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간다, 토실아! (2)
‘그러고 보니 기억난다.’
용사 헤로스의 모친이며, 왕국 사교계를 꽉 잡고 있는 또 하나의 실세.
레온 왕국뿐 아니라 인근 아르곤 왕국부터 시작해 멀리 한 제국까지 걸쳐 막대한 인맥을 가진 여성.
하지만 원인모를 불치병으로 초반에 죽을 운명이었다.
전신이 점점 굳어져가며 나중에는 반신불수 상태가 되었다가 그대로 사망하는 무서운 병이다.
그걸로 헤로스가 방황을 많이 하는 것까지 로안은 알고 있었다.
‘설마 이 능력으로 그런 불치병까지 고쳐지려나.’
어차피 밑져야 본전.
오늘이 지나면 사라질 능력이니 아낄 필요도 없다.
로안은 제니엔을 쳐다봤다.
“혹시 어디가 불편한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제니엔이 힘없이 미소 지었다.
“경이 우리 헤로스를 구해준 것만도 충분히 고맙게 생각하네. 하지만 나의 병은 내가 알지. 때가 되면 가는 것이 신의 뜻이 아니겠나?”
그동안 백약이 무효했고, 상급 사제로의 기도로도 치료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이미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걸 포기하고 있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한번만 속는 셈치고 로안 경에게 병세를 말씀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도미닉이 제니엔을 설득했다.
보아하니 그간 그가 제니엔을 향해 기도를 많이 했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제니엔이 탄식을 하더니 대답했다.
“상급 사제 중 유독 신앙심이 높은 그대의 기도로도 치유가 되지 않는데······.”
“왠지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저 소년 아니, 로안 경은 일찍부터 아프릴리스님께서 특별한 관심을 두고 계시는 터라 신비한 부분이 많지요.”
도미닉이 그렇게까지 말을 하자 제니엔이 로안을 다시 쳐다봤다.
“아들 헤로스의 일로 경에게 큰 민폐를 끼쳤는데 또 다시 이런 누를 끼쳐도 될지 모르겠네.”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로서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아프신 부위를 말씀해 주시면······.”
“여기서는 좀 그러니 저 막사 안으로 이동하세.”
근처의 막사로 간 후 제니엔은 한쪽 팔의 소매를 걷어보였다.
본래라면 살색이어야 할 피부가 잿빛으로 변해 있었는데, 팔을 움직이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팔뿐이 아니라 사지가 모두 이런 상태야. 점점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어지고. 내년에는 걸을 수나 있을지······.”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로안은 저 병명이 뭔지 모른다.
저주일 수도 있고, 정말로 불치병일 수도 있겠지만.
스윽.
과연 신묘한 손길로 치료가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샤라랑!
그런데 그 순간 아프릴리스 특유의 신비한 효과음과 함께 환한 빛이 일어났다.
그리고 제니안의 귀에 환상처럼 울리는 알림이 있었다.
[로안 레푸스 남작이 신묘함의 손길로 당신의 병을 치료했습니다.]
그녀가 내민 팔뿐 아니라 전신에 있던 알 수 없던 지병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아! 이럴 수가!”
제니엔은 순간 믿기지 않아 몸을 떨고만 있었다.
비록 알림을 통해 듣긴 했지만 정말로 자신의 병이 치료된 것인지 실감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로안은 안도했다.
특유의 효과가 펼쳐진 터라 그녀의 병이 나은 것을 알았으니까.
‘이거 진짜 개사기 능력이구나.’
신묘함의 손길은 정말로 무슨 병이든 다 고치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초반에 죽을 운명이었던 베안트 공작의 부인 제니엔은 앞으로 건강하게 장수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쉽네. 이 능력이 영구적으로 있으면 정말 대박일 텐데.’
오늘 자정까지 한정된 능력이라 내일이 되면 사라질 것이다.
신성한 복주머니에서 또 다시 이런 버프가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 여러모로 아쉬웠다.
“정말 어떻게 이런 일이! 도무지 믿기지 않구나.”
한편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제니엔의 얼굴은 기쁨으로 벅차 있었다.
그렇게 무겁던 온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몸을 움직여보고는 눈물을 글썽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도미닉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오오! 정말로 치료되신 것입니까?”
“아직도 믿기지 않아. 꿈이 아닌가 싶어.”
“허허! 진정 놀라운 능력이오, 로안 경.”
“그냥 오늘만 한정된 능력입니다. 다행히 치료가 되셔서 저도 기쁘군요.”
로안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제니엔이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헤로스를 구해준 것만도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졌는데 나의 불치병까지 고쳐주다니. 경에게 진 빚을 베안트 가문이 도대체 어찌 갚아야할지 모르겠군.”
“뭔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공작 부인께서 회복되신 것만으로 저는 기쁩니다.”
기왕 좋은 일을 한 것이니 최대한 말도 예쁘게 해서 제니엔 공작 부인의 환심을 사둘 필요가 있었다.
‘게임에서 정말 깐깐하기 짝이 없는 성격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이지.’
제니엔은 인접한 국가인 아르곤 왕국의 공작가 출신이다.
그녀의 인맥은 국제적으로 뻗어 있어 발이 넓기로는 오히려 베안트 공작을 능가했다.
그런만큼 그녀와 친해지면 만사가 편해진다.
“지금은 토실이를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테니 긴 말을 하지 않겠네. 하지만 이후로 나와 베안트 가문에서는 경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도움을 줄 생각이야. 어떤 곤란한 일이 생겨도 부담갖지 말고 찾아오게나.”
“그리 말씀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참 영지가 어디라고 했지?”
“북부의 라고스 영지입니다.”
“거긴 상당히 척박한 곳으로 알고 있네만······.”
“그래도 제법 지낼만 합니다.”
그러자 제니엔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빛나고 있는 걸 보니 로안의 영지로 뭔가 잔뜩 선물을 보낼 모양이었다.
‘뭐 주면 나야 좋지만.’
로안은 오는 선물은 절대 거절 안 한다.
그러나 지금은 토실이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그런 것들은 별로 기쁘게 생각되지도 않았다.
최대한 빨리 아이템들이 도착해 토실이를 구하러 가고 싶을 뿐.
‘조금만 기다려, 토실아. 금방가서 구해줄게.’
* * *
한편 토실이는 흑암의 케르베로스의 등 위에서 뱀들에게 둘러싸인 채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큭큭! 토실아! 같이 놀자!”
“돌아갈 생각은 버려. 넌 이제 케르베로스 님의 펫이라고.”
뱀들이 말을 건네왔지만 토실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토실이가 침울해 보이자 케르베로스가 물었다.
「왜 같이 놀지 않고 그러고 있느냐? 그 뱀들이 보기엔 좀 그래도 다 착한 녀석들이니 걱정말거라.」
「혹시 뭐 원하는 게 있느냐?」
그러자 토실이는 놓아달라는 뜻을 전했다. 지금쯤 주인 로안이 걱정하고 있을 터라 빨리 돌아가고 싶었으니까.
「그건 안 돼. 너는 이제 나의 펫으로 영원히 살아야 한다.」
시무룩.
토실이가 풀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자 케르베로스가 큭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의 펫이 됐는데 선물 하나도 주지 않았구나.」
그 순간 공중에 거대한 정육면체 하나가 나타났다.
그 정육면체는 케르베로스의 아공간 창고였다.
그러나 그것은 케르베로스의 생각일 뿐, 실제는 누군가 케르베로스를 해치웠을 때 얻을 수 있는 드롭 아이템들이기도 했다.
물론 저 거대한 아공간 창고에 있는 모든 물품이 한번에 드롭되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 한두 개, 운이 좋으면 서너 개 정도가 랜덤으로 드롭되는 식인 것이다.
그것은 케르베로스만이 아니라 대전장에 배치된 수많은 괴물들에게도 해당되는 일.
특히 케르베로스는 월드 보스인만큼 보통의 보스몹들과는 차원이 다른 아이템 목록을 가지고 있었다.
「어디 있더라? 여기에 펫 전용 물건들도 있을 텐데······」
케르베로스는 아공간 창고의 물건들을 살펴보는 걸 좋아했다.
「오! 여기 있군. 옜다! 요것이 딱 네게 맞는 물건이구나.」
곧바로 토실이의 앞에 작고 귀여운 크로스 백 하나가 떨어졌다.
[전설 펫 전용 크로스 백]
-분류 : 가방
-등급 : 전설
-설명 : 전설 펫이 장착할 수 있는 가방으로 널찍한 아공간이 연결되어 있다.
노란색의 귀엽게 생긴 백이라 토실이에게 딱 어울리긴 했다.
「뭐하느냐? 어서 내가 주는 선물을 받거라.」
그러자 토실이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백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사실 토실이에겐 저런 아공간 가방이 필요없다.
아공간 휴식처에 물건을 보관하면 되기 때문이다.
케르베로스가 족쇄의 저주를 걸어놓은 터라 아공간을 사용하지 못할 뿐인 것이다.
「그 가방을 매면 저 창고 구경을 시켜주려고 하는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그말에 토실이는 두 귀를 쫑긋했다.
왠지 저 거대한 아공간 창고에는 주인에게 유용한 물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토실이는 전설펫 전용 크로스 백을 비끌어 맸다.
「큭! 크크큭!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진작 그렇게 할 것이지.」
케르베로스는 흐뭇한 듯 웃었다.
「그럼 약속대로 창고 구경을 시켜주마.」
그러자 뱀들이 부러워했다.
“와아! 저기 나도 가보고 싶었는데?”
“우리도 들어가게 해주세요, 케르베로스 님!”
“너무해요! 토실이만 특별대우 하시기예요?”
뱀들이 아우성이었다.
「조용히들 하거라. 앞으로 너희들에게도 기회가 있을 것이다. 오늘은 토실이에게만 특별히 보여줄 테니 그리 알거라.」
케르베로스의 호통에 뱀들은 조용해졌다.
화악!
순간 아공간 창고에서 환한 빛이 나더니 한쪽 면에 문이 생겨났다.
곧바로 그 문이 열렸고 토실이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라 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수많은 보물들이 있었다.
종류도 많고 하나같이 신기한 것들이라 토실이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큭큭! 어떠냐? 이게 바로 나의 보물들이란다.」
케르베로스는 이렇게 보물들을 보여주면 토실이가 자신에게 존경심을 느낄 것이라 생각했다.
「뭐 갖고 싶은 거 있느냐? 그럼 딱 하나만 골라보거라.」
가방을 줬지만 거긴 비어 있으니 하나쯤 더 줘도 될 것 같았다.
「거기에 네가 좋아할 만한 음식도 있단다.」
전설 펫 전용 간식이나 사료는 비교적 흔한 드롭 아이템들 중 하나다.
그런만큼 케르베로스의 아공간 창고에도 그런 것들이 쌓여 있었다.
「뭐하느냐? 가서 하나 챙기지 않고.」
케르베로스는 토실이가 당연히 사료나 과자, 당근과 같은 음식에 관심을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토실이는 다른 뭔가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신비한 칠색 광채의 보석이었다.
그러다 그것을 앞발로 집어들었다.
「그, 그건!」
케르베로스는 순간 당황했다.
그가 가장 아끼는 보석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실이가 그것을 집어든 채 너무 귀여운 표정으로 위를 쳐다보자 고민이 되었다.
‘어차피 저 녀석이 잠깐 가지고 있는 거야 상관없겠지.’
적당히 가지고 놀다가 시들해지면 다시 아공간 창고에 넣게 하고 다른 물건을 쥐여주면 될 테니까.
「그래. 그럼 그걸로 하거라. 대신 가방에 잘 넣어두어야 한다.」
끄덕.
그렇게 토실이는 칠색의 보석 하나를 가지고 아공간 창고에서 나왔다.
쏘옥.
그리고 그것을 크로스 백에 잘 넣어두었다.
* * *
로안은 대전장 던전의 게이트 앞에 섰다.
왕국의 두 공작들은 정말로 두 개의 전설 등급 아이템을 구해왔다.
마쿠스 공작은 바람의 숨결(전설)을, 베안트 공작은 최상급 폴리모프의 비약(전설)을 말이다.
물론 이는 로안이 헤로스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준 덕분이었다.
거기에 헤로스의 모친인 베안트 공작 부인 제니언의 불치병까지 치료해줬다.
그것은 그야말로 베안트 가문은 대경사였다. 무엇보다 헤로스와 베안트 공작은 로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퍼줄 기세였다.
그러나 로안은 마음이 급했다.
찬사와 보상은 일단 토실이부터 구한 후에 생각하기로 하고 즉각 게이트 앞에 선 것이다.
[던전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사망 시 입구에서 부활하지만, 장비와 경험치를 잃어버리게 되니 주의하십시오!]
‘됐다.’
이 알림이 뜬다는 건 게이트 근처에 케르베로스가 없다는 뜻.
로안은 즉각 게이트로 뛰어들었다.
[고대의 유적 평원 대전장 던전에 진입합니다.]
츠으으읏!
환한 빛무리가 시야를 막았다가 이내 사라졌다.
곧바로 나타난 광대한 대평원.
로안은 가장 먼저 케르베로스의 위치를 찾았다.
놈은 대략 3km 떨어진 곳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변신해서 저놈 근처로 이동한다.’
[최상급 폴리모프의 비약이 아공간에서 출고되었습니다.]
로안은 지체없이 비약을 마셨다.
순간.
[변신을 원하는 종의 모습을 떠올려주십시오.]
‘가능하면 저놈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뱀이 되었는데 케르베로스가 본체만체하면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다.
‘저놈은 뱀은 안 죽인다. 하지만 펫으로 들일만큼 관심을 보이려면 조금 특별해야하지.’
그래서 로안은 몰캉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거대 뱀 형상을 떠올렸다.
물론 몰캉이와 동일하면 안 된다.
케르베로스는 로안이 몰캉이를 타고 움직인 걸 기억할 테니까.
몰캉이의 귀여움만 비슷하면 된다.
맑고 둥그런 두 눈에 순해 보이는 표정, 반짝이는 피부······, 물론 뱀이니까 껍질이겠지만.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12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곧바로 로안은 3미터 정도 길이의 뱀으로 변했다.
〈청금석 왕뱀(Lv54)〉
폴리모프의 비약은 이렇게 정보 창도 완벽하게 바꿀 수 있다.
특히 최상급의 경우는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누구도 간파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스킬도 대부분 쓸 수 있지.’
다만 공격의 형태가 뱀의 움직임으로 나타날 뿐이다.
물론 거력붕멸도법처럼 장비가 필요한 스킬은 못 쓴다.
불의 칼(Lv5)이나 분신(Lv3), 냄새 동화(Lv6) 같은 건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이제 가볼까?’
로안은 긴장감으로 심장이 뛰었다.
게임에서 폴리모프 상태로 괴물들을 속여본 적은 제법 있지만, 지금처럼 월드 보스에게 잡혀 있는 펫을 구하러 간적은 없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놈이 아공간을 쓸 수 없는 저주를 걸어놨을 가능성이 높은데?’
고인물인 로안은 토실이가 어떤 저주에 걸렸는지 추측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아공간 족쇄 비슷한 것에 걸렸을 터라 자칫 그 저주가 그대로 옮겨붙으면 로안 역시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즉, 바람의 숨결은 본래 아공간에 넣어둔 채로 사용이 가능하지만, 아공간에 족쇄가 걸려버리면 그것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축복의 성수와 바람의 숨결을 동시에 꺼냄과 동시에 토실이를 터치하고, 바람의 숨결을 쓴다?’
왠지 과정이 좀 복잡하다.
무엇보다 뱀의 몸 상태로 동시에 2개의 아이템을 꺼내 사용하려면 자칫 타이밍이 늦어질 우려도 있었다.
‘좀 더 단순화시키자.’
다행히 바람의 숨결을 쓰는 또 다른 방법도 존재했다.
[바람의 숨결(전설)을 출고했습니다.]
‘바람의 숨결 대기.’
[바람의 숨결(전설)이 사라집니다.]
[바람의 숨결 효과가 대기 중입니다.]
[제한 시간 : 4시간]
이제 4시간 안에 바람의 숨결 효과를 사용하지 않으면 그냥 없어져버린다.
그러나 이렇게 해두면 그냥 머리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즉각 사용이 가능하다.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다.’
스스스스.
준비를 마친 로안은 일부러 빙 둘러서 대평원 안쪽으로 이동했다.
‘느닷없이 게이트 쪽에서 뱀이 나타난 걸 보면 케르베로스가 수상하게 생각할 거야.’
길 잃은 뱀인 것처럼 위장하려면 안쪽에서 기어나와야 정상인 것이다.
‘됐다.’
로안은 이제 본격적으로 케르베로스 쪽으로 접근했다.
그렇게 놈과 1km 이내로 거리를 좁힌 순간 놈이 바람처럼 달려왔다.
「네 녀석은 뭐냐?」
“그게 길을 잃었습니다.”
로안은 짐짓 두려워하는 척 몸을 떨었다.
그러자 케르베로스가 흥미롭다는 듯 코를 킁킁거렸다.
「아주 묘하게 생긴 녀석이로구나.」
역시나 놈은 관심을 보였다.
그 순간 로안은 놈의 등 위에 있는 하얀 토끼를 발견했다.
‘무사했구나, 토실아. 조금만 기다려. 내가 구해줄게.’
놀랍게도 토실이는 로안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저 녀석이 나를 알아봤네.’
최상급 폴리모프의 비약으로 변신했는데도 알아볼 줄이야.
아마도 그냥 본능적으로 주인이 온 것을 감지한 것이 분명했다.
‘근데 저 가방은 뭐지?’
웬 귀엽게 생긴 노란 가방.
로안이 쳐다보자 토실이는 뿌듯해하는 표정으로 그 가방을 슬쩍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