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으로 독존한다-80화 (80/240)

영주님이 너무 세다 (2)

곧바로 그랄타는 근처의 바위를 앞에 두고 앉아 팔씨름 자세를 취했다.

“헤헤, 어디 덤벼 봐. 만약 내가 지면 네가 영주란 걸 인정할게.”

“좋아!”

로안도 흔쾌히 바위 앞에 앉았다.

그리고 그랄타의 손목을 잡았다.

“뭐야? 지금 장난하는 거야?”

“장난인지 아닌지는 힘을 써보면 알 텐데.”

그러자 그랄타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로안을 노려보더니 팔에 살짝 힘을 줬다.

귀찮으니 그냥 빨리 넘겨버릴 생각으로 말이다.

그러나 로안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어? 이럴 리가 없는데.”

“고작 이 정도뿐이냐? 좀 더 힘을 써봐라.”

로안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랄타는 울컥하며 팔에 힘을 잔뜩 줬다.

그런데도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로안의 팔을 넘기지 못했다.

“이이익! 이상하네. 왜 안넘어가는 거지?”

“그건 네가 나보다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천만에! 그럴 리 없어.”

그랄타는 죽을힘을 다해 팔을 넘기려 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오히려 로안이 힘을 주자 그랄타의 팔이 맥없이 밀려 손등이 바위에 닿았다.

“으으! 말도 안 돼!”

그랄타는 잠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로안을 쳐다봤다.

“이제 날 영주로 인정하는 거냐?”

“그, 그야 물론이다. 당신이 나보다 힘이 센 걸 인정한다.”

그랄타는 자존심이 상한 듯 인상을 구겼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는 뒤로 물러가 넙죽 엎드렸다.

그러자 또 다른 바바리안이 로안의 앞에 앉았다.

“나랑 해보자.”

“얼마든지.”

“이이익!”

“고작 그거냐?”

“져, 졌다!”

“다음은 누구냐?”

“나다, 인간!”

“좋아, 덤벼라.”

로안은 그런 식으로 나머지 바바리안 11명과 모두 팔씨름을 했고 가볍게 이겼다.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팔씨름에서 지고나서야 로안을 영주로 인정했다.

이상할 것 없다.

원래 바바리안들이 그런 녀석들이니까.

그러나 일단 한번 굴복시켜놓으면 매우 든든한 부하들이 되어준다.

절대 배신이나 뒤통수를 치는 짓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그저 팔씨름에서만 이겼을 뿐이다.

바바리안들이 로안을 영주로 인정했을 뿐이지, 그렇다고 충성심을 바치겠다는 뜻은 아니다.

이대로 헤어지면 다음부터 이들과 마주칠 경우 허리 인사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헤어질 수는 없지.’

바바리안들은 그냥 힘만 센 것이 아니다. 전투 감각도 아주 탁월하다.

공성전, 수성전, 온갖 지형의 필드 전투에서도 그야말로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한다.

‘바바리안 부대가 있으면 아주 든든하거든.’

영지에 바바리안 부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크나 리자드맨과 같은 녀석들이 웬만해서는 쳐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특히나 그랄타 등은 이제 모두 레벨 19다.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이다.

‘레벨 40 이상 되는 바바리안 수십 명만 부대로 만들어두면 내가 장기간 영지를 비우고 다녀도 안심할 수 있어.’

참고로 바바리안들의 승급 시스템은 보통의 각성자들과 완전히 다르다.

이들에게는 승급 아이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승급 퀘스트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그 승급 퀘스트가 랜덤으로 주어지는 식이라 운이 좋지 않으면 벽을 넘기가 어렵다.

물론 그거야 일반적인 상식일 뿐이고.

‘퀘스트 쉽게 받는 방법이 다 있지.’

고인물인 로안에게는 바바리안 승급에 대한 상당한 노하우가 있다.

심지어 바바리안 종족으로 게임을 플레이해 본 적도 있으니까.

단, 그건 영주라야 가능하다.

그리고 바바리안들이 부하로 들어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충성심이 높아야 하고 말이다.

따라서 일단은 로안이 저들을 부하로 만드는 게 중요했다.

“내가 이겼으니 이제 너희들은 나를 영주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자 그랄타가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알겠다, 영주.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를 마음대로 부릴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우린 당신의 부하가 아니거든. 우리의 존재가 거슬리면 다른 곳으로 떠나준다.”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단순해보여도 자존심은 강한 녀석들이니까.

로안은 미소 지었다.

“염려마라. 나는 너희들을 쫓아낼 생각 없으니까. 그리고 당연히 부려먹을 생각도 없다.”

그러자 그랄타 등이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은 이런 경우 부하로 삼아 막 부려먹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뭐지?”

“너희들이 지금처럼 괴물들을 사냥해주는 것만으로도 영지가 평화로워진다. 난 그것으로 충분해.”

순간 그랄타를 포함한 바바리안들의 표정이 다시 아이들처럼 해맑게 변했다.

“그게 정말이냐?”

“대신 어떤 일이 있어도 영지민들을 해쳐서는 안 돼. 저기 있는 코볼트들도 마찬가지다. 저들은 나의 부하들로 이제 이곳 영지에서 살아가게 될 거야. 해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그러자 그랄타가 코볼트들을 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헤헤, 내가 실수했군. 코볼트들을 절대 잡아먹지 않겠다. 그리고 앞으로 맛좋은 괴물을 잡으면 당신에게도 고기를 나눠주겠다.”

“그럼 고맙지.”

물론 괴물 고기는 별로 먹고 싶지 않지만, 굳이 이 자리에서 그런 호의를 거절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저들과 친해지는 게 가장 우선이니까.

“그런데 너희들의 동료는 또 없는 거냐?”

일단 이 영지에 들어온 바바리안들의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로안이 그 질문을 하자 그랄타 등의 표정이 돌연 침울하게 변했다.

“그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거냐?”

대답이 없다.

“너희들의 족장은 어디 있지?”

“······.”

아무래도 뭔가 말하기 곤란해하는 눈치다.

이런 경우에는 계속 캐물어서 좋을 게 없다.

앞으로 시간은 많을 테니까.

“지금 말하기 곤란하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되냐? 고맙다, 영주.”

그랄타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로안은 끄덕였다.

“난 저 성에 있을 테니 혹시 앞으로 뭔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와라.”

“알았다.”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라는 말에 바바리안들의 표정이 감동으로 물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그 누구도 그들에게 도움을 준다던가 하는 말을 한 적이 없으니까.

“닐스 저들에게 마른 치즈가 있으면 좀 내주도록 해.”

“짐칸에 치즈가 좀 있습니다. 바로 내주도록 하겠습니다, 로드.”

게임의 설정에서는 바바리안들이 치즈를 무척 좋아했다.

현실에서도 그런지 시험해볼 필요가 있었다.

‘설정대로라면 치즈 때문에라도 날 찾아올 거야.’

그때 닐스가 큼직한 마른 치즈 두 덩이를 그랄타에게 건넸다.

“이건 영주님께서 특별히 하사하시는 특식이다. 모두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도록 해라.”

“오! 그건?”

“맛있어 보이는 치즈다.”

역시나 바바리안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설정대로 치즈를 매우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고맙다, 영주.”

“잘 먹겠다.”

큼직한 덩어리였지만 덩치 큰 바바리안들이 나눠먹기에는 얼마 안 되는 양이었다.

그들은 금세 먹어치우고 더 없냐는 식으로 쳐다봤지만 닐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척 하면 착이라고, 닐스는 로안의 의중을 눈치챈 것이다.

절대 많이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영주님, 이제 그만 성으로 가시지요.”

“그래. 이만 출발한다.”

10대의 마차가 멀리 보이는 디온 성 쪽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바리안들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 * *

마차들은 계속 달렸다.

디온 성이 시야에 들어온 건 한참 이지만 거리가 꽤 멀었다.

“로드, 저 앞에 마을입니다.”

어디나 그렇듯 영지성 주변으로 제법 많은 마을들이 있다.

이곳도 마찬가지.

성으로 들어가려면 그런 마을들 중 몇 곳을 경유해야 한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마을들은 마을이라기 보다 요새였다.

마을 주위를 두꺼운 통나무로 울타리벽을 만들어 놓았고, 그 울타리 위로 보이는 타워에는 활과 창으로 무장한 이들이 엄중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디온 성은 상태가 엉망인데 마을은 방어 수준이 상당합니다.”

닐스는 놀란 표정이었다.

본래는 그 반대가 되어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안은 놀라지 않았다.

여긴 영주가 보호해주지 않으니 마을에서 자경대를 만들어 각자도생하고 있었을 테니까.

‘치안이 개판이지 여긴.’

마을의 방벽은 훌륭했지만 그 주위로 핏자국이 마르지 않은 걸 보면 오늘도 괴물들과 한바탕 전투가 치러진 듯했다.

“거기 누구냐? 멈춰라!”

한편 갑자기 10대의 마차 행렬이 보이자 마을 안의 주민들은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순간 흑마 껌정이를 탄 닐스가 마을의 방벽 앞으로 접근했다.

“모두 들어라! 이곳 라고스의 영주님이신 로안 레푸스 남작님의 행차시다. 속히 길을 열도록 하라!”

그러자 울타리 안쪽에서 일대 소란이 일었다.

곧이어 닐스가 그들과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눴고 상황을 설명했다.

잠시 후 마을의 육중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럴 때 기사가 있다는 건 매우 중요했다.

로안 혼자 왔다면 자신이 직접 영주란 사실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주로서 왠지 체면이 서지 않는 일.

다행히 닐스는 이런 일에 매우 노련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 스스로 뭔가 일이 있으면 앞서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마차로 이동 중에도 코볼트들을 지휘한 건 닐스였다. 하일과 데라는 그에 보조를 맞춰주었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닐스를 기사로 임명한 거야 말로 신의 한 수였다.

“오오! 드디어 이곳 라고스에도 영주님이 오셨군요!”

열린 문을 통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그중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이 앞서 나와 로안 앞에 엎드렸다.

“헤람 마을의 촌장 더크, 위대하신 영주 로안 레푸스 남작님을 배알하옵니다.”

그만이 아니라 그의 뒤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마치 왕에게 하는 듯한 예를 취했다.

겨우 남작일 뿐인데도.

물론 영지에서는 영주가 곧 왕이나 다름없긴 하지만.

로안은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모두들 반갑군.”

특별히 할 말은 없어서 그 이후에는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여전히 이런 건 아직 적응이 안 되네.’

그래도 빨리 적응해야 한다.

어색하게 행동해서는 안 되고.

영주로서의 뭔가 있어 보이는 위엄도 보여야 하겠지만 처음부터 다 잘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다들 뭔가 안색이 안 좋아보이네.’

바싹 마른 사람들이 많았다.

심하게 굶주린 것 같이 말이다.

영지의 사정이 말이 아니라는 걸 마을의 주민들의 행색이 보여주고 있었다.

‘괴물들 때문인가?’

어차피 내일부터 당장 괴물 사냥을 하려고 했다.

레벨도 올리고 영지도 안정시키고 그거야 말로 일석이조이니까.

하지만 사람들의 수심어린 표정을 보니 뭔가 다른 사정도 있어 보였다.

“로드, 날이 어두워지고 있으니 이만 성으로 출발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바로 출발해.”

자세한 사정은 성으로 가서 행정관의 보고를 받으면 알게 될 것이다.

헤람 마을을 지난 후 두 개의 마을을 지나자 비로소 디온 성의 성문이 보였다.

성벽이 부서져 있어 성문이라는 것도 별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그 앞에는 일단의 무리들이 도열한 채로 서 있었다.

그러다 로안의 마차 행렬이 보이자 누군가 뒤뚱뒤뚱 걸어나왔다.

뿔테 안경을 쓴 남자.

엄청나게 뚱뚱한 체격이었다.

순간 닐스가 앞서 나가 물었다.

“그대는?”

“나는 디온 성의 행정관 케빈이오, 닐스 경.”

닐스의 정보 창을 통해 케빈은 그가 로안의 기사란 걸 바로 알아본 것이다.

“이거 죄송합니다. 영주님께서 오시는 줄 알았다면 진작 마중나왔을 텐데요.”

【이름】 케빈

【레벨】 39

【신분】 디온성 행정관/영주대리

【직업】 연금술사

【소속】 레온 왕국 라고스 영지

레벨 39의 연금술사라!

그가 이곳의 행정관이자 동시에 영주대리로서 그동안 영주가 없는 라고스 영지를 통치해오고 있었다는 뜻이다.

케빈은 로안을 향해 다가오더니 그대로 허리를 숙였다.

“행정관 케빈, 라고스 영지의 영주님이신 로안 레푸스 남작님께 인사드립니다.”

로안은 순간 뭔가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행정관 케빈이라.

일단 기억에는 없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별로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뜻.

‘근데 왜 기분이 이상하지?’

마치 있어서는 안 될 곳에 뭔가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그때였다.

로안의 어깨 위에 앉아있던 몰캉이의 두 눈에서 푸른 안광이 번쩍였다.

신비한 푸른빛의 안광.

그 안광이 빛나는 순간 케빈은 기분이 거슬린 듯 힐끗 몰캉이를 노려봤다.

그러나 몰캉이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이름】 굴라

【레벨】 ??

【신분】 디온성 행정관/영주대리

【직업】 포???

【소속】 포?? 글????

몰캉이는 예전에 크라겔의 위장을 알아봤던 것처럼 케빈의 위장도 대략 간파했다.

그리고 즉각 자신이 본 걸 토실이에게 알려줬다.

속닥속닥.

몰캉말캉한 감촉과 함께 귀에 전해져 오는 은밀한 정보.

순간 토실이의 두 귀가 쫑긋 세워졌고 두 눈은 가늘게 변했다.

부비.

토실이는 즉각 로안의 볼에 얼굴을 비볐다.

[토실이가 당신에게 몰캉이가 간파한 케빈에 대한 새로운 내용을 알려줍니다.]

그와 함께 로안의 앞에 케빈의 새로운 정보창이 나타났다.

‘······!’

로안은 깜짝 놀랐다.

설마 케빈이 정체를 위장하고 있었을 줄이야.

‘본래 이름은 굴라인가? 다른 건 물음표로 되어 있어 알 수가 없군.’

그런데 그때 자그만 귀마 위에 앉아있던 제논이 특유의 표정으로 키득거렸다.

뭔가를 알고 있지만 별로 알려주고 싶어하지 않는 듯한 표정.

순간 몰캉이가 슥 제논의 옆으로 이동했다.

이에 움찔 놀란 제논이 잽싸게 로안을 쳐다봤다.

[제논이 〈마뇌Lv5〉를 발동합니다.]

[몰캉이가 파악한 정보를 토대로 제논이 분석한 내용이 표시됩니다.]

【이름】 굴라

【레벨】 62

【신분】 디온성 행정관/영주대리

【직업】 포식전사

【소속】 포식마 글루토누스

‘아니?’

경악할 만한 내용이 나타났다.

굴라의 직업은 연금술사가 아닌 포식전사!

‘저거 영웅 등급 직업인데.’

포식전사의 능력 중 하나가 바로 상대를 먹어치운 후 그 상대로 변신하는 것이다.

본래의 행정관 케빈은 이미 죽은지 오래고 악마의 하수인 굴라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건 놀랄 것도 아니다.

그 아래 소속에 나온 정보에 비하면 말이다.

‘포식마(飽食魔) 글루토누스!’

다름아닌 49악마 중 하나!

행정관 케빈을 포식한 굴라는 악마 글루토누스의 하수인이었던 것이다.

‘미리 알아서 천만다행이군.’

그때 케빈은 로안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본 것은 짐작도 못한 채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영주님. 곧바로 연회를 준비하겠습니다.”

“연회라 기대되는군.”

“어서 성 안으로 드시지요.”

“그럴까?”

그 전에 칼부터 챙기고.

로안은 아공간에서 바위 거인의 마룡대도를 빼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