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인물이 휴양지 주인이 되면 벌어지는 일 (1)>
아쿠아는 대전의 중앙에 자줏빛 결계의 벽을 소환했다.
그 결계의 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로안에게도 익숙했다.
바로 이곳 패리드 호수의 외곽 숲이었으니까.
즉, 지금 나타난 존재는 호숫가로 직접 찾아온 것이다.
짙은 청색의 머리카락.
말끔한 인상.
번쩍이는 백색의 정장에 백색 구두.
누가 봐도 호감이 갈만한 귀족적인 얼굴의 중년 남성이다.
‘아라하드 호수의 폭군이라고?’
그러나 로안은 그 정체를 보고 놀랐다.
〈아라하드 호수의 폭군 바르투스(Lv87, World Boss)〉
그렇다.
월드 보스 중 하나가 나타난 것이다.
네르나스나 케르베로스보다는 약하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
대전장이 카오니아 대륙 못지 않게 방대한 세계인 만큼 월드 보스도 네르나스나 케르베로스만 있는 게 아니다.
필드에 배치된 월드 보스도 있지만, 호수나 강 혹은 숨겨진 지하 던전에 배치된 월드 보스도 있다.
고인물인 로안은 당연히 거의 대부분의 월드 보스들을 알고 있지만, 끝내 찾지 못한 히든 월드 보스들도 있다.
물론 바르투스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아라하드 호수의 폭군! 저놈 진짜 죽이기 피곤한 녀석인데.’
놈의 정체는 이무기다.
Lv90의 월드 보스인 케르베로스보다 전투력은 떨어지지만, 방대한 아라하드 호수의 지형을 이용해 전술적으로 움직이는 놈이라 매우 상대하기 어렵다.
더구나 아라하드 호수에는 놈의 부하들이 군단급으로 존재한다.
‘저 이무기 놈은 차라리 케르베로스를 잡으면 잡았지 거의 사냥 안하는 편이었지.’
물론 어중간한 레벨일 때의 얘기고 로안이 네르나스를 잡을 만큼 강해졌을 땐 얘기가 다르다.
솔플 즉, 단신으로 아라하드 호수에 뛰어들어 폭군 바르투스와 그의 부하들을 몰살시킨 적도 있으니까.
“나는 멀리 아라하드 호수라는 곳에서 살고 있는 바르투스라고 한다. 패리드 호수에 새로운 주인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놀라서 찾아왔다. 고대의 전설에 의하면 패리드 호수처럼 안락하고 깨끗한 휴식 공간을 제공해주는 곳은 없다고 했으니 말이야.”
로안은 끄덕이며 물었다.
“나는 패리드 호수의 주인 로안이다. 그런데 월드 보스인 당신의 산책 코스에 이곳 패리드 호수도 포함되어 있었나?”
“천만에. 그럴 리가 있나. 나와 같은 월드 보스들에겐 이런 특별한 휴식 공간이 생겨나면 그 앞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뿐이야. 그러니 안심하게. 난 지금 싸우러 온 것이 아니고 쉬러 온 것뿐이니까.”
하긴 싸우러 왔다면 저런 복장을 하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부탁이네. 잠시 휴식 공간 속에서는 폭군이라 불리는 나의 운명을 내려놓고 한 5일 정도 푹 좀 쉬고 싶어서 말이야. 그대도 잘 알겠지만 아라하드 호수는 워낙 더럽기로 유명한 곳이거든.”
로안은 잠시 고민했다.
아쿠아를 쳐다봤더니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손님들이 규칙을 어길 경우 즉각 추방할 수 있도록 저와 물의 정령들에게 추방 권한을 부여해주실 수 있나요, 로드?”
그럼 로안으로서는 편하다.
일일이 손님들을 단속하고 추방하는 건 피곤한 일.
곧바로 알림이 떴다.
[아쿠아와 순수한 물의 정령들에게 손님 추방의 권한을 부여하겠습니까?]
“예. 부여합니다.”
[아쿠아와 순수한 물의 정령들에게 손님 추방의 권한이 부여되었습니다.]
[부여된 권한은 언제든 회수가 가능합니다.]
그러자 아쿠아가 다시 눈을 반짝였다.
“고마워요, 로드. 이제 일하기가 훨씬 수월해졌어요.”
“그래. 또 다른 권한이 필요하면 말해라.”
“지금처럼 특별한 분들을 제외하고는 일반 손님들의 입장 권한도 저희에게 부여해주시면 로드께서 편하시겠죠.”
“좋아. 그 권한도 부여하지.”
시스템 알림이 떠서 로안은 그 또한 권한을 부여해주었다.
아무리 코인벌이가 된다지만, 로안이 여기서 호수 이용료 받겠다고 장사에만 종일 매달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이런 때 아쿠아와 12명의 순수한 물의 정령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특히 아쿠아.
이 녀석은 귀여운 외모와 달리 호수 운영에 있어서는 아주 노련하기 이를 데 없다.
이 호수 사업체의 스마트한 매니저!
사장인 로안의 입장에서는 보기만 해도 미소가 나오는 유능한 매니저가 아쿠아인 것이다.
그 사이 아쿠아가 패리드의 서에 있는 내용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폭군 바르투스 님같은 월드 보스의 경우에는 전용 공간을 내드려야 해서 1단계 1일 휴식에 트렐 20,000코인이 정가입니다.”
순간 로안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하루 2만 코인이라고?
‘이거 생각보다 훨씬 짭짤하네.’
5일이면 트렐 10만 코인이다.
바르투스 한 명에게 벌어들이는 수입만 말이다.
이런 식이면 월드 보스들만 손님으로 몇 번 받아도 투자비용은 금방 회수할 수 있을 것이다.
‘호수의 주인! 이거 진짜 대박인데?’
로안은 자줏빛 결계의 벽 너머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모고 있는 바르투스를 향해 말했다.
“조용히 쉬고만 간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지.”
“그건 걱정마라, 호수의 주인. 다시 말하지만 나는 휴식을 즐기러 왔다. 그리고 내가 소란이라도 피울 경우 두 번 다시 이곳에 올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지.”
“좋아. 5일이면 트렐 10만 코인인데 괜찮겠나?”
“아직 1단계인데 하루에 2만 코인인가? 생각보다 비싸군.”
“당신만 접근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을 내줘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 당신 또한 다른 이용객들이 없는 조용한 공간을 원할 테니 말이야.”
“오오! 지금 다른 이용객들이라 했나? 그러고 보니 지금쯤 예쁘장한 머메이드들도 놀러와 있겠군.”
뭐냐. 예쁘장한 머메이드?
설마 패리드 호수에 온 목적이 머메이드들을 어떻게 해보려는 건 아니겠지?
“추행이라도 할 생각이라면 관두는 게 좋아. 영구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고 싶은 건가?”
그러자 바르투스가 흠칫했다.
“하하, 오해하지 말라고. 나는 예의없는 행동을 할 생각은 전혀 없네.”
순간 아쿠아가 킥 웃으며 말했다.
“패리드의 서에 보니 이곳에 오는 이용객들 중에는 나름의 로맨스를 꿈꾸며 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했어요.”
“로맨스?”
“네. 휴식 중에 서로간에 호감을 느껴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그러다 애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머메이드들도 은근히 그걸 원한다고.”
“그러다 불상사가 벌어지면 책임은 누가 지고?”
“로드께서 걱정하시는 불상사는 절대 벌어질 수 없어요. 전투 금지 명령을 내려놓으시면 누구든 물리력을 행사하려는 즉시 호수 밖으로 자동 추방되거든요.”
“그런 편리한 기능도 있었어? 진작 알려주지.”
[패리드 호수 내에서 모든 전투가 금지됩니다.]
이러면 패리드 호수 내는 그야말로 절대 안전지대라 할 수 있다.
휴식을 원하는 모든 이들의 진정한 휴식 공간.
그야말로 대전장 최고의 휴양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호수의 접객 공간은 전용공간과 공용공간으로 구분해 결계로 막아둘 수 있죠. 공용공간으로 이동하는 건 다른 이용객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라 이용객 판단에 맡겨두려고요. 단, 공용 공간은 인간의 외모 상태로만 입장할 수 있는 제한이 있죠.”
“인간으로만?”
“네. 서로 용모가 비슷해야 위화감을 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그 기준 용모를 인간으로 결정했다고 패리드의 서에 나와있어요. 따라서 공용 공간으로 가면 자동으로 인간 혹은 인간과 가장 흡사한 외모의 아인족으로 변한다고 해요.”
인간, 엘프, 수인족 정도까지 허용된다고 했다.
수인족이라도 기본적으로 인간의 얼굴에 토끼의 귀나 여우의 꼬리를 가지거나 고양이의 수염을 달거나, 뭐 이런 정도로 사실상 인간과 다름없는 외모였다.
‘별 괴상한 것이 다 디테일하게 설정되어 있군.’
이건 게임에도 없던 건데, 대체 어디서 나온 설정인 것일까?
아무튼 로안이야 손해볼 일이 없었다.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
그 어떤 불상사도 벌어질 수 없는, 완벽한 치안이 있는 공간에서 이용객들에게 즐거운 휴식을 제공할 수 있게 됐으니까.
‘왠지 금맥을 발견한 기분이야.’
고인물의 직감으로도 이 호수 상당히 돈이 될 것 같다.
로안은 흐뭇한 표정으로 최종 승인을 내렸다.
“바르투스! 당신의 입장을 허용한다. 5일 동안 즐거운 휴식이 되었으면 좋겠군.”
나중에 찾아가 레이드할 땐 하더라도, 지금의 바르투스는 호수 휴양지에 찾아온 손님일 뿐이니까.
“하핫, 고맙다, 호수의 주인. 내 오늘은 그냥 왔지만 다음엔 아라하드 호수의 특산물도 좀 챙겨오도록 하지.”
“거래를 원한다면 언제든 협상 가능하다.”
“좋아. 역시 말이 통하는군. 그럼 나는 그대의 배려로 인해 편히 쉬다 가겠다.”
곧바로 트렐 10만 코인이 들어왔고, 그 즉시 결계의 틈이 열리며 바르투스는 패리드 호수로 들어왔다.
그는 먼저 방대한 크기의 전용 공간으로 자동이동된 상태.
그의 앞으로 순수한 물의 정령 하나가 나타났다.
“패리드 호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바르투스 님. 이곳에서 편안한 휴식이 되시길 바랍니다.”
“잠깐, 여긴 전용공간인 듯 한데 공용공간은 어디에 있나?”
“저기 푸른색 워터 게이트가 보이시죠? 저곳으로 입장하시면 됩니다.”
“아, 그렇군.”
“저곳으로 입장하시면 인간이나 아인족 외모로 변해야 하는데 바르투스 님은 지금 그 상태로도 가능하세요.”
“후후, 이런 건 기본 아니겠나?”
바르투스는 비싼 돈을 내고 방대한 크기의 전용공간에 들어왔지만 혼자 조용한 휴식을 취하지 않고 즉시 공용공간으로 향했다.
게이트를 통해 공용공간으로 들어서자 멋진 호수의 백사장이 펼쳐졌고 그곳엔 아름다운 머메이드들이 수십 명이나 햇빛을 쐬고 있었다.
머메이드들이지만 하체는 물고기가 아닌 인간의 다리였다.
공용공간으로 오자 자동변환된 것이다.
“후후, 5일 동안 아주 즐거운 휴식이 되겠군.”
바르투스는 콧노래를 부르며 백사장의 머메이드들 중 누구에게 먼저 말을 걸까 하는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었다.
* * *
한편 네르나스는 이미 패리드 호수 근처에 와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산책 코스에 포함되어서일 뿐이다.’
그녀는 짐짓 무관심한 눈빛으로 호수를 지나치려했다.
그러나 그냥 가기에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면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당장이라도 저 깨끗하고 맑아보이는 물 속에 몸을 풍덩 담그고 유유히 헤엄치고 싶었다.
‘결계로 막혀 있어.’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이미 이럴 거라 생각했으니까.
《패리드 호수가 1단계로 확장되어 물이 깨끗해졌습니다. 맑은 물 속에서 휴식과 회복을 원하는 이들은 패리드 호수를 찾아주세요.》
바로 이 알림을 듣는 순간 패리드 호수에서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그녀는 짐작했다.
‘그놈이야. 그놈이 분명해.’
패리드 호수 어딘가 숨겨져 있다는 순수함의 근원.
그동안 그토록 그녀가 그것을 얻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순수함의 근원은 알아서 주인을 선택한다고 했는데 그게 그놈이었나?’
왠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드래곤들의 수장이자 대전장 최고의 월드 보스인 그녀를 두고 한낱 인간 따위를 주인으로 선택한 순수함의 근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가 패리드 호수의 주인이 된다면?’
이 호수를 맑고 깨끗하게 만들고.
아무도 입장하지 못하게 한다.
오직 그녀만의 전용 호수로 만든다.
그것이 그녀의 꿈이기도 했다.
‘그 꿈을 그놈이 빼앗아가버렸어.’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졌다.
그렇다고 그놈을 손볼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또 그놈이 떡 하니 주인으로 있는데 비굴하게 입장 허락을 받기는 자존심 상하고.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자니 저 호수의 물은 너무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이고.
‘1단계인데도 어찌 저리 물이 깨끗할 수가 있지?’
하지만 만약 2단계나 3단계가 된다면?
‘아니, 저 녀석은?’
그녀의 위치는 멀리 패리드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이었다.
그녀의 옆으로는 쇠사슬에 목줄이 걸려있는 강무진이 실의와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아있는 상태이고.
‘바르투스 놈이잖아?’
호숫가에 홀연히 게이트 하나가 생성되더니 그로부터 빠져나온 백색 정장의 남자.
멀리서지만 네르나스는 단번에 그의 정체를 알아봤다.
패리드 호수가 1단계가 됐다는 광고 알림이 뜬 즉시 녀석이 휴식을 보내러 온 것이다.
잠시 보고 있자 바르투스는 허락을 받은 듯 호수 안으로 사라졌다.
아쉽지만 결계로 막혀 있어 호수 안에서 쉬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밖에서 볼 수 없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호수면만 볼 수 있을 뿐.
‘흥! 저거 봐. 아무에게나 개방하고 있어. 저 귀한 호수를 저 따위 이무기 녀석에게 개방하다니. 호수를 망쳐놓을 셈인가?’
패리드 호수에 대한 독점욕이 강한 네르나스로서는 로안이 바르투스와 같은 녀석에게 호수를 이용하게 하는 것이 영 못마땅했다.
“정말 불공평한 일이야. 어째서 트렐라 님은 그 따위 하찮은 인간 녀석에게 저런 특혜를 주시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패리드 호수의 주인은 내가 딱인데.”
네르나스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은 강무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찮은 인간이라고?’
그는 고개를 돌려 네르나스가 바라보고 있는 호수를 바라봤다.
호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이 시야에 안들어올 만큼 넓은 호수다.
‘삭막한 대전장 안에 저리 아름다운 호수도 있나?’
그는 그저 네르나스에 의해 끌려왔기에 주변의 풍경도 볼 수 없었다.
아니 보지 않았다.
절망에 빠진 상태라 그런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무심코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정말 세상에 저런 아름다운 호수가 있을까 싶었다.
“저 호수의 주인이 인간이라는 말입니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그러다 놀랐다.
‘말이 나오다니.’
말을 하고 싶어도 저주로 인해 불가능했는데 그것이 음성으로 나오자 놀랐다.
네르나스가 싸늘히 웃었다.
“놀랄 것 없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노예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재미가 없어서 말이야.”
“······.”
“어때? 이제 나의 펫이나 혹은 노예가 될 마음이 들었느냐?”
“죄송하지만 제가 당신의 펫이나 노예가 되는 일은 없습니다. 차라리 죽이십시오.”
강무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네르나스가 코웃음 쳤다.
“죽이긴. 누구 좋으라고 죽이겠니? 그럼 넌 대전장 밖에서 부활할 텐데 말이야.”
“대체 저를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제가 속옷 차림이 된 것은······.”
“변명 따윈 집어치워. 그리고 내가 묻기 전에는 입을 열지마라. 쓸모없는 말로 내 귀를 시끄럽게 하면 두 번 다시 말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
강무진은 비로소 자신의 처지를 재확인하고는 처량맞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저 미치광이 드래곤에게서 벗어날 방법은 정녕 없다는 말인가.’
카오니아 대륙에서 천검이라 불리며 대륙 최강자로 추앙받던 자신이 지금 이게 무슨 신세인지 알 수 없었다.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내가 용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신 베로니카에게 용사의 운명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지만, 아직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 사이 몇 번이나 도와달라고 기도를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베로니카는 그저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해. 용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문득 떠오르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라고스 영지의 영주 로안.
강무진에게 두 번이나 신세를 지게 만든 녀석이다.
심지어 그중 한 번은 생명의 위기에서도 구해줬다.
다크 문이 뜨던 날 악마 각성자 엘레토르에게 하마터면 당할 뻔하던 차에 로안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으니까.
‘그 녀석이라면 왠지 방법을 알고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패리드 호수가 2단계로 확장되었습니다. 규모는 말할 것도 없고 물은 더욱 맑고 시원하며 깨끗해졌습니다. 전용공간과 공용공간에서 자유롭게 휴식과 회복을 원하는 이들은 지금 즉시 패리드 호수를 찾아주세요.》
느닷없이 울리는 웅장한 알림.
고개를 들어 호수를 바라보니 아까와는 비할 수 없이 더 거대해진 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기막히군. 아무리 결계 안의 세계라지만 어찌 지형이 저토록 순식간에 변한다는 것인가?’
게다가 호수의 모습은 카오니아 대륙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만큼 아름다웠다.
‘후! 그러고 보니 내가 휴식이라는 걸 해본 게 언제인가?’
죽도록 앞만 보고 살았다.
단 하루도, 매 시간도 허비해본 적이 없다.
밥을 한 번 먹을 때도 효율적으로 먹고 잠시 대기 시간이 생기면 마음으로라도 수련을 했다.
이른바 심상수련(心想修練).
오늘의 천검 강무진을 있게 만드는 훈련법이었다.
경험치를 얻어 레벨만 올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항상 누군가와 전투를 벌인다는 상상을 하며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결국 이꼴이 되고 말았다.
드래곤의 노예.
아니 노예보다 더 낮은 포로 신세다.
노예가 되는 건 그가 거부했으니까.
‘후! 저런 곳에서 며칠 쉰다면 원이 없겠구나.’
인생 뭐하자고 그렇게 앞만 보며 달려왔을까?
저 아름다운 자연에서 마음대로 쉬어보지도 못하고 말이다.
그런데 힐끗 고개를 들어 네르나스를 쳐다보니 그녀의 시선은 온통 호수에 꽂혀 있었다.
그녀는 애써 아닌 척 말하지만 정말로 가고 싶어하는 눈치인 것은 어린아이라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말 특이한 일이야. 저 미치광이 드래곤이 눈치를 보는 존재가 있다니.’
그것도 인간에게 말이다.
‘분명 저 호수의 주인이 인간이라고 했다.’
대체 누구일까 싶었다.
저 드래곤조차 부러워하며 시샘하는 존재가 정말 인간이라니.
“아니, 저 녀석은?”
그때 다시 강무진의 상념을 깨는 네르나스의 음성.
“케르베로스! 네 녀석도 호수에 쉬러 온 것이냐?”
뭔가 기막혀하면서도 심통이 잔뜩 난 음성이었다.
‘케르베로스라면 설마?’
강무진은 잽싸게 네르나스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곳을 바라봤다.
‘웬 오우거?’
그것도 헐렁한 상의에 반바지를 입고 있는 특이한 오우거였다.
그런데 놈은 네르나스의 외침에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고는 움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