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강 여신은 허무하다 (1) >
남색의 긴 머리카락.
하얀 달빛 같은 피부.
몽롱하면서도 알 수 없는 슬픔이 깃든 듯한 깊은 눈빛.
그녀는 붉은 와인이 들어있는 잔을 입에 대고 마시다 힐끗 시선을 돌려 로안을 바라봤다.
‘후!’
로안은 순간 심호흡을 했다.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정말 여신이라는 말이 어울릴만큼 아름다운 용모를 가진 소녀다.
물론 화신의 모습이지만.
지금껏 본 다른 여신들의 화신들 중 누구도 이렇게 숨막힐 듯 뇌쇄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내지는 못했다.
‘게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야.’
물론 조각같은 외모 자체는 다른 여신들도 완벽 그 자체라서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이 화신에게는 그녀들에게는 없는 분위기가 있다.
뭔가 몽환적이랄까?
허무함과 슬픔이 깃든 눈빛과 도도한 표정.
그녀는 로안을 향해 시선을 한 번 보냈다가 이내 다시 거둔채 묵묵히 와인잔을 기울이고 있다.
얼마나 마신 것인지 상큼하면서도 향긋한 와인향이 그녀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술 취한 여신 컨셉인가?’
아무튼 넋놓고 쳐다보고만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저는 로안이라고 합니다.”
로안은 그녀를 향해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그러자 그녀가 끄덕이더니 짤막하게 대답했다.
“트리아나.”
이름인 모양이다.
이것도 게임과 달라졌다.
당연히 트렐라의 화신이겠지만.
“트리아나 님을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응.”
트리아나는 와인잔을 기울인 채 살짝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뺨이 붉어져 있는 모습이 왠지 수줍어하는 표정이다.
‘그럴 리가 없지.’
최강 여신의 화신인 트리아나가 인간을 보며 수줍어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술 기운에 상기되어 있는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저기······, 트리아나 님?”
“응?”
로안이 묻자 트리아나는 화들짝 놀란 듯 커진 눈으로 로안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뺨이 붉어져 있다.
‘뭐지? 진짜 부끄러워하고 있잖아.’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설마 술 취한 여신이 아닌 수줍어하는 여신 컨셉인가?
‘그건 헤나인데?’
여신 헤나의 대표 컨셉이 바로 부끄러움이다.
그럼 설마 이 앞의 소녀는 트렐라가 아닌 헤나의 화신인 것일까?
‘아니야.’
헤나는 절대 아니다.
카리스마 때문이다.
아무리 수줍음 속에 감췄다 하지만 은연중 피어나는 카리스마가 숨이 막힐 정도다.
화신으로서도 감출 수 없는 절대 카리스마!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트렐라의 화신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런 건 정말 어색해.”
그때 트리아나가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시고는 푸념하듯 말했다.
그리고는 로안을 힐끗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처음이야. 이해해줘.”
“네?”
처음이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일까?
로안이 고개를 갸웃하자 트리아나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말했다.
“이곳에 누군가가 들어온 건 처음이라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네.”
“아.”
그 말이었나?
그래서 저리 어색해하는 것일까?
거기까지 말해놓고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 듯 다시 술만 홀짝이고 있다.
로안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후! 왠지 나까지 어색해지는 기분이야.’
항상 그랬지만 여신들은 화신일 때의 컨셉을 매우 중요시한다.
트렐라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술에 취한 매우 쑥스러워하는 소녀 컨셉.
거기에 처음으로 자신의 집에 손님을 초대한 소녀의 컨셉까지 추가됐다.
저것이 연기라면 상당히 고난이도겠지만.
화신은 여신 특유의 취향에 맞는 컨셉에 따라 창조된다.
따라서 트리아나 자체만 보면 지금 연기가 아니라 본심이라고 봐야 한다.
“제가 처음이라니 정말 영광입니다, 트리아나 님. 그보다 저를 이곳까지 부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쩔 수 없다.
대화를 리드하지 않으면 트리아나가 계속 와인 마시는 모습만 쳐다보고 있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로안은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그러자 트리아나의 표정이 밝아졌다.
뭔가 대답할 것이 있다는 것이 그녀를 기분 좋게 한 모양이다.
“네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야.”
“뭔지 모르지만 제가 아는 거라면 성심껏 답변하겠습니다.”
“왜 포기하지 않았지?”
“네?”
“패리드의 호수. 어째서 포기하지 않은 거야?”
그게 그리 궁금했었나 보다.
“당신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날 믿어? 그게 무슨 뜻이지?”
“저는 신계의 전쟁에서 당신이 승리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최강이니까요.”
그러자 트리아나의 입가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야.”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하며 흘리는 저 오연한 미소.
바로 저거다.
최강 전투의 여신 다운 카리스마가 절로 풍겨난다
“그러나 난 네가 꽤 궁지에 처한 상황 속에서도 날 믿어줬다는 것이 기뻤다, 로안.”
“기쁘셨다니 다행입니다.”
로안은 이제 궁금한 내용을 걸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넬리 님의 말에 의하면 당신이 드래곤들을 봉인하고 저에게 페널티를 부여하셨다고 했죠.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트리아나는 다시 와인을 한 모금 마시더니 로안을 쳐다봤다.
“그 이유는.”
그녀의 눈빛이 순간 더욱 슬퍼 보인다.
슬픔을 넘어 허무함이 가득하다.
“지고 싶어서다.”
곧이어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
로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잘못 들었나 싶었다.
‘지고 싶어서라고?’
그럴 리가.
지고 싶다니.
저게 어디 승리의 여신 트렐라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이기고 싶어서다가 아니고요?”
“응.”
트리아나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특유의 몽환적인 표정을 지었다.
“지고 싶어서다.”
진심인 모양이다.
왜 갑자기 트렐라가 지고 싶은 여신으로 컨셉을 바꾼 건가?
하여간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로안은 그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조심스레 말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계속 물어봐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져보고 싶거든. 한 번이라도.”
그런데 나오는 대답이 가관이다.
후! 그러면 그렇지.
트렐라가 누구인가?
로안은 순간 자신이 잠시 착각을 했음을 알고는 실소를 지었다.
‘지고 싶다는 건 무조건 이긴다는 자신감의 다른 표현이었군.’
하긴 정말로 지는 것이 두렵다면 지기 싫어서라고 대답하지, 지고 싶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당신은 단 한 번도 패배해본 적이 없습니까?”
로안은 질문을 바꿨다.
트리아나가 끄덕였다.
그녀의 입가에 슬쩍 다시 허무함이 깃든 미소가 피어났다.
“그래서 나는 패배를 원해. 무참히 패배해 그대로 잊혀진 고대의 여신이 되고 싶다.”
아니, 그건 아니지 않나요?
그냥 패배도 아니고 잊혀진 고대의 여신이 되고 싶다니!
‘뭔가 위험해.’
축구 경기로 치면 트렐라는 자살골을 넣어서 패배하겠다는 얘기다.
잊혀진 고대의 여신이 되기 위해서.
‘그래서 저 허무해보이는 눈빛인 거야.’
아무래도 술을 마시는 게 그냥 이유없이 갔다붙인 컨셉은 아닌 듯하다.
그녀는 지금 진심이다.
정말로 만사가 허무하다는 듯한 표정.
‘이러면 답이 없어.’
트렐라 스스로 패배하겠다는데.
로안이 그녀의 옆에 있으면 같이 죽겠다는 거나 마찬가지.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넬리나 크시아가 내민 손을 잡아야 할지도 모른다.
“정말로 패배할 생각입니까?”
그러자 트리아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 뜻을 오해하고 있구나. 난 지고 싶다고 했지 지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로안.”
이 말은 자살골 같은 건 넣지 않겠다는 뜻.
로안은 그제야 그녀의 심정이 뭔지 환하게 정리가 되었다.
“지고는 싶지만 일부러 지지는 않겠다는 뜻이군요. 당신은 어떤 승부든 최선을 다할 것이고, 그렇게 최선을 다했는데도 패배를 해봤으면 하는 겁니까?”
“맞아.”
“역시 그렇군요. 매 순간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저같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공감이 가지 않지만 최강의 여신이라는 당신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해합니다.”
“이해한다고? 진심이니?”
“예. 진심입니다.”
순간 트리아나가 로안을 향해 와인잔을 슥 내밀었다.
“마셔.”
“네?”
“진심으로 내 심정을 이해해준다고 말한 건 네가 처음이야. 특별히 이 와인을 한 모금 마실 수 있게 해주겠다.”
“감사합니다.”
로안은 사양하지 않았다.
최강의 여신 트렐라가 준 와인을 마실 수 있다는 것.
그야말로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영광스러운 일이리라.
‘정말 향긋하네.’
와인잔에 입을 대고 한모금 넘기니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향긋하면서도 짜릿한 기운이 느껴진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랄까?
술을 마시는 것만으로 이런 짜릿한 느낌이라니.
“그, 그쪽은?”
그런데 트리아나가 왠지 당황스러워하는 눈치다.
“네?”
“거긴 내가 입을 댄 쪽이야.”
로안은 흠칫했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시라기에 무심코 그냥 입에 댔는데.
‘이런!’
마시던 잔을 그대로 넘겼다면 반대쪽에 입을 대고 마시는 게 예의다.
로안은 어쩌다보니 트리아나와 간접 키스를 하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트리아나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분한 듯한 눈빛으로 로안을 노려봤다.
“아마도 너는 술과는 뭔가 다른 어떤 기분을 느꼈을 거야.”
“그게······.”
그러고 보니 방금 전 그것은 단순한 간접 키스가 아니다.
트리아나의 입술 자국.
거기에 로안이 입술을 댄 순간 진짜 키스를 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 났다.
여신의 입술 자국이 가진 신비한 효력.
‘그래서 그런 기분이었나?’
문제는 그게 아니다.
그 기분을 트리아나도 느꼈다는 것이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틀림없다.
로안은 와인잔을 통해 공간을 격해 그녀와 실제 키스를 한 것이었다.
‘미쳤군.’
로안은 멘붕이 올 것 같았다.
주의했어야 했다.
고인물이 이런 실수를 하다니.
상대는 그냥 여신이 아니라 최강의 여신이다.
패배를 모르는, 그래서 오죽하면 패배를 한 번이라도 해봤으면 하는, 여신계의 무적 사기 캐릭터다.
그런 그녀에게 본의는 아니지만 사실상 키스를 해버렸으니 엄청난 불경죄를 지은 것이나 다름없다.
‘게임에서 여신에게 허락없이 키스를 했던 경우에는.’
거의 예외없이 죽었다.
어차피 게임 캐릭터니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에 과연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벌였던 일인데 그렇게 됐다.
지금은 게임도 아닌 현실.
대상 여신은 하필 트렐라다.
성질 더럽기로 따지면 그녀를 능가할 여신이 없다.
역시나 그 대가는 죽음일 지도.
“실수를 인정합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로안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하자 트리아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로안의 손에 있던 와인잔을 낚아채 홀짝 한 모금 마셨다.
화난 듯했지만 그녀 또한 여전히 당혹스러워하는 상태다.
“실수인 척하는 고의는 아니었니?”
“절대 아닙니다.”
“어쩔 수 없지. 그렇지 않아도 네게 사과할 일이 있었는데 그거로 한 셈치겠다.”
그냥 넘어가겠다니.
그것도 방금 전 그 키스를 사과의 대가로 치겠단다.
이거 실화인가?
“제게 사과할 일이 있다 하셨나요?”
“그래. 표면 상으로 보면 널 궁지로 몰아간 건 나의 뜻이었으니까. 아마도 꽤 상심했을 거야. 너의 주위에 있는 존재들을 사라지게 한 것도 모자라 여러 가지 페널티까지 걸었고.”
“그게 당신의 뜻이었는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서 다른 여신들에게 분노하고 나에 대한 의리는 지켜준 거니? 아마도 내가 했다는 걸 알았다면 날 진작 버렸겠구나.”
로안은 고개를 흔들었다.
“꼭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건 왜지?”
“당신이라면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게임에서부터 가장 좋아했던 여신이다.
이해하기 힘든 배신 비슷한 상황을 당했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참아줄 수 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하지만 지기 위해서라는 말씀을 듣고는 꽤 당황했죠.”
“다시 말하지만 진짜 지겠다는 뜻은 아니야. 오히려 나는 이번에 네게 승리의 열쇠를 맡겼다, 로안.”
“승리의 열쇠라고요?”
“이번 전쟁의 승패는 너에게 달려있다는 뜻이야.”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러자 트리아나가 묘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네가 이기면 나도 이기는 거고, 네가 지면 나도 지는 거야.”
“설마 신계의 전쟁까지 제 손에 맡긴다는 뜻입니까?”
“맞아.”
“왜 그런 무모한 일을?”
“내가 하면 무조건 이기니 재미없잖아. 하지만 넌 인간이니까 패배할 수도 있겠지. 한편으로 그런 상황을 바라고 있기도 해. 난 정말로 잊혀진 여신이 되고 싶거든.”
“대체 제가 할 일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신계의 전쟁 승패를 로안에게 맡겼다고 해서, 로안이 신계로 올라가 여신들과 직접 싸울 수는 없다.
신이 아닌 로안이 그런 식으로 싸우는 건 불가능한 일.
스스.
그때 로안의 앞에 상황 창이 나타났다.
【신계의 전황 : D-100일】
헤트시아 연합 516
트렐라 484
【헤트시아 연합 칠여신(七女神)】
-헤트시아
-아프릴리스
-루넬리스
-헤나
-카보네스
-베로니카
-그라나스
로안은 놀랐다.
“이건 뭐죠?”
“보는대로 신계의 전황이야. 종전까지는 100일. 그때까지 전황 포인트를 헤트시아 연합보다 높게 유지시키면 너의 승리야. 물론 나의 승리이기도 하고.”
현재 트렐라는 484 포인트로 헤트시아 연합보다 낮은 상황.
트리아나는 빙긋 웃었다.
“보다시피 현재 내가 지고 있어.”
지고 있긴 하지만 이쪽은 트렐라 혼자다.
상대는 헤트시아를 포함한 일곱 여신.
1 vs 7.
그런데도 거의 비등한 상태.
트렐라가 공연히 최강의 여신이 아닌 것이다.
“전황 포인트를 높이는 방법은 뭐죠?”
“본래라면 신계에서 신들이 직접 전쟁을 벌여야 하지만 이번에는 합의를 통해 전쟁 방식을 바꿨어. 지상에서 각자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전황 포인트가 산정될 거야.”
“영향력이라고요?”
“이를 테면 로안 네가 악마 각성자를 처치하거나 하면 나의 전황 포인트가 오르게 되겠지. 트렐 코인의 가치가 올라도 마찬가지고.”
“그렇군요.”
대충 어떤 식인지 이해했다.
악마 각성자를 처치하는 것만 따지면 로안에게 매우 유리한 게임이다.
그러나 영향력은 그것만 해당되지 않는다.
카오니아 대륙 사람들의 여신들에 대한 신뢰도 등도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건 좀 많이 불리하군요.”
“그럴 수도 있겠지.”
“이러다 제가 포인트를 올리지 못하면 어쩌려고 그러죠?”
“글쎄! 왠지 너라면 이길 것 같거든. 내 확신이 틀렸다면 넌 패배할 거고 난 잊혀진 고대의 여신이 되겠지.”
이기면 이기는 대로 좋고, 패배하면 패배하는 대로 좋다는 표정이다.
어떻게 보면 패배를 더 원하는 것도 같다.
“일단 앞으로 다른 여신들이나 혹은 악마들도 내가 네게 건 페널티 이외에는 그 어떤 제한도 할 수 없어. 물론 그들이 그간 줬던 혜택이나 가호를 거둘 수는 있지만 널 해칠 수도, 너의 일에 직접적으로 개입해 방해할 수도 없고.”
트리아나의 말에 로안은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넬리 등의 여신들과 적이 되면 또 다른 페널티가 걸릴까봐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은 사라진 것이다.
“그건 다행이군요.”
“내가 네게 미리 페널티를 걸었던 건 바로 그것 때문이야.”
“그 조건으로 합의한 건가요?”
“맞아. 다른 여신들이 요구한 조건이기도 했지. 그래야 전쟁이 공평해진다고 해서.”
로안은 각성자 중 최강의 존재다.
다른 여신들은 로안이 더 강해지지 못하도록 경험치 페널티를 부과한 것이다.
다섯 드래곤들도 봉인시킨 것도 그 때문이리라.
“혹시 승리 조건에 다른 요소는 없습니까?”
“다른 요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여신들이 중간에 영향력 전쟁을 포기하거나 한다면 어떻게 되죠?”
그러자 트리아나가 실소를 흘렸다.
“별 생각을 다하는구나. 그런 일이 벌어질 리는 없겠지만 만약 그런 경우라면 무조건 나의 승리야. 전쟁 포기는 곧 패배를 시인하는 것이니까.”
“전쟁 포기가 가능한 것이었군요.”
“그리고 또 하나 주의할 것이 있어. 언제라도 영향력 포인트가 0이 되는 경우에는 무조건 패배야.”
“설마 0이 되는 경우가 있을까요?”
“네가 하기 나름이겠지. 최악의 경우에도 패리드 호수를 포기하지 않으면 영향력 포인트 100점은 유지할 수 있다.”
“그렇군요.”
로안이 뭔가를 궁리하는 듯하자 트리아나가 격려하듯 말했다.
“너무 염려할 건 없어. 패배해도 로안 넌 걱정없이 살도록 조치해뒀거든.”
“그게 무슨 뜻이죠?”
“난 잊혀진 여신이 되더라도 너까지 그꼴이 되게 만들 수는 없잖아. 다른 여신들도 널 미워하지 않으니 아마 편하게 살게 해줄 거야.”
“천만에요. 당신은 절대 잊혀진 여신이 되지 않을 겁니다. 제가 반드시 이길 테니까요.”
“자신만만하구나.”
“대신 제가 승리하면 한 가지 갖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봐. 가능한 거라면 주마.”
“그 잔.”
“······?”
“당신이 들고 있는 그 와인잔을 제게 주십시오.”
[트리아나의 와인잔]
-등급 : 극초월
-설명 : 여신 트렐라의 화신 트리아나가 마시던 와인잔. 잔에 묻은 입술자국? 통해 트리아나와 키스를 할 수 있음.
< 최강 여신은 허무하다 (1) > 끝
ⓒ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