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으로 독존한다-112화 (112/240)

이게 바로 고인물 학살자다 (1)

학살자의 탑에서 열리는 대학살의 전장.

그곳은 일종의 가상 공간이다.

즉, 그곳으로 진입하는 건 본신이 아니라 가상의 분신이다.

본신은 본래 있던 장소에 그대로 남아있으며, 그 분신이 전장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식이다.

‘모든 게 초기화되고 현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지.’

모두가 레벨 1.

거기에 상태창에 스탯이라는 것도 없다.

히트 포인트를 뜻하는 HP와 마나 포인트인 MP만 있다.

레벨이 오르면 HP와 MP가 랜덤으로 증가하지만, 초기 1레벨 때는 모두가 동일하다.

【HP】 2/2

【MP】 0/0

그리고 진입한 모든 각성자들에게는 동일한 무기가 주어진다.

[견습 학살자의 각목]

-내구도 : 30/30

-공격력 +1

그리고 방어구는 없다.

남성은 하체를 가리는 팬티, 여성의 경우에는 팬티뿐 아니라 가슴 가리개도 자동착용되지만 방어력은 0이다.

【HP】 2/2

【MP】 0/0

【공격력】 1

【방어력】 0

즉, 이것이 대학살의 전장에 진입하면 모든 각성자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초기 상태인 것이다.

‘누구든 각목에 두 방 맞으면 죽는다.’

상대를 죽이면 학살자 포인트 1P를 얻을 수 있으며, 그 포인트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포인트 상점을 사용할 수 있다.

최소 조건이 10P.

즉, 각성자 10명을 죽여야 포인트 상점을 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면 포인트는 초기화되며 일정 시간 후 랜덤한 장소에서 최초 상태로 부활한다.

‘대충 이런 식이었지. 여기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대학살의 전장이 시작되기 직전 로안은 자신의 기억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가장 웃긴 건 이걸 전혀 안 가르쳐준다는 거야.’

대학살의 전장에 들어간 이들은 모두 멘붕 상태에 빠진다.

본래 자신의 능력을 전혀 쓸 수 없는데다 신체의 힘과 민첩도 비각성자처럼 무력해져 있기 때문이다.

상태창도 이상하다.

무엇보다 팬티 차림이니 민망해한다.

그러다 서로를 죽이고 죽다 보면 점차 방식을 깨닫게 되고, 어느 순간 그야말로 대학살이 난무하게 된다.

반면에 로안은 처음부터 룰을 알고 있다.

거기다 학살자의 탑 최초 등록자로 받은 포인트 10P가 있어 처음부터 상점을 열 수 있다.

‘다들 어리버리하고 있을 때 나는 미친 듯 움직여야 한다.’

어느덧 시간이 도래했다.

[대학살의 전장이 열렸습니다.]

[대학살의 전장으로 진입합니다.]

* * *

한편 스톰을 타고 라고스 영지로 이동하고 있던 엘레토르는 급작스럽게 아이린의 위치가 변경되자 당황했다.

‘분명 북쪽이었는데 어째서 남쪽으로 바뀐 거지?’

비로소 그녀는 실소를 날렸다.

그녀는 제약이 있지만 아이린의 경우 레온 왕국 인물들의 협조를 받으면 얼마든지 공간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면 여기선 아이린을 죽이기 쉽지 않겠군.’

그녀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제법 잔머리는 굴렸다만 나를 너무 얕봤다.’

마현자는 겉으로 드러난 직업일 뿐 그녀의 진짜 직업은 암살자다.

특히 은신이야 말로 그녀의 전문 능력.

‘라고스 영지에 은신한 채 기회를 기다리다 보면 아이린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지. 수틀리면 그 로안이란 녀석도 같이 처치해버리는 거야.’

그런데 그렇게 잠시 달리던 그녀에게 알림이 떴다.

잠시 후 대학살의 전장이 열리고 곧 진입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하필 지금 이게?’

처음 이것에 참여할 것이냐는 질문이 떴을 때 그녀는 고심했다.

1위와 2위의 보상은 공개되지 않았고 3위부터 보상이 공개되어 있었는데, 엄청나긴 했다.

터무니 없이 놀라운 보상 목록.

그래도 섣불리 등록하지 않았다.

느닷없이 나타난 「학살자의 탑」의 정체가 수상했기 때문이다.

물론 오랜 고민 끝에 일단 등록은 해두었다.

보상이 탐이 났기 때문이다.

[랭킹 3위]

-학살자의 보물 상자 2개

-전설 비급 12성 승급석 1개

-영웅 비급 12성 승급석 2개

-희귀 비급 12성 승급석 3개

-명성 1만

-30만 코인

-획득 경험치 50% 상승/1달

[랭킹4위~10위]

-학살자의 보물 상자 1개

-영웅 비급 12성 승급석 1개

-희귀 비급 12성 승급석 2개

-소정의 명성 및 코인

-획득 경험치 30% 상승/1달

[랭킹11위~20위]

-마룡의 보물 상자 1개

-희귀 비급 12성 승급석 1개

-소정의 명성 및 코인

-획득 경험치 20% 상승/1달

[랭킹21위~랭킹100위]

-영웅의 보물 상자 1개

-소정의 명성 및 코인

-획득 경험치 10% 상승/1달

[랭킹101~랭킹1000위]

-희귀한 보물 상자 1개

-소정의 명성 및 코인

공개되지 않은 1위, 2위의 보상은 이보다 훨씬 좋다고 했다.

그녀가 노리는 건 바로 꿈의 경지라 불리는 12성 승급석.

‘3위에 전설 비급 12성 승급석이 나오는 걸 보면 1위를 하면 분명 신화 비급 12성 승급석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도 반드시 그것을 얻어야 할 것이다.

‘훗, 어떤 식으로 펼쳐지는 결투인지 모르겠다만 대학살의 전장이라면 암살자인 나에게 가장 유리하겠지.’

악마 각성자인 그녀로서는 한편으로 흥미롭기도 했다.

‘1위는 내가 될 것이다.’

북쪽으로 이동하던 그녀는 일단 멈춰선 후 근처의 숲으로 들어가 대기했다.

아이린 척살도 중요하지만 대학살의 전장이 열리는 이상 그게 우선순위이니까.

* * *

라고스 영지 디온 성이 보이는 북쪽 숲 언덕.

캄캄한 밤의 숲에는 커다란 묵빛의 군마가 하나 보였는데 그 위에 한 명의 인물이 타고 있었다.

다름아닌 강무진.

마쿠스 공작의 서신을 받자마자 디온 성을 떠난 그가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마현자 엘레토르가 그쪽으로 갈 수도 있네. 물론 사소한 일일 뿐이니 자네는 신경쓰지말게.〉

서신에 있던 내용이었다.

마쿠스 공작은 신경쓸 것 없다고 말했지만 강무진은 그 행간의 뜻을 이해했다.

마쿠스 공작이 대놓고 뭔가를 부탁하는 성격이 아닌터라 그리 말했을 뿐 실상은 엘레토르를 처치해달라는 뜻이 담겨 있었으니까.

강무진으로서도 엘레토르는 골칫덩이 중 하나였다.

이 기회를 빌어 제거할 수 있다면 잠시 시간을 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

그러나 그렇다고 그런 뜻을 로안 등에게 비치지는 않았다.

그건 그의 성격이기도 하지만,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디온 성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엘레토르가 알게 되면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엘레토르는 이전에 내 검을 피해 달아난 적이 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사술(邪術)과 같은 능력이라 번번이 놓치고 말았는데.

어둠 속에서 강무진의 두 눈이 차갑게 빛났다.

‘이번에는 반드시 잡고 말리라.’

스스스.

곧바로 그와 그의 군마가 동시에 어둠에 동화되었다.

누군가 지금 이 근처를 지나간다고 해도 그곳에 그가 있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잠시 후 대학살의 전장이 열립니다.]

그러던 강무진은 뜻밖의 알림을 듣고 흠칫했다.

‘그렇군. 이게 있었지.’

그 역시 학살자의 탑에 등록은 해두었다.

랭킹의 보상에 비급 12성 승급석이라는 아주 특이한 것이 보였으니까.

특히 아직 공개되지 않은 1, 2위 보상에 신화 비급 12성 승급석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살의 전장이라.’

왠지 싱거운 전장이 될 것이란 생각이었다.

1위?

강무진은 당연히 자신이 1위를 할 거라 확신했다.

대륙의 그 어떤 각성자도 그를 이길 존재는 없으니까.

‘정말로 12급 승급석을 얻을 수 있다면 나의 경지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겠지.’

* * *

잠시 사방이 흑막에 둘러진 듯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

서서히 트이는 시야.

디온 성에 있던 로안은 급작스레 바뀐 시야에 살짝 현기증이 느껴졌다.

그뿐이 아니다.

몸 상태도 이상했다.

막강한 근력맨이었던 그의 몸에서 힘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처음 비각성자였을 때처럼 무기력했다.

‘이상할 것 없어. 나만 아니라 모두가 이런 상태다.’

로안은 이내 정신을 수습했다.

처음 이런 상태를 겪으면 누구나 멘붕에 빠지겠지만 그는 아니었다.

이럴 거라 예상했으니까.

《이곳은 대학살의 전장 대기 공간입니다.》

《1분 후 대학살의 전장 1층으로 진입합니다.》

아직까지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살의 전장 1층으로 이동하면 사람들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이름】 로안

【레벨】 1

【HP】 2/2

【MP】 0/0

【공격력】 0

【방어력】 0

【학살자 포인트】 10P

【인벤토리】 1칸

현재 상태창이었다.

아직 〈견습 학살자의 각목〉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라 공격력이 0이다.

각목은 1층으로 가면 즉시 받게될 것이다.

‘학살자 포인트! 지금 이게 10P 있다는 게 대박이지.’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1분은 금방 지나가니까.

‘상점 개방.’

그러자 곧바로 알림이 들려왔다.

[학살자 포인트 10P를 보유하신 당신은 상점 사용이 가능합니다.]

[현재 포인트에서 구매 가능한 목록입니다.]

【전장 상점】

[하급 학살자의 각목]

-내구도 100/100

-공격력 +2

[하급 학살자의 상의]

-내구도 100/100

-방어력 +2

지금 살 수 있는 건 딱 2개 뿐.

하급 학살자의 각목은 공격력이 2다.

이게 있으면 초반에 만나는 그 어떤 각성자든 한방에 죽이는 게 가능하다.

HP가 2로 모두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뭘 모르는 사람은 각목을 선택하겠지만.’

로안은 아니었다.

처음엔 무기가 아니라 방어구부터 사야 한다.

‘하급 학살자의 상의 구매합니다.’

그러자 곧바로 알림이 들려왔다.

[당신은 학살자 포인트 10P를 사용해 하급 학살자의 상의를 구매했습니다.]

[학살자 포인트 : 0P]

[하급 학살자의 상의를 얻었습니다.]

[상체에 방어구가 없으니 자동 장착됩니다.]

【HP】 2/2

【MP】 0/0

【공격력】 0

【방어력】 2

이로써 방어력이 2가 되었다.

로안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피어났다.

다들 공격력 1짜리 각목을 쥐고 있는데 방어력 2짜리 방어구를 장착하면 어떻게 될까?

‘맞아도 대미지가 0 이지.’

초반에는 죽지 않고 학살자 포인트를 모음과 동시에 레벨을 올리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HP가 2뿐이라 각목 2대 맞으면 죽는다.

본신이 아닌 아바타 분신 상태라 본신의 민첩이나 회피 같은 건 적용되지 않는다.

천검 강무진이라고 해도 누군가 가서 각목을 휘두르면 맥없이 맞을 수밖에 없다는 뜻.

결국 죽고 죽이고 난리가 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지.’

대미지가 들어오지 않으니 사실상 무적이다.

물론 내구도가 100이라서 100대 이상 맞으면 부서지지만, 그땐 이미 학살자 포인트가 모여있을 터라 새로운 방어구를 구매할 수 있다.

《이곳은 대학살의 전장 1층입니다.》

《모두에게 동일한 무기가 지급됩니다.》

웅장한 알림이 끝나고 들리는 개인 알림.

[견습 학살자의 각목을 얻었습니다.]

아공간 인벤토리에 들어와 있는 각목 하나.

초반에 인벤토리는 한 칸 뿐이지만, 레벨이 오르면 칸수가 늘어난다.

장비 아이템은 한 칸에 하나가 들어가지만, 물약과 같은 건 겹쳐서 보관이 가능하다.

로안은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각목을 꺼내 장착했다.

【HP】 2/2

【MP】 0/0

【공격력】 1

【방어력】 2

이로써 준비를 마쳤다.

곧바로 다시 웅장한 알림이 울려 퍼졌다.

《대학살의 시간이 도래하였습니다.》

《모두에게 행운을 빕니다.》

그와 함께 시야가 확 밝아졌다.

확 트인 평원.

도처에 사람들이 보였다.

전후좌우 10미터 간격으로 끝없이 보이는 사람들.

“으! 이게 뭐야?”

“내 몸이 왜 이렇게 무력해졌지?”

“이 따위 각목으로 뭘하라는 거냐?”

“꺄악! 왜 속옷 차림이냐고!”

여기저기서 황당해 날뛰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팬티 차림에 각목 하나 손에 쥐고 있는 남자들, 팬티와 가슴 가리개 차림에 각목을 손에 쥔 여자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외모는 모두가 동일해서 누구 누군지 식별이 불가능했다.

또한 상대방의 정보창도 이렇게 나타났다.

〈학살자 Lv1〉

즉, 이름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레벨만 확인가능할 뿐.

아무런 정보도 없이 갑자기 이런 상태가 됐으니 모두들 당황하고 있을 건 뻔한 일.

그러나 로안은 단 0.1초도 주저없이 달려가 앞에 보이는 남자를 각목으로 쳤다.

휘익!

달려가는 속도도 굼벵이 같은데다 각목을 휘두르는 속도도 너무 느렸다.

레벨 54 환생사이자 마도객이었던 로안으로서는 무슨 슬로우 모션으로 각목을 휘두르는 느낌이었다.

퍽!

남자의 가슴에 각목이 적중했다.

맨살의 피부가 터지며 피가 튀었다.

마치 검으로 길게 베인 것처럼 극심한 상처였다.

각목으로 한 대 맞았을 뿐이지만 HP의 반이 날아갔으니 당연한 일.

“크어억!”

그러자 상대가 신음을 지름과 동시에 당황하는 표정으로 로안을 쳐다봤다.

설마하니 다짜고짜 자신을 각목으로 칠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제길······! 뭐, 뭐냐? 그보다 왜 너만 옷이 있지?”

자신은 팬티만 입고 있는데 상대는 비록 상의뿐이지만 옷을 입고 있으니 이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의문의 시선을 보냄과 동시에 즉각 각목으로 반격했다.

휘익!

로안은 피할 수가 없었다.

뻔히 날아오는 궤적이 보였지만 몸의 민첩성이 따라주지 않았느니까.

그리고 어차피 피하지 못한다.

한 대를 치면 한 대를 맞게 되어 있는 식이니까.

물론 상대가 어리버리하며 멈춰 있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 이 앞의 남자는 바로 반격을 해왔다.

퍽!

결국 남자의 각목이 로안의 머리를 강타했다.

[0의 대미지를 입었습니다.]

[HP 2/2]

예상대로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고통도 없었다.

[하급 학살자의 상의]

-내구도 99/100

대신 상의의 내구도가 1 하락했다.

방어구는 상의인데 어째서 머리까지 보호되는 것일까?

이는 방어력 2가 몸 전체에 적용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런 걸 처음엔 아무도 알려주지 않지.’

휘익! 퍽!

그 사이 로안이 휘두른 각목이 남자의 머리를 강타.

순간, 남자의 머리가 폭탄에 맞아 터지듯 처참히 박살났다.

남자는 맥없이 바닥으로 널브러졌다.

[당신은 하라드를 죽였습니다.]

[학살자 포인트 1P를 얻었습니다.]

모두가 익명이지만 이렇게 죽여보면 누군지 알 수 있다.

동시에 죽은 사람도 자신이 누구에게 죽었는지 알 수 있다.

‘하라드?’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사르곤 제국군 대위 하라드.

수수께끼 유적 앞에서 로안에게 덤비다 계속 죽으며 장비를 바친 제국군 호구 장교와 이름이 동일했다.

‘그놈이 맞나?’

물론 동명이인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가 맞다면 초반부터 로안의 옆에 나타난 것이 그의 불행이라 할 수 있었다.

[당신은 대학살의 전장 최초로 적을 처치했습니다.]

[보상으로 학살자 포인트 10P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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