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 번째 용사 (4) >
콰아앙! 콰르르르르!
리페 성이 다시 크게 흔들렸다.
건물이 부서지고 무너지는 소리가 밀실까지 진동했다.
이에 놀란 조니스가 엘레토르를 향해 다급히 물었다.
“어디냐? 히든 게이트가? 저 드래곤 놈을 따돌리는 방법은 내가 대전장으로 들어가는 것 뿐이다. 나에게 히든 게이트의 좌표를 알려주면 일단 내가 카루이스의 이목을 다른 곳으로 돌린 후 대전장으로 들어가도록 하겠다.”
엘레토르는 끄덕였다.
“그럼 좌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저희에게 연락을 취하실 수 있는 마도구입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직사각형 형태의 납작한 판.
그것을 건네받은 조니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무엇이냐? 이런 마도구는 처음보는구나.”
“저희 연합에 속한 마의 각성자가 대전장의 거점에서 얻은 마법 통신 도구입니다. 마나를 주입하면 작동법이 저절로 익혀질 것입니다.”
“대전장에서 마법 통신이 가능하다니 놀랍군.”
조니스는 이런 놀라운 아이템을 얻은 악마 각성자들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이놈들과 잠시 손을 잡아야 한다.’
파멸마인 그에게는 체면이 구겨지는 일이지만 이대로라면 결국 드래곤들에게 처참히 죽임을 당하고 말 테니까.
‘어차피 악마 각성자 놈들도 나와 손을 잡지 않으면 로안이라는 놈을 당해낼 방법이 없겠지.’
악마 각성자들이 아무 이유없이 굽실대는 것이 아님을 조니스는 잘 알고 있다.
‘나를 방패막이로 이용하겠다는 뜻이겠지만.’
나름 현명한 생각이긴 하다.
물론 그는 이용당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그야말로 악마 각성자들을 철저히 이용해 먹을 생각이다.
“그럼 대전장에 들어가 연락을 취하도록 하마.”
“저희들은 조니스 님의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겠사옵니다.”
엘레토르가 엎드려 예를 취했다.
순간 조니스의 모습이 사라졌고 곧이어 상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크큭! 이런 곳까지 와서 웅크려 있으면 내가 모를 줄 알았느냐, 조니스?”
붉은 빛 용이 기다렸다는 듯 브레스를 내뿜었지만 조니스는 흑색의 망토로 그것을 받아냈다.
“크! 정말 지겨운 놈이로군. 카루이스! 나중에 반드시 네놈부터 없애버릴 것이다!”
조니스는 카루이스에게 반격하지 않고 그대로 상공의 저편으로 달아났다.
카루이스가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도주한다고 나의 추격을 피할 수 있을 거 같은가?”
그의 특별한 후각.
이미 조니스의 냄새를 기억해둔 상태다.
어디에 숨어 있든 찾을 수 있다.
방대한 대전장만 아니라면.
‘그럼 또 가볼까? 이번에는 또 어디로 숨었을까?’
카루이스는 느긋하게 조니스의 냄새를 추적했다.
그런데 일순 그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 자리에 멈췄다.
‘냄새가 사라졌다.’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일까?
곧바로 들려오는 웅장한 알림.
《파멸마 조니스가 고대의 유적 평원 대전장으로 진입했습니다.》
조니스는 재앙적 존재인 만큼 대전장으로 이동하면 이같은 월드 알림이 뜬다.
‘그놈이 대전장에?’
카루이스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맺혔다.
‘드디어 그놈을 대전장으로 쫓아버리는데 성공했군.’
조니스가 대전장으로 들어가면 카오니아 대륙은 상대적으로 안전해 진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드래곤들이 조니스를 압박해 대전장으로 쫓아버리는 건 로안의 계획이기도 했다.
* * *
아스피스 성 로안의 저택.
조용히 거실에서 눈을 감은 채 상급 천도비록의 수련이 완성되길 기다리고 있던 로안이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조니스가 드디어 대전장으로 들어온 건가?’
그 역시 월드 알림을 듣고는 상황을 인지했다.
‘잘됐어. 놈은 이제 섣불리 대전장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밖으로 나가면 드래곤들의 추적이 시작될 테니 말이다.
[80레벨 승급 중입니다.]
[45% 진행 중······]
아직 45%.
혼자서 집중하면 승급 시간이 단축되는 터라 로안은 패리드 호수에서 조금 전 귀환했다.
‘크시아는 당분간 패리드 호수에 있는다고 했고.’
그녀는 호수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어차피 그녀야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을 갈 것이다.
어디를 가든 그녀의 마음이라 로안이 강제할 수는 없다.
‘호수에 계속 머물러주면 나야 좋지.’
혹시라도 메인 임무가 또 막히게 되면 크시아를 찾아가 부탁해볼 생각이다.
기억 상실 컨셉이 유지되는 한 로안은 그녀와 친구 상태이니까.
‘그나저나 곧 80레벨이 되면 네르나스를 펫으로 만들 수 있겠군.’
그래서인지 막 거실로 들어와 로안을 바라보고 있는 네르나스의 표정은 뭔가 복잡해보였다.
“뭐하니, 로안?”
“보다시피 승급 중입니다. 아직 좀 시간이 필요하지만 곧 80레벨이 될 겁니다.”
“그럼 나도 80레벨이 되겠네.”
“그렇죠. 당신이 펫이 되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궁금하군요.”
그러자 네르나스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착잡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부탁인데 지금처럼 날 메이드로만 대해주면 안 될까? 내가 펫이 되면 아그너스가 날 더 괴롭힐 게 분명해.”
동생에게 당할 것을 생각하자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아그너스는 펫 상태의 네르나스를 보면 마구 만지작거리며 무척이나 즐거워할 것이다.
딱히 괴롭힐 목적이 아니라 해도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네르나스에게는 모욕일 수 있다.
“펫이 되면 놀고 먹을 수도 있을 테니 어떻게 보면 메이드보다 편할 수도 있어요.”
편하게 놀고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네르나스는 살짝 솔깃해하는 듯했지만.
그녀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파멸의 용으로서의 나의 체면도 좀 생각해봐. 메이드까지는 그래도 어떻게 버틸 수 있지만 펫이 되어 네 앞에서 귀여움 떠는 짓만은 도저히 못하겠다.”
“일부러 귀여움을 떨 필요 없습니다. 그런 걸 강요한다고 당신이 그런 짓을 할 리도 없겠고.”
“차라리 내가 메이드로 100년 더 봉사할 테니 펫으로 만들지는 말아줘.”
“나쁘지 않은 제안이군요.”
네르나스를 펫으로 만들어서 뭔가 대단한 효과를 볼 수 있다면 상관없다.
‘드래곤 펫일 경우 전투에서 상당히 유용한 버프를 주긴 하지만.’
물론 지금처럼 메이드로 파티 사냥을 하는 게 몇 배 더 도움이 된다.
더구나 네르나스가 펫이 되면 아스피스 성의 퀸을 새로 뽑아야 하는데 그것도 번거로운 일.
‘네르나스만큼 아스피스 성의 퀸에 어울리는 이도 없지.
있다면 아그너스 정도지만 그녀는 황제 대리를 해야 한다.
즉, 네르나스를 펫으로 만들어 단순히 괴롭히는 용도가 아니라면 사실 로안으로서도 딱히 좋을 게 없는 것이다.
‘실용적으로 따져봐도 메이드로 백 년 더 부려먹는 게 훨씬 이익이야.’
로안은 그렇게 마음을 굳혔다.
‘그래도 한두 번은 펫 모드로 만들어서 어떤 모습일지 살펴는 봐야겠지.’
은빛의 작은 드래곤의 모습이면 꽤 귀엽긴 할 텐데.
“그보다 크시아의 정체는 아직도 확신할 수 없나요?”
순간 네르나스가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부탁이니 크시아 님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묻지말아줘.”
네르나스는 로안이 뭔가 더 추궁할까봐 두려운지 거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대체 크시아가 누구기에 저러는지 모르겠군.’
고인물의 직감으로 볼 때 네르나스는 크시아가 누군지 알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혹시 트렐라?’
트렐라가 붉은 머리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여신의 외모가 꼭 게임의 설정과 동일하라는 법이 없다.
만약 크시아가 트렐라라면 루넬리스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게 이해가 간다.
‘하지만 트렐라는 성격상 기억 상실 컨셉을 즐길 스타일이 아닌데.’
그 또한 바뀐 설정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고인물의 직감으로 봐도 트렐라는 절대 아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한 것이다.
크시아가 대체 누구인지 말이다.
‘최소한 트렐라와 동급 아니면 그보다 더 대단한 존재인 건 분명해.’
어쨌든 그런 대단한 여신의 화신과 친구가 됐으니 기분이 묘하긴 하다.
.
.
.
[상급 천도비록의 수련을 마쳤습니다.]
[당신은 80레벨 승급에 성공했습니다.]
[당신은 상급 천도객이 되었습니다.]
‘후! 드디어.’
거실의 바닥에서 정좌 상태로 앉아있던 로안의 두 눈에서 번쩍 빛이 일어났다.
[상급 천도객이 된 당신의 도법에 대한 이해가 대폭 증가합니다.]
[당신의 공격력이 크게 증가합니다.]
[당신의 회피력이 크게 증가합니다.]
[당신의 방어력이 크게 증가합니다.]
[오러 블레이드가 Lv2가 되었습니다.]
[분신 생성이 Lv6이 되었습니다.]
[마법의 이해가 Lv3이 되었습니다.]
······.
각종 스킬들의 위력이 대폭 증가!
로안은 전투력에 있어서 또 다른 영역에 들어섰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다.
[당신의 메이드인 네르나스가 80레벨이 되었습니다.]
[네르나스가 최상급 메이드에서 특급 메이드로 승급합니다.]
[특급 메이드는 주인을 위해 더욱 다양한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네르나스가 전투 및 임무 수행시 더 많은 경험치를 주인인 당신에게 제공할 것입니다.]
특급 메이드 네르나스.
그녀의 전투력도 대폭 상승했다.
80레벨은 79레벨에 비해 전투력의 차원이 다르니까.
[네르나스의 펫 모드가 개방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펫 모드 개방.
[펫 모드를 선택하면 네르나스가 메이드에서 펫으로 전환됩니다.]
[펫 모드가 자동 선택됩니다.]
[네르나스가 펫 상태로 변합니다.]
[언제든 메이드 모드로 전환 가능합니다.]
80레벨이 된 기념일까?
로안의 의사와 상관없이 네르나스가 자동으로 펫으로 전환됐다.
[아스피스 성에 퀸이 사라졌습니다.]
[아스피스 성이 움직임을 멈춥니다.]
퀸이야 네르나스를 다시 메이드 모드로 전환하면 되니 걱정할 것 없다.
그보다 로안은 앞에 떠있는 손바닥만한 은빛의 용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거대한 파멸의 용을 그대로 손바닥만하게 줄여놓은 상태.
그러나 비율이 조금 달라졌다.
2D 캐릭터처럼 머리가 커지고 두 눈도 그에 맞게 커졌다.
마치 토실이의 펫이 된 것처럼 깜찍해져버린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귀엽게 생겼네.’
왜 이렇게 귀엽게 변했을까?
보통 드래곤을 펫으로 만들어도 이렇게 귀여워지진 않는데.
아무래도 트렐라가 의도한 모양이다.
부비비비. 몰캉캉캉.
새 친구가 생기자 토실이와 몰캉이가 매우 좋아하며 네르나스를 마구 비벼댔다.
네르나스는 녀석들을 피해 날아오다 로안의 손에 잡혔다.
바동바동.
로안은 펫 네르나스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마구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네르나스는 머리를 흔들거나 앞발로 로안의 손을 치는 등 저항했다.
툭. 툭.
펫이 되면서 말을 할 수 없게 됐는지 그녀는 몸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래봤자 펫 상태라 주인의 만짐을 거부하기란 불가능하다.
로안은 네르나스의 목을 마구 간질이며 그녀의 상태창을 살폈다.
[펫 네르나스(Lv80)]
-소환 시 모든 스탯 +25%
-【능력】 브레스, 치유, 토네이도 외 57종
‘맙소사! 이건?’
그런데 지금 귀여운 게 문제가 아니다.
펫 네르나스의 레벨은 로안과 동일한 80.
그러다 보니 그냥 펫으로 소환하기만 해도 로안의 올 스탯이 무려 25%나 증가한다.
‘패시브 스킬이 죽여주는데?’
이거 하나만으로도 펫으로서의 가치가 엄청하다 할 수 있다.
스탯빨로 승부하는 로안에게는 날개를 달아주는 격.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각종 스킬을 60개나 쓸 수 있을 줄이야.
‘이러면 펫도 절대 포기할 수 없지.’
일반 드래곤 펫이 아니라 파멸의 용 펫이니 차원 자체가 다르다.
사냥을 할 때는 물론이고 강적을 만났을 때 올 스탯 25% 증가는 포기할 수 없는 효과.
더구나 펫 네르나스가 가진 능력은 살펴보니 매우 다양하다. 강력한 공격 능력뿐 아니라 치유와 각종 보조 능력까지 말 그대로 전능형 펫인 것이다.
‘하긴 메이드 100년 추가는 별 의미없는 일이야.’
생각해보니 100년 후에는 로안의 능력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즉, 그때 네르나스는 로안이 원하면 무조건 메이드가 될 수밖에 없다.
‘네르나스는 펫 상태로 두는 게 여러모로 유용해. 아무래도 아스피스 성의 퀸을 몇 명 더 만들어놔야겠어.’
지금처럼 네르나스가 펫이 됐을 때를 대비해 유사시 그녀를 대체할 퀸들이 여러 명 있으면 편할 것이다.
‘퀸으로는 흑룡 베라하고 마계 보스들인 이수지와 로베니아 정도가 적당하겠군.’
서브 메이드인 흑룡 베라는 드래곤의 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는 만큼 퀸이 되면 아스피스 성의 방어를 완벽하게 수행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네 드래곤이 동시에 조니스를 상대해야 할 때도 있는 만큼 흑룡 베라가 성을 떠났을 때도 대비해야 한다.
‘이수지와 로베니아는 일반 보스급 보다 훨씬 강한 마계 보스급이니 일단 퀸으로 만들어두면 나쁘지 않지.’
현재 전투력만으로 따지면 메이드 네르나스보다 그녀들이 훨씬 강한 편이니까.
다만 이수지와 로베니아는 지금 패리드 호수에서 휴가 중이다.
로안은 먼저 흑룡 베라를 불렀다.
[서브 메이드 흑룡 베라가 소환되었습니다.]
그 즉시 흑색의 메이드복을 입은 육감적인 글래머 미녀가 로안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암흑같이 검은 옷에 눈 내리는 듯 하얀 피부.
흑백의 조화가 눈부시다.
무척이나 마력적인 매력을 풍기는 미모지만, 상당히 섬뜩한 느낌도 있어서 평범한 인간이라면 베라의 모습만 봐도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로안은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지 오래라서 베라의 매력을 자연스레 느끼고 있다.
“드디어 저를 불러주셨군요, 주인님.”
“갑자기 웬 존댓말이죠, 베라 님?”
베라는 네르나스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메이드가 된 터라 지난 번 봤을 땐 그야말로 죽지못해 한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의 불만가득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더 없이 호의적인 태도로 변했다.
로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베라가 빙긋 웃었다.
“저 역시 기왕 메이드가 된 이상 그 삶에 충실하기로 했답니다.”
“그래도 그렇게 깍듯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주인님에겐 그럴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제게 존대하시면 안 돼요. 메이드에게 존대하는 주인은 없습니다.”
로안은 끄덕였다.
그에게 이런 상황은 아주 익숙하니 당황스러울 것도 없다.
“좋아, 베라. 그럼 앞으로 널 편하게 대하겠다.”
“너무 자연스러우시군요. 하지만 저는 주인님의 그런 면이 매우 마음에 든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네.”
“근데 혹시 그분은······.”
베라는 로안의 손바닥 위에서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그만 은빛 용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정보창에 네르나스라고 적혀 있긴 했지만 그게 아니라 해도 그녀는 단번에 그 용의 정체를 알아봤기 때문이다.
“보다시피 네르나스는 지금은 펫이 된 상태야. 이럴 때 아스피스 성을 맡아줄 퀸이 필요해서 널 불렀다, 베라.”
“그런 일이라면 메이드인 제가 마땅히 해야할 일입니다. 후후, 그런데 네르나스 님 정말 귀여워지셨네요.”
“확실히 귀여워지긴 했지. 만져볼래?”
“아, 아닙니다.”
베라는 펫 네르나스의 모습이 귀여워 미치겠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후환이 두려운지 차마 손을 뻗어 네르나스를 만지진 못했다.
네르나스가 슥 베라를 한 번 노려본 이유도 있지만.
“그럼 전 곧바로 퀸의 시험에 도전하겠습니다.”
“그래.”
메이드의 힘만 쓸 수 있는 네르나스와 달리 레벨 95 월드 보스인 흑룡 베라에게는 퀸의 시험이 아주 간단한 일이다.
[서브 메이드 흑룡 베라가 퀸의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베라가 아스피스 성의 퀸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로안은 아공간에서 도 하나를 꺼냈다.
[스켈레톤 로드의 악몽도(惡夢刀)]
-등급 : 신화
-장착 제한 : Lv80
-직업 제한 : 도객 계열
예전에 마쿠스 공작 등과 파티로 스켈레톤 로드를 사냥했을 때 운 좋게 얻은 무기.
‘마룡대도! 그동안 고생 많았다.’
마룡대도에 정이 꽤 들었지만 이제 그만 보내줄 때가 된 것이다.
앞으로는 스켈레톤 로드의 악몽도와 지켄의 불멸도를 번갈아 사용할 생각이니까.
한편 그렇게 로안이 무기를 살피고 있는 사이 펫 네르나스는 거실의 소파 푹신한 곳에 배를 깔고 앉아 졸고 있었다.
토실이와 몰캉이도 근처에서 이미 조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토실이의 부드러운 털과 몰캉이의 말캉한 몸체가 네르나스의 몸에 닿아 있는 상태.
웃기지만 네르나스는 녀석들의 감촉이 싫지 않았다.
사실 본래도 그녀는 토실이와 몰캉이를 귀여워했던 터라 녀석들에 대한 거부감이 없긴 했지만.
막상 펫 상태가 되어보니 더욱 친숙한 느낌이다.
녀석들 때문에 네르나스는 왠지 펫으로 지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제논!
녀석은 새로운 펫이 등장하자 도전적인 눈빛으로 노려보더니 귀마를 타고 나타나 당당히 굴종을 요구했다.
슥.
처음엔 귀찮아서 무시했던 네르나스가 결국 고개를 들고 쳐다보자 제논이 냉소를 피워내며 손가락을 까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