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으로 독존한다-53화 (53/240)

푸른 수염 코볼트 (1)

드라우트 성의 중앙 망루.

성주인 스카드 남작의 옆에 건장한 체격의 청년이 한 명 서 있었다.

전신을 멋들어진 황금빛 갑옷으로 두른 그 청년은 다름아닌 헤로스 백작.

“현재 이 성의 상황은 어떤가, 스카드 남작?”

“백작님이 오신 덕분에 병사들이 상당히 안심하는 분위기입니다.

레온 왕국의 중앙 귀족이자 실세 중 하나인 베안트 공작가의 장자.

동시에 전도 유망한 상급 검사로서 위명을 떨치고 있는 헤로스 백작이 지원을 왔다.

거기에 상급 마법사 플로리와 상급 사제 도미닉까지.

스카드 남작으로서는 그야말로 어둠 속의 빛을 본 듯했다.

“백작님께서 와주시지 않았다면 지금쯤 이 성은 오크 놈들에게 점령되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헤로스 등이 오기 전에 드라우트 성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오크 대군이 작정하고 성을 공격해왔기 때문이다.

레이를 비롯한 각성자 부대가 수성전에 합류했지만 오크들의 숫자가 많아 그들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헤로스는 달랐다.

그는 성에 도착하자마자 성안에 난입한 오크들을 단숨에 해치워버렸다.

마법사 플로리는 상급 광역 마법을 펼쳐 성벽 위를 오르던 오크들 다수를 몰살시켰다.

이에 놀란 오크들이 멀리 후퇴해 스카드 남작 등이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현재 사제 도미닉은 부상자들을 치료하느라 정신 없었고, 플로리는 전투 중 한꺼번에 대량의 마나를 소모한 터라 휴식 중이었다.

“우리가 온 건 모두 마쿠스 공작님의 명령 때문이지.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

“아! 그렇군요.”

스카드 남작은 비로소 상황이 이해가 갔다. 이들의 지원이 레이의 외조부인 마쿠스 공작의 배려 때문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병사들의 상태가 그다지 좋아보이지는 않는군. 오크들 때문에 겁에 질려있는 건가?”

“그게 실은 식량 때문입니다.”

스카드 남작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어제 그의 조카 레이가 각성자들과 함께 도시 헤르바로부터 운송해 온 식량.

그것도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다.

성의 병사들이 대략 한달 정도를 간신히 버틸 수 있는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것을 오늘 코볼트들이 땅굴을 파고 침투해 와 훔쳐가버렸다.

“그러니까 오크들을 막는 사이 코볼트들이 은밀히 땅굴을 이용해 성의 내부로 침투했다는 뜻이군.”

“예, 설마 오크 놈들이 코볼트까지 부리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순간 헤로스는 한심하다는 듯 힐끗 스카드 남작을 노려봤다.

“그건 공성전에서 흔히 쓰는 수법이네. 미리 대비만 했어도 코볼트 따위에게 식량을 도둑맞을 일은 없었을 거야.”

그건 사실이었다.

코볼트들의 전투력이 강한 것도 아니고, 땅굴을 파고 들어오는 걸 알았다면 놈들을 도리어 몰살시켰을 테니까.

“면목없습니다. 그저 오크들을 막는데만 전념하다보니 미처 그 생각을 못했습니다.”

스카드 남작은 스스로도 자신이 한심한지 낙심한 표정이었다.

“지금 그대를 추궁하고자 하는 게 아니니 그리 넋빠진 표정은 짓지 말게. 이후에 또 같은 일을 당하지 않도록 꼼꼼히 신경을 쓰라는 뜻이야.”

“명심하겠습니다, 백작님.”

헤로스 백작은 스카드 남작에게 천군만마와 같이 든든한 존재지만, 동시에 매우 두려운 상관이기도 했다.

작위와 레벨 모든 면에서 그가 감히 고개도 들 수 없을 만큼 상위의 존재이니까.

자연스레 성의 모든 병력은 헤로스 백작이 지휘하게 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식량이 지금 얼마나 남은 건가?”

“마지막 배급을 주고 나면 끝입니다.”

그말을 들은 헤로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기랄! 이건 최악의 상황이군.’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든 건 스카드 남작의 무능함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불가항력적인 상황일 수도 있었다.

멀리 보이는 붉은 오크들의 진영에서 피어나는 기세가 결코 만만치 않았으니까.

‘저 붉은 오크들은 단순히 숫자로만 밀어붙이는 놈들이 아니야. 제법 잔머리도 쓸 줄 아는 놈들이 분명해.’

따라서 잘 훈련된 적국의 군대와 싸우 듯 신중해야 한다.

그렇다 해도 헤로스는 어떻게든 성을 방어할 자신은 있었다.

물론 그 혼자서는 무리다.

병사들과 힘을 합쳐야 가능한 일.

하지만 그들이 굶주림으로 쓰러져버린다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식량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 성의 방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는 일단 자신의 아공간에 들어있는 아이템 중 식량이 될 만한 건 다 끄집어 냈다.

우르르르.

상급 전투 식량을 비롯해 값비싼 음식들이 한 무더기나 쏟아져 나왔다.

그것을 본 스카드 남작의 눈이 커졌다.

“그것들은 백작님의 비상 식량 아닌지요?”

헤로스가 인상을 굳혔다.

“답답하군. 아직도 모르겠나? 그대도 이렇게 해야 한다. 혼자만 살겠다고 아공간에 식량을 숨겨두지 말고 모두 꺼내라.”

“알겠습니다.”

스카드 남작도 각성자인 터라 아공간이 있었고 거기에 최악의 사태에 대비한 비상 식량을 제법 챙겨뒀다.

“기사들과 각성자들에게도 전해라. 각자의 개인 비상 식량들을 모아서 병사들에게 나눠 배급하면 이 성은 적어도 하루 이틀은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 우리는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한다.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즉각 실행하도록!”

“예, 백작님.”

스카드 남작은 즉각 망루에서 내려가 기사들과 각성자들에게 헤로스의 명령을 전했다.

* * *

[몰캉이가 전방의 위협을 감지했습니다.]

한편 로안의 눈에 멀리 드라우트 성의 윤곽이 보일 때쯤, 몰캉이가 돌연 멈춰섰다.

[토실이가 전방의 위협을 감지했습니다.]

토실이 또한 마찬가지다.

이 두 녀석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후각으로 적의 존재를 눈치채기 때문이다.

‘적이라면 괴물들이겠지? 이쪽에도 오크들이 매복해 있는 건가?’

그렇다면 섣불리 성으로 접근하는 건 위험한 일.

일단 은신하면서 어떤 적들이 있는 지 살펴보기로 했다.

스스.

그 사이 몰캉이가 옆의 수풀 속으로 이동했다.

[몰캉이가 보호색 은신을 펼칩니다.]

그야말로 자동이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한다.

그러고 보면 몰캉이가 보통 영리한 것이 아니다.

눈치도 무척 빨라 로안이 무엇을 원하는지 즉각 파악한다.

생긴 게 애벌레같아서 멍청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인 것이다.

[고유능력 냄새 동화(Lv4)를 펼칩니다.]

[당신과 당신의 펫들의 체취가 사라집니다.]

[지속 시간 25분]

로안 또한 고유능력을 펼쳐 냄새를 지웠다.

대부분의 괴물들은 후각이 뛰어난 편이라 단순히 모습만 감춘다고 은신에 성공할 수 없다.

냄새까지 지워야 놈들이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은신이 가능하다.

그런 걸 보면 로안의 냄새동화와 몰캉이의 보호색 은신은 최적의 조합이라 할 수 있었다.

‘저기 괴물들이 오는군.’

잠시 대기하자 일단의 괴물들이 나타났다.

10여 마리의 대머리 난쟁이 괴물들.

고블린보다 약간 큰 신장을 가졌는데, 기다란 수염이 파란색이었다.

절반 정도는 곡괭이를 들고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창과 활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코볼트?’

로안은 놈들의 정보창을 보지 않고도 단번에 그 정체를 알아봤다.

그것도 푸른 수염 코볼트다.

‘여기에 저놈들이 웬일이지?’

인간에게 다양한 인종이 있듯, 코볼트들도 여러 종이 있다.

그리고 각 종별로 기질이 매우 다르다.

그중 저 푸른 수염 코볼트들은 아주 큰 특징이 있다.

‘코볼트들 중 땅파는 능력은 거의 최고라 할 수 있는데.’

땅파기에 있어서는 두더지 인간족인 은서족(隱鼠族)과 쌍벽을 이루는 녀석들.

그런데 그런 푸른 수염 코볼트들이 왜 이곳에 있는 걸까?

【이름】 오롬

【레벨】 17

【종족】 푸른 수염 코볼트

【직업】 코볼트 전사

잠시 후 녀석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로안은 그중 한 녀석의 정보 창을 살폈다.

예상대로 푸른 수염 코볼트가 맞다.

“키킥! 저 성 안에 있는 인간 놈들 지금쯤 배가 고파 죽으려 하겠군.”

“큭! 맞아. 멍청한 놈들이지. 우리가 식량을 훔쳐갈 거라 생각도 못한 거야.”

그때 코볼트들이 키득거리며 대화를 했다.

그러자 뒤쪽에서 거친 소리가 났다.

“시끄럽다! 그 앞에 떠들고 있는 놈들 죽고 싶으냐?”

다름 아닌 오크였다.

코볼트들의 뒤쪽으로 붉은 오크 수십여 마리가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 가렉

【레벨】 30

【종족】 붉은 오크

【직업】 권사

덩치가 유난히 크다 했더니 놈의 직업은 권사였다.

보스급 괴물은 아니지만 오크 특유의 괴력으로 인해 맨손으로 바위 정도는 깨부술 것이다.

생긴 것도 우락부락한 것이 성질이 꽤 더러워보였다.

“크큭! 그렇지 않아도 출출하던 참인데 너희들 중 몇 놈을 잡아먹어야 정신을 차릴 테냐?”

“끽! 아닙니다요.”

“끼익! 잘못했습니다요.”

코볼트들은 기겁하며 몸을 떨었다.

그러자 가렉이 험상궂은 눈빛으로 그것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잡담하지 말고 너희들이 훔친 식량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우리들의 배를 채우려면 그 식량이 필요하다. 아니면 너희가 대신 식량이 되어주든가.”

“케헷! 아닙니다요.”

“두 번 다시 잡담하지 않겠습니다요.”

그때부터 코볼트들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쥐죽은 듯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가렉을 비롯한 붉은 오크들은 그런 코볼트들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코볼트 하나가 조심스레 가렉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정말로 성에서 훔친 식량만 넘겨주면 저희들의 가족들을 모두 풀어주시는 겁니까?”

“크큭! 몇 번을 묻는 거냐? 식량만 넘겨주면 모두 풀어주마.”

“케헷! 알겠습니다요. 그럼 가렉 님만 믿고 있겠습니다요.”

“그래. 나만 믿어라.”

그러나 가렉의 흉악해 보이는 얼굴에는 알 듯 말듯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로안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대충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 갔다.

‘코볼트들이 오크들의 사주를 받아 드라우트 성의 식량 창고를 털었군.’

워낙 땅굴 파기의 명수들이라 조금만 방심하면 당할 수밖에 없다.

특히 푸른 수염 코볼트들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걸 보니 푸른 수염 코볼트들 중 일부가 오크들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는 얘기다.

로안은 고개를 흔들었다.

‘인질은 무슨. 이미 다 잡아먹혔겠지.’

푸른 수염 코볼트들은 저 교활한 붉은 오크들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녀석들의 가족은 모두 붉은 오크들의 뱃속으로 사라진지 오래일 텐데, 저 가렉이라는 놈의 말만 철썩같이 믿고 있는 듯했다.

‘저 코볼트들도 식량이 있는 곳에 도착하는 순간 모두 잡아먹히고 말 거야.’

뻔한 수순이다.

붉은 오크들은 지금 군침이 나는 걸 참으면서 코볼트들의 뒤를 따르고 있으니까.

양들의 뒤를 잠자코 따라가는 늑대 무리라 보면 딱 맞는 상황이다.

‘어쨌든 이대로 두고볼 수는 없지.’

물론 코볼트들을 구하려는 게 아니라 식량을 되찾을 생각이다.

지금쯤 드라우트 성은 식량을 모두 털려 곤란을 겪고 있을 게 뻔하니까.

‘몰캉아, 최대한 들키지 않게 따라가자.’

끄덕.

이미 로안이 말하지 않아도 몰캉이는 계속 보호색을 유지하며 오크들의 뒤를 은밀히 따라르는 중이었다.

바위 근처로 가면 바위 색으로 변하고, 풀숲 근처로 가면 풀숲과 동일한 색으로 변했다.

그렇게 잠시 뒤따르자.

[냄새 동화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지속시간이 25분 뿐이라 어쩔 수 없는 일.

재사용 시간이 20분이나 되는 터라 당장은 다시 펼칠 수 없다.

다행히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이동하다보니 오크들은 아직 로안이 뒤따르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여깁니다요.”

숲을 미로처럼 따라 이동하다보니 나타난 산턱의 한 곳.

거기에 오래된 폐광 같은 것이 하나 보였다.

코볼트들은 그 폐광의 동굴 안쪽에다 드라우트 성에서 훔친 식량을 쌓아둔 것이다.

“확인해봐라.”

“예, 가렉 님.”

가렉의 부하 오크 하나가 폐광 안쪽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러더니 잠시 후 나와서 말했다.

“놈들의 말대로입니다. 식량이 저 안에 있습니다.”

“그래. 잘됐군.”

그러자 코볼트들이 기대어린 표정으로 가렉을 쳐다봤다.

“가렉 님! 이제 약속을 지켜주십시오.”

“어서 가족들을 풀어주세요.”

순간 가렉이 키득 웃었다.

“그 따위 약속을 믿다니 정말 멍청한 놈들이군.”

코볼트들의 안색이 급변했다.

오크들에게 속은 걸 비로소 눈치챈 것이다.

“우릴 속인 겁니까?”

“알면서 뭘 묻는 거냐? 너희들의 가족은 이미 우리 형제들의 뱃속으로 들어간지 오래다. 그리고 이제 너희 차례이지.”

그말에 코볼트들이 치를 떨었다.

“크으으!”

“나쁜 놈들!”

가렉이 킥 웃었다.

“맞아. 우린 아주 나쁜 놈들이지. 이제야 그걸 알았느냐?”

곧바로 그는 부하들에게 외쳤다.

“지금이다. 저 멍청이들을 모조리 밧줄로 묶어라. 여기서는 딱 한 놈만 잡아먹을 것이다. 나머지는 끌고가서 군량으로 쓴다. 서둘러라!”

“예.”

그의 부하 오크들이 기다렸다는 듯 코볼트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런데.

파악!

갑자기 뒤에서 뭔가가 날아와 오크 가렉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화르르!

그것은 불이었다.

순식간에 그 불이 가렉의 머리털을 홀랑 태워버렸다.

머리가 엄청나게 뜨거운데 전신에는 이상하게 오한이 들었다.

“크윽! 뭐냐?”

가렉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손에 도를 쥔 채로 담담히 서 있는 인간 소년이 한 명 보였다.

가렉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인간 놈! 혹시 네놈의 짓이냐?”

“그래 맞아.”

“크큭! 미친 놈! 뒈지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딱 그 자리에 멈추는 게 좋을 거야. 너야말로 뒈지기 싫다면.”

가렉을 노려보는 로안의 두 눈에서 묘한 안광이 번뜩였다.

동시에 앞으로 뻗은 그의 왼손 끝에 생겨난 하나의 형상.

“······!”

그것을 본 가렉이 흠칫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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