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으로 독존한다-175화 (175/240)

< 고인물이 왕이 되면 벌어지는 일 (4) >

고대의 유적 평원 대전장.

광활한 초원 위에는 불가사의한 속도로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석재와 목재 등 자재가 수북히 쌓여있던 곳에 갑자기 건물이 서서히 올라가더니 어느샌가 말끔한 건물이 완성되어 있었다.

“볼 수록 신기한 능력이군. 저 자그만 코볼트들에게 저리 놀라운 건축 기술이 있다니 말이야.”

황제 디우스의 말에 붉은 머리의 여성 엘레토르가 뿌듯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확보한 대전장의 악마 거점.

그 거점에 투자한 덕분에 그녀는 신비의 건축 기술을 가진 다크 코볼트들을 마음껏 부릴 수 있게 됐으니까.

“폐하께서 코인을 대량으로 지원해주시니 자재 걱정이 없어 이대로라면 황궁뿐 아니라 황도까지 곧 완성될 듯해요.”

그녀는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백성들과 병사들이 꾸준히 게이트를 통해 대전장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디우스가 끄덕였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만 문제는 그 로안이라는 놈이다.”

그러자 엘레토르의 안색이 굳었다.

“설마 그놈이 레온 왕국의 왕이 될 거라고는 저도 상상 못한 일입니다.”

“그뿐이 아니다. 그놈이 감히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며 보란 듯 나를 도발하고 있다. 가소로운 일이지.”

디우스는 매우 분노한 표정이었다.

엘레토르가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하오나 놈을 응징할 방법이 당장에는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월드 알림에서 듣던 대로 놈이 정말 드래곤들을 메이드로 부린다면 골치아픈 일이죠.”

그러자 디우스의 표정이 굳었다.

“정말 그런 것이라면 아마도 드래곤들이 유희를 즐기고 있는 것이겠지. 이유야 어찌됐든 놈에게 드래곤들이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파멸마 조니스와 힘을 합쳐야 한다.”

“이미 암부의 요원들을 모두 풀어 파멸마 조니스에게 온갖 방법으로 연락을 취하는 중입니다. 다만, 그는 너무 위험한 존재라 과연 우리가 그와 동맹을 맺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파멸마 조니스라 해도 우리 악마 각성자들을 얕보진 못한다. 특히 그는 지금 드래곤들에 의해 곤란을 겪고 있는 터라 우리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예, 폐하. 조니스와 반드시 동맹을 성사시키겠습니다.”

악마 각성자 연합과 파멸마 조니스의 동맹.

이건 사르곤 제국의 황제 디우스의 뜻이었다.

* * *

[당신의 메이드인 네르나스가 70레벨이 되었습니다.]

로안의 레벨이 오르자 네르나스의 레벨도 덩달아 상승했다.

[네르나스가 상급 메이드에서 최상급 메이드로 승급합니다.]

[최상급 메이드는 주인을 위해 더욱 다양한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네르나스가 전투 및 임무 수행시 더 많은 경험치를 주인인 당신에게 제공할 것입니다.]

‘경험치를 더 많이 준다니 잘 됐군.’

그 사이 로안의 능력들과 관련된 알림들도 이어졌다.

[냄새동화가 Lv8이 되었습니다.]

[흥정이 Lv8이 되었습니다.]

[악마 글루토누스 모드가 개방되었습니다.]

[불의 칼이 Lv7이 되었습니다.]

[오러 생성Lv5이 오러 블레이드Lv1로 승급되었습니다.]

[분신 생성이 Lv5가 되었습니다.]

[마법의 이해가 Lv2가 되었습니다.]

······

······

[새로운 능력 〈천도의 기운〉을 배웠습니다.]

70레벨이 되자 상급 마도객에서 천도객(天刀客)으로 직업의 이름 자체가 바뀌었다.

이것은 단순한 승급 정도가 아니라 영웅 등급 직업이던 마도객이 전설 등급 직업인 천도객으로 진화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마도객에서 70레벨 승급시 무조건 천도객이 되는 건 아니지.’

아니, 오히려 희박한 일이다.

암흑마도객(暗黑魔刀客)처럼 마도객의 계보를 그대로 이어가는 경우도 있고 지도객(地刀客)이나 인도객(人刀客)과 같은 또 다른 전설 직업을 얻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중 최강은 지금 얻은 천도객이며, 이를 위해서는 천도비록(天刀秘錄)이라는 전설 등급 승급 아이템이 필수다.

다행히 로안은 토실이의 행운 버프 덕분에 고대 학살자의 상자에서 미리 천도비록을 얻어놓아 단번에 천도객이 된 것이다.

마도객은 마법과 도법의 조화를 통해 전투력을 높였던 반면 천도객은 도법 자체에 더욱 집중한다.

오히려 주력 스킬도 단순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그간의 스킬이 사라진 건 아니다.

마도객으로서 보유했던 스킬들은 그대로 계속 위력이 증가해 나가지만, 70레벨이 되면서부터는 〈천도(天刀)의 기운〉이라는 새로운 패시브 스킬이 주가 된다는 뜻이다.

‘잡스럽게 싸울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애벌레에서 나비가 된 것처럼 전투력의 차원이 달라졌다.

오러 하나만 놓고 봐도 그렇다.

이제는 오러가 아닌 오러 블레이드를 생성시키는 게 가능해진 만큼 흔히 말하는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렀으니까.

그러나 그조차도 〈천도의 기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천도의 기운을 얻은 당신의 수련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천도의 기운을 얻은 당신의 마법 저항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천도의 기운을 얻은 당신은 모든 속성을 무시한 채 적에게 강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천도객과 비견되는 직업으로 천검 강무진이 얻은 천검사(天劍士)가 있다.

천검사는 공격과 방어의 조화가 완벽한 반면, 천도객은 그보다는 공격에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다.

강한 파괴력을 무기로 엄청난 대미지를 주는 것으로는 천도객을 능가할 직업이 없다.

최선의 방어가 공격!

그냥 한 방에 끝내버리면 방어 따윈 따질 필요가 없으니까.

물론 강적을 만났을 땐 얘기가 다르다.

월드 보스와 싸울 땐 강한 방어력이 필수다.

‘그거야 비급과 아이템으로 커버하면 되는 거고.’

거기에 환생사가 주는 이점 중 하나인 사기적인 스탯빨.

몰빵한 근력 스탯이 주는 불가사의한 방어력에 권성의 기공법, 신령한 빛의 조각이 주는 방어력 2배 증가.

거기에 악마 크루스 모드가 주는 방어력 50% 추가까지.

이미 로안은 방어력에 투자하지 않아도 사기적인 방어력을 가진 상태다.

‘결론은 나같은 고인물에게는 오히려 천도객이 천검사보다 훨씬 낫다는 뜻이야.’

막강한 공격력으로 그만큼 빨리 적들을 쓸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여기에 날개를 달아줄 악마 모드가 70레벨 되며 개방됐다.

[악마 글루토누스 모드]

-공격력 50% 증가

-【저주】 글루토누스 외형화

지금은 스스로의 방어력이 50% 증가함과 동시에 적을 고자로 만드는 저주를 펼칠 수 있는 악마 클루스 모드 상태다.

그동안에는 이 모드 하나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조금 비열하더라도 적을 고자로 만드는 광역 저주를 뿌려댔지만.

‘이제 웬만하면 고자는 그만 좀 만들자고.’

문득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며 고자의 저주를 풀어달라고 빌던 리자드맨 용사 데랄쿠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결혼을 한 달 앞둔 예비 신랑이었으니 오죽할까?

‘솔직히 같은 남자로서 할짓이 아니었지.’

대상이 색마나 강간범과 같은 녀석이라면 서슴없이 고자의 저주 수백, 수천년을 날릴 수 있지만 말이다.

반면에 이번에 새로 개방된 악마 글루토스 모드는 기본 패시브 버프가 공격력 50% 증가다.

외형은 무시무시한 포식마인 글루토누스의 모습이 환영마법으로 펼쳐져 적들에게 위압감을 주게 된다.

【저주】 글루토누스 외형화

-마계의 악마 중 하나인 글루토누스는 마력이 아무리 많아도 외형 변경 자체가 불가능한 영구적인 저주를 받았다. 외모로 인한 콤플렉스가 매우 심해 세상 모든 존재를 자신과 비슷한 외모로 만들고자 하는 욕념이 가득하다.

-효과 : 마나 10을 소모해 주변의 적들에게 랜덤으로 1일부터 100일 동안 글루토누스 외형화 저주를 내린다. 누적 가능.

-추가 효과 : 글루토누스 외형화 저주를 받은 대상은 모든 속성의 저항력이 50% 감소한다.

-【퀘스트】 글루토누스 외형화 저주 해제의 물약

‘후! 근데 이것도 만만치 않네.’

악마들은 저주가 왜 하나같이 이 모양일까?

적을 매우 추악한 외모로 만들어버린다는 뜻이다.

말로만 듣던 마녀들이나 내리던 저주를 로안이 얻게 된 것이다.

‘외모도 외모지만 모든 저항력 50% 감소면 문제가 심각하지.’

따져보니 차라리 고자의 저주가 오히려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전투의 효율을 위해서는 글루토누스 모드로 가야겠지.’

그런데 설명을 보니 이 저주를 해제하는 물약 제조법 퀘스트도 있다.

퀘스트 핵심 재료는 대전장에 있는 고대의 유적 중 하나인 [달리는 성]에서 얻을 수 있다.

‘달리는 성 유적이라고? 이거 움직이는 유적이라서 꽤 피곤한데?’

왜 피곤하냐면 발견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체처럼 유적이 살아서 움직이며 숨어 있으니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퀘스트가 뜬 이상 쉬워졌다고 봐야지.’

이전에 숨겨진 유적인 서큐버스의 정원을 찾을 때처럼 퀘스트 창에서 위치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도 악마 거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물약 제조가 중요한 게 아니다.

만약 달리는 성을 악마 거점으로 만들 수 있으면 로안은 성을 타고 다니며 적들과 싸울 수 있게 된다.

‘대전장에 들어가면 당장 이것부터 해결하자.’

그리고 70레벨이 되었으니 이제 새로운 비급을 배울 수 있다.

[거력붕멸도법(영웅) 12성]

[한빙장(영웅) 12성]

[질풍비(희귀) 12성]

메인 임무 보상으로 받은 〈신령한 빛의 조각 ? 수련〉 덕분에 비급의 수련 속도가 빨라졌다.

여기에 천도의 기운 덕분에 도법 비급의 수련 속도는 이제 사기적일 것이다.

[뇌전도법(雷電刀法)]

-분류 : 비급

-등급 : 전설

-설명 : 도를 휘둘러 뇌전(雷電)의 힘이 깃든 강한 공격력을 펼칠 수 있다. 근력과 지력이 높을수록 위력이 강력하다.

-레벨 제한 : Lv70

-직업 제한 : 도객 계열

‘드디어 이걸 배울 수 있게 됐군.’

뇌전도법을 체화 상태로 둔 다음 로안은 머리도 식힐겸 산책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움직일 때마다 내관들과 궁녀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뒤따르고 있었다.

황제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거기서 다들 대기해라. 그렇게 줄줄이 따라오는 건 질색이야. 문책받지 않도록 할테니까 걱정들 말고.”

“하오나 폐하······.”

“황명이니 따라라.”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궁녀와 내관들이 몸을 떨며 부복했다.

로안은 그제야 혼자서 조용히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황제고 뭐고 내 편한 식으로 좀 싹 뜯어 고쳐야겠어.’

솔직히 귀찮은 게 너무 많다.

하다못해 용변을 보는 것조차 궁녀들이 수발을 드니 나오려던 똥이 다시 들어갈 지경이니까.

게임에서는 이런 것까지 신경쓰지 않았는데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궁중의 규례라는 것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으니 말이다.

‘주인이 규례에 얽맬 수는 없지. 그런 건 하인들이나 하는 거다.’

패리드 호수의 주인처럼 말이다.

거기선 로안의 말이 곧 법이고 물의 정령들은 그 어떤 것도 로안에게 강요하는 법이 없다.

심지어 손님들도 주인의 눈치를 본다.

손님이 왕?

패리드 호수에서는 그런 것 없다.

오히려 정반대다.

‘주인이 왕이지.’

제발 호수에서 쉬게 해달라고 손님들이 간청을 하는 곳이다.

대전장 최강의 월드 보스인 파멸의 용 네르나스조차 로안에게 고개를 숙였을 정도니까.

즉, 코인이 아무리 많아도 면접 심사를 통과하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는 곳.

거기가 패리드 호수다.

그곳의 주인이 바로 로안인 것이다.

로안은 레온 제국의 황제로서도 당연히 그같은 권력을 누릴 생각이다.

‘본래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대신들의 눈치를 봐야 할 테니까.

궁중의 규례를 어긴 것 자체가 국왕이나 황제를 문책할 수 있는 빌미를 주기도 하니까.

‘그거야 절대권력자가 아니니 하는 얘기고.’

로안은 전무후무한 절대권력자다.

드래곤 메이드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무력으로 따져도 이제 레온 제국 최강의 존재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다.

규례니 예의니 다 필요없고.

뭐든 마음대로 한다.

‘대신 최강의 국력을 갖추고 백성들은 잘먹고 잘살게 해주면 되는 거야.’

핵심은 그것이다.

특히 기왕 황제가 된 이상 로안은 레온 제국의 백성들이 다른 국가에 의해 피해를 당하거나 어디 가서 약소국이라며 무시받게는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당신의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전설 펫 전용 영양 사료 1봉지를 얻었습니다.]

[아프릴 2,400코인을 얻었습니다.]

한편 그 사이에도 경험치는 주기적으로 오르고 있다.

토실이를 비롯한 펫들이 성녀 아르시안의 궁전에 머물고 있어서다.

녀석들이 가서 고생하는 게 아니라 대접받으며 신 나게 놀고 있을 것이니 로안도 부담이 없다.

화악!

그때 로안의 앞쪽에 은빛의 신비한 광채가 빛나더니 백색과 붉은색이 조화된 메이드복을 입은 여성이 나타났다.

드래곤 메이드 아그너스.

그녀는 공손히 무릎을 꿇은 채 로안을 올려다봤다.

“저를 부르셨나요, 주인님?”

황제가 되었지만 그녀가 로안을 부르는 호칭은 폐하가 아니라 주인님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보다 신성한 호칭은 없으니까.

“조니스는 찾았어?”

“아직도 행방이 묘연해요.”

“놈이 작정하고 너희들을 피하고 있네.”

“워낙 교활한 녀석이다 보니 저희들이 강해진 걸 눈치챈 듯해요.”

“너희들이 더 강해졌다고?”

“메이드복을 입은 후부터 실제로 강해졌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그런 효과가 있긴 했다.

메이드들이 메이드복 장착 시 전투력이 소폭 상승한다고 말이다.

비록 소폭이지만 95레벨 월드 보스인 드래곤들이다 보니 그 상승폭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아마 그 녀석은 이제 저희들에게 포위되면 도주조차 힘들 걸요.”

“그 말을 들으니 든든하구나.”

“주인님의 근심을 제거해드리는 것이 메이드의 임무. 파멸마 조니스뿐 아니라 앞으로 어떤 재앙이 새로 또 나타나도 저희들이 있으니 안심하셔도 된답니다.”

아그너스는 예쁘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울러 또한 주인님의 근심을 덜어드리고자 악마 각성자들도 미리 제거하기 위해 찾고 있는 중입니다.”

어떻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인을 이토록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것일까?

아그너스가 공연히 준비된 메이드가 아닌 모양이다.

“악마 각성자들은 대전장으로 모두 들어가 거점 확장에 집중하고 있을 거야.”

“저희도 그렇게 파악했습니다. 관련해서 새로운 정보가 있으면 주인님께 즉각 보고하겠어요.”

로안은 끄덕였다.

“좋아. 그보다 나의 근심을 하나 더 해결해줘야겠다. 왕이나 황제 해봤지?”

“그런 유희야 수없이 해봤죠.”

“그럼 널 황제 대리로 임명할 테니까 내일부터 레온 제국의 운영도 맡아라. 쓸데없이 전쟁같은 건 하지 말고 최강의 국력을 가진 제국이 되도록 만드는 거야.”

“제게 전권을 주시는 건가요?”

“인사권이든 뭐든 다 주겠다. 다만 마쿠스 공작, 베안트 공작, 헤로스 백작은 그대로 두고. 라고스 영지의 행정관 메르벨과 닐스를 비롯한 기사들은 중용하도록 해. 특히 메르벨을 뛰어난 재상이 되도록 교육시켜라. 물론 그런 일을 하면서도 파멸마 조니스를 견제하는 것은 절대 소홀히 하면 안 되겠지.”

그러자 아그너스가 흥분된 표정으로 양팔을 교차해 자신의 가슴을 감싸더니 몸을 마구 떨었다.

저 포즈의 의미는 뭘까?

막 부림당하고 싶다더니 막상 일이 많아지자 반항하겠다는 건가?

그러나 이어지는 말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다.

“주인님께서 드디어 저를 마구 부려주시는군요. 아마도 상당한 격무에 시달리겠지만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감수하겠어요.”

역시나 그런 것이었냐?

일 많이 시킨다고 오히려 좋아하고 있다.

‘저러니 뭔가 더 혹독하게 부려주고 싶은 묘한 충동이 생기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막 나갈 수는 없는 일.

아무리 초절정 체력의 드래곤 메이드라도 과로사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착한 메이드일수록 주인이 더 아껴줘야 한다.

“너 혼자 하지 말고 다른 세 드래곤들을 얼마든지 부리도록 해. 그들을 부릴 수 있는 권한은 이미 네게 준 걸로 알고 있는데.”

“안 돼요. 그럼 제가 너무 편해지는 걸요.”

“걱정 마. 넌 계속 다른 일로 눈물이 쏙 나오도록 부려먹을 테니까.”

곧바로 로안은 아공간에서 해먹 하나를 꺼냈다.

황궁의 정원이라 경치도 좋지만, 시원하고 한적하니 잠자기도 좋은 장소다.

“일단 난 오늘 좀 피곤해서 말이야. 내친김에 여기서 좀 잘 테니 벌레 오지 않도록 막아주고 잠자기 좋은 온도를 유지시켜.”

별 시덥잖은 임무라 할 수 있지만 한 번 시켜봤다.

왠지 아그너스라면 이런 류의 임무일 수록 더 좋아할 것 같아서다.

“네, 주인님. 저만 믿고 편하게 주무세요.”

역시나 아그너스는 좋아하는 얼굴이다.

그녀는 언제 꺼냈는지 칠색의 빛이 반짝이는 부채를 손에 들고 로안을 향해 살살 부치기 시작했다.

부드럽고도 시원하면서도 또 따스한.

잠이 솔솔 오는 신비한 바람이다.

‘역시 시키길 잘했네.’

로안은 편안한 기분으로 잠이 들었다.

그런 그를 아그너스가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봤다.

물론 그녀의 손은 쉬지 않고 부채를 흔들었다.

‘난 왜 이러고 있는 게 즐겁지?’

드래곤이 이래도 되나.

아그너스는 일순 자괴감이 드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시 빙긋 웃으며 부채질을 계속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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