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자에 대한 애도 (2) >
[죽은 자에 대한 애도]
-분류 : 아프릴리스 선행(善行) 임무
-내용 : 사냥을 나왔다가 미노타우루스에게 죽은 자의 시체를 잘 묻어주자.
-보상 : 없음
[이 임무는 수락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의 황금 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면 그냥 가도 무방합니다.]
[선행 임무 〈죽은 자에 대한 애도〉를 수락하겠습니까?]
처음 나타난 선행 임무!
보상도 없다.
게다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며 시간 없으면 그냥 가라고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런 것일수록 반드시 해야 하지.’
안 해도 상관없다?
물론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인물이라면 그래도 한다.
이렇게 안 해도 되는 걸 할 경우 보통은 숨겨진 보상같은 걸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말고.’
보상 여부를 떠나서 눈 앞에 빤히 사람의 시체가 있는 걸 보고 그냥 갈 수는 없는 일.
절반은 미노타우루스에게 먹힌 터라 처참하게 훼손된 시체지만 인근의 땅을 파고 묻어주는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수락합니다.”
그러자 곧바로 알림이 다시 들려왔다.
[다시 말하지만 이 일에는 그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임무를 수락하겠습니까?]
“예, 수락합니다.”
무려 두 번이나 물으니 더 수상하다.
이런 건 무조건 해야 한다.
[그럼 죽은 자의 시체를 신령한 빛이 인도하는 장소에 묻어주세요.]
그와 함께 앞쪽에 신비한 빛무리가 생겨났다. 그 빛무리는 로안에게 따라오라는 듯 느린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빛이 사라지기 전에 따라가자.’
로안은 즉각 미노타우루스의 사체에 매달려 있는 죽은 자의 시체 부위들을 풀어 들었다.
그리고는 신비한 빛이 인도하는 장소로 따라갔다.
한참을 갔을까?
갖가지 예쁜 들꽃들이 피어 있는 언덕.
빛은 그 언덕의 한 지점에서 멈췄다.
‘저긴가?’
햇빛이 아주 잘 비치는, 말 그대로 양지 바른 곳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근처에 또 하나의 무덤이 보였다.
저 무덤은 누구의 것일까?
[당신은 빛이 이끄는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해당 지점에 죽은 자를 잘 묻어주세요.]
[그 이후 무덤 위에 들꽃 한 송이를 가져다 바치면 임무는 완수됩니다.]
요구 사항도 많다.
하지만 그런 건 말하지 않아도 할 생각이었다.
근처에 들꽃은 무지하게 많으니까.
팍팍―
마침 예전에 블러디 좀비 시절에 넣어뒀던 삽이 아공간에 있었다.
그걸 꺼내 땅을 판 후 시체를 잘 묻었다.
그리고는 근처에 있는 들꽃을 한송이 꺾어 무덤 위에 놓았다.
‘누군지 모르지만 이제 편히 잠드시길······.’
로안은 잠시 머리를 숙이고 짤막한 애도를 마쳤다.
그러자.
[선행 임무 〈죽은 자에 대한 애도〉가 성공적으로 완수되었습니다.]
역시나 완수되었다는 말만 들려올 뿐 아무런 보상은 없었다.
그러나 순간 기다렸다는 듯 이어서 또 다른 알림이 들려왔다.
[당신은 선행을 하면서도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선량한 태도를 아프릴리스가 무척 기특하게 여깁니다.]
[아프릴 1000 코인을 하사합니다.]
‘오!’
예상대로다.
로안의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피어났다.
무려 1천 코인 득!
‘여신답게 통도 크네.’
이건 임무 보상이 아니라 여신이 주는 후원같은 거다.
여신과의 친밀도가 높아지면 이런 후원이 잘 들어오는데, 초반부터 1천 코인이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샤라랑.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아프릴리스의 선행 임무가 생성되었습니다.]
연이어 또 하나의 임무가 나타났다.
[토실이 격려]
-분류 : 아프릴리스 선행(善行) 임무
-내용 : 여러모로 고생한 토실이를 격려해주자. 토실이의 머리를 3번 쓰다듬어준다. 그리고 ‘이 당근은 아프릴리스 님이 주시는 거야’라고 말한다.
-보상 : 당근, 코인, 경험치, 권능 1 회복
[이 임무는 많은 보상이 있으니 가능하면 하기를 권장합니다.]
[임무를 수락하겠습니까?]
물론 해야지.
특히나 보상에 권능 회복까지 있으니 안 할 수 없다.
그런데 느닷없이 토실이 격려라니!
게다가 임무 멘트도 뭔가 수상하다.
‘여전히 토실이를 노리고 있군.’
집착 강한 여신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다.
그러나 이런다고 토실이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착각일 것이다.
“예, 수락합니다.”
어쨌든 수락이다.
[토실이의 머리를 세 번 쓰다듬어주세요.]
곧바로 들리는 알림과 함께 신비한 빛이 토실이의 머리에 머물렀다.
슥. 슥. 스윽.
로안은 즉시 토실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녀석이 머리를 손에 비비며 좋아했다.
“이 당근은 아프릴리스 님이 주시는 거다.”
마지막 멘트를 말했지만, 토실이는 오히려 로안의 품에서 머리를 비벼댈 뿐이다.
난 주인 뿐이다. 아프릴리스 님에겐 관심없다, 주인.
마치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로안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
순간 알림이 곧바로 들려오지 않고 잠시 침묵하는 듯했지만.
[선행 임무 〈토실이 격려〉가 성공적으로 완수되었습니다.]
[전설 펫 성장 당근을 얻었습니다.]
[아프릴 100코인을 얻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당신에게 부여된 아프릴리스의 권능이 1 회복됩니다.]
[권능 10/10]
그와 함께 로안의 손에 신비한 은빛의 당근 하나가 나타났다.
[전설 펫 성장 당근]
-분류 : 영약
-등급 : 전설
-효능 : 전설 펫의 능력을 영구적으로 소폭 올려준다.
‘오!’
펫을 성장시키는 아이템이다.
경험치를 얻어 레벨이 오르는 것과 같은 것.
카멜 농장에서 당근 노가다를 하다보면 정말 드물게 나오는 것으로 보통의 전설 펫 당근보다 훨씬 희귀한 아이템이다.
[토실이가 당근을 원합니다.]
역시나 토실이도 이 당근이 뭔지 눈치챘는지 눈을 반짝이며 로안을 쳐다봤다.
“옜다! 먹어라, 토실아.”
토실이가 은빛 당근을 받아들었다.
그런데 녀석은 이번에도 자그만 조각 2개를 잘라 몰캉이와 제논에게 하나씩 건넸다.
전설 펫 전용 당근이라 원래 영웅 펫들은 먹을 수 없다.
그러나 저렇게 토실이가 직접 잘라서 자신의 펫에게 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냠냠! 쩝쩝!
역시나 몰캉이뿐 아니라 제논 녀석도 좋다고 당근 조각을 받아먹고 있었다.
그렇게 펫들이 먹는 걸 본 토실이도 남은 당근을 사각사각 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어라.”
로안은 잠시 녀석들이 편하게 먹도록 기다려 주었다.
[전설 펫 토실이의 능력이 상승합니다.]
예상대로 토실이의 능력이 올랐다.
그 뿐이 아니다.
[영웅 펫 몰캉이의 능력이 상승합니다.]
[몰캉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몰캉이의 레벨이 Lv9가 되었습니다.]
[영웅 펫 제논의 능력이 상승합니다.]
[제논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제논의 레벨이 Lv3이 되었습니다.]
그저 조각을 좀 얻어먹었을 뿐인데 몰캉이와 제논의 레벨이 상승했다.
‘대박!’
당근 하나로 펫 세 녀석이 동시에 능력 상승이라니!
일거삼득!
일타삼피!
그야말로 개꿀이 따로 없다.
‘이런 임무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로안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펫들을 어깨 위로 올렸다.
“이제 그만 가볼까?”
그러다 로안은 문득 또 다른 무덤을 쳐다봤다.
누구의 무덤인지 모르지만 왠지 다시 눈에 들어온다.
‘그래. 기왕 봤으니까.’
근처의 들꽃 하나를 또 꺾어 그 무덤 위에 올려줬다.
‘지나가다 우연히 들렀습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편히 잠드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로안은 순간 깜짝 놀랐다.
‘제논이 왜?’
토실이의 곁에서 아무 생각없이 앉아있던 좀비 펫 제논이 갑자기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그러다 훌쩍 아래로 뛰어내리더니 방금 전 로안이 들꽃을 올려놓은 무덤 앞으로 가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 아닌가.
‘저 녀석이 왜 저러지?’
로안은 넌지시 물어봤다.
“무슨 일이냐, 제논?”
그러나 제논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
슥.
그때 토실이가 근처의 들꽃 하나를 꺾어서 제논 앞의 무덤에 올려놨다.
몰캉이 또한 토실이를 따라 자그만 들꽃 하나를 물어다 무덤 앞에 놨다.
‘뭐야? 저 녀석들!’
설마 너희들도 애도를 표한 거냐?
너무나 귀여운 모습들이라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왠지 심각해보이는 제논이 문제였다.
‘잠깐, 설마?’
로안은 순간 뭔가 짚이는 것이 있었다.
크라겔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에 있는 내용.
‘녀석은 죽은 누나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지. 그럼 혹시 이 무덤이 바로 누나의 무덤인가?’
* * *
로안의 짐작대로였다.
이 무덤은 카타콤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제논 아니, 크라겔이 평소 자주 찾던 장소였다.
그러나 크라겔은 갑자기 토실이의 펫이 된 이후 이른바 멘붕 상태가 와서 자신에 대한 존재조차도 잊어버릴 정도가 되었다.
몸은 살아있지만, 그의 의식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
그래서 그냥 주는 음식이나 받아먹으며 멍하니 있었을 뿐이다.
주인 토실이가 예뻐해주면 헤헤 거리면서 말이다.
그러다 로안이 누나 제니아의 무덤에 애도를 표하는 걸 보는 순간 마치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친 것 같았다.
동시에 죽었던 의식이 일부 깨어났다.
‘누나······.’
여전히 모든 것이 충격적이었지만, 한편으로 그는 큰 위안과 감동을 받았다.
토실이와 몰캉이가 숙연한 표정으로 무덤을 향해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저 로안이라는 녀석도 지금 이 순간만은 미워할 수가 없었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는데.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펫이 된 이 현실은 그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냥 펫도 아니고, 펫의 펫이라니.
‘빌어먹을! 대체 이꼴이 뭐냐?’
하지만 절망에 빠져 있는 그를 향해 누나의 무덤은 큰 위안과 희망을 주었다.
너의 새로운 운명을 받아들여, 크라겔!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마치 누군가 그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누나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누나의 무덤 앞에서 다시 각오를 다졌다.
‘목표는 변함없다. 난 이 부조리한 세상을 뒤집어 엎을 것이다.’
물론 이제는 펫이라서 아니, 펫의 펫이라서 직접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저 로안이라는 놈을 통해서라도 나의 꿈을 이루고 말 것이다.’
어떻게 할지는 모른다.
과연 무슨 수로 주인의 주인인 로안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그래도 그는 그렇게 새로운 포부를 가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숨겨졌던 능력이 기지개를 펴고 깨어났다.
* * *
[영웅 펫 제논이 새로운 능력을 각성했습니다.]
[제논이 〈마뇌(魔腦)〉를 배웠습니다.]
[마뇌]
-분류 : 영웅 펫 제논의 특수 능력
-효과 : 비상한 두뇌를 통해 적이 펼친 계략 및 적의 신체적 약점을 파악해 주인 혹은 대주인에게 알려준다.
-부수 효과 : 소환 시 주인 혹은 대주인의 지력 스탯을 높여준다.
(현재 효과 : 지력 +1)
-제논의 레벨이 높아질수록 효과가 증가한다.
[제논의 마뇌 효과로 당신의 지력 스탯이 1 증가합니다.]
‘오! 마뇌라고?’
이거 실화인가?
당연히 고인물인 로안은 펫의 특수 능력 중 하나인 마뇌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이거 전설 펫 정도가 아니면 잘 안붙는 건데.’
전설 펫이라고 해도 운이 아주 좋아야 한다.
그런데 영웅 펫인 제논이 이걸 각성하다니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하긴 제논이 크라겔이라면 이해가 되는 일이지.’
놈은 머리 좋기로라면 따라올 존재가 없으니까.
아마도 자연스레 그게 반영이 되어 마뇌를 각성했을 것이다.
여전히 로안을 향해서는 쌀쌀맞은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다행히 적개심 같은 건 없는 듯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됐으니 우리 잘해보자고.”
로안은 제논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짝 쓰다듬었다.
그러자 제논이 자존심 상한 듯 슥 손을 들어 로안의 손가락을 밀어냈다.
저리 치워라!
로안은 무안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거뒀다.
‘이 녀석 여전히 성깔있네.’
게다가 로안을 노려보는 눈빛도 도도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녀석은 몰캉이가 흘끔 쳐다보며 눈치를 주자 이내 움찔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잘한다, 우리 몰캉이.
역시 어느 세계에서나 바로 윗서열이 무서운 법이다.
몰캉이가 제논을 제대로 갈구고 있었다.
“자, 이제 진짜 출발하자.”
어쩌다 보니 드라우트 성으로 가는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물론 헤로스 등이 먼저 갔으니 별 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빨리 가서 참전을 하고 싶었다.
이 또한 레벨을 올릴 좋은 기회니까.
그러자 몰캉이가 본체인 베르미스로 변했다.
스스스.
놀랍게도 영웅 펫이 되더니 외양도 점점 멋있어진다.
이전의 흉물스러운 마물 몸체가 아니라 푸른 빛의 깔끔한(?) 베르미스가 되어 있었다.
“왜, 몰캉아? 타라고?”
끄덕.
베르미스로 변한 몰캉이의 길이는 2미터. 굵기는 지름 50cm 정도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녀석의 몸체가 커지는데, 레벨 9라서 아직 타기는 좀 작다.
그래도 녀석이 자신있게 타라고 하니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
“그래. 가자, 드라우트 성으로!”
출렁.
로안은 몰캉이 위로 말을 타듯 올라가 앉았다. 토실이와 제논은 로안의 어깨에 위치했다.
휘이이!
순간 몰캉이가 지면에서 대략 1미터 정도 뜬 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몰캉이도 비록 저공이지만 비행 펫이다.
다만 속도는 아직 그리 빠르지는 않다.
물론 걸어가는 것보다야 훨씬 빠르지만.
쿠웅!
그러나 얼마 못가서 바닥에 추락하고 말았다.
‘윽!’
역시 아직은 무리였다.
< 죽은 자에 대한 애도 (2) > 끝
ⓒ 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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