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으로 독존한다-68화 (68/240)

이 잔이 식기 전에 (3)

이 술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소!

즉, 본래는 차가 아니라 술이다.

삼국지연의에서 관우가 동탁의 부하 화웅의 목을 베러 갈 때 이런 말을 했으니까.

정사(正史)가 아닌 소설 속의 얘기일 뿐이지만, 어쨌든 로안에게는 관우가 가장 멋지게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오죽하면 그때부터 조조가 관우의 광팬이 되어버렸을까?

그 이후로 펼쳐지는 삼국지연의의 스토리에서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조조는 ‘관우바라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냥 광팬이 아니라 열혈팬 1위 수준인 것이다.

물론 로안 또한 그 못지 않게 관우의 광팬이었는데.

이제는 팬이 아닌 그 스스로가 관우와 같은 존재가 되려 하고 있었다.

그가 손에 쥔 바위 거인의 마룡대도는 청룡언월도를 능가하는 전설 등급 무기다.

또한 몰캉이도 관우의 적토마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지금부터 내가 전설을 만들어보는 거다.’

라는 거창한 계획을 세운 건 물론 아니지만.

오크 맹장 두칵이라는 놈이 겁 없이 날뛰고 있는 걸 보자 문득 떠오른 전생의 몽상(夢想)을 풀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는 그게 몽상이 아니지.’

로안이 관우와 같은 절대강자가 되어 적들을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리는 것이 이곳 카오니아의 세계에서는 실제로 가능한 일이니까.

“쿠하하하하! 겁쟁이 인간들아! 너희 중에 나를 당해낼 놈이 단 한놈도 없다는 말이냐?”

두칵은 자신에게 어떤 운명이 들이닥칠지 상상도 못한 채 기사 글러튼의 머리를 씹으며 계속 조롱을 날렸다.

그러다 드라우트 성의 성문이 열림과 동시에 웬 괴상한 거대 벌레를 타고 나온 소년을 보고는 기막혀 했다.

“큭! 너는 또 뭐냐? 설마 너 따위 피비린내 나는 놈이 나를 상대하러 나온 것은 아닐 테고.”

“내가 누구냐고? 바로 로운장이다!”

로운장은 로안과 관운장의 합성어다.

“크크카캇! 로운장? 별 개뼉다귀 같은 이름이 다 있구나. 그렇게 뒈지고 싶다면 죽여주지. 오늘은 시작부터 포식하게 생겼구나.”

두칵이 뜯어먹던 기사 글러튼의 머리를 바닥에 내던지고 로안을 향해 흑마를 몰았다.

히히히히힝!

흑마가 포효한 후 지축을 울리며 돌진해왔다.

흥미롭게도 두칵 또한 대도를 무기로 쥐고 있었다.

“인간 놈! 그러고 보니 아주 요상하게 생긴 벌레를 타고 있구나. 그 벌레놈과 함께 두 쪽을 내주마.”

놈의 대도에서 피어나는 검붉은 오러가 폭풍처럼 공간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휭휭휭!

로안은 피하지 않고 전진했다.

기왕 전설을 만들기로 했으면 완벽하게 해야 하겠지.

두 방도 필요없다.

단 한 방이면 된다.

제1도식 일도붕멸!

평타로도 충분히 타격을 입힐 수 있지만.

이럴 땐 스킬을 써야 제맛.

쐐애액!

두칵의 대도와 바위 거인의 마룡대도가 격돌했다.

카각!

단 한 번의 격돌.

그것이 끝이었다.

마룡대도가 대도를 종이짝 뚫듯 베고 지나가 두칵의 몸통까지 갈라버렸다.

동시에 흑마와 몰캉이가 서로 빗겨지나갔다.

착!

로안이 마룡대도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몰캉이의 방향을 돌리는 동안 전진하던 흑마 위의 두칵은 두쪽이 난채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놈은 흉부가 사선으로 잘린 채 즉사했다.

“쿠, 쿠억!”

“끄익!”

맹장 두칵이 로안의 일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처참히 처박히는 그 모습을 본 오크들은 충격에 두 눈을 부릅떴다.

또한 드라우트 성은 고요했다.

일순 너무 놀랐기 때문이다.

레이와 닐스 등은 로안이 레벨에 비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곧바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우와아아!”

“와아아!”

성벽 위의 병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위로 들어 올렸다.

“으하하하! 최고다, 로안!”

“로안! 로안! 로안······!”

로안의 이름을 제창하는 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들려오는 우레같은 환호성!

그때까지 담담한 표정으로 몰캉이 위에 앉아 있던 로안은 가슴이 왠지 벅찼다.

솔직히 두칵은 그에게 있어 가소로운 상대다.

시련의 던전 최종 보스였던 바위 거인 브라호스에 비한다면 잡몹에 불과할 뿐이니까.

그런 별것도 아닌 녀석을 그냥 한방에 보내버렸을 뿐인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뿌듯하냐?’

로안! 로안! 로안·····!

여전히 계속되는 제창과 사람들의 환호성!

순감 마치 세상 만물이 사라지고 저 소리들만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건 게임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벅찬 기분이다.

정말로 영웅이 된 것 같달까?

그러나 ‘된 것 같은’ 게 아니라 그는 이미 영웅이었다.

로안 또한 그 사실을 자각했다.

쓱.

곧바로 그는 마룡대도를 앞으로 겨눈 채 오크들을 훑어봤다.

“또 덤빌 녀석 있냐? 몇놈이든 상관없으니 나와라.”

짐짓 도발했지만 로안은 속으로 제발 덤비지 마라, 하고 있었다.

물론 놈들이 떼로 덤빈다고 해도 겁날 것은 없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40레벨 승급을 못한 상태라 경험치를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승급한 다음에 싸우자고.’

오크들은 기세에 눌렸는지 조용했다.

다행이었다.

“몰캉아, 돌아가자.”

더 늦으면 차 식는다.

잔이 식기 전에 돌아간다고 했는데, 식어 있으면 왠지 민망할 것이다.

그런데 로안은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오늘 그가 실제로 전설을 하나 만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카오니아 세계에서 끝없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전설.

이후 숱한 용병이나 전사들이 싸우러 나가기 전 ‘이 잔이 식기 전에 돌아오도록 하지.’라며 로안의 말을 흉내내게 된다.

히힝!

한편 이 순간 가장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다름아닌 두칵이 타고 있던 흑마.

희귀 등급 탑승 펫인 녀석은 주인이 죽자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본래라면 재빨리 어디론가 달아나 자취를 감춰버렸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했다.

몰캉이가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몰캉이는 흑마에게 움직이면 죽는다는 경고를 보냈다.

흑마는 그런 몰캉이의 눈치를 보며 덜덜 떨고만 있었다.

“뭐야? 저 녀석을 데려가자는 거냐?”

로안이 묻자 몰캉이가 눈을 반짝이며 끄덕였다.

녀석은 흑마를 전리품처럼 여기고 있는 듯했다.

“그래. 데려가면 누구에게든 필요하겠지.”

곧바로 로안은 성으로 복귀했다.

흑마는 알아서 몰캉이 뒤를 따라왔다.

“와아아아!”

“로안! 로안! 로안!”

그때까지도 성에는 환호성이 끝나지 않았다.

“와하하! 로안, 최고다!”

“대단해, 로안!”

“로안! 로안! 로안!”

닐스와 데라, 하일 등도 각자의 무기를 흔들며 열광했다.

심지어 푸른 수염 코볼트들도 로안의 이름을 제창 중이었다.

망루 위로 올라가자 레이와 스카드 남작이 반겨 맞았다.

“멋졌어, 로안!”

“으하하하! 로안! 레이에게 듣긴 했지만 믿지 않았다. 네가 그토록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야. 정말 대단하다! 로안! 로안! 로안!”

“쑥스럽군요. 이제 그만하세요.”

스카드 남작까지 이럴 줄이야.

로안은 탁자 위에 있는 잔을 들어 마셨다.

‘역시 아직 안 식었네.’

이로써 관우의 전설을 재현하는데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 * *

맹장 두칵이 로안에게 무참히 패배하고 나자 오크들은 결국 멀리 물러났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후퇴한 건 아니었다.

다시 헤로스 백작 등이 있을 때처럼 멀리서 포위한 채 장기전 모드로 돌입할 생각인 것이다.

레이와 스카드 남작은 이참에 로안이 병사들을 이끌고 나가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줬으면 하는 기색이었지만, 로안은 피곤하다며 숙소로 돌아왔다.

‘미안하지만 승급이 우선이다.’

무려 수 천의 오크들과의 전투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레벨을 3, 4단계는 족히 올리고도 남을 텐데, 그런 막대한 경험치를 길바닥에 내다버릴 수 없는 일.

물론 아무리 경험치가 중요하다고 해도 오크들이 공격해온다면 그땐 얘기가 다르다.

성은 지켜줘야 할 테니까.

‘고블린들이 빨리 찾아와주면 좋을 텐데.’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열어보니 레이였다.

“무슨 일이죠?”

“몰캉이가 잡아온 흑마 말이야. 그거 어떻게 할 생각이야?”

“글쎄요.”

탑승 펫이 없을 때라면 몰라도 몰캉이가 있는 이상 로안에게 희귀 등급 흑마 따위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몰캉이에 비하면 클래스 자체가 다른 하등 펫에 불과하니까.

“레이 님이 가지실래요?”

로안은 혹시나 물었다.

예전에 본의 아니게 레이로부터 토실이를 빼앗아온 것에 대해 여전히 미안함을 느끼고 있어서다.

그런데 만약 레이가 흑마에 관심이 있어 왔다면 의외다.

그녀는 토실이처럼 귀여운 펫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흑마는 날렵해보이긴 해도 오크가 타던 말답게 험상궂은 외모였다.

레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내 취향은 아니야.”

역시나 그렇군.

“그럼 혹시 누가 필요하다고 해요?”

“다들 탐내고 있는 중이야. 기사들은 물론이고, 숙부님도 은연중 가지고 싶어하셔.”

“그렇군요. 그럼 레이 님이 알아서 해요.”

그러자 레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좀 곤란해.”

“왜요?”

“나에게 맡기면 어쩔 수 없이 숙부님께 드려야 하잖아.”

“그렇게 하면 되잖아요.”

“숙부님은 이미 탑승 펫을 가지고 계셔. 흑마는 수집용으로 원하시는 거라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갔으면 해.”

“그럼 누가 좋을까요?”

“용병 닐스가 아까부터 그 흑마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

“닐스 형이요?”

“그래서 네가 직접 닐스에게 흑마를 주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럼 아무도 토를 달지 않을 거야.”

레이는 창밖을 가리켰다.

숙소가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다보니 성 안이 잘 보였다.

그런데 몰캉이가 잡아둔 흑마를 다른 누구보다 유독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이가 한 명 보였다.

다름아닌 닐스.

표정을 보니 흑마에게 완전히 꽂힌 것 같았다.

‘닐스 형도 참! 나한테 와서 말을 하지.’

흑마는 몰캉이가 전리품 삼아 잡아왔다.

그러나 몰캉이는 금방 녀석에게 흥미를 잃었다.

녀석은 지금 귀여운 애벌레 상태로 토실이와 함께 로안의 침대 위에서 늘어져라 자고 있는 중이었다.

즉, 불행하지만 흑마는 몰캉이에게 버려진 것이다.

그런데도 흑마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 사이 몰캉이를 주인처럼 여기고 있는 걸까?

“알려줘서 고마워요, 레이 님.”

곧바로 로안은 레이와 함께 닐스에게 갔다.

“닐스 형!”

“오! 로안! 아까는 정말 멋졌다.”

“하하, 그 얘긴 이제 그만하죠.”

“지금 모두들 네 얘기만 하고 있어. 저길 봐. 하일과 데라는 너와 함께 고블린 던전에서 있었던 얘기를 자랑삼아 하고 있는데 다들 귀를 쫑긋하고 듣고 있잖아.”

그러고 보니 멀리 휴식을 취하는 무리 중에 하일과 데라, 그리고 일단의 병사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오늘 로안이 만든 전설로 인해, 그들은 로안과 친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움의 대상이 된 것이다.

로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냥 적당히 할 걸.’

공연히 관우 흉내를 낸 건가.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

“그보다 형, 저 흑마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그러자 닐스는 깜짝 놀랐다.

“아니야. 무슨 소리를. 저건 스카드 남작님이 갖고 싶어하시는 거다.”

쯧, 장차 최강의 용병으로 대륙에 명성을 떨칠 자가 이렇게 소심해서야.

“난 지금 형이 갖고 싶은가를 묻고 있어요.”

“당연히 갖고야 싶다만.”

“그럼 가져요.”

“엉? 진짜?”

로안은 몰캉이를 불렀다.

그러자 몰캉이가 흑마에게 가서 뭐라 말했다.

두 눈을 부라리고 있어 협박인지 대화인지 알 수 없었지만.

돌연 흑마가 바람처럼 닐스의 앞으로 달려왔다.

[희귀 펫 흑마가 당신의 펫이 되길 원합니다.]

[수락하겠습니까?]

닐스를 향한 알림이다.

닐스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말로 이 멋진 녀석을 펫으로 들일 수 있게 되다니 믿기지 않았다.

“로안···!”

“알림이 떴으면 어서 수락해요. 형이 거절하면 몰캉이가 이 녀석을 잡아먹을지 몰라요.”

물론 실제로 몰캉이가 흑마를 잡아먹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몰캉이의 그 협박만으로도 흑마는 닐스에게 절대 충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 그래. 알았다.”

닐스는 흑마가 잡아먹히게 둘 수 없었다. 그는 조급히 수락했다.

“예! 수락합니다!”

[흑마가 당신의 펫이 되었습니다.]

[흑마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닐스는 고민하지 않았다.

이미 아까 혼자서 비록 몽상이지만 흑마가 자신의 펫이 되면 짓고 싶은 이름을 생각해봤으니까.

“껌정이.”

그렇게 희귀 등급 탑승 펫 껌정이는 닐스의 펫이 되었다.

“히히히히힝!”

흑마 아니, 껌정이도 자신의 새로운 주인을 맞이해서 기쁜지 크게 포효했다.

* * *

숙소로 돌아오자 어느덧 하늘이 어둑해졌다.

로안은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 무렵.

갑자기 뭔가가 로안의 볼을 치며 깨웠다.

토실이였다.

“으응? 배고프냐? 사료줄까? 아님 당근 줘?”

토실이는 고개를 흔들고는 앞발로 창밖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보니 뜰에서 신비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낮에 꽂아둔 푸니카 상단의 우정 깃발!

‘오! 보물 고블린들이 벌써 온 건가?’

빠르기도 하군.

로안은 즉시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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