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대로 놀아볼까? (2)
“커윽!”
“크어억!”
“쿠으!”
얼음화살에 중요부위를 맞은 미노타우루스들은 일제히 두 눈을 부릅떴다.
입은 쩍 벌어진 상태.
그것들은 그야말로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처절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로안도 당연히 안다.
저 고통을 어찌 모르겠는가.
쿵! 쿠웅!
오죽하면 손에 쥐고 있던 도끼를 내팽개치고 중요 부위를 붙잡고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녀석들은 시퍼런 얼음에 뒤덮인 채 얼어붙었다.
스스스! 스스스스!
본래 얼음 화살에 적중되면 대미지를 입는 것과 동시에 일시적으로 냉기에 노출되게 된다.
그래서 그 자리에 멈춰서거나 혹은 이동속도가 매우 느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크리티컬 대미지 즉, 치명타 피해를 입게 되면 그땐 지금처럼 얼어붙어 버린다.
‘대박!’
로안은 깜짝 놀랐다.
멀티 얼음 화살!
한번에 다량의 얼음 화살을 날리는 건 마나 소모가 적지 않은 데다 대미지도 그리 높지 않다.
무엇보다 적중률도 매우 낮다.
무작정 얼음 화살들을 날린다고 적들이 맞는 것이 아니니까.
즉, 보통은 잘 쓰지 않는 마법인 것이다.
그런데 플로리는 멀티 얼음 화살을 아주 기막히게 사용했다.
각각의 얼음 화살을 조종하는 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데, 가히 천재적인 집중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번쩍!
이어지는 연격 마법!
그녀의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던 마법 지팡이가 강한 섬광을 뿌리는 순간.
화르르르!
시뻘건 화염이 불비처럼 쏟아지며 방금 전 얼어붙은 미노타우루스들을 덮쳤다.
쩌저저적―
콰쾅! 콰아아앙!
귀를 찢을 듯한 폭음과 함께 얼어있던 미노타우루스들이 산산이 조각나 무너져내렸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당신의 레벨이 34가 되었습니다.]
정신없이 울리는 알림들.
경험치와 코인 등을 얻었다는 내용과 동시에 레벨 업을 알려줬다.
[파티원 플로리의 레벨이 57이 되었습니다.]
플로리의 레벨도 올랐다.
아쉽게도 동굴에 있는 닐스와 레이에게는 파티 경험치가 분배되지 않았다.
그들과는 너무 거리가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닐스는 레이처럼 한계 레벨인 29까지 올랐을 것이다.
“축하해요, 플로리 님.”
“너도 축하해.”
플로리는 가루가 되어 흩어진 미노타우루스들의 사체를 밟고 걸어오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또 놀아볼까?”
그녀는 힐끗 미노타우루스들을 노려봤다.
우, 움찔!
순간 로안을 뒤쫓던 미노타우루스들이 그녀의 기세에 놀라 뒷걸음질쳤다.
전사도 아닌 마법사에게.
겁을 모르는 미노타우루스들이 저런 식으로 기가 눌릴 줄이야.
그런데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크으! 이 죽일 년!”
“가만 두지 않겠다!”
“한 번에 달려들어 찢어죽여라!”
뒤로 움찔 물러났던 미노타우루스들이 이내 다시 콧김을 내뿜으며 플로리를 향해 돌진했던 것이다.
다만 자세가 좀 묘했다.
한손은 도끼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중요 부위를 막고 있었으니까.
미노타우루스들도 바보가 아닌 만큼 동일한 수법에 당할 생각이 없던 모양이다.
“이제부터는 내게 맡기고 피해요.”
로안은 미노타우루스들의 앞을 막아선 후 망나니처럼 종횡무진 도를 휘둘렀다. 최대한 놈들의 주의를 다시 끌기 위함이었다.
“저리 비켜라, 인간 놈!”
“너는 조금 있다 죽여주마!”
놀랍게도 미노타우루스들은 로안의 도에 살이 베여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리고는 플로리를 향해 몰려갔다.
이는 현재 플로리를 향해 적개심 즉, 어그로가 맥스까지 차 있다는 뜻.
대체 얼마나 분노했으면 저럴까 싶었다.
물론 로안도 입장 바꿔보면 이해가 가긴 했지만.
츠츠츠츳!
그런데 플로리는 블링크를 펼쳐 가볍게 미노타우루스들을 따돌리더니 다시금 얼음꽃을 피워냈다.
커다란 얼음꽃의 시퍼런 빛이 사방을 비추자 미노타우루스들은 움찔했다.
그러나 놈들은 금세 다시 플로리를 향해 돌진했다.
“크큭! 같은 방법이 통할 것 같으냐?”
“각오해라, 마법사 년!”
중요부위를 한손으로 가리고 있는 터라 얼음 화살 정도는 맞아도 상관없다는 뜻.
쩌저정.
그 순간 플로리의 손에 있던 얼음꽃이 깨졌다.
파파파팟―!
동시에 10여 개의 얼음 화살들이 다시 유도탄처럼 앞으로 날아갔다.
미노타우루스들은 그것을 무시한 채 도끼를 휘두르며 돌진했지만.
푸푸푹! 푹푹!
‘저런!’
이번에는 뒤쪽이다.
얼음화살들이 노린 곳은 미노타우루스들의 항문이었다.
대부분 적중!
앞부분만 신경쓰다 허를 찔린 것이다.
10여 마리의 미노타우루스들이 충혈된 눈으로 플로리를 노려보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역시 치명타!
번쩍!
화르르르! 콰콰콰쾅!
방금 전 레벨 업으로 지력 스탯을 올린 플로리는 더욱 강력한 위력의 화염 폭풍을 날렸다.
얼어붙어 있던 미노타우루스들이 처참하게 쪼개져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크어!”
“크으!”
그러자 아직 살아있는 미노타우루스들이 그 광경을 보고 패닉 상태에 빠져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전의를 상실한 것이다.
로안은 감탄했다.
‘플로리에게 저런 면도 있다니.’
카오니아 게임이 현실의 세계로 되면서 바뀐 설정들이 제법 있다.
아예 없던 캐릭터가 생겨나기도 하고, 역사의 흐름 자체에도 변동이 생기기도 하고.
또한 동일한 캐릭터인데도 그 성격 자체가 달라진 경우도 있다.
아마도 NPC가 아닌 현실의 캐릭터가 되며 현실 보정이 이루어진 것 아닐까 싶다.
마법사 플로리가 바로 그런 경우이리라.
지금 보는 플로리는 로안이 알던 NPC 플로리가 아니었으니까.
‘하긴 약점이 생겨났으면 강점도 생겨나는 것이 맞겠지.’
그녀는 뜬금없이 고양이 공포증이라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어 일종의 민폐성 캐릭터가 되었는데, 지금은 그런 약점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강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완전 파이터인데?’
마법사 파이터.
적으로 만났을 때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부류다.
흑마법사 크라겔이 바로 그런 류의 대표적인 마법사다. 지금은 토실이의 펫이 되어 있어 다행이지만.
‘우와!’
한편 플로리의 그런 전투 장면을 경이적인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가 또 있었으니.
레이였다.
‘얼음화살을 저렇게 쓸 수도 있구나.’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해봤던 방법이다.
마법사로서 새로운 영역에 눈을 뜨는 것 같았다.
‘잘 배워둬야지.’
그녀의 두 눈이 반짝였다.
위대한 선배 마법사의 전투비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행운이었으니까.
반면에 조금은 시큰둥한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는 녀석도 있었다.
다름아닌 제논.
툭.
그런 제논을 뭔가가 건드렸다.
제논은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리다 흠칫 놀랐다.
언제 다가왔는지 몰캉이가 두 눈에서 하얀 섬광을 번뜩이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제논은 순간 아까 자신이 외친 말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
‘자, 잠깐! 멍청이라고 했던 말 취소다.’
그러나 몰캉이는 이미 손을 보기로 작정한 듯 제논을 덮쳤다.
퍽퍽!
‘크윽! 빌어먹을! 이 애벌레 놈이 감히!’
몇 대 얻어맞은 제논이 울컥하며 반격했지만 소용없었다.
몰캉이는 이미 20레벨 승급까지 마친 고렙이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몰캉이에게 더 얻어맞을 상황.
그런데 그때.
뭔가가 그들을 들어올렸다.
주인 토실이였다.
싸우지말라는 듯 토실이는 몰캉이와 제논을 동시에 붙잡고 볼을 비벼댔다.
* * *
예상치 못한 플로리의 활약 덕분에 제단의 미노타우루스들을 해치우는 일은 쉽게 끝이 났다.
덕분에 로안의 레벨은 또 상승해 35가 되었다.
[각성석을 얻었습니다.]
[상급 생명력 회복 물약을 얻었습니다.]
[20레벨 승급석(일반)을 얻었습니다.]
······.
전투를 끝내자 토실이가 몰캉이 등을 데리고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을 루팅했다.
저렙 때는 구하기 힘든 각성석이나 승급석 등이 몇 개나 나왔다.
잘 모아뒀다가 경매장에 팔면 제법 코인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로안 혼자 독식할 수는 없는 일.
이번 전투에 기여한 플로리와 사이좋게 반씩 나눠가졌다.
“정말 대단했어요, 플로리 님.”
플로리가 미소 지었다.
“대단하긴. 그냥 잠시 재밌게 놀았을 뿐이야.”
“근데 평소에도 그렇게 노시나요?”
“그럴 리 있겠니? 오늘 처음 해보는 거야.”
플로리는 우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로안은 믿지 않았다.
‘처음은 무슨!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플로리가 대량으로 얼음화살을 날려 모조리 급소 치명타를 발생시킨 건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에 가까웠다.
그녀의 집중력이 아무리 천재적이라 해도 상당한 훈련과 실전이 필요한 일인 것이다.
“로안 너 그 표정은 뭐지? 내 말을 안 믿는 것 같구나.”
“안 믿긴요. 믿어야죠.”
“실은 아까 내가 실수를 해서 모두를 곤란하게 했잖아. 그래서 나에게 이런 면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야. 안 그럼 내가 너무 바보같아 보이잖니?”
“그렇군요. 아주 멋졌습니다.”
“멋지긴. 헤로스 백작님을 만나면 절대 방금 일을 말하면 안 돼. 알았지?”
“그야 염려마세요.”
로안은 안심하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플로리는 헤로스 백작에게는 자신에게 상당히 터프한 면도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은 모양이었다.
‘안 숨겨도 될 것 같은데?’
로안에게는 그저 우아하게만 보이던 플로리보다 방금 전의 모습이 제법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마 헤로스 백작도 비슷하지 않을까?
“참, 도미닉 사제님은 무사히 깨어나셨겠지?”
“먼저 올라가보세요. 전 제단을 파괴하고 올라 가겠습니다. 챙길 것도 있고 해서.”
여기에 꽤 중요한 보물이 하나 있다.
그건 반드시 챙겨야 한다.
“내가 돕지 않아도 될까?”
“저건 그냥 부수기만 하면 되는 거라 간단해요.”
도미닉은 헤로스 백작과 함께 실종됐다.
그라면 지금 헤로스 백작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플로리는 빨리 그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었는지 다급히 동굴 위로 올라갔다.
그 사이 로안은 핏빛으로 물든 마법진이 있는 중앙 제단 앞으로 이동했다.
이 마법진은 본래 제단에는 없던 것이다.
‘의식이 중단되어 마법진이 완성되지 못했지만 비밀 문양은 거의 드러나 있군.’
로안은 카오니아 세계의 웬만한 문양은 다 외우고 있다.
‘뼈로 만들어진 검과 창. 그것이 왕관 모양을 이루고 있어.’
문양을 보니 이것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악마 바실리오! 그놈의 문양이군.’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로안의 귓전에 사이한 음성의 알림이 들려왔다.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 임무가 생성되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
-분류 : 알 수 없는 임무
-내용 : 사제 도미닉을 죽여라. 그러면 그대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보상 : 귀령도법(鬼靈刀法), 10만 코인
로안은 어이가 없었다.
아주 황당한 임무가 생성된 것이다.
‘보상이 귀령도법이면 대박이긴 하군.’
현재 로안이 익히고 있는 비급인 흑사광살도법과는 차원이 다른 영웅 등급의 비급이다.
특히 영웅 등급 도법 중에서는 귀령도법이 가장 강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10만 코인까지 추가로 준단다.
[임무 〈좋은 게 좋은 것이다〉가 자동 수락되었습니다.]
이 임무는 로안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자동으로 받아졌다.
그러나 놀랄 것 없었다.
원래 이런 류는 그런 식이니까.
‘드디어 시작인가?’
악마의 제의!
이것은 메인 퀘스트를 시작하면 임의로 나타난다.
퀘스트 형식으로 나타나는 제의.
[제한 시간 안에 임무 〈좋은 게 좋은 것이다〉를 성공시키세요!]
[제한 시간 29분 59초]
지금 나타난 임무가 악마 바실리오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다른 악마가 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악마가 줬든 그 임무를 완수하면 로안은 용사가 아닌 악마들의 진영 쪽에 속하게 된다.
게임에서는 해봤지만 현실에서는 당연히 그럴 생각이 없다.
‘귀령도법은 여기가 아니어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보상은 집착할 이유가 없다.
좀 귀찮긴 해도 다 구할 수 있으니까.
운만 좋다면 이곳 시련의 던전에서 얻을 수도 있다.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여기 제단을 부수면 나타나는 상자에 있으니까.
콰앙!
로안은 마룡도를 휘둘러 제단을 박살냈다.
악마 바실리오의 문양이 그려진 마법진도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임무는 사라지지 않았다.
[임무 〈좋은 게 좋은 것이다〉의 제한 시간이 29분 32초 남았습니다.]
[10분 안에 완수하면 두 배의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10분 안에 두 배라!
게임이었다면 제법 흥미로운 제의였겠지만, 지금은 관심없다.
‘어서 비급이나 챙기자.’
로안은 아공간에서 곡괭이를 꺼내 부숴진 제단의 아래를 팠다.
팍팍!
여긴 사실 시련의 다리에 있던 악령들이 알려준 장소다.
어떤 비급이 나올지는 모른다.
그러나 획득자의 직업에 맞는 영웅 등급의 비급 중 하나가 랜덤으로 나오는 식이다.
다만, 이 비급은 단 한 번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누군가 얻고나면 던전 리셋이 되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 설정은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건 반드시 챙겨야 한다.
앞으로는 삼류 도법인 흑사광살도법만으로 상대하기에 버거운 괴물들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후!’
당연히 있을 줄 알면서도 혹시 모른다는 우려가 드는 건 로안도 인간이어서다.
푹! 푸확!
다행히 잠시 땅을 파내자 흑색의 나무로 만들어진 큼직한 상자가 하나 보였다.
‘저거다.’
로안은 상자를 꺼낸 후 심호흡을 했다.
이제 이 상자를 열면 랜덤으로 영웅 등급 도법의 비급이 나올 것이다.
다행히 토실이도 옆에서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은 심각한 표정이지만.
‘녀석, 이건 너도 쉽지 않은가 보구나.’
아무리 토실이라도 모든 랜덤 박스의 확률을 다 높일 수는 없을 것이다.
로안은 마음을 비웠다.
뭐라도 상관없다.
영웅 등급 도법 중 가장 약한 것이라도 지금의 도법보다는 훨씬 강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