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으로 독존한다-98화 (98/240)

수수께끼 유적 (2)

‘수수께끼 유적이었나?’

고대의 평원 유적 대전장에는 수수께끼 유적들이 제법 존재한다.

유적의 보물을 가지려면 유적 수호자 즉, 거인이 내는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유적 수호자(Lv???)〉

‘저런 식으로 표시된 놈은 공격해도 대미지를 거의 입지 않지.’

특정 유적을 지키는 수호자들 중에는 저런 류가 있다.

대신 일정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며 이유없이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물론 초고렙이 되면 저놈도 공격해서 죽일 수도 있지만.’

그런 거야 나중 일이다.

게임에서처럼 사기적으로 강해진다면 생각해볼 일.

아무튼 저 유적 수호자 뒤에는 황금빛 보물 상자가 신비롭게 빛나고 있었다.

딱 봐도 엄청난 보물이 들어 있음직 했다.

하지만 저 보물은 별거 없다.

진짜는 저 보물 상자를 치우면 드러나는 지하에 있으니까.

거기부터는 제법 전투를 벌여야 하고 말이다.

“로안 레푸스 남작님? 혹시 저 보물을 노리는 거라면 줄을 서는 게 어때요? 대체 어떻게 레온 왕국에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누군가 로안을 향해 외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웬 20대의 늘씬한 여성이 로안을 쳐다보며 자신의 뒤를 가리키고 있었다.

좀 민망스러운 속옷 차림이지만 정보창을 보니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름】 베네사

【레벨】 28

【직업】 소환사

【신분】 평민/자유 용병

【소속】 아르곤 왕국

‘아르곤 왕국?’

그러나 그보다 놀라운 건 베네사의 직업이었다.

소환사는 흔한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법사보다 희귀하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자유 용병이라.

로안이 유심히 쳐다보자 베네사가 흠칫하며 두 팔로 자신의 상체부위를 가렸다.

“이런 차림이라고 이상하게 보실 것 없어요. 저기 있는 거인 놈에게 죽고나면 누구나 이꼴이 되니까.”

“미안, 내가 실례했다. 하지만 내가 그대를 쳐다본 건 직업 때문이었어.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군.”

로안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비록 상의를 입긴 했지만 빤히 쳐다보기엔 민망한 차림이었으니까.

베네사가 픽 웃었다.

“그렇다고 그리 쑥스러워하실 필요까지는. 하긴 제 직업을 보고 다들 놀라긴 해요. 특히 귀족들은 툭하면 기사 제의를 하며 저더러 오라고 하죠.”

“왜 그 제의들을 거절했지?”

“전 자유로운 게 좋으니까요. 뭔가에 구속받는 건 딱 질색이에요.”

“그렇군.”

“남작 님도 영주시니 저를 탐내실 수 있겠지만 기사는 관심없답니다. 혹시 제가 필요하면 임무와 코인을 정확히 제시해 주세요. 조건을 보고 결정하는 건 용병인 저의 자유겠죠.”

“좋아, 참고하지.”

로안은 대충 베네사의 성격을 알 것 같았다.

“그보다 표정을 보니 남작님은 어디 다른 게이트를 타고 오신 것 같군요. 아닌가요?”

다른 게이트라면 이 근처 어딘가에 게이트가 있다는 뜻?

잘됐다. 그렇지 않아도 게이트를 찾았는데.

“맞아. 용병답게 눈치가 무척 빠르군.”

“그 게이트가 여기서 먼가요?”

“상당히.”

“위험한 녀석들이 득실거리는 것 같던데 대단하시군요. 하긴 레벨과 직업을 보고 알아봤지만.”

레벨 54의 상급 마도객.

초반에는 어디서도 괄시받을 레벨이 아니다.

게다가 신분까지 귀족이니 나름 금수저 취급도 받을 수 있다.

“아무튼 남작님도 저 보물 상자에 관심있으시면 줄을 서세요. 물론 가능하면 그 장비를 벗는 게 좋겠죠. 저처럼 모두 잃어버리지 않으시려면.”

설명하지 않아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수수께끼 유적 수호자의 특징도.

저 보물 상자는 하루에 한 번만 리셋된다.

누군가 저 보물 상자를 얻고 나면 하루 동안 이 유적은 폐쇄되고, 보물을 얻은 사람 혹은 파티만 자유롭게 지하 유적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것이다.

‘수수께끼를 아무도 못맞췄나 보네. 별로 안 어려운데.’

나중에 가면 질문과 답의 족보가 돌아다니지만 지금은 초기라서 이런 진풍경이 벌어지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쪽 어디에 게이트가 있지?”

“저쪽을 보세요.”

베네사가 손가락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대략 2km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게이트가 하나 있었다.

“자, 잠깐! 기다려!”

“뭐가 잠깐이냐? 틀렸으면 죽어라!”

“크아아악!”

처참한 비명 소리!

그 사이 또 누가 거인에게 맞아죽었다.

“키킥! 다음 도전자 없느냐?”

거인이 키득거리며 외쳤다.

순간 남자 셋이 거인 앞으로 나섰다.

“우리다. 셋이 한 번에 도전하도록 하지.”

“좋아! 세 명이면 세 문제 중 두 문제만 맞추면 셋 다 통과다.”

“알았으니 시작해라.”

“키킥! 그럼 첫번째 문제다! 어려서는 꼬리로 헤엄치고 커서는 다리로 헤엄치는 것은?”

그러자 남자들 중 한 명이 외쳤다.

“개구리.”

“호오! 제법이군.”

거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들이 환호했다.

“으하하!”

“맞췄다!”

이제 한 문제만 더 맞추면 그들은 저 보물 상자를 챙길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다. 가깝고도 먼 것은 뭐냐?”

거인이 물었다.

‘눈.’

넌센스 퀴즈다.

로안은 다 외우고 있어 그냥 답이 나왔지만 저 사람들에겐 생소할 것이다.

확실히 남자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길! 무슨 문제가 이래?”

“멍청한 놈들! 문제를 탓하지 말고 너희들의 무식함을 탓하거라.”

거인이 키득거리며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시간 다 됐다. 셋, 둘······.”

“잠깐! 땅이다. 땅.”

“틀렸다. 자! 그럼 마지막 문제니 잘 들어라.”

남자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번에 맞추면 보물을 얻고 틀리면 그들 모두 머리가 터지든 허리가 부러지든 무조건 죽게 된다.

물론 부활은 하겠지만 망치에 맞아 죽는 건 끔찍한 경험이리라.

“검어도 검고, 하얘도 검고, 붉어도 검은 게 뭐냐?”

“······!”

순간 남자들은 멘붕이라도 온 듯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개시부럴!”

“그딴 게 있을 리 있냐고!”

“야! 튀자!”

남자들은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큭!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징벌을 회피한다면 두 번 다시 수수께끼에 도전 못할 것이다.”

그 말과 함께 거인이 망치를 집어던졌다.

퍽! 퍽! 퍽!

수박이 터지듯 세 남자의 머리가 터졌다. 모두들 즉사였다.

“다음은 누구냐?”

그런데 사람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으! 난 포기다.”

“저도 포기요. 보물을 욕심내다 레벨이 또 떨어지게 생겼어요.”

“맞아요. 이건 장비만 아낀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앞에 있던 사람들이 우루루 빠져나갔다.

베네사 차례였다.

“거기 도전하겠느냐?”

거인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베네사가 움찔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막상 다시 자신의 차례가 오니 겁이 났던 것이다.

“안 할게요.”

“그럼 비켜라. 그 뒤에 마지막. 너는 어떻게 할 거냐?”

거인이 로안을 향해 물었다.

로안은 픽 웃었다.

“심심한데 해볼까?”

순간 베네사가 황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로안 남작님! 이거 정말 좋은 장비인 것 같은데 벗고 가세요. 죽으면 장비 사라지거든요.”

“괜찮아. 난 그런 거 상관 안해.”

로안은 짐짓 상남자의 포스를 풍기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베네사뿐 아니라 모두들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쿵!

거인이 망치를 바닥에 찍으며 물었다.

“대답해봐라. 검어도 검고, 하얘도 검고, 붉어도 검은 게 뭐냐?”

“귓속말로 대답해도 되나?”

“큭! 물론이다.”

거인이 쭈그려앉아 로안에게 귀를 내밀었다.

‘그림자.’

로안이 나직하게 한 마디했다.

순간 거인이 두 눈을 부릅뜨더니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제법이군. 좋아. 저 보물 상자는 이제 네 것이다.”

거인이 자리를 비켜줬다.

로안이 다가가 보물상자를 들자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그그그긍.

그것을 본 사람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모두들 로안이 계단 아래로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대체 정답이 뭐였을까?”

“시부럴! 좀 알려주고 가지 귓속말이라니. 너무하는군.”

“흐, 자네 같으면 알려주겠나? 나라도 혼자만 알고 있겠네. 다음에 또 들어가려면 말이야.”

그러자 거인이 그들을 노려봤다.

“시끄럽다! 이 유적은 내일 다시 열리니 그때 와라.”

꺼지지 않으면 망치를 휘두를 기세였다.

모두들 움찔하며 거인으로부터 멀어졌다.

* * *

계단을 내려가며 로안은 보물 상자를 열었다.

[트렐 100 코인을 얻었습니다.]

[중급 생명력 물약 10병을 얻었습니다.]

[중급 마나 물약 10병을 얻었습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물약이야 언제든 환영이다.

계속 지하로 내려가니 미로의 형태로 된 던전이 나왔다.

대전장도 던전인데, 그 안에 존재하는 일종의 미니 던전인 셈이다.

그러나 말만 미니 던전이지 규모는 어지간한 던전 못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역시 대전장은 던전이라기 보다는 다른 세계라고 보는 게 맞을 거야.’

미니 던전은 넓었지만 나타난 괴물들은 싱거웠다.

고작 30레벨 대 앤트맨들이었기 때문이다.

[트렐 2코인을 얻었습니다.]

[각성석을 얻었습니다.]

[트렐 3코인을 얻었습니다.]

[20레벨 승급석(일반)을 얻었습니다.]

······

코인 수입은 역시 별로지만 각성석 같은 잡템들은 제법 잘나오는 편.

레벨 차이가 너무 나서 경험치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여긴 평균 30레벨 대 각성자들이 레벨을 올리기 좋겠어.’

20렙중반부터 40렙 중반까지 파티로 사냥할 만할 것이다.

이 유적이 고정되어 계속 유지된다면 고정 사냥터로서 상당히 유명해질 것이다.

빠르면 20레벨 중반에 여기 와서 40레벨 중반 쯤에 졸업하는 코스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승급 아이템들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그리고 입구의 거인이 내는 수수께끼도 풀어야겠지만.’

아직은 말고, 나중에 때가 되면 족보도 공개할 생각이다.

그것도 대륙 전체에 퍼지도록 책을 만들어서 배포할 생각이다.

매우 염가에 말이다.

왜냐고?

그래야 대전장을 찾는 호갱 아니, 고객분들이 많아질 테니까.

‘너무 진입장벽이 높으면 다들 포기하게 되니 비교적 만만한 꿀단지들도 많다는 걸 알려줘야 해.’

던전에 각성자들이 북적일수록 로안은 부자가 된다.

던전의 배당금이 폭증하게 될 테니까.

[비급 〈고대 앤트맨의 창투술(영웅)〉을 얻었습니다.]

[고대 앤트맨의 마룡창(전설)을 얻었습니다.]

던전의 괴물들을 가볍게 처치한 후 앤트맨 보스를 처치하자 얻은 아이템들이었다.

여긴 권성의 룬이 추적한 권사 계열 비급이 나오는 장소다.

그러나 랜덤으로 드롭되는 식이다 보니 무조건 권법서가 나오는 건 아니었다.

지금처럼 다른 직업의 비급도 나오는 것이다.

‘이건 창투사 비급이니 닐스 주면 되겠고.’

마룡창은 40레벨 장비였다.

옵션을 추출해서 마룡대도에 붙여도 되지만, 그렇게 없애긴 아까웠다.

‘어차피 여기서 마룡 장비는 계속 나올 거야. 옵션 추출은 그걸로 하고 이 창도 닐스에게 가져다주자.’

기사 닐스는 부하인 이상 그에게 주는 건 아깝지 않다.

부하 기사가 강해지면 영주인 로안으로서는 손해날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여기 작업장으로는 나쁘지 않네.’

보스에게서 여러 직업군의 영웅 비급과 전설 장비가 드롭되니 나름 괜찮은 사냥터였다.

‘당분간 여기서 꿀 좀 빨자.’

급하게 영지로 돌아갈 이유는 없다.

악마 글루토누스의 인장의 통제 기한은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

‘한달 정도만 이 던전을 독점해볼까?’

그 사이 대학살의 전장도 열리겠지만, 그건 어디서든 입장할 수 있으니 따로 준비할 것도 없었다.

* * *

한편 베네사를 비롯한 아르곤 왕국의 용병들과 각성자들은 여전히 로안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궁금해서다.

저 유적에서 로안이 무슨 보물을 얻을지 말이다.

“뭐야? 그 사이 누가 답변을 맞추었나?”

그때 어디선가 들려온 싸늘한 음성.

차가운 눈빛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의 뒤로 일단의 무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베네사가 그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 망나니들이 또 왔네.’

저들은 아까 거인에게 덤볐다가 전멸했다. 그런데 그 사이 다시 새로운 장비를 말끔히 갖추고 나타났다.

다름아닌 사르곤 제국의 군인들.

하라드라는 제국군 장교가 그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이름】 하라드

【레벨】 51

【직업】 상급 마검사

【신분】 기사/제국군 장교(대위)

【소속】 사르곤 제국

아르곤 왕국은 몇 년 전 사르곤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해 속국이 되었다.

그후로 사르곤 제국은 한(韓) 제국과 전쟁 중이었는데, 그 전쟁에 동원할 병사들을 아르곤 왕국에서 강제로 차출하는 등 횡포가 상당했다.

그러다 보니 베네사와 같은 평민들은 제국 군이 나타나면 기피할 수밖에 없었다.

“어이, 거기 여자 용병?”

“넷, 저요?”

“그래. 너 말이야. 거기 너 말고 여자 용병이 누가 있나?”

하라드가 부르자 베네사는 어쩔 수 없이 다가갔다.

“왜 그러시죠?”

“저기 보물 상자가 사라졌다. 우리가 나갔다 온 사이 누가 저 거인의 수수께끼를 풀었나?”

“네.”

“그가 누군데?”

“저도 모르죠. 처음 보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네가 본 것을 그대로 말해라. 수수께끼의 질문과 답도 남김없이.”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착각하지 마시죠, 제국군 대위님. 저는 당신의 부하가 아니거든요.”

그러자 하라드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손가락을 들어 베네사의 턱을 들어올렸다.

“속국의 천박한 용병 년이 위대한 사르곤 제국의 장교인 나의 명령에 불복하겠다는 건가?”

“말씀이 좀 심하신 것 아닌가요?”

“닥쳐!”

짝!

하라드는 베네사의 뺨을 갈겼다.

“으윽!”

베네사는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것을 본 아르곤 제국의 용병들과 각성자들이 울컥했지만 아무도 나서는 이는 없었다.

하라드에게 대항해봤자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뻔했으니까.

“다시 말하겠다. 방금 전 벌어진 일을 소상히 보고해라.”

스릉

하라드가 검을 빼내 베네사의 목에 겨눴다.

“흥! 죽어도 말 못해.”

베네사는 죽일 테면 죽여보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여기선 죽어도 다시 부활한다.

레벨이 하락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하라드에게 비굴한 태도로 애걸하긴 싫었다.

“그럼 죽어야지.”

하라드는 그대로 검을 휘둘러 베네사를 베어버렸다.

“아아아악!”

가슴이 길게 베인 베네사는 즉사했다. 그녀의 시신은 이내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거, 너무 하는 거 아니오?”

“아무리 제국군이라지만 해도 너무 하는군.”

베네사가 죽자 그녀와 안면이 있던 용병들은 흥분했다.

물론 그녀는 이곳 대전장 던전에서만 죽었을 뿐 지금쯤 게이트 입구에서 부활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제국군 장교 하라드의 태도는 너무 방약무인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지? 너희들도 죽고 싶은가? 모조리 쓸어버리기 전에 꺼져라. 저 유적은 이제 우리 사르곤 제국군이 통제한다.”

하라드는 비릿하게 웃으며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부하들이 키득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용병들이 움찔하며 게이트 쪽으로 달아났다.

“제길! 벼락맞아 뒈질 놈들!”

“내가 더러워서!”

“언제쯤 내가 저놈들 뒤지는 꼴을 보려나.”

그들이 도망가면서 저주를 퍼붓자 하라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다들 잘 들어라. 이제부터 허락받지 않은 자가 저 유적 근처로 접근하면 즉각 죽인다. 알았나?”

“옛!”

병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다급히 외쳤다.

“유적에서 누가 나옵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정말이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닥에 앉아있는 거인의 옆으로 누군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물론 로안이었다.

“흐음, 거기 그쪽은?”

하라드는 명령조로 말하려다 로안의 정보창을 보고는 흠칫했다.

‘레온 왕국의 귀족이 여기까지 와서 저 유적에 들어간 건가?’

그러나 놀란 것도 잠시.

사르곤 제국의 입장에서 볼 때 레온 왕국은 아르곤 왕국과 다를 바 없는 약소국일 뿐이었다.

“죄송하지만 로안 남작님! 저 좀 보시겠습니까?”

그래도 상대가 귀족인만큼 예의는 차렸다.

로안은 힐끗 고개를 돌려 하라드를 쳐다봤다.

‘사르곤 제국?’

카오니아 세계의 국가들 중 가장 악질적인 놈들만 모여있는 곳.

황제부터 미쳐 있었다.

호시탐탐 인접국을 침범하며 전쟁을 일으키려 하니까.

“날 불렀나, 제국군 대위?”

로안은 담담히 하라드를 보며 물었다.

하라드는 킥 웃었다.

“예, 불렀습니다, 남작님.”

“무슨 일이지?”

“일단 저 거인의 수수께끼를 풀어 유적에 들어가신 것 축하드립니다.”

“축하까지야. 그런데 그말 하려고 부른 건 아닐텐데?”

“물론입니다. 앞으로 이 유적은 사르곤 제국의 영역이니 허락없이 출입을 금한다는 걸 통보드리기 위함입니다.”

“별 개소리를 다 듣는군.”

로안이 큭 웃었다.

그러자 하라드의 두 눈이 차갑게 빛났다.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어디서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서 말이야.”

“역시 제가 잘못들은 게 아니었군요. 그 말 뒷감당하실 수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라드가 힐끗 뒤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부하들이 달려가 로안을 포위했다.

그러자 로안이 하라드를 노려보며 싸늘히 웃었다.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뒤끝이 좀 많은 편이라서.”

“푸하하하! 그건 저와 비슷하군요. 뒤끝 하면 저도 어디 가서 뒤지지 않습니다만.”

말로 존대는 하지만 딱 봐도 약소국의 남작이라 얕잡아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로안은 마룡대도를 꺼내쥐었다.

고인물의 뒤끝이 뭔지 보여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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