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으로 독존한다-69화 (69/240)

보물 고블린 (1)

어두운 밤.

드라우트 성 멀리 위치한 붉은 오크들의 진영.

지휘관 막사에는 무거운 한숨이 흐르고 있었다.

“빌어먹을! 헤로스라는 놈이 떠나서 드라우트 성을 이제 점령할 수 있나 했더니 로운장이라는 놈은 또 웬 놈이냐?”

“그놈은 헤로스라는 놈보다 더 강해보였습니다.”

“크으! 천부장 두칵 님이 그렇게 허무하게 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요.”

이곳 진영에 있는 3천여 붉은 오크들 중 최강의 전사였던 천부장 두칵.

그는 아까 낮에 스스로를 로운장이라고 소개한 인간 소년의 단 한 방을 버티지 못했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그 로운장이라는 인간 놈이 있는 한 우리 힘만으로는 드라우트 성을 점령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퇴각을 하시렵니까?”

“큭! 그럴 리가 있겠느냐? 우리의 터전이 마물들에게 장악된 이상 애초부터 퇴각이란 선택은 우리에게 없다.”

“그럼 케락 님의 의중은?”

오크 지휘관 케락.

붉은 오크 천부장 중 하나이자 두칵이 죽은 이후 이곳 진영을 총지휘하고 있었다.

“정면 공격이 힘들면 다른 방법이 있지. 내가 볼 때 드라우트 성의 가장 큰 약점은 보급일 것이다. 토첼! 현재 그놈들의 식량은 얼마나 남았느냐?”

그러자 옆에서 대기하던 오크 주술사 토첼이 즉각 대답했다.

“앞으로 대략 이십 일이 지나면 놈들은 식량 배급량을 절반으로 줄이게 될 것입니다요. 그래도 최대 한 달 반 이상 버틸 수 있는 식량입지요.”

“한 달 반이면 너무 길군.”

그러자 오크 백부장 하나가 눈을 빛내며 외쳤다.

“그럼 당장 인간 놈들의 식량 창고를 태울 별동대를 조직하겠습니다.”

“아니, 이번에는 다르게 한다. 드라우트 성의 인간 놈들이 아무리 멍청해도 같은 방법에 또 당할 리가 없다.”

그러자 주술사 토첼이 끄덕이며 말했다.

“케락 님의 말씀대로입지요. 특히 푸른 수염 코볼트 놈들이 인간들에게 붙어 있어 이전처럼 땅굴을 파는 작전은 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요.”

“그럼 어떤 방법이 좋겠느냐?”

“이번에는 쥐를 이용해볼까 합니다요.”

“쥐라고?”

“키킥! 식량을 태우지 않고 쥐들이 모조리 먹어치우게 하는 것입죠.”

“쥐들을 움직일 방법이 있겠느냐?”

“제가 누구입니까요?”

“하긴 토첼 너라면 믿을 만하지.”

토첼은 붉은 오크 주술사 중 열손가락 안에 꼽힌다.

주술도 주술이지만 잔머리에 매우 능통하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작전을 수행해라. 인간 놈들이 굶어죽기 싫다면 알아서 성을 떠날 것이다.”

“맞습니다요. 이게 바로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방법입지요.”

케락을 비롯한 오크 지휘관들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피어났다.

* * *

로안이 토실이에 의해 깨어난 것은 바로 그때 쯤이었다.

창밖에서 신비한 광채가 피어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푸니카 상단의 우정 깃발을 꽂아둔 자리에 고블린 하나가 서 있었다.

【이름】 타이나

【레벨】 70

【종족】 하프 고블린

【직업】 고블린 머천트

【소속】 타르파 왕국 푸니카 상단

여성 고블린.

고블린이지만 키도 크고 늘씬했다.

피부가 푸른 것만 빼고는 상당히 예쁘게 생겼다.

미소녀를 연상케 할 정도로.

어떻게 고블린이 저럴 수 있냐고?

인간과 고블린의 혼혈인 하프 고블린이기 때문이다.

‘설정도 참.’

게임에서는 그냥 설정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현실에서 이런 혼종을 보니 기분이 좀 묘하다.

아무튼 상당히 독특한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고블린 타이나.

그녀가 푸니카 상단을 대표해 로안을 찾아온 보물 고블린인 것이다.

레벨이 무려 70.

놀랄 건 아니었다.

고블린이라고 해서 저렙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보다 말로만 듣던 푸니카 상단의 부단주가 직접 찾아올 줄 몰랐네.’

로안이 아무리 고인물이라고 해도 타르파 고블린 족의 모든 고블린을 만나본 건 아니다.

히든 퀘스트 등을 통해 타르파 고블린 중 일부 상단들과 거래를 했을 뿐이니까.

푸니카 상단도 그중의 하나.

그런데 상단주나 부단주를 만난적은 없다.

그 이하 다른 상급 고블린 머천트들과 거래를 했을 뿐.

타이나에 대해서는 이름만 들었을 뿐이다.

레벨 70의 하프 고블린이라는 것도 오늘 알았다.

“인간, 네가 로안이로군. 나는 푸니카 상단의 부단주 타이나다.”

타이나가 손을 내밀었다.

“우선 네가 크롯을 비롯한 우리 식구들을 구해준 것에 대해 타르파 족을 대표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악수를 하자는 뜻.

로안은 끄덕이고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네.”

“우린 신용을 제일로 치니까.”

타이나는 푸니카 상단에 대한 상당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놀라운 일은 그녀가 이렇게 로안의 뜰 앞에 와있는데도 드라우트 성의 경비병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뒤늦게야 로안의 말소리 등이 들려 후다닥 달려온 인근의 순찰조 병사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분은 내가 초청한 손님이니 안심하세요.”

로안의 말을 듣자 순찰조원들은 알았다는 듯 안심하고 돌아갔다.

이미 레이로부터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을 하달받은 것도 있지만, 드라우트 성의 전설인 로운장 로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신뢰한 것이었다.

“인간 로안?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네가 정말로 우리 푸니카 상단과 거래를 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알아볼 생각이야. 네가 우릴 도와준 건 고맙다만, 그렇다고 우정의 깃발을 줄만한 존재인지는 의문이거든.”

로안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올 줄 알았으니까.

‘오히려 안 그러면 수상하지.’

자격의 시험.

푸니카 상단뿐 아니라 다른 상단에서도 줄곧 있는 일이었다.

게임에서 한두 번 겪어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걸 모두 알고 있다는 듯 내색할 수는 없는 일.

로안은 짐짓 정색을 하고 물었다.

“그래서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겠다는 뜻이냐?”

“천만에. 크롯이 너무 어려서 너의 언변에 넘어갔을 수도 있으니 내가 너의 진심을 살펴보겠다는 거다.”

“어떻게 살펴보겠다는 거지?”

“다음 카드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된다.”

타이나는 황금빛 왕관을 쓴 고블린이 그려진 카드 네 장을 로안에게 보여줬다.

물론 그건 모두 뒷면이었다.

앞면에는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고작 카드로 나의 진심을 시험하겠다는 건가?”

로안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타이나는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이해를 부탁한다. 인간들은 본래부터 우리를 보물 고블린이라 말하며 이용하려 하니까. 나는 네가 그런 사악한 존재인지를 알아보려는 것뿐이다.”

로안은 속으로 뜨끔하긴 했다.

보물 고블린이 보물 고블린이지 뭐냐.

그러나 정작 그 보물 고블린들은 자신들을 그렇게 생각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그 또한 로안은 잘 알고 있었다.

“염려마라. 나는 그런 인간이 아니니까.”

“말로는 믿을 수 없지. 이제 이 카드를 골라봐라. 참고로 저기 있는 전설 토끼의 도움을 요청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타이나는 그 사이 그녀의 주변을 얼쩡거리고 있는 토실이를 경계하듯 가리키며 말했다.

토실이가 은근슬쩍 로안의 행운을 높이려 하는 것까지 눈치채다니.

과연 고레벨의 머천트답다.

“우훗! 거기 귀여운 토끼님? 미안하지만 저 뒤로 좀 떨어져 있어 주겠어요? 그리고 뒤쪽 애벌레님과 좀비님도요.”

타이나는 토실이를 향해 정중히 부탁까지 했다.

심지어 낮은 포복 자세로 그녀의 뒤로 접근하는 몰캉이와 제논까지 발견했다.

아마도 토실이의 밀명을 받았을 텐데.

모조리 발각된 것이다.

치밀하기 짝이 없다.

마치 시험 전에 매의 눈으로 부정행위를 차단하는 선생님을 보는 듯하다.

한편으로 가슴이 뭉클하긴 했다.

‘저 녀석들이 나를 도우려고 이렇게 까지 하다니.’

주인을 생각하는 펫들의 마음이 느껴져서다.

[고블린 머천트 타이나가 결계를 펼쳐 외부의 접근을 차단합니다.]

타이나는 최후의 그 어떤 부정행위까지 차단하겠다는 듯 결계까지 펼쳤다.

토실이 등도 들어올 수 없게 됐다.

그러자 토실이는 당황한 듯했다.

“괜찮아. 내가 알아서 잘 할 테니 너희들은 거기서 놀고 있어.”

로안은 토실이를 안심시켰다.

매번 녀석의 행운 버프에 의존했지만 이번은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쪽으로는 걱정 안해도 된다.

그러나 토실이의 표정은 시무룩해 보였다. 몰캉이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고여 있었다.

‘에효! 걱정마라 녀석들아! 이 주인은 타르파 족 상단들 시험 문제도 다 꿰고 있단다.’

그렇다.

이런 것도 모르고 어떻게 고인물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뭐였더라?’

고인물인 그라도 무작정 영어단어 때려외우듯 단순하게 외우진 않았다.

‘푸니카 황고삼 엘프이사 용삼이······’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에 가사만 바꿔서 외워놨으니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도 없다.

‘푸니카’는 푸니카 상단.

‘황고삼’은 황금고블린 카드가 나오면 왼쪽에서 세 번째.

‘엘프이사’는 엘프 카드가 나올 경우 처음엔 두 번째, 그 다음엔 네 번째.

‘용삼이’는 드래곤 카드는 처음엔 세 번째고, 다음엔 두 번째라는 뜻이다.

물론 모두 왼쪽 기준이다.

‘따라서 황고삼이니까.’

즉, 로안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설정까지 뒤바뀐 거라면 답이 없지만.

“이걸로.”

로안은 왼쪽에서 세 번째 카드를 선택했다.

그러자 타이나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호오! 운이 좋았네.”

곧바로 그녀는 카드를 확인해줬다.

다른 세 개의 카드는 모두 보물이 그려져 있었는데, 로안이 고른 것만 아름다운 꽃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나의 진심을 알았을 것 같은데?”

로안은 표정 관리를 하며 말했다.

물론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다행히 이 설정은 그대로군.’

그러나 타이나는 또 다른 카드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한 번 운좋게 잘 찍어서 맞출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너의 마음에 보물 고블린이라는 사특한 목적이 있다면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아름다운 숲의 요정 그림.

엘프 카드다.

엘프이사니까.

먼저 왼쪽에서 두 번째.

“이걸로.”

그러자 타이나가 다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곧바로 카드를 확인해줬다.

마찬가지로 로안이 고른 것만 꽃이고, 다른 세 장의 카드는 보물이었다.

삭삭삭!

그녀는 카드를 가히 광속의 속도로 다시 섞었다.

“이번엔?”

“네 번째로 하지.”

그러자 타이나는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또 로안이 고른 것이 꽃이었으니까.

“정말로 넌 우리 고블린을 향해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몇 번을 말해. 난 보물 고블린 이런 거 관심없어. 고블린이건 인간이건 착한 놈은 좋아하고, 나쁜 놈은 싫어할 뿐이야.”

이건 어느 정도 진심이긴 했다.

앞부분 말고 뒷부분만.

그때 토실이 등은 로안이 연속으로 성공하자 기쁜지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고 있었다.

‘봤냐? 이 주인이 이런 사람이란다.’

로안은 입가에 절로 미소가 나왔지만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타이나를 쳐다봤다.

“이쯤했으면 나의 진심을 알았을 것 같은데?”

“맞아. 일단 넌 시험을 통과했다, 로안. 적어도 크롯을 속인 건 아닌 게 증명됐어. 확실히 넌 우리 푸니카 상단과 거래할 만한 자격이 있다.”

“다행이군.”

그런데 그녀는 또 다른 카드 네 장을 꺼내 보였다.

드래곤이다.

“뭐야? 시험은 합격했다고 하지 않았나?”

“맞아. 이건 순전히 추가 시험이니 설령 네가 보물을 고른다고 해도 자격이 취소되지는 않을 거야.”

“그래? 그럼 이번 시험에서 통과하면?”

“넌 우리 푸니카 상단에 있어서 최고 등급의 신뢰도를 얻게 될 거야.”

이미 알고 있다.

그냥 VIP가 아니라 VVVIP.

이른바 플래티넘 등급!

게임에서도 그래서 항상 최고 등급으로 거래를 했다.

여기뿐 아니라 다른 상단에서도.

‘용삼이······.’

로안은 왼쪽에서 세 번째 카드를 골랐다.

타이나가 화들짝 놀랐다.

“정말 믿기지 않는구나. 충분히 허용될 수 있을 정도의 약간의 사심이라도 있다면 이걸 고를 수 없는데.”

로안이 고른 카드에 나타난 건 신비한 백색의 꽃.

타이나는 놀라다 못해 감동하기까지 한 표정이었다.

사사사삭―

그녀는 드래곤 카드를 다시 광속으로 섞었다.

“이게 마지막 시험이야.”

“두 번째로 하지.”

로안은 그냥 찍는다는 듯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카드를 선택했다.

순간 타이나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가 이내 차분하게 돌아왔다.

이어서 로안을 보는 그녀의 눈빛은 따뜻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금껏 여기까지 시험을 통과한 이는 네가 처음이야, 로안. 너를 시험한 것 진심으로 사과할게.”

그말과 함께 그녀는 앞으로 다가와 로안의 뺨에 살짝 뽀뽀를 했다.

“뭐하는 거냐?”

“최고의 신뢰도를 가진 이에게만 해주는 우정의 표시야.”

뭐지?

이런 설정은 없었는데.

새로 추가된 건가?

뭐 그래도 괴물처럼 생긴 녀석이 아닌 미소녀 고블린이니 봐준다.

“이제 너도 내게 답례를 해줘야지.”

타이나가 미소 지으며 자신의 뺨을 가리켰다.

그래. 못할 것도 없지.

쪽.

로안은 타이나의 뺨에 뽀뽀를 해줬다.

그런데 그렇게 뺨에 입술을 댄 순간.

언제 나왔을까?

레이가 토실이 등이 있는 쪽에 함께 앉아서 로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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