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으로 독존한다-161화 (161/240)

< 고인물이 휴양지 주인이 되면 벌어지는 일 (4) >

“로드! 그분이 오셨어요.”

아쿠아가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로안은 그 표정만 보고도 누가 왔는지 알 수 있었다.

파멸의 용 네르나스일 것이다.

아무리 네르나스라 해도 패리드 호수의 결계를 어쩌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아쿠아는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괜찮으니 화상 결계를 열어봐.”

“네, 로드.”

아쿠아가 대전의 중앙에 자줏빛 물의 벽을 소환했다.

여전히 오연하기 이를데 없는 표정으로 물의 벽 너머에 서있는 네르나스의 모습이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네르나스 님?”

사실 네르나스는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화상 결계도 열지 않아야 정상이지만, 이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로안이 네르나스를 블랙시킨 이유는 어디까지나 협상을 위한 빌미일 뿐, 그녀와의 대화를 단절할 생각은 없었다.

“더 이상 불필요한 시간 낭비는 관두는 게 좋겠구나.”

네르나스의 말에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남들이 들을 때는 매우 오만무도해 보이지만, 로안이 보기에는 달랐다.

지금 네르나스 입장에서는 상당히 자존심을 내려놓고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니까.

‘정말 호수에서 쉬고 싶은 모양이네.’

따지고 보면 네르나스 역시 억울한 면이 있다.

그녀가 조용히 목욕을 즐기고 있던 걸 로안이 방해한 건 맞으니까.

그녀의 입장에서는 하찮은 인간에 불과한 로안으로 인해 즐거운 시간을 방해받게 되어 크게 진노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 로안도 좋게 좋게 끝내려고 했는데, 네르나스가 끝없이 폭주하며 도발을 하는 바람에 여기까지 오고 말았지만.

“원하는 게 뭔지 말씀해보십시오.”

로안은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

그 역시도 빨리 끝내고 싶기 때문이다.

어서 메인 임무를 완수해야 또 레벨 업을 위해 여길 떠날 수 있을 테니까.

‘적당한 선에서 나도 양보를 해야지 내 주장만 하다보면 끝이 없어.’

그러자 네르나스가 말했다.

“블랙리스트에서 나를 제외하고 내가 원하면 언제든 이곳에 입장할 수 있도록 해라. 나만의 전용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 저 또한 조건을 제시하겠습니다. 천검 강무진 공작에게 걸었던 모든 저주를 해제하고 그를 자유롭게 풀어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네르나스는 끄덕였다.

이미 로안의 조건이 무엇일지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녀는 강무진을 그냥 잡았다가 놓아준 것 외에는 특별히 손해보는 것이 없었다.

강무진이 감히 그녀의 앞에서 팬티 차림으로 변한 불경죄에 대한 징벌은 이만하면 충분한 듯하고, 무엇보다 더 이상 강무진을 괴롭히는 것에 대한 흥미가 사라졌다.

‘도무지 괴롭히는 맛이 없는 녀석이야.’

강무진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절대 자신의 뜻은 굽히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았고, 자신의 삶을 위해 남을 배신하는 일도 거부했다.

공연히 그녀만 아주 나쁜 드래곤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왠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부담스러운 물건을 치운다는 생각에 로안에게 던져주고 실리를 챙기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곧바로 강무진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파멸의 용 네르나스가 모든 저주를 해제합니다.]

[당신의 스탯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신의 모든 능력을 정상적으로 사용 가능합니다.]

[아공간 창고 제한이 사라집니다.]

연달아 들리는 알림과 함께 강무진은 비로소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음을 인지했다.

‘후우!’

그는 이 순간이 꿈만 같았다.

신체가 회복됐지만 정신적 후유증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강인한 정신력으로도 파멸의 용 네르나스에게 붙잡혔던 시간은 지옥과 같았기 때문이다.

“저를 놔주시는 것입니까, 네르나스 님?”

“그래. 가봐라.”

“감사합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위대하신 분의 심기를 상하게 만든 것 용서를 빌겠습니다.”

강무진이 정중한 태도로 말하자 네르나스는 혀를 찼다.

“처음부터 그리 나왔으면 굳이 널 손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군.”

“저의 불찰이지요.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저를 풀어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나에게 감사할 것 없어. 로안이라는 녀석과 협상을 한 것 뿐이니까. 굳이 고마워하려면 로안이라는 녀석에게 해라.”

네르나스는 그 말과 함께 호수의 결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모든 게 꿈만 같구나.’

정말로 호된 경험이었다.

일생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이었다.

그러다 그는 여전히 팬티만 입고 있는 자신의 몰골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곧바로 그의 몸에 옷과 장비가 둘러졌다.

그때 호수 외곽 결계의 벽이 출렁이더니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다름아닌 로안이었다.

“무사히 풀려나셔서 다행입니다, 강무진 공작님. 아까는 사정상 본의 아니게 무례를 저질렀으니 용서를 바랍니다.”

“천만에! 로안 경, 그대는 누구보다 현명하게 대처했네. 그대가 아니었다면 나는 영원히 아까와 같은 꼴로 지내야 했을 거야.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해야할지 모르겠군.”

“아닙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마땅히 도와드려야죠. 그보다 많이 피로해 보이시니 하루 정도 쉬었다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쉴만한 장소가 있나?”

강무진은 로안의 말대로 정말 피로했다.

정신적 피로감으로 인해 그의 강인한 육체도 피로가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이죠. 저를 따라오십시오.”

로안은 강무진과 함께 호수의 공용 공간으로 이동했다.

강무진을 수정궁으로 데려가봤자 거기는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서다.

공용공간은 물속이 아닌 백사장이 있는 호숫가에 만들어져 있는데, 호수가 워낙 크다보니 마치 바닷가의 백사장을 방불케했다.

멀리 아름다운 머메이드들이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기고 있는 꿈결 같은 장면도 펼쳐졌다.

“여기는 어디인가?”

“호수 내 휴양지와 같은 공간입니다. 누구의 방해없이 조용히 쉴 수 있는 공간이죠.”

그러자 강무진이 미소지었다.

“그런 것 같군.”

그는 그말과 함께 아공간에서 천막을 하나 꺼내더니 백사장 위에 펼쳤다.

큼직한 쉘터형 막사.

안에는 쉴 수 있는 해먹과 갖가지 생활도구들이 갖춰져 있었다.

“야영시에 쓰는 군용 천막이네. 휴양지에서 써보는 건 처음이군.”

“앞으로는 여기서도 이런 쉘터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아직은 갖춰가는 중이라 조금 미흡한 면이 있습니다.”

“그런건 부수적일 뿐이지. 이 신비로운 자연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휴양지야. 잠시 이곳에 서있을 뿐인데도 기분이 유쾌해지는군. 오래 머물고 싶을 정도로 말이야.”

“아까는 하루를 말씀드렸지만 얼마가 되어도 좋으니 푹 쉬십시오. 요금은 받지 않겠습니다.”

로안은 강무진이 사실상 멘붕 직전까지 갔을 것임을 짐작했다.

가장 강한 용사가 될 강무진이 속히 정신을 수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무료 휴식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강무진은 뭔가 허탈해하는 미소를 흘렸다.

“자네의 말대로 너무 지친 상태라 반나절 쯤 자고 일어날 생각이야. 혹시 그때 시간이 되면 날 찾아와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그럼 푹 쉬십시오.”

로안은 수정궁으로 돌아왔다.

바로 그 순간.

메인 임무가 완수되었다는 알림이 들려왔다.

[메인 임무 〈네 번째 빛〉이 완수되었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당신의 레벨이 65가 되었습니다.]

[임무 보상으로 베로 500,000코인을 얻었습니다.]

[임무 보상으로 신령한 빛의 조각 ? 수련(신화)을 얻었습니다.]

[어둠에 맞설 네 번째 용사를 무사히 구해낸 당신의 기지에 여신 베로니카가 크게 감탄합니다.]

[베로니카가 당신에게 특별한 선물을 내립니다.]

[초대량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당신의 레벨이 68이 되었습니다.]

‘대박! 이거 레벨이 몇이나 오른 거야?’

메인 임무의 기본 보상에서 3단계, 추가 보상에서 3단계.

도합 6단계나 상승했다.

‘이제 1단계만 더 올리면 승급인가?’

70레벨 천도객 승급!

얼마전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덧 눈 앞에 다가왔다.

특히 오늘 베로니카 여신의 통큰 추가 경험치 보상이 결정적이었다.

“보상 감사합니다, 베로니카 님. 제게 큰 힘이 되는군요.”

받았으면 고맙다는 말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여신들도 다 감정이 있는 존재들이니까.

물론 이렇게 고맙다는 말을 한다고 해서 특별히 뭔가를 더 주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찌됐든 친밀도 형성에 도움이 될 거란 판단에 로안은 정중히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그럼 이제 나도 좀 쉴까?’

네 번째 메인 임무까지 끝내고 나니 여러모로 마음이 편했다.

‘앞으로 3개만 더 하면 메인 임무도 끝이군.’

로안은 뒤로 누웠다.

이 거대 조개 형상의 옥좌는 편리한 기능이 많다.

지금처럼 누우면 침대처럼 편하게 쉴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잠시 눈을 감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뜻밖의 음성이 울렸다.

『로안! 이번에 고집불통 인간 녀석 때문에 골치였는데 네가 나의 마음을 매우 기쁘게 하였구나.』

신비하고 웅장한 음성이었다.

“누구십니까?”

『나는 트렐라. 대전장을 관할하는 전투의 여신이니라.』

로안은 깜짝 놀랐다.

“정말 트렐라 님이십니까?”

『그러하다. 네가 알고 있는 여신 트렐라가 바로 나다.』

이럴 수가!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

여신이 간접적인 알림을 통해 뜻을 전해오는 경우는 있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음성을 통해 대화를 걸어오는 건 말이다.

‘아니지. 게임에서도 친밀도가 높아지면 여신들이랑 대화를 하곤 했어.’

심지어 농담따먹기도 하고.

그런데 그거야 후반에서 무쌍을 찍을 때쯤에나 벌어지는 일인데.

특히 트렐라는 가장 까다롭고 도도한 여신이다.

악마 각성자들도 다 정리해서 트렐라와의 친밀도와 호감도가 극에 달했을 때의 일.

느닷없이 이렇게 트렐라가 말을 걸어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로안이 전투의 여신 트렐라 님을 뵙습니다.”

『그래. 그간 나는 널 계속 지켜보고 있었지. 특히 오늘은 너로 인해 나의 마음이 매우 기쁘구나.』

“별말씀을 다하시는군요.”

『다만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네게 특별히 나의 뜻을 전하러 왔단다.』

“어떤 것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아쉬운 부분이 뭘까?

뭐 신들의 입장에서 볼 땐 인간의 일은 미흡한 것 투성이일 것이다.

로안은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른 이도 아닌 트렐라가 직접 음성을 통해 말을 하는 것이니까.

『경청하려는 그 자세가 심히 마음에 드는구나.』

“물론입니다. 말씀해주시면 즉각 시정할 것이니 어떤 부분이 미흡한지 알려주십시오.”

『그러면 말을 하도록 하마. 로안 너는 도저히 다른 인간들이 따를 수 없는 대단한 위상을 얻었다. 지금껏 그 어떤 용사들이나 혹은 영웅들이라 해도 너처럼 신들의 특별한 총애를 받는 위치에까지 이르진 못했지.』

“부족한 저를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대체 어떤 것이이게 트렐라가 이렇게 뜸을 들이는 것일까?

로안도 궁금했다.

『하나 그렇다하여 스스로 자고한 마음을 가지고 그대가 마땅히 존중해야 할 존재들에게 막 대하는 모습은 심히 보기 좋지 않구나.』

마땅히 존중해야 할 존재들에게 막 대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

“혹시 드래곤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역시 총명하구나. 특히 드래곤들 중 파멸의 용 네르나스는 다른 드래곤들조차 존경하는 매우 지고한 존재이지. 네가 그리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됨을 잊지 말 것이다.』

“······!”

순간 로안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다시 펴졌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로안은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

‘어디서 약을 파는 거냐, 네르나스?’

하긴 갑자기 트렐라가 대화를 걸어와서 의외이긴 했다.

아무리 현실에서 설정이 달라졌다고 해도 여신들이 그리 쉬운 존재는 아니다.

특히 트렐라가 누구인데?

사제가 되어 평생을 바쳐도 직접적인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관련 메인 임무 한 번 했다고 그런 클라스로 대접할 리는 없는 것이다.

‘후! 이따위 수작을 하면 모를 것이라 생각했나?’

누가 봐도 뻔한 수작인데 말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에서 여신의 정체를 의심하는 건 고인물인 로안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역시 시스템이 이런 건 공격으로 판정하지 않는군.’

트렐라는 로안에게 그 어떤 공격도 하지 못한다.

따라서 직접적인 물리나 마법 공격, 혹은 저주와 같은 대미지를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속임수 혹은 사기류의 수작 정도는 가능한 것이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내가 굴복하길 바라는 건가?’

어쩐지 자존심을 굽히고 호수에 들어올 때 뭔가 꿍꿍이가 있지 않을까 의심하긴 했는데.

『어찌하여 대답이 없느냐? 설마 내가 이리 말하는 데도 너는 지금처럼 자고한 행동을 계속 할 생각인 것이냐?』

여신 사칭죄로 신고해? 말아?

하긴 신고 안해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조만간 네르나스는 분명 트렐라에게 어떤 식으로든 징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이도 아닌 그녀가 섬기는 트렐라를 사칭했으니까.

간도 크지.

트렐라가 어떤 여신인데.

다른 모든 여신들도 눈치를 보는 말 그대로 무쌍에 가까운 여신이 바로 트렐라다.

거기다 대부분의 전투 계열 여신들이 그렇듯이 매우 과격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네르나스는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후! 그래. 한 번쯤 져주자.’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살아있는 드래곤 소원 한 번 못들어줄까?

물론 고인물은 절대 그냥 숙이지 않는다.

다 계획이 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있지.’

로안은 즉시 정중하게 말했다.

“듣고보니 제가 정말 경솔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즉시 가서 네르나스 님께 사과하겠습니다, 트렐라 님.”

『잘 생각하였다. 역시 너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한데 네르나스 님이 저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염려할 것 없다. 내 직접 네르나스에게 일러 너의 사과를 반드시 받아들이도록 할 것이다.』

“그리 해주신다면 저로서는 바랄 게 없습니다.”

『그럼 이후로도 너의 활약을 지켜보겠다, 로안.』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트렐라 님.”

트렐라와의 대화는 거기까지다.

물론 트렐라가 아닌 네르나스와의 대화이지만 말이다.

‘공용 공간에 있군.’

수정궁의 대전에서는 각 손님들의 위치를 언제든 알 수 있다.

지금 네르나스는 백사장에 해먹을 꺼내놓고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물론 본신이 아닌 아름다운 엘프 소녀의 모습으로.

그녀의 해먹 앞에는 두 명의 남자들이 머슴처럼 엎드려 있었는데 다름아닌 케르베로스와 바르투스였다.

물론 네르나스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둘 다 자발적으로 그러고 있는 것이다.

머메이드들은 알아서 도주한지 오래였고, 강무진은 멀리 떨어진 쉘터에서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여기 계셨군요, 네르나스 님.”

로안은 즉각 네르나스의 앞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네르나스의 입가에 살짝 득의어린 미소가 맺혔다가 다시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여긴 무슨 일이지, 로안?”

“사과드리러 왔습니다.”

“사과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파멸의 용 네르나스 님! 당신은 매우 존귀하고 위대하신 분인데 그동안 제가 너무 분수를 모르고 무례를 범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제라도 저의 사과를 받아주시겠습니까? 이후로는 절대 무례하지 않겠습니다.”

그말과 함께 로안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네르나스는 순간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그리 뉘우치고 있다니 가상하구나.”

“그럼 용서해주시는 겁니까?”

“물론이다. 본래라면 감히 나에게 무례를 범한 녀석은 용서받지 못하겠지만, 특별히 너는 예외를 두어 그간 일은 더 이상 마음에 두지 않겠다. 이후로도 지금과 같은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넓은 마음으로 저의 과오를 용서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 사이 로안의 옆으로 아쿠아가 과일주스들이 놓여있는 쟁반을 가져왔다.

로안은 그중 한 잔을 네르나스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시원한 과일주스입니다. 한 잔 드시지요.”

그러자 네르나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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