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바로 파괴력 최강의 도법이다 (3)
도미닉이 물었다.
“토실이가 우릴 저 멀리 있는 바위로 안내하는 이유가 있나?”
“저 근처에는 독 안개가 거의 없을 겁니다. 따라서 그 근처로는 독 괴물들도 접근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안전 지대 비슷한 장소죠.”
“오오!”
안전 지대라는 말에 모두들 반색했다.
사실 이런 던전에, 특히나 사방이 독 안개로 가득 찬 벌판에 저런 안전 지대가 있다는 건 황당한 일이었다.
아마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로안의 말이라면 틀림없음을 모두들 잘 알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런 지식을 알고 있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럼 저기라면 자폭 괴물들을 신경쓰지 않고 암살자들만 상대할 수 있겠구나.”
“그렇죠.”
“그럼 어서 가.”
플로리가 안도하며 말했다.
주변의 자폭 괴물들 때문에 그녀는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만약 그것들이 없다면 암살자들을 보다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잠깐! 누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위 쪽으로 빠르게 일행을 인도하던 로안이 긴장한 표정으로 전방을 노려봤다.
“아무도 없는데?”
플로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탐지 마법에는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도미닉 또한 신성력의 기운을 뿌려 전방을 훑었다.
“착각인 것 아닌가? 만약 뭔가가 은신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게 되어 있네. 무엇보다 살기가 느껴지지 않네.”
플로리도 동의했다.
“도미닉 사제님의 말씀대로 저곳에 누군가 숨어있다면 살기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어. 그런데 전혀 감지되지 않아.”
그러나 로안은 어느새 그의 어깨 위로 올라와 있는 토실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이 녀석을 속일 수는 없거든요.”
방금 전 토실이가 로안에게 신호를 보냈다.
[전설 펫 토실이가 전방에 은신 상태의 존재를 감지했습니다.]
아까는 뭔가를 감지했다고만 했다.
그런데 이곳 가까이 와서는 그 뭔가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었다.
‘은신 상태의 존재라고?’
즉, 토실이가 이쪽으로 온 건 바로 로안에게 그걸 알려주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누군가 땅속에 숨어있다는 건데?’
이 정도로 감쪽같이 숨어있다는 건 아주 특수한 대법을 펼쳤음을 의미한다.
예전 흑사문의 문주가 펼쳤던 귀식대법 같은 것 말이다.
‘살기가 느껴지지 않은 걸 보면 틀림없어.’
즉, 지금 이 근처 어딘가의 땅 속에 숨어있는 존재는 암습을 위해 숨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완벽하게 감추는 최후의 수법을 펼친 것이다.
‘가만, 그럼 혹시?’
토실이가 로안의 어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바닥의 한 곳에 가서 섰다.
“저기군요.”
로안은 토실이가 알려준 지점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플로리가 놀라 외쳤다.
“위험해, 로안.”
“암살자가 아니니 염려마세요.”
로안은 미소 지었다.
“제 짐작이지만 헤로스 백작님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종적을 감춰 생존을 도모하는 능력은 귀식대법 말고도 많다.
‘헤로스 백작도 그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게임에서 한두 번 파티를 해본 것이 아니라서 로안은 헤로스의 능력에 대해서도 훤히 꿰고 있다.
다만 그건 그가 평범한 상태에서는 펼칠 수 없다.
용사의 생존기이니까.
‘설마 그 사이 용사로 각성한 건가?’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일부 정도는 각성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야 최후의 생존기를 펼칠 수 있으니까.
“헤로스 백작님이라고?”
“설마? 그럴 리가!”
한편 로안의 말에 플로리 뿐 아니라 도미닉은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매우 오랫동안 헤로스 백작을 지켜봐왔다.
그러나 헤로스 백작에게는 이렇게 땅속으로 숨어들어 완벽하게 은신하는 능력은 없었기 때문이다.
“보시면 압니다.”
로안은 미소 지었다. 그리고 땅을 두드리며 말했다.
“저 로안입니다, 헤로스 백작님. 이제 그만 올라오시지요.”
이렇게 하지 않아도 헤로스 백작은 이미 감지했을 것이다.
최후의 생존기를 각성했다면 땅 속에서 지상도 볼 수 있을 테니까.
들썩!
역시나 갑자기 근처의 땅이 들썩이더니 위로 솟구쳤다.
동시에 흙속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흙먼지로 뒤덮였지만 황금빛 갑옷을 입은 청년.
역시나 헤로스 백작이었다.
그는 나오자마자 토실이를 보며 기막혀했다.
“정말 대단하군.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그를 본 플로리가 반색했다.
“백작님! 정말 백작님이세요?”
“그래. 나다, 플로리. 그대들이 나타난 걸 보고 도저히 믿기지 않아 잠시 지켜보고 있었지. 여길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야?”
그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특히 귀와 입, 코에서 검은 피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동시에 그의 얼굴 피부는 돌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백작님, 얼굴이 왜?”
“저주에 당했다. 땅 아래에 있을 땐 버틸 만했는데 나오니 다시 이놈의 저주가 또 쿠욱···!”
헤로스 백작이 입에서 검은 피를 울컥 쏟아냈다.
“이런! 아주 악독한 저주에 당하셨군요.”
도미닉이 깜짝 놀라며 앞으로 손을 뻗었다.
화아악!
그의 손에서 신령한 빛이 쏟아져 나와 헤로스 백작의 몸을 휘감았다.
그러자 악마 바실리오의 환영이 나타나 원독어린 눈빛으로 도미닉을 노려봤다.
“이 원수같은 아프릴리스의 사제 놈! 네놈이 기어코 나의 일을 망쳐놓는구나. 두고 보자, 내 네놈을 반드시······.”
바실리오의 환영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성광의 빛에 몸이 녹아 버렸기 때문이다.
“으! 드디어 저주가 풀린 건가?”
헤로스 백작의 얼굴은 저주가 사라져 말끔한 상태로 돌아왔다.
도미닉이 밝게 웃었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헤로스 백작님.”
“고맙소, 도미닉 사제! 당신이야말로 어떻게 된 거요?”
“꼼짝없이 죽을 뻔한 저를 로안과 플로리 님이 구해주었지요.”
“정말 다행이오.”
헤로스 백작은 기뻐하면서도 놀라워했다.
플로리가 미소 지었다.
“여기 온건 로안 덕분이에요. 로안이 백작님과 도미닉 사제님을 소환한 마법진의 암호를 풀었거든요.”
“또 로안 너인가? 정말 대단한 녀석이군.”
“운이 좋았습니다. 그보다 이곳에 지금 암살자들이 몰려오고 있으니 대비해야 합니다.”
다급하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로안의 표정은 밝았다.
사실상 가장 난이도가 높을 것이라 여겼던 일이 예상밖으로 빠르게 해결됐기 때문이다.
‘막보에게 잡혀 있을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
비로소 악마 바실리오가 왜 그토록 악착같이 사제 도미닉을 죽이려 했는지도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방금 전 도미닉이 아니었으면 헤로스는 저주를 풀지 못했을 테니까.
“그래. 자세한 얘기는 일단 암살자들부터 처치한 후에 하도록 하지.”
저주가 풀린 헤로스의 눈빛은 이전과 비할 수 없이 맑고 강렬했다.
그의 기세 또한 어젯밤보다 강해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 완전한 용사로서의 기세는 아니었다.
대략 최후의 생존기 정도만 각성한 수준이랄까?
‘하긴 용사 각성이 그리 쉬운 건 아니지.’
그래도 일단 각성의 일부라도 시작한 것이 중요하다.
완전한 용사로서의 각성을 이룰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누가 파티장인가?”
“접니다. 파티 걸 테니 받으세요.”
로안은 즉각 헤로스를 파티에 초대했다.
[중급 마도객 로안의 파티]
-파티장 : 로안(Lv36)
-파티원 : 도미닉(Lv58)
-파티원 : 헤로스(Lv58)
-파티원 : 플로리(Lv57)
-파티원 : 레이(Lv31)
-파티원 : 닐스(Lv28)
“그러고 보니 백작님 레벨 업하셨군요.”
“맞아. 죽기 직전에 운좋게 올랐어. 그게 아니었다면 난 지금쯤 괴물들의 뱃속에서 소화되고 있을 거야.”
헤로스는 씩 웃으며 파티창을 보더니 돌연 아공간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봐, 닐스!”
“옛! 용병 닐스!”
“뭘 그리 긴장하나? 어쨌든 그 레벨로 여기에 끼다니 대단한 행운이로군.”
“모두에게 정말 감사하고 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닐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했다.
그는 왠지 헤로스 백작이 당장 파티에서 나가라고 말할 것 같았다.
그러면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너무 염치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탁!
그런데 헤로스는 닐스의 한쪽 어깨를 가볍게 치고는 말했다.
“뭘 그리 주눅이 들어있나? 이런 기회를 얻은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 그리고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도록 강해지도록 해.”
“며, 명심하겠습니다.”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니 받게. 운 좋게 오늘 주웠는데 자네에게 딱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 말과 함께 헤로스는 닐스의 손에 자그만 책자 하나를 건넸다.
“이, 이건!”
닐스의 손이 떨렸다.
그로서는 꿈같은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중급 창투술 교본]
-분류 : 30레벨 승급 아이템
-내용 : 중급 창투사가 되기 위한 창투술의 교본이 적혀 있다.
-직업 제한 : 창투사
잠시 후면 그는 29레벨이 된다.
그러나 금수저 레이처럼 아공간에 승급 아이템을 미리 챙겨서 다닐 형편이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는 10레벨 승급석도 구하지 못해 오래도록 9레벨 신세로 보내기도 했으니까.
따라서 그는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29레벨로 지낼 것을 각오했다.
30레벨 창투사 승급 아이템을 구한다는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왜 이것을 저에게······.”
“왜긴? 자네는 창투사 아닌가? 난 마침 그걸 주웠을 뿐이야. 부담갖지 말게.”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꼭 갚겠습니다.”
닐스가 감동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갚다니! 그냥 주는 거라 하지 않았나? 다음에 운 좋게 40레벨 창투사 승급 아이템을 얻게 되면 또 챙겨줄 테니 열심히 레벨이나 올리라고.”
그 모습을 보며 플로리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헤로스 백작이 너무 흐뭇해하고 있었으니까.
로안도 미소 지었다.
역시나 호구 용사 헤로스의 성격은 어디 가지 않았다.
이 와중에도 남에게 퍼주다니!
그러나 다른 이도 아닌 닐스에게 주어진 행운이라 로안으로서는 당연히 환영이었다.
“어새신들이 오고 있어요.”
그때 플로리가 한쪽을 보며 말했다.
과연 짙은 독 안개 저편으로 살기가 느껴졌다.
“저놈들은 내가 맡도록 하지.”
순간 남들이 말릴 사이도 없이 헤로스가 독 안개 속으로 돌진했다.
“크악!”
“으아악!”
짤막한 단말마가 두 번 들려오더니 헤로스가 별 것도 아니라는 듯 검에 묻은 피를 털며 돌아왔다.
그 후로도 어새신들이 접근하면 헤로스가 나가 처치해버렸다.
[파티원 닐스의 레벨이 29가 되었습니다.]
[파티원 레이의 레벨이 32가 되었습니다.]
파티원들의 레벨이 잘 오르고 있다.
로안 역시 잠시 후 레벨이 37로 올랐다.
“어새신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있어요.”
그런데 놈들은 몇 번 죽고나자 쉽사리 접근해오지 않았다.
시간을 끌고 있는 듯했다.
“저놈들이 대체 무슨 생각일까?”
“막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겠죠.”
“막보?”
“마지막 보스인 바위 거인 브라호스가 주기적으로 이곳까지 순찰을 돕니다.”
그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헤로스까지 긴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게 사실인가?”
“예,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그놈이 오는 건 확실합니다.”
“골치아프게 됐군.”
로안의 말이 사실이라면 상당히 어려운 전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바위거인 브라호스와 수많은 어새신들을 동시에 상대해야 할 테니까.
그러나 로안의 표정은 담담했다.
‘어차피 싸워야할 놈이니 여기로 와주면 편하지.’
[거력붕멸도법 습득 중]
[······99% 체화 중]
그 사이 새로운 도법의 습득도 거의 완료됐다.
[거력붕멸도법을 습득했습니다.]
드디어 익혔다.
파괴력 최강의 도법을.
[흑사광살도법을 6성까지 성취한 당신은 상승 도법 연마를 위한 기본이 충분합니다.]
[그러나 상위 도법을 배운 지금 하위 도법은 불필요할 뿐입니다.]
[흑사광살도법 6성을 소모해 거력붕멸도법의 성취를 4성으로 올리겠습니까?]
[이 경우 속성이 가능합니다.]
“예.”
저렙 동안 로안의 밥줄이 되어준 흑사광살도법.
‘그동안 고마웠다!’
이제는 버릴 때가 된 것이다.
쓰지 않을 것을 버리고 거력붕멸도법을 4성까지 올리는 데 소모되는 코인도 절약하게 되니 나쁘지 않다.
[흑사광살도법이 비급 목록에서 사라집니다.]
[속성으로 상위도법의 수련을 시작합니다.]
[성취도 4성 속성 체화 진행 중 1%]
[······체화 진행 중 100%]
[거력붕멸도법 4성에 도달했습니다.]
순간 로안의 두 눈에서 일순 강렬한 광채가 피어났다.
또한 그의 몸에서 피어나는 기세 자체가 달라졌다.
옆에 있던 헤르스 등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쿠웅! 쿠웅!
동시에 멀리 독 안개를 뚫고 거대한 뭔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바위 거인 브라호스(Lv58, Boss)
그놈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