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의 명예를 높여주면 생기는 일 (2)
여신 헤트시아의 화신 크시아.
그녀는 특유의 아름다운 붉은 머리카락을 한손으로 쓸어넘기며 담담히 웃었다.
“로안 네가 그라엘을 포기시키다니 뜻밖이구나.”
“모두 보고 있었나 보네.”
“아니. 지금 막 도착했어. 느닷없이 그라엘이 진영을 탈퇴하고 중립을 선언하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와봤는데 네가 보여서 짐작했을 뿐이야.”
크시아와는 오랜 만이다.
친구처럼 지내기로 해서 그러고 있지만 그녀를 본 순간 묘한 긴장감이 들었다.
당연하다.
헤트시아 진영의 수장.
이번 신계 전쟁의 발단이자 주축인 존재가 바로 그녀이기 때문이다.
‘크시아에게 포로를 바쳐볼까?’
만약 그라엘처럼 그녀가 전쟁 자체에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면 이 전쟁은 오늘로 종료되게 된다.
‘소용없는 짓이야.’
고인물의 직감이다.
크시아는 그라엘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이니까.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동안 왜 아스피스 성에 오지 않았어?”
달리 할 말도 없어서 로안은 이렇게 물었다.
크시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널 괴롭게 한 배후에 내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니?”
“대충은.”
“그래서야.”
“······?”
“가봤자 환영받지 못할 텐데 굳이 갈 이유가 없지. 네가 날 경멸하듯 바라보는 건 싫거든.”
“그래도 날 친구로 생각한다면 더욱 왔어야 한다.”
“우리가 친구?”
“아니었나?”
로안이 무안해하는 표정을 짓자 크시아가 슥 다가와 머리를 가까이 대고 쳐다봤다.
“그 사이 너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구나, 로안.”
“그게 무슨 소리야?”
“내 앞에서 아주 당당해졌거든. 이전에는 나의 눈치를 보며 말했는데 지금은 내 앞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있어.”
로안은 픽 웃었다.
“천만에! 지금도 눈치를 잔뜩 보고 있다. 네가 누군지 알고 있는데 눈치를 어떻게 안 볼 수 있어?”
“말은 그래도 넌 지금 내 앞에서 매우 당당해. 물론 그런 모습이 솔직히 싫지 않아. 그래야 내 친구답지.”
“그냥 네 말대로 널 친구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린 친구 맞아. 아니, 친구이길 바라고 있어. 이건 진심이야.”
“나 또한 진심이다.”
순간 크시아가 로안을 노려봤다.
“진심이라면 내 편을 들어줘야하는 거 아닐까? 말로만 친구일 뿐 넌 나를 경멸하고 있어.”
“경멸한 적 없다. 조금 화가 나있는 건 인정하지만.”
“화가 나 있을 건 또 뭐야? 내가 뭘 그리 잘못했지?”
“트렐라 님에 대한 너의 승부욕은 인정하지만 굳이 이렇게 신계에 전쟁까지 일으키며 혼란을 일으킬 것까지는 없잖아.”
“오해하지 마. 내가 일으키지 않아도 언제고 일어날 전쟁이었어. 난 그걸 앞당겼을 뿐이고.”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본래 카오니아 게임의 흐름에서도 여신들의 전쟁은 항상 벌어졌으니까.
헤트시아가 깨어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로안은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물었다.
“아무튼 그래서 결국 끝장을 볼 생각이야?”
“그래. 비록 그라엘이 탈퇴하긴 했지만 여전히 내가 유리한 상황이야. 남은 시간 동안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될 거고.”
“대체 그렇게 필사적인 이유가 뭐지? 여신들이 싸우면 악마들만 유리해지는 걸 몰라?”
“악마들 따위는 어차피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해.”
“신계는 그렇지만 카오니아 대륙에는 뜻하지 않은 재앙이나 피해가 올 수도 있어. 고작 승부욕 따위로 그런 걸 초래할 셈이야?”
그러자 크시아가 발끈하며 대꾸했다.
“고작 승부욕이라고? 말이 너무 심하구나.”
아무래도 화가 크게 난 듯하다.
그러나 로안은 어차피 크시아와 화기애애한 대화를 할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오늘은 대판 싸우더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
로안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친구로서 진심으로 충고하는 거야.”
“흥! 난 트렐라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패배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유독 트렐라에게만은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어. 그래서 한번쯤은 이겨보고 싶다고. 그게 그리 잘못이야?”
“여신은 그 자체만도 존귀한 존재야. 누가 꼭 더 우위에 있고 그런 게 그리 중요해?”
“당연히 중요하다. 인간인 넌 절대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아니, 나는 인간이라서 너무 그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 지금 너의 행동은 인간들과 다를 바 없으니까.”
순간 크시아가 할말이 없는 듯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그건 인정한다.”
인간의 감정을 가진 신들.
신계가 평화롭지 못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하필이면 그 설정까지 그대로 이곳 세계에 적용되어 있는 것인가?
뭐 그래서 고인물에게는 오히려 기회이긴 하지만.
“인정한다니 다행이군. 어쨌든 넌 승부에 너무 집착하는 게 문제다.”
“집착하는 게 뭐 어때서?”
로안은 크시아의 두 눈을 강하게 바라봤다.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넌 너의 뜻을 바꾸지 않겠지만. 그래도 네가 날 친구라고 말한 이상 나 또한 친구로서 너에게 비극을 피할 길을 알려주고 싶어서야.”
“비극이라고?”
“이대로라면 너에게 아주 슬픈 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네가 여기서 전쟁을 중단한다면 그런 비극은 오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러자 크시아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내가 전쟁을 포기하는 일은 없다. 그때 가서 비극을 맞이하는 건 트렐라일 뿐이야.”
“미안하지만 그런 상황이 와도 너에겐 비극이 기다리고 있어.”
“내가 승리해도 오히려 비극이 찾아온다고?”
“무척이나 서러운 일이 벌어지게 될 거야.”
“적당히 하는 게 어때? 그런 식의 말장난 따위는 재미없거든.”
“말장난이 아니야.”
“대체 네가 말하고 싶은 건 뭐지?”
“그냥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자는 뜻이다. 유치한 전쟁은 그만 두고. 그럼 특별히 네게 패리드 호수 영구 무료 이용권을 주겠다.”
“영구 무료 이용권?”
“아주 파격적인 조건이야. 지금껏 다른 여신들에게는 최대 30일 정도만 줬을 뿐이니까. 그만큼 널 특별취급해주는 거지.”
그러자 크시아가 기막혀하는 표정을 짓더니 싸늘히 웃었다.
“그래도 싫다면?”
“끝까지 전쟁을 원하는 거냐?”
“우린 이미 전쟁 중이야. 내가 네 앞에 나타난 것도 너에게 선전포고를 하기 위함이고.”
“선전포고?”
“앞으로는 널 더 이상 친구라고 봐주지 않아. 난 이 전쟁 반드시 이길 거니까.”
“그동안은 봐준 거였나?”
“상당히.”
“그랬군.”
“사실 난 그냥 관조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내가 움직일 수밖에 없어. 그만큼 로안 네가 대단하다는 증거다. 트렐라가 널 대타로 내세울 만해.”
그녀의 두 눈이 이글거렸다.
“특히 포로를 바쳐서 그라엘을 포기시킨 건 아주 대단한 수법이었다. 나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지만.”
“운이 좋았을 뿐이야.”
“하지만 그런 운은 더 이상 작용하지 않아. 내가 직접 간섭한 이상 넌 무조건 패배한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래. 알았다.”
로안은 탄식하며 끄덕였다.
이렇게 나올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마지막 기회를 줘본 건데.
‘친구라는 말에 나도 좀 마음이 약해져서 말이야.’
비록 성질이 좀 많이 더럽고 제 멋대로이긴 하지만, 여신들 중에 친구처럼 지내자며 로안에게 말한 이는 크시아뿐이다.
아니, 따져보면 환생 후 만난 이들 중 이처럼 격식없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낸 이도 크시아가 유일하다.
‘하지만 끝까지 파멸을 선택한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로안은 씁쓸한 표정으로 크시아와 작별한 후 가디언 무르키를 타고 넬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없네?’
독서하는 소녀 컨셉의 화신 넬리.
그녀가 자리를 비울 줄이야.
‘크시아 때문인가?’
아무래도 로안이 헤트시아 연합 소속 여신들과 더 이상 접촉하지 못하도록 막을 셈인 모양이다.
〈 로안 님, 저는 사정상 자리를 비웁니다. 낚싯대는 나무 아래 놓아두세요. ―넬리〉
넬리가 항상 앉아있던 그 자리에 적혀 있는 메모.
그러고 보니 낚싯대도 반납해야 한다.
로안은 신의 숲 은빛 낚싯대를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남아있는 마신의 숲 가디언 포로를 넬리에게 바치고 전쟁을 포기시킬까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 할 듯하다.
‘일단 메인 임무부터 해결하는 게 좋겠군.’
무르키를 타자 신의 숲 입구도 금방이었다.
그 순간 들려오는 알림.
[당신은 권능 도구를 소지한 채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라엘의 호미와 망태기를 반납하시겠습니까?]
[반납 중에도 망태기 속의 물건은 안전하게 보관됩니다.]
“예, 반납합니다.”
권능 도구를 반납하자 신의 숲 입구로 나가는 결계가 열렸다.
무르키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제 인간 세계로 돌아가는 건가? 언제든 이 숲에 들어오면 나를 소환해라, 인간.”
“그래. 다음에 보자, 무르키.”
로안은 신의 숲 밖으로 나가 일단 아스피스 성으로 귀환했다.
그렇게 로안이 사라지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신비한 붉은 머리 소녀.
다름아닌 크시아다.
‘나에게 슬픈 엔딩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낱 인간인 로안의 말일 뿐이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냥 무시하려고 했지만 왠지 그 말이 계속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날 걱정해주는 건 진심 같긴 하지만.’
크시아는 잠시 복잡한 눈빛으로 로안이 떠난 곳을 쳐다보다 이내 사라졌다.
* * *
아스피스 성으로 귀환한 로안은 메인 임무 창을 살펴보며 여섯 번째 용사인 오델리아의 위치를 확인했다.
친절하게도 맵에 오델리아의 위치가 떠 있어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레온 왕국?’
그것도 남부 저주의 숲 근처다.
왜 그녀가 그 근처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잘됐군. 어차피 저주의 숲에도 볼일이 있었는데 말이야.’
심연의 신비 조각 때문이다.
[지켄Lv99, World Boss]
[저주의숲 혈강시 요후Lv90, Boss]
[사르곤 제국 황제 디우스]
7개의 조각 중 현재 4개를 모은 상황이다.
나머지 3개 중 하나를 혈강시 요후가 가지고 있다.
“성주님!”
곧바로 저주의 숲으로 이동하기 위해 귀령체로 변신하려던 로안은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은빛 로브의 미소녀가 로안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레이 님?”
이곳은 아스피스 성에 있는 성주의 저택 정원이다.
레이의 저택 또한 이 정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녀는 로안이 나타난 걸 보고는 곧바로 다가온 것이다.
“레이가 성주님을 뵈어요.”
로안은 밝게 미소 지었다.
“별일 없죠? 불편한 건 없나요?”
“덕분에 너무 잘 지내고 있어요.”
마도사 레이의 레벨은 75.
그 사이에도 꾸준히 레벨을 올리고 있었나 보다.
매번 볼때마다 달라진 그녀의 기세를 보며 로안도 놀랄 정도다.
‘정말 꾸준한 노력파라니까.’
그때 레이가 아공간에서 뭔가를 꺼냈다.
“받으세요, 성주님.”
“이건 뭔가요?”
“유적을 돌다가 운좋게 얻었어요. 성주님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작은 상자다.
뚜껑을 열어보니 신비한 칠색의 구슬이 빛나고 있었다.
[성광의 보옥(신화)을 얻었습니다.]
[성광의 보옥]
-분류 : 보물
-등급 : 신화
-내구 : 1/1
-설명 : 고대 여신의 성광이 깃든 보옥으로 아이템의 레벨 제한을 없애준다.
“오! 이건?”
로안은 깜짝 놀랐다.
이건 신화 등급 아이템 중에서도 아주 희귀한 물건이다.
그만큼 이것을 얻기란 매우 어렵다.
드롭률이 극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사실 로안도 이걸 찾고 있었다.
다름아닌 천룡도법 때문이다.
[천룡도법(天龍刀法)]
-분류 : 비급
-등급 : 신화
-설명 : 천룡의 움직임을 따라 고대의 전투신이 창안한 도법.
-습득 제한 레벨 Lv90
-습득 제한 직업 : 천도객
이전에 고대 학살자의 상자에서 얻은 이 비급은 레벨 90이 되어야 익힐 수 있다.
페널티로 인해 레벨 업이 막혀 있는 로안으로서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
그런데 성광의 보옥이 있으면 이 제한을 풀 수 있다.
‘드디어 천룡도법을 익힐 수 있게 됐구나.’
그는 곧바로 레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건 저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될 물건이군요. 염치없지만 사양하지 않고 받겠습니다. ”
그러자 레이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기뻐하셔서 다행이에요.”
“그러고 보니 레이 님께는 항상 받기만 하는 것 같군요.”
토실이.
심연의 신비 조각.
오늘은 성광의 보옥까지.
하나같이 로안에게 매우 소중한 것들이다.
“별 말씀을요. 약소한 것이니 신경쓰지 마세요.”
“저도 보답하고 싶습니다. 뭐든 원하는 게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성주님께 도움이 되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그럴 순 없죠. 말씀을 안 하시니 그럼 조만간 제가 알아서 선물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러자 레이가 눈을 반짝이며 로안을 쳐다봤다.
“성주님의 뜻이 그렇다면 제가 원하는 걸 말씀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어서 말씀해 보세요.”
“귀여운 고양이 펫이 가지고 싶어요.”
아! 역시 기억하고 있었구나.
로안은 토실이를 얻은 대가로 레이에게 귀여운 고양이 펫을 구해주겠다며 약속해놓고는 지금껏 그걸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레이에게 무척 미안했다.
“알겠습니다. 가능한 빨리 고양이 펫을 구해드릴게요.”
레이가 미소 지었다.
“무리하지 마세요. 그냥 제가 원하는 것이 뭔지 궁금해하셔서 말씀드린 것 뿐이에요.”
“그럴 수는 없죠. 언제적 약속인데.”
“그 약속 잊으신 줄 알았는데 아직 기억하고 계셨나요?”
“물론이죠.”
“하지만 당장 고양이 펫이 없다고 제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나중에 천천히 구해주세요.”
예전부터 그랬다.
내용을 떠나서 레이와 대화를 하다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신들과 대화를 할 때는 한 마디 한 마디 계산을 해야하고 고인물로서의 기지도 발휘해야 해서 많이 피곤하다.
그러나 레이와는 그냥 마주보고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성주님 그럼 저는 이만.”
로안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자 레이는 왠지 쑥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러갔다.
* * *
[성광의 보옥이 사라졌습니다.]
[천룡도법의 레벨 제한이 사라졌습니다.]
[천도객인 당신은 천룡도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천룡도법을 익히겠습니까?]
“예.”
레이 덕분에 얻은 성광의 보옥!
드디어 천룡도법 수련이 시작됐다.
로안은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이었다.
[천룡도법 1성 체화 중입니다.]
[0% 체화 중]
이제 시간에 맡겨두면 된다.
무극도법과 함께 신화 등급 최강의 비급인 터라 본래라면 습득에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로안은 수련 시간이 대폭 단축되는 아이템인 [신령한 빛의 조각 ? 수련]을 보유하고 있다.
‘아마도 며칠 이내에 10성까지 충분히 익힐 수 있을 거야.’
거기에 신화 비급 승급석을 사용하면 천룡도법을 12성까지 익힐 수 있다.
‘천룡도법 12성이면 월드 보스 지켄을 만나도 해볼만 하지.’
로안은 흐뭇하게 웃으며 귀령체로 변신했다.
‘귀령이동!’
그의 몸이 아스피스 성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레온 왕국 저주의 숲 초입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도 정말 오랜만이군.’
환생 초반에 블러디 좀비 상태로 장삼과 함께 좀비들에게 쫓기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저기 사람들이 있네?’
저주의 숲 초입에는 강시들의 존이다.
레벨 10에서 20 정도까지 사냥하기 적당한 장소다.
그래서인지 레벨 20이하의 각성자들이 수두룩 했다.
“이보슈! 여기가 고블린 던전보다 각성석과 10레벨 승급석이 잘 나온다는 데 사실이오?”
“글쎄요. 그렇다는 말은 있지만 어차피 다 운빨 아니겠소?”
“빌어먹을! 그놈의 운빨!”
“난 고블린 던전 3구역에서 사냥하는 것도 지쳤어. 차라리 좀 위험하더라도 강시들을 잡는 게 나아.”
“맞아요. 여기가 10레벨 승급석은 확실히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 사이 이곳도 많이 알려진 모양이다.
저레벨 각성자들끼리 각종 정보를 교환하며 파티를 맺느라 입구는 떠들썩했다.
‘틀린 말은 아니야. 여기가 고블린 던전보다 드롭률이 훨씬 높지.’
로안은 귀령체 상태라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걸어가는 데도 사람들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미니 맵을 보니 저쪽인가?’
어둠을 밝히는 빛 중 하나.
여섯 번째 용사 예정자인 오델리아.
검은 후드로 얼굴을 가린 그녀는 강시들이 있는 숲의 안쪽 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다.
【이름】 오델리아
【레벨】 19
【종족】 엘프
【신분】 탈주한 노예
【소속】 사르곤 제국 엘레토르 후작
커다란 나무 기둥 주위로는 10여 마리의 강시들이 몰려 있는 상태.
그러나 강시들의 능력으로 나무 위로 올라가지는 못했다.
오델리아는 나뭇잎 사이에 은신한 채 불안한 눈빛으로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쫓기고 있군.’
탈주한 노예이니 가장 두려워하는건 추노꾼이리라.
그런데 오델리아의 주인이 다름아닌 엘레토르일 줄이야.
악마 각성자 중 한 명인 마현자 엘레토르 후작.
‘어쩌다 엘레토르의 노예가 된 거냐?’
그래도 용사 예정자인데 악마 각성자의 노예라니.
‘얄궂은 운명이네.’
그나마 다행인 건 로안이 그녀를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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