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으로 독존한다-208화 (208/240)

< 신의 숲을 활보하다 (4) >

트렐라의 화신 트리아나.

그녀의 모습을 보는 건 지난 번에 이어 오늘이 두 번째다.

처음 봤을 때처럼 두 눈이 번쩍 뜨이는 미모.

특유의 몽환적이면서도 도도한 자태.

컨셉이 아니라 그녀 자체가 본래 그런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

그야말로 다른 여신들이 무슨 수를 써도 따를 수 없는 압도적인 분위기다.

“트리아나 님을 뵙습니다!”

로안은 약초를 캐던 자세 그대로 정중히 그녀를 향해 예를 취했다.

트리아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직하게 한숨을 토했다.

“내 약초밭의 약초를 몽땅 캐버리다니. 지금껏 이런 일을 벌인 이는 네가 처음이구나.”

순간 로안은 흠칫했다.

이곳이 트리아나의 약초밭이었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유독 이 지점에만 약초들이 잔뜩 모여있긴 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트리아나가 픽 웃었다.

“그냥 네가 처음이라는 뜻일 뿐 나무라는 건 아니야. 혹시 그라엘이 시켰니?”

“시켰다기보다 거래입니다. 그녀가 원하는 약초를 캐주고 메인 임무를 앞당겨 받기로 했죠.”

“그랬구나. 그럼 계속 수고해.”

트리아나는 근처의 바위에 걸터앉아 조용히 와인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로안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묻지 않으시는 거죠?”

“뭘 말이야?”

“사실 제가 메인 임무를 하게 되면 영향력 포인트 전쟁에서 당신이 굉장히 불리해집니다. 따라서 왜 제가 그런 불리한 일을 하는 지에 대해 물어보실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그러자 트리아나는 담담히 웃었다.

“지난 번에 말했듯 나는 이번 전쟁을 온전히 네게 맡겼어. 네가 어떤 작전을 짜든 그것은 너의 자유야.”

“패배해도 말입니까?”

“다시 말하지만 반드시 이길 생각이었다면 네게 맡기지 않았을 거야. 가능하면 한 번 져보고 싶어서 네게 맡겼지만.”

그녀는 와인을 한 모금 홀짝이며 말을 이었다.

“아쉽게도 이번 전쟁 역시 내가 질 것 같지 않네.”

“이 상황에도 승리를 확신하고 계시군요.”

“너의 눈빛이 지난 번에 봤을 때보다 더욱 자신감에 차있으니까. 그런 눈빛을 가진 네가 이유없이 불리한 거래를 할 이유가 없겠지.”

만사에 관심없다는 듯 술만 마시고 있는 그녀지만 로안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다만 어떤 전쟁이든 끝나기 전까지는 섣불리 승리를 속단해서는 안 돼. 특히 크시아는 그리 만만한 존재가 아니거든. 아마도 앞으로 꽤 재미있어질 거야.”

“방심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로안도 크시아가 조용한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다.

트렐라와 비견될 만큼 강한 고대의 여신이다.

어쩌면 상상도 못할 역습이 들어올 수도 있다.

‘방법은 최대한 빨리 250 스탯을 달성하는 것뿐이야.’

어떤 상황에도 여신들의 향연만 열 수 있다면 상황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

물론 남아있는 메인 임무 2개를 마치고 신령한 빛의 성배도 얻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약초를 캐고 있는 것이다.

“혹시 잊혀진 여신들의 화신은 어디에 가야 많이 만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까?”

넬리나 그라엘은 그쪽으로는 워낙 정색을 하며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해 물어볼 수 없는 내용이다.

트리아나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 물어봤지만.

“왜 네가 그녀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거지?”

뜻밖에도 트리아나 역시 상당히 싸늘한 반응이다.

‘기분 나빠하고 있어.’

한낱 유령 여신일 뿐인데.

왜 저리 과민반응을 하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비유가 좀 그렇긴 하지만 마치 사귀는 애인 앞에서 다른 여성의 이름을 꺼냈을 때의 반응과 유사하달까?

“혹시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그녀들의 이름을 기억하면 스탯을 얻을 수 있어서일 뿐입니다.”

여신들의 향연을 열겠다는 얘기는 아무리 트리아나라고 해도 말할 수는 없다.

그건 철저한 고인물의 영역이니까.

그러나 스탯을 얻는 건 말해도 된다.

레벨 제한으로 더 이상 강해질 수 없는 지금으로서는 그나마 강해질 수 있는 최선의 방법.

“내가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만.”

트리아나는 탄식했다.

곧이어 그녀는 뭔가 복잡한 눈빛으로 로안을 노려봤다.

“그런 식으로 얻은 스탯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넌 알고 있니?”

“스탯에도 다른 의미가 있습니까?”

“물론이야. 네가 그동안 얻은 스탯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가 존재해. 잊혀진 여신의 이름이 너의 마음 깊이 각인되는 대가로 얻은 것이니까.”

트리아나는 무척이나 자존심 상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네가 나 말고 그녀들을 그만큼 의지한다는 뜻이야. 나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절대 아닙니다. 그냥 이름 하나 기억하는 것뿐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그 의미 없는 일이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는 걸 모르는구나.”

트리아나의 표정이 더욱 싸늘하게 변했다.

그냥 농담이 아니라 잔뜩 화가 나서 폭발하기 직전의 단계.

‘진정시켜야 해.’

솔직히 왜 저러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트리아나가 폭주하게 둬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알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잊혀진 여신들의 화신들과 일절 소통하지 않도록 하죠.”

순간 트리아나의 표정에서 분노의 기색이 눈에 띄게 사라졌다.

그러고 보면 여신들은 단순하게 느껴질 정도로 표정의 변화를 숨기지 않는다.

트리아나도 마찬가지.

“몰라서 한 것이니 이번은 넘어가겠지만 또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트리아나는 싸늘한 미소를 흘리며 돌아섰다.

“그땐 너와 난 끝이야.”

끝이라니!

이는 트리아나에게 버림받는다는 뜻.

‘참나.’

또 다시 바람피우면 그땐 끝이야!

마치 이런 경고를 듣는 기분이다.

정말로 바람이라도 피우고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억울하지나 않지.

그저 다른 여신의 이름 하나 기억하고 스탯 좀 받았다고 이런 경고를 듣게 될 줄이야.

하지만 여신들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여신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뭔가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매우 기분나쁠 수 있는 모양이다.

‘특히 잊혀진 여신들에 대해 매우 민감해.’

현역 여신인 그라엘의 경우에는 그녀와의 거래를 위해 약초를 캐고 있다 말했지만 트리아나가 그다지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니까.

‘이런 것도 컨셉인 건가?’

아무튼 이래서 여신들은 피곤한 존재다.

물론 단순한 면도 많으니 기분을 맞춰주는 건 어렵지 않다.

“지금이라도 가능하다면 그녀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얻은 스탯을 포기하겠습니다.”

로안의 그 말에 트리아나의 표정이 다시 변했다.

어느새 분노는 사라지고 특유의 몽환적이면서도 로안에게 호의적인 분위기로 돌아왔다.

“네가 정말로 스탯을 포기하겠다면 그 또한 이루어질 거야. 스탯이 사라짐과 동시에 그녀들의 이름도 너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게 될 테지.”

그 순간 들리는 알림.

[특수스탯 재치 1 포인트와 민첩 스탯 2 포인트를 포기하겠습니까?]

‘후! 이건?’

단지 기분을 맞춰주려고 했을 뿐인데 정말로 이런 선택지 알림이 뜰 줄이야.

‘어쩔 수 없지.’

피같은 스탯 3 포인트를 날려야 할 상황이지만 여기서 트리아나와의 관계가 틀어져서 좋을 게 없다.

“포기합니다.”

[특수스탯 재치가 사라집니다.]

[당신의 민첩이 2 하락합니다.]

[당신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두 여신의 이름이 지워집니다.]

스탯이 정말 하락했다.

또한 두 여신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정말이네. 누구였는지 기억 안나.’

두 여신들의 이름은 그렇게 잊혀져버렸다.

“진심이었구나, 로안. 그래도 네가 날 위해 스탯마저 포기할 줄은 몰랐어.”

언제 화가 났었냐는 듯 트리아나의 표정이 무척이나 따사롭다.

지난 번에는 볼 수 없던 다정하면서도 밝은 미소.

최강 전투의 여신 트렐라의 화신인 그녀가 이토록 부드러운 표정도 지을 수 있다니 놀라운 일.

“물론입니다. 당신이야말로 그 어떤 여신들보다 제게 소중하니까요.”

기왕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기로 한 이상 이 정도 접대성 멘트를 추가해주는 거야 기본.

트리아나가 다시 미소 지었다.

“고마워, 로안. 나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너의 그 진심을 알았으니까 이젠 괜찮아.”

동시에 들리는 알림.

[트렐라가 당신의 기억 봉인을 해제합니다.]

[잊혀진 여신 하라니아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잊혀진 여신 에리스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특수스탯 재치가 1 올랐습니다.]

[민첩이 2 올랐습니다.]

뭐냐? 이건?

기억과 스탯이 다시 원상회복됐다.

“이래도 정말 괜찮은 겁니까?”

“물론이야.”

트리아나는 특유의 도도한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난 단지 널 시험해봤을 뿐이야. 너의 마음이 나에게 확고히 향해 있는 걸 알게 된 이상, 앞으로 네가 어떤 잊혀진 여신의 이름을 기억한다고 해도 난 상관하지 않을 거야.”

이 말은 로안이 앞으로 또 다른 잊혀진 여신들의 이름을 마음껏 기억하고 스탯을 얻어도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저 말을 곧이 곧대로 들으면 그야말로 순진한 거겠지.

“아닙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더 이상 잊혀진 여신들의 이름 따윈 기억하지 않을 겁니다. 저에겐 당신의 이름 하나면 족합니다.”

말을 하면서도 왠지 손발이 오그라들긴 하지만.

그래도 고인물답게 로안은 트리아나가 기분 좋아할 말을 해주었다.

역시나 트리아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다.

“지금껏 내게 그런 말을 해준 건 네가 처음이야. 앞으로도 그 마음 변치 않았으면 좋겠구나.”

“저의 마음은 영원히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고마워. 그리고 나 또한 빈말이 아니야. 불리한 전황 속에서 네가 조금이라도 유리해질 수 있다면 조금 나의 기분이 상하는 것쯤이야 감수하겠다. 그러니 잊혀진 여신의 화신을 또 만나게 되면 적극적으로 접근해 최대한 이용하도록 해.”

이말은 왠지 진심같다.

로안은 끄덕였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습니다.”

“좋은 자세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네 앞에 서 있는 나도 최대한 이용해야만 해.”

“아무리 그래도 트리아나 님까지 이용할 수는 없죠.”

트리아나가 눈을 빛냈다.

“상관없어. 이기기 위해서라면. 하지만 날 이용하고도 패배한다면 각오해야 할 거야.”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무조건 이길 테니 염려마세요.”

“기대하겠다, 로안.”

트리아나는 팔을 내밀어 와인잔을 로안쪽으로 기울였다.

순간 공간을 격해 붉은 와인이 로안의 입안으로 스며들었다.

“멋진 술 감사합니다. 와인잔이 아니라서 아쉽지만.”

와인잔으로 마시면 진짜와 같은 간접 키스가 가능하다.

그러나 트리아나는 그럴 여지를 주지 않았다.

“아쉬우면 승리해. 그땐 약속대로 이 와인잔은 네 것이 될 거야.”

왠지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말하는 그녀를 보며 로안은 더욱 성취욕이 생겼다.

비록 3번뿐이겠지만.

최강의 여신 트렐라에게 키스를 할 자격을 인정받는 건 인간이 가진 최고의 영예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상징적인 의미 말고 실용적인 용도도 존재한다.

‘와인잔은 극초월 등급이고 이 숲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도 있어.’

와인잔에 입을 대고 마시지만 않는다면 사실상 영원히 로안의 것이나 마찬가지다.

‘입 안대고 마시면 저 향긋한 와인을 언제든 마실 수 있다는 뜻이야.’

그것만이 아니다.

무기로 활용도 가능하다.

극초월 등급의 무기!

그라엘의 호미처럼 트리아나의 와인잔으로도 필살기 시전이 가능할 테니까.

“그럼 저는 이만.”

“그래. 다음에 봐.”

트리아나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로안은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돌아섰다.

‘이제 넬리의 영역인가?’

▼ 표시가 있는 쪽으로 한참 이동하다보니 거대한 푸른갈기 숫사자 형상의 가디언이 앞을 가로막았다.

〈신의 숲 맹수 무르키(Lv103, 가디언)〉

“인간 따위가 감히 신성한 숲을 활보하다니! 각오해라!”

로안은 씩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때쯤이면 가디언이 나타날 거라 생각했지. 호미와 낚싯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라.”

왼손에는 그라엘의 호미, 오른손에는 넬리의 낚싯대를 쥔 상태.

순간 가디언 무르키가 그것들의 정체를 알아보고는 움찔 뒤로 물러났다.

“그, 그것들은······! 어찌 네가 권능이 깃든 물건들을 가지고 있느냐?”

“딱 보면 모르겠나? 여신들과 친해서다.”

“그, 그렇군. 인간 네가 존귀하신 분들과 친분이 두텁다니 의외다만 그 물건들을 쥐고 있다면 나로서는 너를 어찌할 수 없다.”

“그냥 보내주겠다는 거야?”

“물론이다.”

무르키는 산처럼 거대한 몸체를 슬쩍 옆으로 이동하며 길을 내줬다.

다리를 떨고 있는 걸 보니 꽤나 두려운 모양이다.

“제법 현명한 녀석이군. 다른 녀석들은 무턱대고 덤비다 기절했는데 말이야.”

그러자 무르키가 다시 몸을 떨었다.

“부탁이니 나의 무례를 용서해라. 한 번 기절하면 복구가 너무 힘들다.”

“복구라고? 혹시 경험치라도 잃어버리는 거냐?”

무르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네게 적용되는 것과 개념은 좀 다르다만 틀린 말은 아니다. 과업이 쌓이면 이 숲이 아닌 신계의 가디언이 될 수 있지. 그러나 기절하게 되면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가디언들에게도 그런 고충이 있을 줄이야.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기절하는 경우가 제법 있는가 보구나.”

“간혹 이 숲이 마신의 숲과 연결될 때가 있어서다. 그때 마신의 숲 괴수들이 숲에 들어올 때가 있는데 방심하면 당하게 된다.”

오호!

그런 흥미로운 상황도 벌어지다니!

‘게임에 없던 설정이야.’

이제는 게임에 없던 것들이 나오면 당혹스럽기보다 뭔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마신들이란 곧 악마들을 의미하겠군.’

로안은 내친김에 물어봤다.

“그러니까 숲들이 연결되면 여신들과 악마들이 전쟁을 벌이는 거냐?”

“고대에는 그런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신들이 직접 전쟁을 벌이는 경우는 없다.”

“그럼 너와 같은 가디언들만 싸우는 건가?”

“네 말대로다. 간덩이가 부은 악마의 부하 놈들이 이 숲 곳곳에 있는 보물들을 훔치기 위해 들어오는 편이지.”

“보물이라고?”

“미안하지만 그게 뭔지는 알려줄 수 없다. 어차피 네가 안다고 해도 네게는 아무 쓸모가 없는 물건이기도 하다.”

“보물인데 왜 쓸데가 없지?”

“오직 신의 숲을 지탱시키는 성물이기 때문이지.”

“그런 식이라 이거군.”

로안은 끄덕였다.

가디언 무르키 덕분에 신의 숲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알게됐다.

“좋아, 무르키. 친절히 설명해줬으니 널 기절시키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겠다. 그럼 수고하고 소원대로 나중에 신계의 가디언이 꼭 되도록 해라.”

그러자 무르키의 두 눈이 촉촉하게 빛났다.

“고맙다, 인간. 나의 꿈을 비웃지 않고 격려해주는 존재는 네가 처음이구나.”

무르키는 감동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녀석의 눈빛이 갑자기 긴장으로 변했다.

“이런! 하필이면 또!”

“무슨 일이 있나?”

“이 숲이 지금 막 마신의 숲과 연결이 되었다. 그리고 악마의 부하 놈들이 숲으로 들어오고 있는 중이다.”

“그럼 나도 도와주마.”

“섣불리 나서지 마라, 인간. 이건 가디언들의 일이다. 신의 숲을 지키는 건 가디언들의 책무. 그대는 물러나 있어라.”

무르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뭔가 거대한 것이 숲 사이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쿵!

‘오우거?’

그런데 보통의 오우거가 아니다.

가히 10층 빌딩을 연상케하는 거대한 몸체를 가진 녀석.

〈마신의 숲 오우거 누티우스(Lv108, 가디언)〉

무려 레벨 108의 가디언.

자신보다 높은 레벨의 가디언이 적으로 나타나자 푸른갈기 숫사자 가디언 무르키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는 위축되지 않고 당당히 포효를 지르며 맞섰다.

“쿠우오오오오! 사악한 악마의 부하 놈!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침입했느냐?”

그러자 오우거 가디언 누티우스가 조소를 흘렸다.

“큭! 이게 누구야? 지난번에 나에게 맞아 기절한 놈이로구나. 여전히 주제파악을 못하고 있는 거냐?”

“닥쳐라! 이번에는 기필코 네놈을 쓰러뜨릴 것이다!”

무르키는 누티우스를 향해 돌풍처럼 돌진했다.

그러나 같은 가디언 급이라고 해도 레벨 103과 레벨 108의 차이는 엄청났다.

누티우스가 장난처럼 휘두르는 주먹에 무르키는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그대로 뻗어버린 것이다.

‘기절했네.’

로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생각 같아서는 저 오우거 녀석을 손봐주고 싶지만.

‘섣불리 끼어들지말라고 했으니 일단은 지켜본다.’

하지만 만약 오우거가 선빵을 날린다면?

그땐 정당방위가 성립된다.

오늘도 그런 이유로 신의 숲 가디언들을 잔뜩 기절시켰는데 마신의 숲 가디언들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팍! 팍!

로안은 근처의 수풀을 뒤져 약초를 캐는 척했다.

‘이런 게 은근히 열받게 하지.’

이 상황에 도주하는 것도 아니고 약초를 캐다니.

오우거 가디언 누티우스 입장에서 보면 로안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너는 뭐하는 놈이냐?”

역시나 누티우스가 로안을 향해 다가왔다.

< 신의 숲을 활보하다 (4) > 끝

ⓒ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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