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권능을 얻다 (3)
“쿠우어어어어어!”
오우거는 로안을 보며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이내 인상을 쓰며 크게 포효를 질렀다.
“시끄러운 녀석이군.”
헤로스가 돌진해 오우거와 전투를 벌였다.
뭐 전투랄 것도 없었다.
상급 검사이자 레벨 58 용사인 헤로스에게 오우거Lv52는 우스운 상대였으니까.
헤로스의 검이 몇 개의 사선을 그리는 순간 그 궤적대로 오우거의 몸체에 혈선이 피어났다.
쿠우웅!
오우거가 맥없이 쓰러진 순간.
스스스.
갑자기 놈의 사체 앞에 시커먼 구름이 휘돌며 나타났다.
[포식공간이 소환되었습니다.]
구름의 형상이 괴물처럼 변했다.
20미터 정도의 신장에 거대한 입을 가진 악마의 형상.
얼마 전 로안이 마결계에서 해치웠던 포식마(飽食魔) 글루토누스의 분신과 흡사했다.
이에 로안을 제외한 모두가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악마다!”
“어째서 갑자기 악마가······!”
“놀라지 마세요. 저건 그냥 환영입니다.”
로안은 그들을 안심시켰다.
[포식공간이 악마 글루토누스의 인이 생겨진 대상을 포식합니다.]
그 사이 글루토누스의 환영이 오우거의 사체를 단번에 집어삼켰다.
[오우거Lv52가 포식공간에 등록되었습니다.]
[권능을 1 소모해 언제든 소환 가능합니다.]
마치 글루토누스의 환영이 오우거를 포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포식공간으로 집어넣은 것이었다.
작업을 마친 글루토누스의 환영은 이내 사라졌다.
헤로스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오! 방금 그것도 권능의 힘이냐, 로안?”
“예, 새로 얻은 권능으로 펼친 능력입니다.”
“하하, 정말 기괴한 능력이군. 괴물의 사체를 챙겨서 어디다 쓰려고?”
“놈을 소환해서 잠시 동안 부려먹을 수 있습니다.”
로안의 말에 헤로스뿐 아니라 모두들 놀랐다.
[헤나의 축복에 의해 소모된 권능이 회복되었습니다.]
[25/25]
때맞춰 소모됐던 권능 1이 회복됐다.
‘이러면 권능을 막 써도 되겠네.’
회복 속도가 상상 이상이다.
적어도 오늘 만큼은 권능을 아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소환 오우거!’
24시간 동안 유지되니 미리 소환해둬도 나쁠 것 없었다.
[권능을 1 소모해 포식공간에 있는 오우거Lv52를 소환하겠습니까?]
[권능 25/25]
‘예.’
[권능 1이 소모됩니다.]
[권능 24/25]
순간 로안의 앞에 다시 시커먼 구름이 피어나 하나의 형체를 이루었다.
포식마 글루토누스의 거대한 입이었다.
그 안에서 뭔가가 튀어나와 내려섰다.
다름아닌 오우거!
[오우거Lv52가 소환되었습니다.]
[24시간 후 소멸됩니다.]
[소환된 오우거Lv52가 괴물을 처치시 획득한 경험치는 당신과 나눠 갖습니다.]
[소환된 오우거Lv52의 경험치가 충분히 쌓이면 레벨이 오릅니다.]
[상승한 레벨은 다음 소환 시에도 유지됩니다.]
이게 달리 특수 능력이 아니다.
포식한 괴물 소환수의 레벨을 높일 수도 있으니까.
“쿠우어어어어!”
그때 오우거가 크게 포효를 하더니 로안을 향해 외쳤다.
“날 불렀나?”
“그래.”
“시킬 일은?”
“지금은 그냥 날 조용히 따라오면 된다.”
“그러지.”
소환된 언데드가 네크로맨서에게 절대 충성을 하듯 포식공간에서 소환된 괴물 또한 로안에게 그런 식이다.
‘그렇지 않아도 북부 요새의 전장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잘됐군.’
오우거Lv52 정도면 바바리안들 중에서도 랄프나 세리나가 아니면 상대하기 힘들다.
녀석은 리자드맨들 상대로 제법 쓸만한 전투력을 발휘할 것이다.
[상급 마도객 로안의 파티]
-파티장 : 로안(Lv56)
┗소환수 : 오우거(Lv52)
-파티원 : 헤로스(Lv58)
-파티원 : 플로리(Lv58)
-파티원 : 레이(Lv43)
-파티원 : 아이린(Lv7)(↑6)
-파티원 : 시어드(Lv29)(↑1)
한편 방금 전 헤로스가 오우거를 처치하는 순간 얻은 경험치로 인해 저렙인 아이린과 시어드는 레벨이 올랐다.
아이린은 생애 첫 레벨 업을 경험해 감격에 젖어 있었다.
아까는 각성, 지금은 레벨 업, 오늘은 그녀의 인생에서 영원히 기억될만 한 날일 것이다.
샤라랑.
그때 갑자기 울리는 알림.
[헤나의 선행임무가 생성되었습니다.]
또 무슨 선행퀘일까?
[아이린의 성장 지원]
-분류 : 헤나의 선행임무
-내용 : 용사 아이린이 각성했지만 적들을 상대하기엔 레벨이 너무 낮다. 그녀의 성장을 위해 파티 사냥을 해준다면 특별한 보상을 얻을 것이다.
-보상 : 파티 상태에서 아이린 레벨 1단계 상승 시마다 〈헤나의 성수〉, 〈전설 펫 전용 맛있는 사료〉 획득.
‘오! 대박!’
헤나의 성수는 권능을 10 회복시켜주는 진귀한 아이템이니 많을수록 좋다.
그리고 토실이 사료는 말할 필요도 없고.
‘역시 헤나도 토실이에게 관심이 많나 보네.’
아이린 관련 임무에 뜬금없이 토실이 사료를 보상으로 끼워주는 걸 보면 틀림없다.
‘어쨌든 이 임무는 안 할 이유가 없지.’
그렇지 않아도 아이린을 버스태워주려던 참이다.
힘들게 기껏 용사로 각성시켜놨는데 어디 가서 죽기라도 하면 허무하니까.
‘용사들이 강해야 내가 편해진다.’
이제 아이린 뿐 아니라 헤로스도 스파르타식 레벨 업을 통해 강해지게 만들 계획이었다.
로안 자신의 레벨도 올릴겸 말이다.
[헤나가 당신을 관심 깊게 주시 중입니다.]
[헤나의 선행임무를 수락하겠습니까?]
헤나는 소심한 만큼 거절당했을 경우 뒤끝이 좀 있는 편이다.
그래서 아주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면 가급적 그녀가 제시한 임무는 하는 게 낫다.
물론 헤나는 상당히 소심해서 아주 무리한 요구를 하지도 않지만.
여신들 중 가장 다루기(?) 쉬운 편이랄까?
“예, 수락합니다.”
[헤나의 선행임무 〈아이린의 성장 지원〉이 수락되었습니다.]
[헤나가 당신을 무척 기특하게 생각합니다.]
[헤나가 당신에게 〈헤나의 성수〉 6병을 하사합니다.]
[헤나가 당신에게 〈전설 펫 전용 맛있는 사료〉 6봉지를 하사합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임무 수락 전에 아이린의 레벨을 올린 것에 대한 보상을 해준 게 분명했다.
‘헤나는 이렇게 아이린을 챙겨주는데, 아프릴리스는 헤로스에게 너무 무관심한 것 같군.’
헤나가 용사 아이린의 수호신이라면, 아프릴리스는 용사 헤로스의 수호신이다.
‘하긴 온통 토실이에게만 정신이 팔려 있지.’
왠지 헤로스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용사의 수호신이 토실이에게만 관심을 보이고, 정작 용사는 방치하다니 말이다.
‘이래서 용사도 수호신을 잘 만나야 하는 거야.’
그런데 그때.
샤라랑.
[아프릴리스의 선행임무가 생성되었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분류 : 아프릴리스의 선행임무
-내용 : 용사 헤로스는 아주 훌륭히 성장하고 있지만 그대가 굳이 그를 지원해주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보상 : 파티 상태에서 헤로스 레벨 1단계 상승 시마다 〈아프릴리스의 성수〉, 〈전설 펫 전용 맛있는 사료〉 획득.
갑자기 생성된 임무를 보고 로안은 흠칫했다.
‘뭐지? 내 마음을 읽은 건가?’
임무의 내용을 보니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마치 로안에게 훈계를 하는듯한 내용이었으니까.
[아프릴리스의 선행임무를 수락하겠습니까?]
‘예, 수락합니다.’
로안은 정중히 수락했다.
어찌됐든 아프릴리스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좋을 것이 없다.
‘좋은 임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말로 개이득이 따로 없지만 너무 좋아하는 티가 나지 않도록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 순간.
[아프릴리스가 당신을 기특히 여겨 아프릴 10,000 코인을 하사합니다.]
‘오!’
이럴 때 보면 아프릴리스도 기분파인 게 분명했다.
* * *
라고스 북부 요새.
코볼트들로 인해 일부 보수되어 있긴 했지만, 이곳은 디온 성보다 더욱 처참하게 부서진 상태였다.
사실상 요새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용케 버티고 있는 건 바바리안들의 전투력이 그만큼 뛰어나서일 것이다.
“영주님이 오셨다!”
“오! 영주님이시다!”
100여명의 바바리안들과 20여 명의 인간 병사.
각각의 부대를 이끌고 있는 이는 기사 세리나와 데라였다.
그런데 세리나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데라가 와서 정중하게 예를 취했다.
“로드께서 무사히 귀환하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블랙호크 용병 출신의 데라.
그녀는 이제 멋들어진 기사로서의 풍모를 갖춰가고 있었다.
레벨 38 중급 궁수.
조만간 40레벨로 승급하게 될 것이다.
로안은 기사들의 승급 아이템은 재정 코인을 사용해 가장 우선적으로 지원해주라 닐스에게 지시해두었다.
따라서 데라 또한 무리없이 40레벨로 승급하게 될 것이다.
“고생이 많군, 데라. 이곳의 현재 상황은?”
“북쪽 5km 정도 거리에 리자드맨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병력은 3천 정도지만 점점 그 숫자가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죠.”
리자드맨 3천 마리 정도라면 진작 여기로 밀고 들어오고도 남을 규모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병력을 모으고 있는 이유는 바바리안들 때문일 것이다.
‘그놈들도 희생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병력을 모으고 있는 것이겠지.’
다만 한 가지 의문은 있었다.
리자드맨들이 작정하고 쳐들어오려고 했다면 보통 1만 아니, 최소 몇 만은 동원했어야 정상이니까.
아무래도 선봉대를 보내 간을 보는 식으로 도발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차피 쳐들어 올 놈들이야. 이 기회에 레벨도 올릴겸 최대한 쓸어버리자.’
드라우트 성에서 수천의 오크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던 로안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전투력이 월등히 강해졌을 뿐 아니라, 용사 헤로스를 비롯한 동료들도 있다.
거기에 바바리안 부대까지.
리자드맨 3천 마리 정도는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는다.
“영주님!”
그때 거대한 여전사 바바리안이 로안의 앞으로 달려왔다.
세리나였다.
인근 숲을 정찰하러 갔다가 돌아온 것이다.
“기사 세리나, 영주님을 뵈어요.”
놀랍게도 그녀는 로안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예를 갖추었다.
그녀는 본래 반말이 컨셉인데 이게 어떻게 된 걸까?
바바리안들은 고블린이나 오우거처럼 어차피 그게 컨셉인 녀석들이라 로안은 신경쓰지 않았다.
종족마다 특성이 있으니 그걸 꼭 인간의 기준에 맞춰서 억지로 길들일 생각은 없으니까.
로안이 원하는 건 단 하나.
그저 충성심만 높으면 된다.
바바리안들에게 원하는 건 그것뿐인데.
‘어떻게 된 거야?’
게임에서도 없던 일이라 궁금하긴 했다.
“무사히 승급에 성공했구나, 세리나. 축하해.”
“영주님 덕분이에요.”
승급뿐 아니라 그 사이 레벨도 올라 42레벨 바바리안 광전사가 된 세리나의 기세는 지난번보다 확실히 강해져 있었다.
“리자드맨들과 싸우는데 어려운 점은 없어?”
“몇 번 혼쭐을 내줬는데 계속 몰려들고 있어 골치입니다. 그래도 저희들이 있는 한 영지는 안전할 것이니 염려마세요.”
“근데 왜 갑자기 말투가 달라진 거지?”
“이상한가요?”
“아니, 아주 훌륭해.”
로안이 흡족한 미소를 짓자 세리나는 뭔가 뿌듯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비록 바바리안이지만 무식하지는 않습니다.”
그말을 하면서 그녀는 데라를 쳐다봤다.
“어때?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데라?”
데라가 미소 지었다.
“맞아. 영지의 기사라면 응당 영주님께 그렇게 해야 하는 거야. 아주 잘 하고 있어.”
세리나가 이렇게 된 건 데라 덕분이었다.
같은 여기사로서 둘은 금세 친해졌는데, 데라는 특유의 말빨로 세리나를 설득했다.
기사인 세리나가 영주인 로안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 무례한 일이라고 말이다.
세리나는 의외로 거부감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로안은 그녀가 인정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부하 바바리안들에게도 그같은 교육을 시켰고, 그로인해 모두들 로안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물론 말투만 달라졌을 뿐 복식은 그대로다.
여전히 여자 바바리안들도 상체를 훤히 내놓고 있으니까.
그것까지는 데라도 어찌할 수 없던 모양이었다.
“그럼 정찰 중에 특이사항은?”
“리자드맨 쪽 진영에서 숨겨진 게이트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숨겨진 게이트라고?”
“리자드맨들이 거기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좀 더 살펴보려고 했지만 리자드맨들의 숫자가 많아 일단 돌아왔다고 했다.
‘그 게이트를 통해 리자드맨들이 이동해오는 건가?’
그러고 보니 사브라 왕국이 비록 인접해있다고 하지만 그놈들이 갑자기 쳐들어온 것이 이상하다 했다.
즉, 그건 새로 생겨난 게이트일 가능성이 높았다.
‘혹시 대전장 게이트 아닐까?’
아직 라고스 영지에서는 고대의 유적 평원 대전장 던전의 게이트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북부 요새에서 북쪽으로 5km 정도에 그 게이트가 생겨났다면?
‘거긴 사브라 왕국의 영역이긴 하지만 그놈들이 빌미를 제공했으니 뺏어도 상관없지.’
대전장 게이트를 확보하면 영지의 발전에 엄청난 도움을 줄 것이다.
굳이 그런 거창한 목적이 아니라 해도 로안이 레벨을 올리거나 장비를 맞추는 데도 수월할 것이다.
“영주님! 리자드맨들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때 요새의 망루 위에서 적진을 살피던 병사 하나가 크게 외쳤다.
“전투 준비!”
“각자 위치로!”
세리나와 데라가 다급히 외쳤다.
바바리안들과 인간 병사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방어대형을 갖췄다.
그 사이 로안은 망루 위로 올라가 상황을 살폈다.
과연 리자드맨 수천 마리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때 함께 위로 올라온 헤로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 뭔가 이상한데?”
“뭐가 말입니까?”
“저놈들 여길 공격해오는 게 아니야. 뭔가에 쫓겨오고 있다.”
헤로스의 말대로였다.
리자드맨들로부터 투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대열도 일사분란한 행렬이 아니라 오합지졸처럼 흩어진 상태였다.
‘놈들의 얼굴이 공포에 질려 있어.’
리자드맨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 표정을 확연히 볼 수 있었다.
‘대체 뭐가 저놈들을 쫓고 있는 거지?’
그 뭔가의 정체는 이내 드러났다.
리자드맨들의 뒤쪽에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묵빛 마갑(馬甲)을 두른 군마들.
그 위에 타고 있는 건장한 체격의 무사들.
순간 헤로스가 깜짝 놀라 외쳤다.
“예전에 본적이 있다. 저들은 한 제국의 기사들이다, 로안.”
한(韓) 제국의 기사들.
그들의 숫자는 불과 다섯 뿐이었다.
불과 다섯 명에게 수천의 리자드맨들이 쫓겨오다니 놀라운 일.
그런데 그중 중앙에 있는 노인을 보는 순간 로안은 저 상황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저자는 혹시?’
멋들어지게 나부끼는 흑색의 머리카락.
짙은 눈썹 아래 강인한 눈매.
번쩍이는 묵빛의 흉갑.
손에 쥔 푸른색의 장검에서는 햇살같은 광채가 빛났다.
마치 거대한 산이 움직이는 듯 가공스러운 기운을 풍겨내는 노인.
딱 떠오르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륙 최강의 검사이자 일곱 명의 용사 예정자 중 하나.
‘천검 강무진!’
그가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