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큐버스 유적 (2)
‘설마 고자라서 넘어간 건가?’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 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이럴 수도 있구나.’
정말로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로안이 아무리 고인물이라고 해도 이런 경우는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에서 고자가 되본 적이 있긴 해.’
잊혀진 신전에서 랜덤으로 나타나는 괴상한 물약을 먹고 고자로 변한 경험이 있다.
그런 때는 정말로 그때까지 해놓은 것에 미련이 많은 경우가 아니라면 〈처음부터 다시하기〉를 선택하지, 굳이 고자로 게임을 계속 진행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계속 끝까지 해본 적도 있긴 하지만 고자 상태로 서큐버스 던전에는 와본적이 없어.’
즉, 이 상황은 고인물인 로안에게도 아주 새로운 것이다.
‘이런 상황 아주 좋아.’
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고자라는 새로운 변수가 추가되었으니 이걸 활용할 방법을 찾기 위함이다.
‘잘만하면 이 유적을 더 수월하게 깰지도 모르겠는데?’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있었다.
솔직히 고자라고 해서 유혹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자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불능인 상태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육체와 마음은 별개이니까.
그런데 어째서 서큐버스의 유혹을 받지 않은 것일까?
단순히 고자라는 이유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말이 안 되는데.
“어째서 날 그런 눈빛으로 보는 거냐?”
그때 3왕자 데랄쿠가 왠지 기분나쁘다는 듯한 눈초리로 로안을 노려봤다.
“궁금해서 그래.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은 거냐? 귀에다 숨결 같은 걸 불어넣거나 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하지 않았나? 내 귀에 들리는 건 부하들의 비명소리뿐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데랄쿠는 착잡한 표정으로 주변에 쓰러진 부하들의 주검이 연기로 변해 흩어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빌어먹을! 그대의 말을 들을 걸 그랬다. 내 부하들이 장비를 모조리 잃어버리고 말았겠군.”
이제야 후회하면 뭐하나.
로안이 그토록 팬티만 입으라고 강조할 땐 귓등으로도 듣지 않더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든 리자드맨이든 일단 겪어봐야 실감을 하는 모양이다.
말로 해서 듣는 이는 극히 소수일 뿐.
“뭘 그리 낙담하는 거지? 어차피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다들 팬티 차림으로 삽질을 시작해라.”
로안의 닦달에 데랄쿠를 비롯한 10여 명의 리자드맨들은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그들은 즉각 장비를 탈착해 아공간에 넣었다.
녀석들의 속옷은 T팬티를 연상케했다.
앞부분은 천으로 가리고 엉덩이쪽은 줄만 보였으니까.
그래도 속옷 문화가 있는 게 어디인가.
괴물 이종족들 중에는 속옷 문화가 없는 녀석들이 태반이다.
“자, 자! 머뭇거리지 말고 어서 삽질을 해라.”
“조금 쉬었다가 부하들이 오면 같이 하는게 좋지 않겠나?”
맥이 빠지는지 좀 쉬자는 분위기였다.
그러자 로안이 땅을 가리켰다.
“보다시피 조금씩 흙이 메워지고 있다. 이대로두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돼.”
5미터까지 내려간 구덩이의 바닥이 어느새 4미터 깊이로 올라와 있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모두 삽질을 시작해라.”
“예, 왕자님.”
데랄쿠를 비롯한 리자드맨들이 흙을 파기 시작했다.
두두두! 두두두두!
그 사이 게이트에서 부활했던 리자드맨들이 말을 타고 오는 소리가 들렸다.
게이트에서 이곳까지는 10km의 거리가 있지만 말을 타고 오니 금세 도착한 것이다.
‘저 녀석들에게 기병 스킬이 있어 다행이군.’
로안은 그들을 향해 외쳤다.
“왔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삽을 들어라.”
“삽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죽으면서 삽들이 사라진 모양이다.
그러자 데랄쿠가 외쳤다.
“삽이 없는 놈들은 투구에 흙을 담아 밖으로 퍼날라라.”
“예, 왕자님.”
어차피 구덩이가 깊어지면 이런 식으로 분업을 해야 일이 빨라진다.
데랄쿠가 알아서 작업 지시를 내려주니 로안은 편했다.
그는 서큐버스 환영이 또 나타나나 살피며 외쳤다.
“잠시 후 다시 분홍색 날개가 나타날 거다. 설마 또 당하는 녀석들은 없겠지?”
“크크, 염려 마십쇼.”
“한 번은 당해도 두 번은 안 당합니다!”
리자드맨들은 잔뜩 벼르고 있었다.
스스.
그때 다시 나타난 요사한 빛의 날개.
“모두 눈을 감아!”
로안이 그 즉시 외치자 리자드맨들은 석화라도 된 듯 일제히 작업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심지어 양손으로 두 귀를 막은 녀석들도 보였다.
“크아아악!”
“꾸어억!”
그러나 로안이 눈을 감고 있는 1분 동안 죽어나가는 녀석들이 다수였다.
잠시 후 눈을 떠보니 아까와 동일했다.
〈고자〉 타이틀을 달고 있는 녀석들만 생존해 있었으니까.
‘후!’
로안은 한숨이 나왔지만 이제 답은 분명했다.
아까는 긴가민가 했는데 서큐버스가 고자들에게는 유혹을 하지 않는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이제부터 고자들만 삽질을 하고 나머지는 뒤로 빠진다.”
“크으! 역시 그것 때문인 것인가?”
데랄쿠를 비롯한 고자 리자드맨들이 치욕적이라는 듯 인상을 구겼다.
그들 역시 눈치가 없는 게 아니다.
왜 자신들이 멀쩡한지 감을 잡은 것이다.
로안이 끄덕였다.
“맞아. 바로 그것 때문이다. 그러니까 고자의 저주를 해제하고 싶으면 더욱 열심히 땅을 파라.”
“알았다.”
데랄쿠 등은 부지런히 삽질을 시작했다.
이제 로안도 삽을 들고 땅을 파는데 합류했다.
멀리서 상황을 살피던 아이린도 안되겠다 싶은지 달려왔다.
그녀의 근처에서 놀고 있던 토실이, 몰캉이, 제논, 엘버가 줄줄이 따라왔다.
“저도 도울게요, 영주님. 전설에 의하면 서큐버스가 여자는 유혹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예. 그렇긴 합니다.”
로안은 말리지 않았다.
고자가 아닌 리자드맨들이 땅파기에서 예외된 이상 한손이라도 보태야할 판이니까.
푹! 푹!
뜻밖에도 아이린은 삽질도 능숙했다.
많이 해본 것 같았다.
로안은 감탄했다.
“오! 잘 하시네요?”
“이런 일이 일상이었죠. 농사도 지어봤고 수렵이나 채집도 능숙해요.”
정체를 숨긴 채 평민으로 살아야 했던 아이린의 삶은 고달프기 짝이 없었으리라.
그런데도 그녀의 외모는 아무런 구김살없이 자란 듯 전형적인 미소녀 공주 그 자체다.
외모가 정말 사기적이지만 진짜 사기는 그녀의 멘탈이었다.
“숲에서 잠잘 곳이 없으면 구덩이를 파기도 했고요. 배고프면 벌레를 잡아먹기도 했죠. 영주님은 벌레 먹어본 적 있어요?”
“아뇨.”
“생각보다 맛있어요. 언제 한 번 먹어보세요.”
순간 그 사이 작은 애벌레로 변해 로안의 어깨 위에 있던 몰캉이가 움찔하더니 아이린을 쳐다봤다.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녀석 불쌍한 척 연기는.
본신이 마물 베르미스인 녀석이 작아지면 정말 애벌레처럼 처량맞은 행동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이 귀여운지 아이린이 풋 웃으며 몰캉이를 쓰다듬었다.
“염려마. 넌 절대 잡아먹지 않을게, 몰캉아.”
그러자 몰캉이가 키득거리며 좋아했다.
아이린은 몰캉이의 몰캉말캉한 감촉이 좋은지 잠시 삽질을 하다말고 녀석과 장난을 치고 있었다.
토실이와 엘버는 로안과 아이린의 볼을 번갈아 비벼대며 뛰어다녔다.
일하지 말고 놀아달라는 듯 두 눈을 반짝이는 녀석들.
로안도 픽 웃었다.
그래. 이런 분위기 아주 좋다.
땅을 파도 막노동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지금처럼 훈훈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푹푹!
로안은 다시 부지런히 삽질을 했다.
아이린도 역시 삽을 쥐고 땅을 팠다.
스스스.
그런데 그때 다시 나타난 핑크빛 날개.
“모두 눈을 감아! 아니, 그럴 필요 없나?”
여긴 고자들과 여자만 있으니까.
로안만 빼고.
물론 로안은 사실 눈을 감지 않고도 버틸 자신은 있긴 했다.
아주 강력한 정신 공격이 들어오지만 그는 스탯이 높은데다 마법 저항력이 매우 높아 죽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도 눈을 감는 건 이게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정신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지.’
그냥 1분만 눈을 감고 있으면 아무런 대미지를 입지 않는데 뭣하러 여기서 힘을 빼겠는가.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했다.
‘왜 유혹이 들어오지 않는 거냐?’
분명 눈을 떠보라거나 귀에다 숨결을 불어넣는다거나 할 텐데 아무런 일이 없었다.
30초가 지나도록.
‘뭐냐? 나도 고자 취급 당하는 건 아니겠지?’
고자들 옆에 있다고 설마?
혹시나 싶어 눈을 떠봤다.
‘어? 없다!’
보통이라면 이 경우 앞에서 요사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어야 할 셔큐버스의 환영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환영이 나타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구덩이 밖을 보니 토실이가 환영들을 끌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서큐버스의 환영은 땅을 파는 인원의 숫자만큼 나타난다.
그 십수 개나 되는 환영들이 토실이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중이었다.
‘맙소사!’
로안은 감탄했다.
‘토실이가 있으면 환영의 유혹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군.’
녀석이 아까는 아이린 옆에서 놀고 있느라 활약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토실이에게 계속 그 일을 시킬 수는 없다.
마족의 환영을 유혹하는 일은 생각보다 기력이 많이 소모되는 일이니까.
잠재력이 늘어난 덕분에 녀석은 여전히 쌩쌩해 보였지만 그래도 항상 체력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게 좋다.
“토실아, 난 그냥 눈감고 있으면 돼. 굳이 방금 전처럼 안해도 된다.”
끄덕.
토실이가 알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끄덕였다.
“들어가 쉬다가 나와.”
토실이를 아공간 휴식처에 들어가게 한 후 로안은 다시 삽질을 시작했다.
“어라? 그런데 이게 뭐냐?”
그때 데랄쿠가 땅을 파던 중 웬 분홍색 구슬을 발견했다.
[알 수 없는 구슬]
-분류 : ???
-설명 : 보기만 예쁜 구슬로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다. 마족 서큐버스 던전 입구에서 종종 발견된다.
이렇게 나와 있어 용도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로안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 구슬이 나오면 나에게 주면 된다.”
“좋은 건가?”
“고자 해제 물약의 재료다. 많을수록 좋으니 발견 즉시 나에게 가져오도록 해.”
“알았다.”
데랄쿠가 구슬을 로안에게 건넸다.
[알 수 없는 구슬을 얻었습니다.]
[알 수 없는 구슬을 아공간에 입고했습니다.]
로안은 흐뭇하게 웃었다.
퀘스트의 설명 창을 보니 이 구슬이야말로 고자 해제 물약의 핵심 재료이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는 없던 것으로 새롭게 추가된 재료 아이템이다.
‘이거 하나면 고자 해제 물약 대여섯 병은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것 같은데?’
데랄쿠의 저주만 해제할 거라면 여기서 끝내도 될 것이다.
그러나 로안은 기왕 서큐버스 던전에 왔으니 좀 더 챙겨두기로 했다.
또한 재료도 재료지만 서큐버스를 해치우는 건 로안에게 경험치를 획득할 좋은 기회.
‘왔으니 한 판은 끝까지 돌아야지.’
사실 서큐버스 던전도 매일 리셋된다.
그러나 리셋된다고 매일 돌기는 쉽지 않다.
시작부터가 지금처럼 난관이니까.
‘여긴 퀘스트 때문에 한 번 도는 거라면 모를까 또 돌고 싶지는 않지.’
경험치나 장비만 따지면 여기 말고도 괜찮은 유적들이 수두룩하다.
굳이 20미터나 땅을 파내려가야 할 귀찮은 짓을 매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땅파기 일꾼들인 코볼트들을 데려온다고 해도 녀석들은 서큐버스의 유혹을 버텨내지 못한다.
그러나 고자들은 다르다.
고자 리자드맨들이야말로 서큐버스 유적에 최적화된 유닛들이었다.
“구슬을 찾았습니다!”
“저도 구슬을 하나 찾았어요, 영주님.”
잠시 후 리자드맨 중 하나와 아이린이 분홍빛 구슬을 하나씩 발견해 로안에게 건넸다.
[알 수 없는 구슬 2개를 아공간에 입고했습니다.]
‘벌써 3개나.’
로안은 흐뭇하게 웃고는 다시 삽질을 했다.
“카카카! 입구가 보인다!”
그러던 일순 리자드맨 하나가 외쳤다.
어느새 20미터나 내려온 것이다.
아래 공터가 드러남과 동시에 웅장한 철문으로 닫힌 던전의 입구가 보였다.
철문의 양쪽에 마법의 횃불이 타오르고 있고, 중앙에는 빈 화로가 놓여 있었다.
“모두 입구로 이동해.”
로안은 반색하며 던전 입구의 공터로 뛰어내렸다.
데랄쿠를 비롯한 고자 리자드맨들, 그리고 멀리서 대기하던 리자드맨들도 입구로 내려왔다.
로안이 고개를 흔들었다.
“여긴 고자들만 간다. 너희들은 다시 올라가.”
리자드맨들이 얼마나 유혹에 약한지 확인한 터였다.
여기선 아까와 같은 유혹 공격이 계속 이어지는 터라 맥없이 죽어만 나갈 것이다.
데랄쿠도 그것을 알았는지 즉각 외쳤다.
“들었느냐? 여긴 나와 고······아니, 저주에 걸린 자들만 갈 테니 너희들은 위에 올라가 대기해라.”
“예, 왕자님.”
그들 역시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두 번 죽는 동안 레벨이 2단계나 하락했으니까.
또 죽는다면 멘붕이 오고 말 것이다.
한편 그때 아이린은 내려오지 못했다.
“이상해요. 저는 뭔가에 막혀서 갈 수가 없어요.”
“여자라서 그럴 겁니다. 일단 거기서 대기하고 있어요.”
“네.”
그러고 보면 여자는 안 되지만 고자는 들어와도 된다.
그런데 고자라고 유혹은 안 한다.
어쩌면 여기야말로 고자에게는 최고의 던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 철문은 어떻게 여는 건가?”
데랄쿠가 물었다.
“내게 맡겨라.”
로안은 철문 옆에서 타는 마법의 횃불을 들어 중앙의 화로에 불을 붙였다.
‘이런 건 간단하지.’
게임에서 해봐서 알지만 안해봤어도 척하면 착이다.
그그그긍.
역시나 육중한 철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서큐버스의 던전이 열립니다.]
문이 열리자 던전의 모습이 뒤바뀌었다.
마치 환상처럼 초원 위의 멋진 저택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저택의 정원에는 3미터 신장의 거대 서큐버스 하나와 그녀의 절반 정도 되는 작은 서큐버스 수백 마리가 모여 있었다.
‘저기 보스가 있군.’
여기까지 들어오기는 까다로웠지만 이곳을 깨는 건 간단했다.
바로 저 보스를 쓰러뜨리면 되는 일.
‘정원이 몹의 인식범위지.’
로안은 물론이고 펫들도 예외가 없다. 정원에 들어가는 순간 서큐버스 보스가 인식을 하고 공격을 해올 것이다.
“데랄쿠, 혹시 모르니 정원에 한 걸음만 들어가봐라.”
“한 걸음만 내딛으면 되는 건가?”
“그래.”
곧바로 데라쿠는 정원으로 들어갔다.
“됐나?”
“한 걸음 더 가봐.”
데라쿠가 한 걸음 더 딛고 정원 안으로 들어갔다.
로안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역시 예상대로군.’
그는 곧바로 데랄쿠와 고자 리자드맨들에게 외쳤다.
“보다시피 저 서큐버스들이 너희들은 인식을 안한다. 저택 안의 방들을 뒤져서 구슬이 있으면 가지고 나와라.”
본래는 서큐버스를 해치우고 나면 아주 잠시 동안 방들을 뒤질 기회를 준다.
저택의 방이 수십 개도 넘어 운이 좋아야 보물을 얻는데, 지금은 미리 고자들을 보내 방을 뒤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건가?”
“응. 그래도 돼. 어서 방을 뒤져봐.”
“알았다.”
데랄쿠 등은 숨을 죽인 채 정원을 통해 저택으로 접근했다.
로안이 시키니까 하고는 있었지만 언제 서큐버스들이 공격해올지 몰라 불안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저택의 현관 앞이 가까워질수록 왠지 기분이 더러웠다.
서큐버스들이 그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왜 날 공격 안하는 거냐? 공격해! 공격하라고!”
급기야 울컥한 데랄쿠는 서큐버스들을 도발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왠지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큐버스들은 흥, 하고 코웃음만 날릴 뿐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감히! 나를 무시하는 건가?”
급기야 데랄쿠는 아공간에서 창을 빼쥐고 서큐버스들을 향해 돌격할 태세를 취했다.
다른 리자드맨들도 울화통이 터진 듯 두 눈이 충혈된 채로 무기를 꺼내쥐었다.
로안이 멀리서 팔짝 뛰며 말렸다.
“뭣들하는 거냐? 다들 영원히 고자로 살고 싶은 건가?”
순간 데랄쿠 등이 움찔하며 로안을 쳐다봤다.
로안이 끄덕였다.
“너희들 여기 왜 왔는지 잊은 건 아니겠지? 서큐버스들은 신경쓰지 말고 어서 구슬이나 찾아봐.”
“알았다.”
데랄쿠 등은 저택 현관을 열고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현관을 빠져나온 그들의 손에는 핑크빛 구슬들이 한두 개씩 쥐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