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소멸시키는 물약 (1)>
베안트 공작과 마쿠스 공작은 로안의 집무실에서 약 2시간 정도 함께 술을 마시다가 일어났다.
“저택이 제법 큰데 빈방 있느냐? 기왕에 왔으니 좀 쉬다갈까 하는데 말이야.”
마쿠스 공작의 말에 로안은 당연하다는 듯 끄덕이며 대답했다.
“누추하지만 빈방은 많이 있습니다. 얼마든지 편하게 지내셔도 됩니다.”
그러자 베안트 공작도 말했다.
“나 또한 경의 저택에서 잠시 신세를 질까 하네. 괜찮겠나? 라고스 영지가 척박하긴 해도 경치 좋은 곳이 많다고 하니 모처럼 휴가를 좀 즐겨볼까 하네.”
“부담갖지 마시고 편하게 지내십시오. 귀하신 분들께서 머물러주시니 영지의 영광입니다.”
두 공작이 왜 여기에서 한동안 있으려는지 로안은 짐작하고 있다.
‘멜더 후작을 움직이게 하기 위함이겠지.’
술자리에서 이미 나온 말이다.
어떤 식으로 이들이 멜더 후작을 비롯한 친사르곤파를 요리할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아주 잘 할 것이다.
‘이미 다 완벽하게 함정을 파놓고 왔을 테니까.’
특히 베안트 공작의 치밀함이라면 말이다.
베안트 공작은 일국의 재상으로 적격인 인물로 흠을 잡기 힘들 만큼 완벽한 인물이다.
‘그러나 메르벨은 그 클라스가 달라.’
베안트 공작이 지역구라면 메르벨은 전국구, 아니 세계구다.
베안트 공작이 레온 왕국과 같은 작은 나라의 재상에 어울린다면, 메르벨은 제국조차도 넘어선 통일 대륙의 재상에 어울릴만큼 그릇 자체가 다르다는 뜻이다.
로안이 판단한 게 아니라 게임 시스템이 그렇게 설정해 놓았다.
현실이라 어느 정도 조정은 있겠지만 그동안에도 이런 캐릭터별 특성은 거의 일치했으니 아마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물론 메르벨이 성장했을 때 얘기고.’
아직 메르벨은 그저 두뇌가 비상한 애송이에 불과하다.
당연히 지금은 베안트 공작의 오랜 정치 경력에서 오는 혜안을 메르벨이 능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제가 행정관으로 눈여겨보고 있는 녀석이 있습니다. 여기에 계시는 동안 작게나마 가르침을 좀 베풀어주실 수 있을까요?”
“메르벨이란 엘프 소년 말인가?”
“예, 맞습니다.”
“눈빛을 보니 특별해 보이더군. 불러서 한 번 얘기나 해볼까 했는데 경이 그리 말하니 잘되었네.”
방금 전 밖에서 한 번 봤을 뿐인데도 베안트 공작은 이미 메르벨의 특별함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메르벨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겠군.’
베안트 공작과의 만남이 단 하루가 될지 아니면 며칠이 될지 모르지만 메르벨이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나는 봐줄만한 녀석이 없느냐?”
그때 마쿠스 공작이 로안을 슥 노려봤다.
그는 베안트 공작에게만 그런 부탁을 한 것이 못마땅한 듯했다.
이런 게 표정으로 모두 드러나는 단순한 인물.
별 걸 다 셈을 낸다, 진짜.
그래도 로안은 잘됐다 싶었다.
“닐스라고 제가 가장 신임하는 기사가 한 명 있습니다.”
“알고 있다. 평범함 속에 비상함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더구나. 언뜻 둔해 보이지만 뒤로 갈수록 성장이 눈부실 것이다.”
“알아보셨습니까?”
“평생을 전쟁터에서 지낸 나다. 네 부하가 아니었다면 당장 내가 데려가고 싶은 녀석이야.”
“제 오른팔과 같은 기사라 데려가시면 안 됩니다.”
“알았다. 심심하면 그 녀석을 불러서 좀 놀아볼 테니 넌 알아서 할 일을 하거라.”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로안은 두 공작을 저택의 홀로 안내했다.
그리고 베티에게 각별히 신경쓰라 부탁했다.
각성자 집사가 된 베티가 있으니 손님 접대에는 로안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게 두 공작을 저택의 방들에서 쉬게 한 후 로안은 정원으로 나왔다.
‘다들 어디 갔나?’
로안은 헤로스를 비롯한 다른 이들과 아직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두 공작이 중요한 얘기가 있다며 불쑥 집무실을 장악해 2시간 동안 술파티를 벌였기 때문이었다.
‘뒤뜰에 있나?’
이 저택은 앞뜰이라 할 수 있는 정원이 무척 화려하다. 앉아서 쉴 수 있는 쉼터도 많이 있다.
그런데 왜 투박한 뒤뜰로 가 있는 것일까?
물론 그것은 토실이 때문이었다.
녀석이 밖에 있는 손님들을 나름 접대한다며 뒤뜰에 회복의 풀밭지대를 펼쳐놓은 것이다.
“헤로스 백작님!”
“오오! 로안 자작.”
“여기서 뭐하십니까?”
“보다시피 이 녀석을 따라와서 풀밭에 누워있다. 세상에 이렇게 편한 곳은 처음이야.”
저쪽을 보니 마법사 플로리는 이미 쿨쿨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펫인 불뱀이와 헤로스의 펫인 다크는 토실이와 함께 풀밭 한쪽에서 뒹굴며 노는 중이었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다크가 뒤집어져서 배를 내보이는데, 토실이와 몰캉이가 녀석의 배를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
거대한 표범형 야수 펫인 다크가 뒤집어져 있는 걸 보며 헤로스는 어이없어했다.
“저런 덩치값도 못하는 녀석! 그런데 다크가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인데? 그 사이 토실이의 전투력이 다크를 이길 만큼 강해진 건가?”
전투형 펫들의 경우 자신이 대적할 수 없는 존재 앞에서 저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싸울 의사가 없으니 봐달라는 듯, 일종의 굴복의 의미다.
그래서 더욱 헤로스가 어처구니없어하는 것이다.
반면에 로안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전투력이 아니라 귀여움에 굴복한 걸 모르는군.
귀여움이 전투력보다 한 수 위의 능력인데 말이야.
토실이를 보면 그걸 깨닫게 될 것이다.
“아직 모르시는군요. 그건 토실이가 더 귀여워져서 그런겁니다.”
“귀여워서라고?”
“예.”
“그건 아니지. 아무리 귀엽다고 전투를 포기한다는 건 인정할 수 없는 논리다.”
“그럼 백작님은 토실이를 때릴 수 있습니까?”
순간 표범 다크의 배 위에 앉아있던 토실이가 헤로스를 쳐다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헤로스가 넋빠진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누구든 토실이를 때리는 놈은 내손에 죽는다. 아니 토실이가 맞아야 하면 내가 대신 맞아주마.”
대신 맞아준다니!
역시 용사다운 패기다.
마치 누군가 토실이를 때리기라도 할까봐 헤로스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그거 보십시오. 지금 다크도 그런 마음일 겁니다.”
“그래. 확실히 저 귀여움 앞에 맞설만한 건 없는 것 같다. 정말 무서운 능력이야.”
“무섭긴요. 귀여움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죠.”
“하지만 멍하니 시간을 보내게 만들지. 저놈들만 쳐다보고 있게 되거든.”
“그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로안도 가끔 당하는 일.
토실이 패거리를 쳐다보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참 배고프지 않나요?”
“토실이가 딸기를 줘서 먹었더니 괜찮아.”
“여기 풀밭에서 나는 딸기요?”
“그거 내가 먹어도 되는 건가? 진짜 맛있었네.”
“물론입니다.”
토실이가 고대 풍요의 딸기를 따다 접대한 모양이었다.
[풍요의 딸기 0/12]
본래 하루 10개만 생산 가능한 고대 풍요의 딸기는 토실이의 능력이 늘어나며 최대 생산량이 2개 더 늘었다.
비축이 불가능해서 그냥 먹어치우는 게 답이었다.
“근데 클로에 님도 오셨네요?”
플로리 옆에 누워 쿨쿨 자고 있는 여성은 낯이 많이 익었다.
동안의 귀여운 얼굴을 가진 사제 클로에.
레이처럼 게임에서는 없던 캐릭터로 아주 사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 마음 훔쳐보기 좋아하는 관음증 사제.’
그런데 로안이 그 생각을 하는 순간 클로에가 슬쩍 눈을 뜨더니 로안을 흘겨봤다.
“저 관음증 사제 아니거든요.”
“그 말 자체가 이미 훔쳐봤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아무 말도 안했는데 어떻게 관음증 사제라고 생각하는 걸 알았을까요?”
“앗, 그건.”
“훔쳐보기 인정?”
“네, 인정요.”
“또 훔쳐보면 딱밤 맞기로 한 약속 잊지 않았겠죠?”
“그런 약속이 있긴 했지만.”
“이마 대세요.”
로안이 딱밤의 손을 만들자 클로에가 양손으로 이마를 가리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아무리 그래도 손님을 때리려고요?”
“약속인데 손님이라고 봐줄 이유가 없죠. 얼른 이마 까세요.”
“잠깐! 저는 매우 중요한 일로 여기 왔다는 걸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또 얼렁뚱땅 넘어가시겠다?”
“헤로스 백작님! 도와주세요.”
클로에가 불쌍한 표정을 짓자 헤로스가 나섰다.
“로안 자작. 그 딱밤은 내가 대신 맞으면 안 되겠나?”
“백작님이 왜요?”
“클로에 사제님은 매우 중요한 일로 여기에 함께 왔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 해도 이토록 연약한 사제가 딱밤을 맞아야 하는데 기사로서 어찌 두고 볼 수 있겠나?”
헤로스는 정의의 용사다운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어서 딱밤을 날려라. 머리가 터져 죽어도 원망은 하지 않으마.”
“머리가 터져요?”
“그럼 자네의 그 손가락에 맞아서 멀쩡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로안의 근력이 장난이 아니란 건 헤로스도 익히 알고 있다.
“장난인데 이렇게 진지하게 나오면 어떻게 해요?”
“장난이었나? 후, 다행이군.”
“예. 그보다 무슨 중요한 일입니까?”
“마쿠스 공작님에 관한 일이야.”
헤로스는 주변을 살피며 다른 누가 듣지 않도록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클로에 사제님이 가진 특별한 능력에 대해서는 다행히 자네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설명이 쉬워지겠군.”
“혹시 마쿠스 공작님의 마음을 훔쳐본 겁니까?”
“맞아. 역시 잘아는군. 그 방법 뿐이었어. 그때 자네가 나에게 마쿠스 공작님이 악마의 운명을 타고 났다고 말한 이후로 나는 하룻밤도 잠을 편히 자본 적이 없어. 용사인 나로서는 더더욱 말이야.”
알고 있다.
헤로스의 그런 책임감을 믿고 맡겨둔 것이니까.
그리고 그가 레온 왕국의 용사인 만큼 반드시 알아야 할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지켜봐도 마쿠스 공작님은 빈틈을 보이지 않으셨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멀쩡하셨으니까. 간혹 좀 이상한 느낌이 들때도 있었지만, 다시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와 다름이 없었지.”
“그래서 클로에 사제님을 찾은 거군요.”
“맞아. 아프릴 신전에 도움을 요청했지.”
그 다음에는 클로에가 말했다.
“그래서 저는 조심스레 몇 번 마쿠스 공작님과 대화도 하며 그분의 마음을 살폈죠.”
“뭔가 있었습니까?”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요. 대신 임무를 받았죠.”
“어떤 임무요?”
그러자 클로에는 나를 향해 팔을 살짝 뻗었다.
[사제 클로에가 그녀의 임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그러자 곧바로 알림이 떴다.
[임무 〈어둠을 소멸시키는 물약〉이 클로에로부터 당신에게 공유되었습니다.]
[어둠을 소멸시키는 물약]
-분류 : 특별임무
-설명 : 마쿠스는 본래 악마의 운명을 타고났지만 특별한 인연으로 인해 운명이 뒤바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그에게 부여된 악마의 운명을 완전히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의 마음에 스며든 어둠을 소멸시켜야 할 것이다.
-조건 : 마음 속 어둠을 소멸시키는 물약을 구해 마쿠스에게 복용케 한다.
【재료】
-고대의 비약 0/1
-고대 용의 혈액 0/1
-아프릴리스의 성수 10/10
-고결의 이슬초 1/1
-순수의 정수 1/1
-빛의 정수 1/1
【임무 공유자(4/4)】
-클로에, 헤로스, 플로리, 로안
임무를 살펴본 로안은 쾌재를 불렀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야.’
이로써 물약 하나만 만들어 먹이면 마쿠스 공작은 깔끔하게 정상인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 물약을 만드려면 상당히 까다로운 재료들을 구해야 한다.
‘다행히 재료를 거의 다 구해놨네.’
놀랍게도 전설 재료인 고결의 이슬초와 순수의 정수, 빛의 정수를 모두 구해놨다는 것.
이는 헤로스가 베안트 가문의 막대한 재력은 물론 각종 인맥까지 활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대의 비약은 나에게 있으니 됐고, 고대 용의 혈액만 구하면 돼.’
그런데 고대 용의 혈액?
이건 좀 난감하다.
‘풍룡에게 가서 피 좀 빼달라고 하면 되는데 순순히 줄지 모르겠군.’
그래도 그것 빼고는 다 구해진 상황이란 것이 다행이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때 헤로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최대한 빨리 물약을 제조하려고 백방을 알아봤다. 다른 건 다 구했는데 두 종류는 결국 못 구했어. 혹시 몰라 금단의 영역에 들어갔다가 고자가 되고 말았지.”
“예?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헤로스가 고자가 되다니.
이건 또 무슨 산뜻한 얘기일까?
순간 그때까지 해맑던 헤로스가 돌연 세상 다 산 것 같은 표정으로 로안을 쳐다봤다.
“괜찮아. 인생에서 꼭 그게 그리 중요하겠나? 용사인 나는 그까짓 것에 굴복할 생각이 없다.”
“그러니까 어쨌든 고자가 된 게 맞습니까?”
“맞아. 잊혀진 신전이라는 곳에 기어들어가서 괴상한 비약을 마셨는데 그리 되고 말았다.”
잊혀진 신전.
로안도 당해본 곳이다.
이번 생에서는 다행히 환생의 비약을 마셨지만 게임에서는 고자의 비약을 마시고 고자가 된 적도 있으니까.
“그래서 난 악마들을 물리치고 세상이 평화로워지면 사제가 될 생각이다.”
“그럼 플로리 님은 어떻게 하고요?”
“함께 사제가 되기로 했어. 나 혼자 사제가 되게 할 수는 없겠다며 말이야.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어.”
정말 대단한 커플이다.
“너무 그렇게 나를 동정하듯 쳐다보지 마라. 여기 클로에 님은 아주 환영해주고 계신다.”
클로에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맞아요. 고자는 사제에게 있어 아무런 결격사유가 되지 않아요. 오히려 잘된 일이죠. 특히 헤로스 백작님이라면 희생 정신이 강해서 아주 훌륭한 사제가 되실 거예요.”
로안은 픽 웃었다.
“그거야 그렇겠죠. 근데 고자의 저주를 받았다면 분명 정보창에 표시되어야 하는데 안보이네요?”
“품위 상 좋지 않아보인다 하셔서 제가 감춰드렸어요.”
그러고 보면 클로에는 별 특이한 능력을 많이 가진 사제다.
남의 마음을 훔쳐보고, 정보창의 내용도 감춰주고.
“긴말이 필요없군요. 일단 드십시오.”
로안은 고자 해제 물약 1병을 꺼내 건넸다.
“이, 이건!”
헤로스는 물약을 쥐는 순간 뜬 〈고자 해제 물약〉이라는 설명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냐?”
“예. 고자의 저주 따위 별거 아닙니다. 그 물약만 마시면 그냥 풀리거든요. 그러니 세상 다 산 사람 같은 표정 짓지 마세요.”
“그럴 수가!”
그때 플로리가 깨어났다.
“다들 무슨 얘기 중이에요? 아, 로안 경? 오랜만이에요. 염치없게 여기서 잠들고 말았네요.”
“하하, 아닙니다. 토실이의 풀밭은 낮잠자기 아주 좋은 곳이죠.”
“정말 꿀잠 잤어요. 근데 방금 잠결에 듣기로 무슨 물약을 얻었다고?”
“고자 해제 물약입니다. 헤로스 백작님은 정상으로 돌아오실 수 있으니 안심하세요.”
그러자 플로리 또한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잠결에 언뜻 그말을 듣고 놀라 일어나긴 했지만.
“그럼 백작님이 사제가 되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신앙심이 좋아 사제가 되시겠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만 고자 때문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아! 그렇구나.”
뭔가 달관한 듯 냉소적으로 변해있던 플로리의 표정에 급격히 활기가 돌아왔다.
그런데 그때.
“잠깐만요. 그 물약 잠깐만 줘보세요.”
클로에가 눈을 빛내며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헤로스가 무심코 그것을 넘기자 클로에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맙소사! 이게 고약의 비약이에요. 보는 순간 환하게 반짝여서 이상하다 했더니.”
-고대의 비약 1/1
그녀뿐 아니라 공유자 모두의 임무 조건 창이 갱신되어 있었다.
로안이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 했는데 그거 고대의 비약 맞습니다.”
“으! 그런가? 이거 고민되는군.”
헤로스가 심히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비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먹지 않겠다. 내가 고자의 저주를 해제하는 것보다 마쿠스 공작님의 마음에 있는 어둠을 소멸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야.”
진짜 용사다운 말이긴 하다.
‘그래. 저게 용사지.’
로안도 감탄했다.
과연 이런 선택지가 있을 때 그 자신이라면 어떤 걸 고를까?
게임에서야 고자가 되건 말건 어차피 게임이니까 상관없지만, 현실은 다르다.
“어쩔 수 없겠죠. 그게 백작님의 뜻이라면.”
그때 플로리 또한 헤로스의 뜻에 동조한다는 듯 끄덕였다.
한숨은 내쉬고 있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플로리까지.’
달리 용사의 애인이 아닌 모양이다.
무엇보다 진짜 일편단심 그 자체다.
왠지 헤로스가 부러울 정도였다.
아무튼 이런 상황이 올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물약을 2병 꺼낼 걸 그랬나.
“비약 여기 또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끼지 말고 드세요.”
로안이 고자 해제 물약 1병을 다시 꺼내 보이자 헤로스와 플로리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