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으로 독존한다-139화 (139/240)

균열의 핵 (4)

사르곤 제국 제티스 영지.

방대한 곡창지대의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성.

이곳이 바로 영주성인 카멜성이었다.

카멜성의 성주이자 제티스 영지의 영주는 케시안 백작.

은빛 장발의 미청년.

언뜻 보면 온화한 인상이지만 이따금 두 눈에서 번쩍이는 핏빛의 광채는 실로 소름끼쳤다.

그를 보는 모두를 전율케만들 만큼 말이다.

그저 소문일 뿐이지만.

아름다운 여성들만 골라 목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라는 말도 있다.

이유없이 노예들을 숲에 풀어준 후 인간 사냥을 즐긴다는 얘기도 있고.

물론 모두 소문만 무성할 뿐 밝혀진 사실은 없다.

그 일을 밝히기 위해 파고든 이들은 모두 죽었으니까.

공식적인 칭호는 〈피의 학살자〉.

적대국이자 교전국인 한 제국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존재.

작위는 백작이지만 사르곤 제국군에서는 중장(★★★)의 계급을 가진 최상급 지휘관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지금 집무실에 앉아 주먹만한 크기의 구형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후작님? 균열 두 개 정도면 라고스 영지와 같은 별볼일 없는 곳은 이미 초토화되지 않았을까요?”

피의 학살자인 그가 최대한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공대하는 존재는 다름아닌 여성이었다.

거대한 집무실의 중앙에 위치한 화려한 소파.

그곳엔 붉은 후드로 얼굴을 가린 차가운 기세의 여성이 다리를 꼰 채로 앉아 있었다.

사르곤 제국 비밀 조직인 암부(暗部)의 수장이자 제국군 참모.

마현자 엘레토르 후작이었다.

“천만에. 그놈이 있는 성은 고작 소형 균열 두 개 정도에 무너질 리 없다.”

“그놈을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아닙니까?”

“아니 그 반대야. 지금도 난 그놈을 과소평가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엘레토르의 말에 케시안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아는 엘레토르가 맞나 싶었다.

‘큭! 엘레토르 저년이 그 로안이라는 애송이 놈에게 된통 당하기라도 했나 보군.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신중한 말을 할 리가 없어.’

케시안은 악마 각성자다.

그가 신봉하는 악마는 콜레나.

대악마 타쿨룬의 계보에 속한 악마다.

즉, 그가 엘레토르를 겉으로나마 공손하게 대하는 건 그녀의 작위가 후작이어서도 아니고 암부의 수장이나 제국군 참모라서가 아니다.

악마 콜레나가 속한 계보의 최상위에 위치한 대악마 타쿨룬의 하수인이 바로 엘레토르이기 때문이다.

‘그래봤자 잠시만이다. 용사들을 모두 처치한 후 악마들의 시대가 열리면 그땐 네년보다 훨씬 상위의 존재로 등극할 것이다.’

악마의 시대가 열리면 계보와 상관없이 강한 각성자가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케시안은 스스로의 힘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자신이 작정하면 엘레토르 따위는 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그의 속내를 엘레토르가 뻔히 뚫어보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케시안! 너는 마음을 숨기고 있다 생각하지만 눈빛에 다 드러나 있어. 그것이 네가 영원히 나의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게 그녀가 의미모를 미소를 띄우고 있자 케시안은 뭔가 못마땅한 듯 인상을 찌푸린 채 물었다.

“소형 균열 두 개로도 초토화되지 않았다면 다시 또 보내면 될 것입니다.”

“균열의 핵이 몇 개나 더 있는 거지?”

“큭! 아무리 후작님이라지만 그것까지 제가 말씀드릴 수는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한동안 매일밤 소형 균열 두 개씩을 지속적으로 보낼 정도는 됩니다.”

그말에 엘레토르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동안 매일밤 2개씩이라니.

‘저 능구렁이 같은 녀석이 어떻게 저리 빨리 균열의 핵을 확보한 것일까?’

물론 엘레토르 또한 균열의 핵을 가지고 있다.

특별한 퀘스트를 통해 얻은 것으로 소형 5개와 중형 2개.

다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아 아무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케시안이 웃었다.

“소형이라 안심이 되지 않는다면 조만간 중형 균열도 보여드리지요.”

“지금 중형이라 했나?”

“물론이지요. 조만간 중형도 하나 완성이 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라고스 영지가 용케 버티고 있다면 중형을 날려 마지막 숨통을 끊어버리겠습니다.”

엘레토르가 다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형과 중형은 균열의 위력에서 차원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잘 알고 계시군요.”

케시안이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 로안이라는 놈을 상대하기 버거우시다면 그냥 제게 맡겨주십시오.”

순간 엘레토르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솔직히 버거워서 찾아왔는데 그대가 균열의 핵을 확보해 아주 마음이 든든하구나. 정말 그놈을 끝장낼 자신이 있겠지?”

“물론입니다, 후작님. 그런데 만약 제가 그놈을 끝장낸다면 어떤 보상을 주시겠습니까?”

“그대가 이미 원하는 보상이 있겠지.”

“제가 당신에게 원하는 건 하나입니다.”

케시안이 음탕한 눈빛으로 다가와 손가락을 뻗어 엘레토르의 입술을 만졌다.

엘레토르가 희미하게 웃었다.

“정말로 그놈을 없애준다면 오히려 내가 성심껏 그대에게 이몸을 바치도록 하지. 질릴 때까지 말이야.”

“크큭! 그 말 믿어도 되겠습니까?”

“타쿨룬 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다. 그러니 균열을 아끼지 말고 그놈의 영지에 보내도록 해라.”

“그건 염려마시지요. 그놈의 영지를 개미새끼 한 마리 살아남지 못하는 저주받은 폐허로 만들어버릴 것입니다.”

케시안은 이미 그 일을 달성하기라도 한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엘레토르가 그런 그를 책망하듯 노려봤다.

“방심은 금물이다, 케시안 백작. 로안 그놈은 악마의 힘도 쓸 수 있는 무서운 존재다.”

“지금 악마의 힘이라 했습니까?”

케시안은 깜짝 놀랐다.

단순히 로안이 악마라는 것 때문이 아니다.

정말로 로안이 악마라면 그가 지금 로안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

악마들간의 분쟁은 용사들을 소멸시킨 이후 도래하는 악마의 시대에서 가능한 일이니까.

“타쿨룬 님이 몽시를 통해 알려주셨다. 가짜 악마가 있어 매우 거슬린다고 말이야.”

“가짜 악마라고요? 그건 또 뭡니까?”

“나도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놈이 아무리 악마의 힘을 쓸 수 있다고 해도 진짜 악마가 아니니 우리가 그를 공격하는 건 무리가 없다.”

순간 케시안은 큭 웃었다.

“괜히 걱정했군요. 그렇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놈이 어떻게 악마의 힘을 쓸 수 있게 됐는지 모르지만 그 싹이 자라나기 전에 놈의 터전을 박살내버리겠습니다.”

“부디 그렇게 되기를 바라겠다, 케시안 백작.”

엘레토르가 슥 다가와 케시안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입술을 댔다 싶은 순간 바로 떼었기 때문에 아쉬움만 컸다.

케시안이 장난하냐는 듯 쳐다보자 엘레토르가 오연히 웃었다.

“더 진한 걸 원한다면 이번 일을 성공시켜라. 타쿨룬 님도 그대를 지켜보고 계시니까.”

“흐흐, 곧 저를 찾아오시게 될 겁니다. 그때 최대한 야한 속옷으로 부탁합니다.”

“알겠다. 그러도록 하지.”

엘레토르는 순순히 끄덕였다.

그러나 그녀의 속내는 싸늘했다.

‘타쿨룬 님이 내려주신 몽시의 의미가 매우 모호했어.’

로안의 주위에 공포의 악룡이 똬리를 틀고 있는 꿈을 그녀가 꿨기 때문이다.

그것은 섣불리 로안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

그녀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계획을 급히 수정했다.

직접 균열의 핵을 쏘아 라고스 영지를 날려버리기 보다는 케시안을 이용해 로안의 전력을 시험해보기로 한 것이다.

‘행운을 빌겠다, 케시안. 네가 로안이라는 녀석을 정말로 해치워준다면 나로서는 바랄 게 없겠지.’

그런 속내는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 엘레토르는 후드를 뒤로 넘겨 드러낸 아름다운 얼굴로 케시안을 다시 한 번 홀렸다.

그리고는 환영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 * *

한편 로안은 그때 막 농구공만한 균열을 빼들었다.

“흐흑! 우리 아가······.”

“좀비가 아이를 죽였어요!”

마을이 폐허가 된 것보다.

성이 부서진 것보다.

죽은 사람들에 대한 절규가 들려오자 로안은 결심을 굳혔다.

단 한 사람의 절규라고 해도 참기 힘든데, 수십 명이 넘게 죽은 듯했다.

‘이걸 던지면 그쪽은 재앙이 벌어진다.’

어쩌면 무고한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다.

비록 적국이지만 전쟁과 관계없는 평범한 백성들이 말이다.

그러나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영지의 백성을 살리느냐, 아니면 적국의 백성을 살리느냐.

적국 백성을 살리자고 망설이는 순간 라고스 영지의 백성들 중 상당수가 균열 공격에 생명을 마감하고 말 것이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받은대로 돌려준다.’

오늘의 일로 적지 않은 이들에게 원망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주가 된 이상 그건 감수해야 할 일.

‘어차피 모두에게 좋은 놈이 될 수는 없지.’

내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적에게는 악마가 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못할 것 같으면 영주고 뭐고 때려치워라.

[균열의 핵(초대형)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예.”

[광룡의 균열 발사 준비 중]

[발사 지점은 레온 왕국 라고스 영지 디온 성입니다.]

[계속 진행하겠습니까?]

“예.”

균열의 핵 알림을 듣는 로안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아프릴리스가 깊은 탄식을 하며 당신에게 말합니다.]

[그대는 악마가 아니다, 로안. 악마들과 같은 길을 가려하지 말 것이다.]

[헤나가 당신의 결정에 짙은 우려를 표합니다.]

[그대는 진정 악마의 길을 선택하려 하는가.]

[카보네스가 당신의 결정을 중립적으로 바라봅니다.]

[트렐라가 당신의 결정을 지지합니다.]

그동안 로안에게 어떤 식으로든 관심을 보였던 여신들 모두가 일제히 로안에게 알림을 통해 각자의 뜻을 전해왔다.

평화와 관련된 여신들은 일제히 우려를 표했고, 전투 계열의 여신들은 중립이나 지지를 표했다.

‘여신들이 이런 식으로 선택에 개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아주 난리가 났다.

특히 아프릴리스와 헤나.

그녀들은 직접 그녀들의 말을 전해올 정도다.

하긴 초대형 균열이니 이해는 간다.

전생의 지구라면 핵폭탄을 날리는 것과 다름없으니 말이다.

이때 여신들의 우려를 무시한 채 강행하면 해당 여신들과의 친밀도가 크게 하락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그 여신들의 도움을 받기 어렵게 될 수도 있다.

‘평화가 그렇게 중요하면 악마들의 공격에서 여길 지켜줬어야지.’

악마들은 막장으로 행동하는데 이쪽은 참으라고?

아니, 똑같이 갚아준다!

로안은 두 여신들과의 관계가 악화될 걸 각오했다.

물론 거기에는 최강의 전투 여신 트렐라의 지지가 한 몫했다.

[목표지점을 설정해주세요.]

“사르곤 제국 제티스 영지 카멜 성.”

명분도 충분하다.

악마들의 공격을 먼저 받은 것에 대한 반격.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철저한 응징!

그래서 전투의 여신들이 중립이나 지지를 표하는 것이리라.

[아프릴리스가 크게 탄식하며 1시간의 선전 포고 월드 알림을 제의합니다.]

[헤나가 동의합니다.]

[카보네스가 동의합니다.]

[트렐라가 동의합니다.]

[선전 포고 월드 알림 후 1시간이 지나 광룡의 균열이 발사되는데 당신도 동의합니까?]

“예.”

로안은 끄덕였다.

어차피 바로 발사하나 1시간 후 발사하나 응징의 효과는 별 차이가 없다.

이 응징은 적이 두 번 다시 도발하지 못하게 만드는 데 있는 거지, 모조리 죽이는 데 있는 게 아니니까.

‘1시간 동안 몇 명이나 도망갈지 모르지만.’

무엇보다 여신들 모두가 동의한 사항에 굳이 역행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 양보해주면 아프릴리스와 헤나 등과 최악의 관계로 치닫는 건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선전 포고 월드 알림을 등록해주세요.]

“사르곤 제국 제티스 영지의 영주는 들어라! 너는 밤 사이 두 번이나 라고스 영지에 균열의 재앙을 보냈다. 너로 인해 나의 무고한 백성들이 죽었다. 이것은 그에 대한 응징이다.”

요약하면 앞으로 누구든 라고스 영지를 건드리면 죽을 각오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다.

생각같아서는 욕을 남발하고 싶지만 월드 전체로 들린다고 하니 최대한 절제했다.

쿠르르릉!

그 순간.

갑자기 카오니아 대륙의 전체에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우레가 울렸다.

동시에 퍼지는 월드 알림.

《레온 왕국 라고스 영지의 영주 로안이 사르곤 제국 제티스 영지에 초대형 등급 광룡의 균열을 보냈습니다.》

《앞으로 1시간 후 광룡의 대재앙이 사르곤 제국 제티스 영지를 뒤덮을 것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에 이어 로안이 등록한 선전 포고의 말이 그대로 월드 알림으로 다시 울려 퍼졌다.

《사르곤 제국 제티스 영지의 영주는 들어라······.》

* * *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 시간 사르곤 제국 제티스 영지 카멜 성.

케시안 백작은 날벼락같은 월드 알림을 듣고 경악했다.

《······초대형 등급 광룡의 균열을 보냈습니다.》

‘초대형이라고?’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대형도 아닌 초대형이라니!

그것도 광룡의 균열!

악마 각성자인 그가 광룡이 무엇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정말로 광룡이 나타나면 불과 몇 시간도 안 되어 카멜 성을 비롯한 제티스 영지는 완전히 초토화되어 버릴 것이다.

그것은 곧 그가 그동안 쌓아놨던 모든 기반이 무너진다는 걸 의미했다.

‘말도 안 돼.’

그는 현실을 부인하려 했다.

지금 이 상황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나 알림이 이어질수록 그의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로안의 선전포고를 듣는 순간 정신이 아득하게 변했다.

“으아아아! 광룡이 나타난대요!”

“모두 여길 떠납시다!”

“1시간 후에 이 영지는 망해요.”

광룡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영지에 남아있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1시간 안에 떠나려면 뭔가를 챙길 틈도 없는 상황.

집이건 식량이건 모든 걸 버리고 무작정 뛰쳐나가야 한다.

그건 케시안 백작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긴 나의 모든 것이 있는 곳이다.’

수천이 넘는 정규군에 1백이 넘는 기사들만 있는 게 아니다.

주력은 따로 존재했다.

그가 비밀리에 육성한 좀비 군단과 흡혈귀 군단.

심지어 최근에 연구 중인 블러디 좀비라는 것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들 모두를 버리고 도주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광룡의 균열이라니 헛소리에 불과해.’

그는 로안이 뭔가 특별한 방법으로 허풍을 떤다 생각했다.

“겁먹을 것 없다. 광룡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온다한들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그는 부하들을 다독이려했지만 월드 알림을 듣고 이미 패닉 상태에 빠진 부하들의 탈주를 막기란 쉽지 않았다.

두두두두!

말을 탄 기병들부터 중갑을 내버리고 비무장 상태로 죽어라 뛰는 보병들까지.

그들을 통제해야할 지휘관들까지 도주하는 상황이다.

케시안이 나설 수도 없었다.

그 사이 그는 엘레토르를 비롯한 다른 악마 각성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광룡이 아무리 대단해도 나와 같은 악마 각성자들이 모두 모이면 잡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도우러 오지 않았다.

그가 신봉하는 악마 콜레나 또한 피하라는 것 외에는 다른 계시가 없었다.

특히 엘레토르의 답변은 매우 냉정했다.

「영지를 포기하고 도주하라, 케시안 백작.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게 현명한 일이다.」

「그놈이 술수를 벌인 게 분명합니다. 사기일 수도 있습니다.」

「사기인지 아닌지는 지나보면 알게 되겠지. 일단은 속히 그곳을 벗어나라.」

그러나 케시안은 지하에서 비밀리에 양성중이던 각종 언데드 군단을 믿었다.

그렇게 한 시간은 금방지났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콰아아아아―!

카멜 성의 상공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소용돌이의 반경이 점점 더 확장되더니 그 중앙에서 뭔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피처럼 붉은 비늘에 뒤덮인 용의 머리.

하나가 아니었다.

연이어 소용돌이를 뚫고 나타난 거대 용의 머리는 도합 7개.

각각의 머리들마다 눈에서 번개와 같은 광채를 내뿜었다.

그리고 이윽고 가히 카멜 성만한 크기의 거대한 몸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게 광룡······?’

케시안의 안색이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광룡!

그가 상상했던 범주를 뛰어넘는 존재였다.

“피, 피해야 한다.”

케시안은 왜 자신이 엘레토르의 조언을 듣지 않았는지 후회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그는 다급히 공간이동마법진을 작동시켰다.

화아아악!

마법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걸 본 그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큭!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군.’

마법진의 환한 광채와 함께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이동한 공간은 광룡의 바로 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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