.”

로안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뭐든 다하겠다? 내 주위에 이미 그런 일을 하는 이들은 수두룩하다. 악마의 하수인이었던 너를 살려둘 이유로는 아주 부족해보이는군.”

“제, 제가 가진 모든 걸 바치겠습니다.”

로안이 귀찮다는 듯 죽여없애려 하자 로달린은 사색이 된 표정으로 아공간에서 온갖 아이템들을 내놓았다.

각종 전설 등급 장비들과 보물들.

각성석과 승급 아이템들도 수두룩했다.

로안에게는 별것 아니지만 아스피스 성의 부하들에게는 상당히 유용한 아이템들이 될 것이다.

‘역시 그냥 죽여없애는 것보다 알아서 토해내게 만드는 게 나쁘지 않군.’

로달린을 그냥 죽이면 그의 아공간에 있는 물건은 영원히 사라져버린다.

운좋으면 그중 몇개가 드롭템으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로안의 경우 드롭률 페널티가 걸려 있어 허접한 아이템만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저건?’

그러던 로안의 두 눈에 이채가 일었다.

로달린이 내놓은 아이템 중에서 특이한 것이 하나 보였던 것이다.

[봉인된 지도]

-분류 : 보물

-등급 : 전설

-설명 : 봉인을 풀면 대전장의 신비한 비밀 중 하나를 알 수 있음

-봉인 해제 조건 : 레벨 100 혹은 총스탯 170

[당신은 봉인된 지도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봉인을 해제하겠습니까?]

“예.”

[〈고대의 유적 평원 대전장의 비밀 지도〉를 얻었습니다.]

총스탯으로 가볍게 제한이 풀렸다.

[고대의 유적 평원 대전장의 비밀 지도]

-분류 : 보물

-등급 : 전설

-설명 : 고대의 유적 평원 대전장에는 지상보다 더 방대한 지저 세계가 존재한다. 이 지도에는 지저 세계로 진입하는 게이트가 숨겨진 지점이 그려져 있다.

‘지저 세계라고?’

로안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잘됐군. 그렇지 않아도 지저 세계로 들어갈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말이야.’

대전장 지저 세계의 보스 지켄.

레벨 99 월드 보스인 지켄을 쓰러뜨리면 심연의 신비 조각을 얻을 수 있다.

천룡도법 12성에 신령한 빛의 성배가 있는 이상 지켄 따위는 이제 로안의 적수가 아니다.

‘지켄의 불멸도를 쥐고 공격하면 그놈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한 걸.’

지켄의 불멸도는 이전에 네르나스가 지켄을 협박해서 챙겨온 랜덤 박스에서 나온 신화 등급 장비다.

아마도 지켄으로서는 보기만 해도 울화가 치밀 장비일 것이다.

* * *

로달린은 아스피스 성의 내부에 위치한 감옥에 수감됐다.

놈을 심문해 유용한 정보를 캐내는 건 아스피스 성의 퀸인 엘레토르에게 맡겨두면 되는 일.

「로달린은 네게 맡기겠다, 엘레토르. 이제 다음 악마 거점으로 이동해라.」

「네, 주인님. 다음은 피에 굶주린 엘프 마을 유적입니다. 평균 레벨은 70. 흡혈귀들로 이루어진 녀석들이죠. 악마 각성자는 루피르 왕국에서 피의 공작이라 불리는 샐런입니다.

대악마 레머스를 섬기고 있어 조심하셔야······아니, 그래봤자 어차피 주인님께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하세요.」

「지금 날 걱정해주는 건가?」

「메이드가 주인님을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로안은 엘레토르에게 이런 말을 듣자 왠지 기분이 묘했다.

지금이야 로안 앞에서 고분고분한 메이드가 되어 있지만 본래는 희대의 악마 각성자인 마현자가 바로 그녀다.

사르곤 제국 최강의 비밀 암살자 조직인 암부의 수장이기도 했고.

‘게임에서도 엘레토르를 메이드로 부려본 적은 없는데 기분이 뭔가 산뜻하네.’

그야말로 파멸의 용 네르나스를 메이드로 얻은 것 못지않게 뿌듯한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네르나스도 지금 옆에 있다면 꽤 힘이 될 텐데 말이야.’

저주로 인해 석화되어버린 최강의 드래곤.

펫이자 동시에 메이드인 네르나스의 부재가 왠지 아쉬웠다.

「주인님! 그리고 혹시 가능하다면 샐런도 살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루피르 왕국의 실세인 만큼 살려두면 이용가치가 매우 많거든요.」

「그야 어렵지 않은 일이다. 생포해올 테니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맡겨주세요. 감옥에 빈방은 차고 넘치니까요.」

엘레토르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스피스 성은 새로운 유적 근처에 도착했다.

피에 굶주린 엘프 마을 유적.

악마 거점 중 하나다.

「로드! 게이트를 생성했어요.」

「대기해라. 금방 끝내고 돌아오겠다.」

로안은 게이트를 통해 유적으로 이동했다.

[피에 굶주린 엘프 마을 유적에 진입했습니다.]

악마 거점 중 하나지만 매우 평화로워보이는 마을.

엘프들 또한 선량해보이는 모습들이다.

그러나 저들은 모두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저주의 존재들.

‘블러디 엘프.’

피에 굶주린 흡혈귀들이다.

‘저것들이 밖으로 나가면 재앙이 벌어진다.’

흡혈귀 영화에서 늘 보던 것처럼 누구든 피를 빨리는 순간 흡혈귀가 되어버린다.

이것들이 보통의 흡혈귀보다 몇십 배는 무서운 이유는 평상시에는 전혀 흡혈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온김에 다 쓸어버리자.’

단 한 마리도 밖에 내보내서는 안 될 저주받은 마물들.

악마 각성자 샐런 또한 아름다운 외모의 여자 흡혈귀였다.

‘귀령속박!’

귀령체 상태인 로안은 샐런의 근처로 접근해 그녀를 단번에 기절시켰다.

이는 악마 각성자를 부상 입히지 않고 악마 분신을 소환하는 방법 중 하나다.

“나와라, 악마 레머스!”

귀령 결계를 펼치는 순간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바닥에 드리워지더니 그것이 점차 형체를 갖추었다.

『인간 로안! 네놈이 진정 겁이 없구나.』

대악마 레머스의 분신!

거대한 흡혈귀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놈은 마치 로안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스스! 스스스스!

그 순간 귀령결계 안에 새롭게 생겨난 새로운 그림자 2개.

[악마 이베턴의 분신이 귀령 결계에 진입합니다.]

[악마 퍼소트의 분신이 귀령 결계에 진입합니다.]

모두 거대 흡혈귀 형상의 악마들.

대악마 레머스의 계보 아래 속한 놈들로 저중 단 하나를 만나도 실로 끔찍스럽기 짝이 없는 무서운 악마들이다.

그러나 로안의 표정은 담담했다.

‘천룡도법과 성배를 얻기 전이었다면 꽤 고전했겠지.’

대악마 하나와 일반 악마 둘.

샐런의 몸에 악마가 셋이나 붙어있다는 것이 뜻밖이긴 했지만, 사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악마들 또한 그 사이 로안의 공격에 대비를 하고 있었을 테니까.

지금처럼 각개격파 당하지 않겠다는 뜻.

『로안! 네놈이 이곳을 공격할 것이라 우리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흑발에 얼음처럼 하얀 피부.

두 눈은 푸른 색으로 빛나고 있는 거대 악마 레머스

놈은 음산한 미소를 피워대며 말을 이었다.

『바보같고 무능한 여신들이 한낱 인간 놈에게 너무 많은 권능을 부여해 너같은 괴물을 만들어냈다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감히 하찮은 인간으로서 분수도 모르고 넘보지 못할

영역을 넘본 네놈의 죄를 오늘 묻도록 하겠다.』

세 악마가 로안을 정삼각형을 이루며 포위했다.

그러나 로안은 담담히 웃었다.

“그럼 나도 한 가지 물어보자. 오늘의 이 함정은 너희와 결탁한 여신들도 관련이 있는 건가?”

그러자 레머스가 큭 웃었다.

『제법 머리가 잘 돌아가는구나. 네놈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존재는 우리들뿐 아니라 여신들 중에도 있지. 그만큼 네가 분수를 모르고 날뛰어 그녀들의 심기를 거슬렀음을 의미한다.』

레머스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뭐든 적당했어야지. 여신들이 좀 어울려주니 네놈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았느냐? 그녀들이 화신으로 나타나 대화 좀 해주었다고 네놈이 그녀들과 동등한 존재라고 착각한

것이냐? 크크큭! 천만에! 네놈은 아주 하찮은 벌레에 불과할 뿐이야.』

“글쎄! 누가 벌레인지는 잠시 후에 알게 되겠지.”

로안의 시큰둥한 대꾸에 레머스는 실소를 흘렸다.

『이 상황에도 객기를 부리다니 아무리 봐도 네놈은 정상이 아니로구나. 하긴 제정신이라면 그러고 서 있을 수도 없겠지. 어찌보면 네놈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녀석이라 할

수 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너는 네가 죽으면 네가 믿는 트렐라가 널 다시 부활시켜줄 거라 믿고 있나본데, 이미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트렐라가 어떤 꼴이 되어 있는지 네놈은 상상도 못하겠지.』

트렐라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쯤은 로안도 짐작하고 있다.

그러나 저놈들이 조롱할만큼 처참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인가?

‘그럴 리 없어.’

트렐라가 누구인가?

설령 49악마가 한데 덤빈다 해도 쉽사리 패배하지 않을 만큼 강한 여신이다.

뭐 어디까지나 게임의 설정이었으니 여기 현실 세계에서는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건 하나야.’

지금 트렐라가 어떤 상태이든 악마들이 진실을 말할 리가 없다.

따라서 놈들의 말을 듣고 부화뇌동할 것 없다.

‘나는 내가 할 일만 하면 돼.’

그건 바로 악마들을 사냥하는 일.

길게 끌 것 없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 너희들과 결탁한 여신들이 누구지?”

『멍청한 놈이로군. 지금 상황에서 그게 왜 궁금한 것이냐? 차라리 살려달라고 빌지 그래. 그러면 혹시 아느냐? 네놈이 나의 노예가 되는 조건으로 목숨만은 살려줄지 말이야.』

“너희들의 말대로라면 난 곧 죽는다. 아니면 노예가 되겠지. 그러니까 알려줘도 되지 않나? 대체 누가 너희들과 한패가 된 거냐?”

『헤나와 루넬리스다. 답이 됐느냐?』

로안은 큭 웃었다.

‘아까 그놈은 카보네스라고 하더니.’

고인물의 직감 상 헤나와 루넬리스는 아니다.

대악마 레머스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러 무고한 여신들의 이름만 말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프릴리스는 죽었고, 헤나와 루넬리스는 아니고.’

카보네스 확정이라면 나머지는 헤트시아, 베로니카, 그라나스, 트렐라 중 하나다.

이중 당연히 트렐라와 그라나스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헤트시아와 베로니카 중 하나라면?

‘베로니카겠네.’

로안은 사실 헤트시아는 처음부터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부심이 높은 존재는 배신 따위는 하지 않으니까.’

결론적으로 카보네스와 베로니카.

이 둘이 바로 배신여신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고맙다, 대악마 레머스! 네 덕분에 배신자들이 누군지 알았다.”

『크카카카!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한다면 엎드려 빌어라. 나의 노예가 되겠다고 말이야.』

“귀찮군. 이제 그만 끝내자.”

로안이 성배를 앞으로 겨눈채 천룡기(天龍氣)를 주입하자 강력한 칠색의 광채가 태양처럼 이글거리며 귀령 결계 안을 뒤덮었다.

이에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낀 레머스가 거대한 대검 형상의 마검을 생성해 양손으로 붙잡고 휘둘렀다.

콰아앙! 콰아앙! 콰콰쾅!

그 사이 악마 이베튼과 퍼소트 역시 마검을 소환해 로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악마의 분신들이지만 모두 강력한 검술을 구사하는 존재들.

그러나 로안의 움직임은 그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성배와 세 번 격돌한 후 재차 공격을 가하려던 대악마 레머스의 머리가 팍 하고 터져나갔다.

동시에 좌우에서 덤벼들던 악마 이베튼과 퍼소트의 분신은 칠색 빛의 그물망에 휩싸여 비틀거렸다.

천룡기망으로 일시적으로 쇼크 상태!

로안이 질풍처럼 휘돌며 성배를 휘두르는 순간 이베튼과 퍼소트의 머리 역시 터져나갔다.

[악마 이베튼의 인장을 얻었습니다.]

[악마 퍼소트의 인장을 얻었습니다.]

두 인장은 각각 보너스 스탯 1포인트로 변환됐다.

『네놈이 감히!』

그 사이 대악마 레머스의 부서진 머리가 복원됐다.

놈은 대악마 답게 머리 한 번 부서진다고 죽지 않는다.

‘저놈도 일곱 번을 부숴야 죽지.’

이래서 대악마를 상대하는 건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력이 놈과 비등했을 때의 얘기다.

지금처럼 로안이 압도적으로 강한 상황에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칠십 번이라고 해도 별로 어려울 게 없다.

천룡도법 12성에 이른 로안의 신묘하면서도 쾌속한 움직임은 대악마 레머스의 분신으로는 따라잡기 불가능하니까.

레머스가 사력을 다해 공격을 했지만 놈은 연거푸 다시 여섯 번 머리가 박살나고 말았다.

『크으윽! 어찌 이런 일이! 나 레머스가 너 따위 미천한 인간 놈에게······.』

쿠웅 소리와 함께 레머스의 거대한 몸체가 맥없이 쓰러졌다.

『두고보자, 인간 놈! 이제 신계의 전쟁까지 연관된 이상 인계의 전쟁으로 끝나지 않는다. 네놈에게는 내가 반드시 오늘의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다······.』

이미 분신이 죽었는데도 레머스는 미련이 남는지 로안에게 계속 협박을 해왔다.

그러나 로안은 놈의 말 따위는 무시한 채 놈의 몸체에서 인장을 찾아냈다.

[대악마 레머스의 인장을 얻었습니다.]

[대악마 레머스의 인장이 보너스 스탯 2포인트로 변환됩니다.]

[귀령 결계가 사라집니다.]

그와 함께 절규하듯 협박을 날리던 레머스의 염화 또한 점점 작아지더니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한 번에 2포인트라니 괜찮네.’

이로써 도합 4포인트.

250포인트까지는 앞으로 7포인트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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